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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책 학교의 풍경은 한 여교사가 밝히는 학생들의 진솔하고 진중한 인권이야기

by 썬도그 201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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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 감독이 연출한 '말죽거리 잔혹사'는 70년대를 말죽거리의 한 고등학생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에서 권상우가 '대한민국 학교 x까라고 그래'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맞아. 대한민국 x같은 학교들 x까라고 그래. 그 울부짖음이 제 고등학교 시절의 폭력과 비리와 나쁜 교사들의 행동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입니다

우리가 추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쁜 추억은 싹 지우고 좋은 추억만 간직하는 무드셀라 증후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당장 그 추억으로 타임워프해서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의 환상이 깨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등학교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과연 몇이나 그 고등학교 시절이 좋다고 할까요?

새벽 6시에 일어나 씯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도시락 2개를 싸서 학교 케비넷도 없어서 참고서와 교과서를 가득 담은 책가방을 메고 미어터지는 버스를 타고 파김치가 되어 내리면 뛰기 시작합니다. 등교시간 7시 30분까지 가야 하는 서글픔을 머금은 채 가자마자 들리지도 않는 아침 보충수업을 합니다. 바로 숙면모드로 돌입한 후 1교시가 되기도 전에 점심 도시락을 아침에 먹습니다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들리지도 않는 수업을 듣고 가끔 준비물이나 잠을 잔다고 버럭 화를 내면서 버터질을 시작합니다.
맞는 이유도 가관입니다. 공부 못한다고 때리고 지각 했다고 때리고 복장 불량이라고 때리고 갖은 이유로 때리고 때립니다.

"왜 때려요"라고 하면 더 맞는 이런 폭력이 지배한 교실은 살아 있는 교실이 아닌 시체들만 가득하고 학교라는 시스템에 잘 적응한 모범생들만이 살아 있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질문 있냐는 의례적인 교사의 말에 살아 있는 소수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개들이 질문을 합니다.

자율학습이라고 부르는 타율학습을 하고 사설 도서관에서 공부한 후 새벽 1시에 들어와서 씯고 나머지 공부하다 새벽 2,3시에 자고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이 지옥 같은 삶이 그립다고요? 거짓말입니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에 가졌던 순수함과 친구들과의 관계이지 결코 그 삶을 부러워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가 그래서 저의 가슴을 뻥 뚫어 놓았습니다.
학교에서 온갖 부정한 것을 다 배웠습니다. 교사라는 어른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통장 던져주면서 돈 채워오라고 반장에게 던져준 고2 담임선생님에게서 분노를 배웠고 학생다움을 강조하면서 두발단속을 하고 복장검사를 하는 모습 속에서 과연 교사다움은 잘하고 있나? 하는 반항심을 배웠습니다.

촌지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어머니가 찾아가니 살짝 윗 서랍을 열어놓은 여자 담임 선생님의 양면성을 배웠고
참고서라며 학생들과 상의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특정 출판사의 참고서를 사라고 지시하는 교사가 뒤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소문에 가장 깨끗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더러운 존재임을 알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교사가 참 편해 보였습니다.
지 혼자 실컷 백묵가루 휘날리며 9할이 졸고 있는 교실의 현실을 외면한 채 로봇마냥 혼자 들리지도 않는 수업 하고 시간이 되면 그냥 교실에서 나가버리는 교사. 가끔 자기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자기가 틀려서 당황해하던 모습. 그러다 누군가 떠들기라도 하면 앞으로 나오게 해서 줄 버터를 때려서 교실에서 질문조차 하지 못하게 죽여버리는 교사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시니컬하다고요
이게 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받은 트라우마들입니다. 덕분에 웬만한 부정부패에 놀라지도 않습니다. 이미 학교에서 부정부패에 잘 적응하고 사회에 진출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끔 정말 선생님 같은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신뢰하고 무한존중으로 하나의 피지배층이 아닌 동등한 인권을 가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고등학교 때의 독일어 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전까지는 학생이란 선생이 까면 맞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하나의 노예나 다름없이 여긴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독일어 선생님은 우리를 사람취급 해주었습니다. 학생이 아닌 사람취급, 20년이 지난 학창 시절이지만 그 선생님은 잊히지 않네요

