체감온도 영하 10도의 칼바람 속에서 으레 적으로 습관적으로 귀에 꽂을 려는 이어폰을 그냥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걸었습니다. 이화여대의 보물 같은 존재 항상 나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아트하우스 모모'를 나오면서 귀에 꽂을 려는 이어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걸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이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었지만 그냥 걸었습니다
그냥 걸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15분을 칼바람 속에 걷다가 알았습니다.
아~~ 내가 영화에 취했구나.
이런 기분 오랜만입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본지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영화 '다크나이트'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 최근에 본 영화들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마이웨이'도 그랬고 '퍼펙트게임'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메리와 맥스'가 뭔가 사기당한 듯한 연말 대작영화에 대한 휑한 마음을 채워주네요.
제가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영국 영화잡지 토털필름이 선정한 위대한 만화영화 TOP50 (1/5)라는 글 때문입니다. 영국의 영화잡지 토탈필름이 선정한 50편의 영화를 소개하다가 듣도 보도 못한 영화가 있기에 찜을 해 놓았죠. 그러나 국내 개봉이 되지 않아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9년 제작된 메리와 맥스가 국내 개봉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봉한다는 말에 ㅠ.ㅠ 역시 예술영화 취급을 받는구나 하고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예술 영화 취급 받으면 어떻습니까? 비록 영사기가 아닌 빔프로젝트로 디지털 파일을 재생해서 보여주면 어떻습니까?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죠
이 영화 2009년 개봉작이고 이미 어둠의 경로로 쫙 깔린 영화일것 입니다. 국내 개봉도 하지 않았는데 평점이며 리뷰가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이 많은데요. 그 글들마다 다들 칭찬 일색입니다. 영국 영화잡지 '토탈필름'과 블로거들의 칭송과 거기에 '아네트'라는 애칭이 있는 밤의 영화의 여신인 'MBC FM 영화음악의 이주연의 영화음악'에서 이주연 아나운서가 칭송한 작품이기에 성큼 다가가서 봤습니다.
호주의 8살짜리 왕따 소녀와 자폐증을 앓는 44세 중년 아저씨의 감동 펜팔 이야기 영화 메리와 맥스
영화 '메리와 맥스'는 2009년 호주에서 만들어진 애니입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영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70년대 후반 호주에 사는 8살 소녀 메리와 44살의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지적능력은 떨어지지 않으나 발달장애의 한종류인 자폐증의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저씨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이 작품은 소녀와 아저씨와의 감동적인 펜팔을 영화로 담고 있습니다.
메리는 불쌍한 아이입니다.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서 학교에서는 놀림을 받는 아이입니다.
차 티백 공장에서 티백에 줄을 기계로 찍어내는 아버지, 그러나 집에서는 창고에서 죽은 새를 박제하는 취미를 가진 가정에는 너무 소홀한 아버지와 담배와 도벽이 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어머니는 메리의 출생을 사고로 출생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거기에 메리 할아버지는 맥주를 먹고 낳았다는 소리까지 합니다
메리는 맥주를 먹고(술김에) 낳은 아이고 그런 출생 비화를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메리가 우체국에 갔다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부를 우연히 얻고 생판 모르는 미국인에게 자신의 출생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펜팔을 합니다.
8살짜리 메리는 일면식도 없는 미국의 한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는 미국의 맥스라는 44살짜리 자폐증을 앓는 아저씨에게 보내집니다.
맥스는 호주에 사는 어린아이의 편지를 정독하고 그 펜팔 편지에 답장을 합니다. 맥스도 메리 처럼 친구가 없습니다
병 때문에 맥스는 친구가 없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읽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도 다른 사람의 표정도 읽지 못하는 한마디로 사회성이 없는 아저씨입니다.
하지만 이억만리 8살짜리 소녀의 편지에 꼼꼼하게 답장을 합니다. 메리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지난 일들을 적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링크가 됩니다.
두 사람은 다른점도 많지만 공통점도 많습니다. 먼저 둘은 친구가 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만화를 즐겨봅니다.
이렇게 우연히 이어진 펜팔 속에서 둘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먼저 메리가 자신의 신세한탄을 적은 눈물의 편지를 맥스에게 보냅니다. 메리는 알코올중독인 어머니와 부모님의 방치와 왕따인 현실 속에서 맥스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맥스 아저씨는 그런 메리를 돕게 됩니다. 동시에 메리에게서 한명도 없는 친구의 느낌을 받습니다.
맥스 아저씨는 3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친구를 갖는 것, 두 번째로 만화 캐릭터 피겨를 다 모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생 먹을 초콜릿을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펜팔을 통해서 고통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어린 메리의 편지속에서 자폐증이 있는 맥스는 가끔 혼란스러워합니다.
맥스는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사실 혹은 충격적인 일에 적응을 하지 못합니다. 주변의 큰 변화에 적응하려면 몇 시간 혹은 수개월이 필요로 합니다. 어느 날 메리가 편지에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친구가 말한 내용을 말합니다. 남녀가 부비부비를 하면 스파게티와 함께 나온다는 말에 수녀가 알을 낳아서 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한 맥스는 혼란스러워합니다.거기에 사랑이라는 말에 더 충격을 받죠.