 

21세기 학교의 풍경을 담고 있는 학교의 풍경

학교의 풍경

며칠 전 한 동영상이 포털 다음에 올랐습니다.
한 남고생이 한 여교사에 대드는 장면입니다. 나중엔 선생님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동영상을 보고 학교붕괴와 이래서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전 그 댓글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 학교붕괴라는 단어는 이미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소리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학교붕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게 2000년대 초입니다. 그때 학교붕괴라고 자극적인 단어를 쓰면서 보수 일간지들이 떠들었는데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붕괴라고 하면 뭔 붕괴가 10년씩 붕괴합니까? 제 장담하건대 10년 후에도 그럴걸요? '학교붕괴'라는 거대한 활자를 마빡에 붙이고 또 학교붕괴를 외치겠죠.

그리고 또 하나가 체벌옹호글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3IHUVwJCs5M

이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하겠죠. 이래서 체벌이 있어야 하고 학생은 패야 한다고요. 그런데요. 이 영상은 학교 체벌이 허용되던 시기에 올라온 영상입니다. 이걸 모른 체 보수단체와 보수 언론은 위에 링크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래서 체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가 그 영상이 체벌이 허용된 시기에 올라온 것에 황급히 영상소개를 지워버렸습니다.

패서 해결된다면 저도 옹호합니다. 학생을 패고 까서 학교 붕괴인지 뭔지가 사라진다면 저도 옹호합니다.
단 공평하게 패야 합니다. 학교 일진이라고 무서워서 안 패고 돈 많은 집 학생이라고 해서 안패고 공부 잘한다고 안 팬다면 그 따위 체벌 개나 줘 버리십시오. 공평하게 팰 자신이 있으면 패십시오. 하지만 그런 자신 없으면 패지 마십시오

책 이야기는 안 하고 딴소리만 한 것 같네요.
하지만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이런 서문을 길게 가져야 합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바로 나의 기억과 링크되어 있때문입니다.

미리 밝히죠 저자는 전교조 소속의 선생님입니다.
이 여자선생님이 쓴 책 '학교의 풍경'은 전교조 여교사가 쓴 에세이와 학생들의 글과 학생들의 토론수업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전교조 소속이라고 해서 미리 색안경을 쓰게 된다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솔한 학교이야기,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학생들의 당차고 또박또박 말하는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순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주제에 맞게 교사가 쓴 에세이를 적절하게 배치했습니다.
올해로 교사가 된 지 11년이 된 여교사의 이야기가 학생들의 목소리와 함께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학교의 풍경

1부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에서는 교사지만 학교라는 거대한 숨 막히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조력자로서의 선생님과 교사로서의 고민이 진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교사인지 간수인지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성실한 교사로써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그리고 학교를 비판합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애국조회를 왜 하는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교무회의를 왜 하는지에 대한 학교에 대한 교사의 비판의 시선이 잘 담겨 있습니다. 아직도 두발단속, 복장검사와 운동장 애국조회는 거의 사라졌지만 애국조회를 하는 전 근대적인 시스템을 비판합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네요. 학교 꼰대들이 자신의 권위를 체크하기 위해 마이크 잡고 떠드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그러면서 촌지나 뇌물은 또 엄청 받죠. 몇 년 전 서울시 교장선생님들이 수학여행 찬조비 받았다고 대규모로 징계받던 모습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그런 꼰대들이 매주 씨알도 먹히지 않게 '바르고 착하게 자라라'라고 외치죠.

학교 질서 자체는 힘의 논리에 의해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평화나 소통을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힘 있는 자 앞에서 침묵하고 자기가 그랬듯이 힘없는 자에게 침묵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학교의 풍경 32페이지 중에서 발췌-

 

2부 선생님, 나 여기 살아 있어요
에서는 죽음의 트라잉앵글이라는 학교의 살벌한 경쟁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풍경, 공부 못하면 사람취급도 안 해주는 학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합니다.
책에서는 요즘 학생들이 친구의 말은 들어도 교사의 말은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담임 말은 무시해도 친구 말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소 시간에 도망갔을 때 담임이 한마디 하면 '잔소리'로 듣지만 친구가 하면 아이들은 '미안함'을 느낀다.
-학교의 풍경 107페이지 중에서 발췌-


20년 전에는 교사 말을 들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교사를 담탱이라고 하면서 존경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 고등학교 때는 타의적인 게 무척 많았죠. 교사의 존경심도 가르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 그런 것 크게 신경 쓰지 않나 봅니다. 수업은 학원선생님보다 못 가르치면서 체벌이나 하니 담탱이라고 폄하해서 부르는 것은 아닐까요? 책은 어떤 해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자인 교사의 긴 한숨과 상호존중만이 작은 희망이고 내가 학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이름을 따스하게 불러 주었을 때 학생들이 날 친구로 생각하고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고 하네요

담배를 피워서 1차 적발된 학생이 단지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학생부 선생에게 흡연학생으로 오해를 샀고 그 학생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흡연학생이라는 주홍글씨가 써진 학생은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학생부 선생은 그 학생을 감싸는 담임선생님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감싸기만 하니까 얘가 저렇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고 그 모습을 본 억울한 학생은 억울하지만 선생님이 다치는 것이 싫어서 하지도 않은 흡연을 했다고 말하고 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학교를 떠납니다.

지금도 학교는 학생을 하나의 죄수처럼 취급하고 교화시키려는 모습으로 학교운영을 하는 학교가 많을 것입니다.
일단 맞고 보자라고 때리는 교사가 많은 한국학교, 왜 우리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맞으면서 커 왔고 그 체벌이 당장 두려움을 가지게 하지만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대다수의 학생들의 분노를 이끄는 것을 잘 알면서 정작 우리가 어른이 되면 학생들의 체벌을 옹호하는 것일까요?

이건 마치 이병 때 엄청나게 맞고 구타당하면서 우리가 이런 악습을 끊어 버리자고 하면서 정작 병장이 되면
'본전 생각난다'면서 패는 모습과 비슷할까요? 분명 우리는 그 시절 맞으면서 분노를 했지만 정작 우리가 학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면 그 체벌이라는 폭력을 옹호하는 것일까요?

3부 우리를 슬프게 하는 학교의 풍경들
에서는 체벌과 두발자유라는 학생들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학교의 풍경

그리고 충격적인 피라미드를 봤습니다.
이 피라미드는 체벌이라는 폭력이 횡횡하는 학교에서의 서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먹이사슬처럼 상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기득권을 많이 가지고 있고 위에 있을수록 학교가 지옥이 아닌 천국입니다.

교장, 교감이 예상대로 머리꼭대기에 있고 하이킥에서 항상 나오는 몽둥이든 체육교사와 생활지도부 교사가 그 밑입니다.
그리고 일진과 공부 잘하는 우등생들이 그 밑입니다. 이 학생들은 교사들도 잘 안 건든다고 하죠

학교의 풍경

이 일진과 모범생이라는 개들을 잘 묘사한 영화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1순위에 꼽는 학교의 현실과 대한민국의 현실을 발가벗긴 영화 '돼지의 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진과 모범생에게는 찍소리 못하는 교사들, 만만한 돼지들인 보통 아이들과 왕따 아이들을 일진이 구타하고 교사가 구타하는 시스템적인 폭력의 연결고리가 링크되어 있습니다.
위 피라미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상위 계급에게 폭력을 당하는 구조입니다. 그런 이유로 며칠 전 한 경기도 고등학교에서 젊은 여교사가 일진인듯한 학생에게 조롱을 당하죠. 그럼 이 피라미드를 체벌이 해결할 수 있냐?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문제는 저 피라미드가 체벌이 있을 때부터 고착화된 피라미드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체벌을 하려면 저 피라미드 구조를 파괴하는 체벌이 있어야겠죠