평생 여자랑 사랑할 줄도 감정표현 할줄도 남의 감정을 받아들일지도 모르던 맥스는 그 사랑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렇게 둘은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22년간의 긴 우정을 담아냅니다. 메리가 결혼을 하고 행복해 하지만 그 행복이 맥스를 판 행복일 때 감정표현을 잘하지 못하던 맥스의 분노에 메리는 눈물을 흘리고 사과를 하는 장면, 그 사과의 의미를 모르는 맥스가 나중에 sorry라는 감정을 알게 되는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변화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립니다.
깨알 같은 작은 웃음이 건빵 속의 별사탕처럼 촘촘한 영화
이 영화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1시간 30분짜리 영화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찰흙의 그 느낌처럼 아주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이 많습니다. 이 영화 '메리와 맥스'의 장점은 이 톡특하고 귀엽고 깨물어 주고 싶은 캐릭터들의 표현감이 아주 좋습니다. 맥스는 모르겠지만 메리는 너무 귀엽죠. 이런 정감 어린 캐릭터 표현에 여자친구나 아이들이 참 좋아할 영화입니다. 하지만 대사가 많아서 아이들과 보려면 부모님이 옆에서 수시로 해설을 좀 해주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클레이 애니메이션인 '웰레스 앤 그로밋'보다는 좀 더 심오한 내용이지만 캐릭터 자체는 아주 귀엽습니다. 뭐 맥스는 귀엽지 않지만 이 영화가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캐릭터들의 외형보다는 그 캐릭터들이 표현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상상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만치료를 하고 있는 맥스에게 의사가 맥스 머리보다 큰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에 맥스의 머리가 수박으로 표현된다든지 편지에 표현하는 과장된 상황이 그대로 애니로 재현되는데 이게 참 깨알같이 재미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피식거리는 작은 웃음들이 곳곳에서 터집니다. 작은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잘잘하지만 재미있는 표현들에 낄낄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웃음만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8살짜리 왕따인 메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왕따인 자신의 신세를 적은 펴지를 쓰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저의 빰에 굵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울지 안으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저 귀여운 아이를 주근깨가 있다고 약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과 어린 딸에게 축복이 아닌 사고로 난 아이라고 말하고 할아버지는 맥주 먹고 낳은 아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흘리는 눈물 속에 맥스 아저씨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쓸 때는 눈물이 저절로 흐르더군요
이 영화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영화입니다.
22년간의 펜팔 속에 두 왕따의 감동스토리와 주옥같은 명대사들
전 두 왕따가 22년 내내 펜팔을 하면서 우정을 쌓는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둘은 22년 내내 한해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는 아닙니다. 때로는 오해와 병 때문에 수년간 편지 한 통도 주고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메리가 맥스에게 크게 잘못한 일이 있어서 둘 사이는 틀어지게 되는데 나중에 맥스가 용서를 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널 용사 하는 이유는 넌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린 친구를 택할 수 있어, 넌 나의 최고의 친구고 유일한 친구야"
이 대사에 또 한 번 제 눈시울을 붉어지게 됩니다. 대구 중학생, 대전 여고생이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고 빈틈을 알고 있고 그걸 덮거나 무시하고 모른 척할 수 있기에 친구가 좋은 것인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친구나 가족에게 완벽함을 요구합니다.
맥스는 메리를 용서합니다. 메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죠. 맥스 자신도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고 장애가 있는 사람임을 알기에 그런 메리를 용서합니다. 맥스는 선천적인 것에 대한 세상의 질타에 저항합니다.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실수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인데 세상은 맥스의 잘못도 주근깨 많은 얼굴이 메리의 잘못도 아닌데 그 모습에 손가락질을 합니다.
하지만 감사해합니다. "신이여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는 선천적이 아닌 즉 운명이 아닌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감사해합니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친구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친구, 괴롭혀 주고 싶은 친구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합니다. 오늘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보고서 그냥 지나가거나 무시하면 될 것을 꼭 뒤돌아가서 손가락질하고 악플을 답니다. 그런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세레나데를 불러 보세요.
그게 친구의 장점입니다. 내가 싫으면 그만 만나면 되고 좋으면 계속 만날 수 있는 존재, 운명이 아닌 내가 직접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듯 친구라는 존재는 하늘에서 내려준 존재가 아닌 상호 간의 협의로써 이루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이 영화 '메리와 맥스'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씬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그 감동적인 모습에 관객 대부분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좋은 영화라는 칭송이 귓가에 들려오네요. 왜 이런 영화는 큰 극장에서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300억 400억 수천억의 영화보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이 수천억 이상의 영화보다 더 깊네요
영화에서 메리가 삶을 포기하려고 할 때 나온 노래 '케세라 세라'를 들으면서 눈물을 너무 흘렸네요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흘렸고 메리의 슬픈 현실에 눈물이 흘렀고 노래가 너무 맑고 청아해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게 되더군요.
난 커서 뭐가 될까요? 엄마는 말하죠.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확실한 미래는 내 친구들과 그 미래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인 관계인 가족 말고 내가 선택한 관계인 친구, 그 친구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담은 애니인 '메리와 맥스'입니다. 이 겨울 이 영화 놓치면 절대 후회할 것입니다.
꼭 친구나 연인 손잡고 가서 보세요.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애니로 만든 슬프고 아름다운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