일진이라고 공부 잘한다고 체벌을 안 하는 그건 비겁한 체벌을 하려면 하지 마십시오

중학교 때 그 기술선생님이 생각나네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학생이었죠. 선생님들하고도 아주 친했고요. 그런데 이 친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사 앞에서는 모범생이지만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존재감 없는 학생들을 심심하면 괴롭힙니다. 교사들의 상상력으로는 그런 행동을 상상할 수 없죠. 그러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학생의 실제 모습을 본 기술선생님은 1시간 내내 그 학생을 혼냈습니다

"너 같은 놈들이 더 나쁜 게 뭔지 알아? 깡패는 한두 사람만 피해를 줘! 그런데 너 같이 머리까지 좋은 놈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닌 수백수천 아니 수만 명에게 피해를 준다고. 너 같은 놈들이 사기꾼이 되는 거야"

또 체벌 허용이 교사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체벌은 학생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해 한 가는 것들,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교사는 학생의 피드백이 없기에 자기 수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는 수업을 개선할 의지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학교를 소통하고 발전하는 곳이 아닌 그저 정체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체벌인 것이다

-학교의 풍경 197페이지 중에서 발췌-

3장에서는 일제고사와 체벌로 멍들어가는 슬픈 학교의 현실, 교사가 서로 교사를 평가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먹고사니즘이라는 빵만큼이나 장미가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장미라는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찾을 때 그 빵이 원래 내 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장 인간다움이 살아 있는 학교를 위하여
에서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제인가 김정일 사망에 묻혀서 조용히 넘어간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그 뉴스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큰 뉴스입니다. 바로 경기도에 이어서 서울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습니다.

학교의 풍경

두발의 자유, 복장의 자유, 집회의 자유등이 담겨 있습니다. 뭐 예상대로 보수 언론과 보수단체는 학생들의 툭하면 시위한다면서 반대를 하고 있는데요. 선진국인 프랑스는 2008년도에 고등학생이 촛불시위도 아닌 폭력시위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기성세대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하나의 표현방법이고 그게 프랑스 정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의 꼰대들은 학생들이 시위하면 무슨 지구가 멸망하는 듯 호들갑을 떱니다. 아니 학생들이 무슨 벌레입니까?
밟으면 꿈틀 한다고 패고 까고 정학먹이고 물론 허무맹랑한 방종은 막아야죠. 하지만 정당하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주장은 받아줘야죠. 솔직히 교사들이 왜 학생들에게 존경을 못 받겠어요. 학생들보다 논리도 딸리고 말문이 막히면 이리 와 좀 맞아야겠다라고 패기만 하니 우습게 여기는 것이죠.

학생들 무시하지 마세요. 학생들이 얼마나 말 잘하고 자기주장 잘하는데요.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왜 학생들이 논리가 좋은지 아세요? 우리 어른들이나 교사들은 왜?라는 단어 사용법을 잘 모릅니다.
학생들은 묻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그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해줍니까!! 그냥 닥치고 따라 해. 그렇게 억지로 따라 하게 하면 존경심이건 신뢰건 다 깨지는 것이죠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프랑스와 학생들을 벌레로 보고 죄수로 보는 한국 기성세대들의 시선의 차이 속에서 오늘도 학생들을 잡아패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경박한 시스템 속에서 오늘도 불량 학생들은 더 늘어갑니다.

 

학교의 풍경

이 4장에는 뉴질랜드에서 전학 온 한 학생의 글이 많은 느낌을 줍니다.
뉴질랜드는 체벌도 두발, 복장검사도 없지만 한국같이 선생님에게 대드는 학생은 적다고요. 그 이유는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뭐 한국 같은 서열지상주의가 만연한 나라가 단박에 서양식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긴 힘들겠지만 그 첫걸음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체벌이나 지시, 명령 같은 일들부터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인 교사는 말합니다.
학교의 풍경을 바르고 밝게 이끌 힘은 배려와 존중이라고요.
왜 왕따문화가 생길까요? 요즘 아이들 배려심이 없습니다. 노스페이스라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고 가난한 집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못난 아이들, 그들에게는 배려심이 없습니다. 학생들을 탈할게 안입니다. 우리 또한 그 사람의 옷과 차람새와 타고 온 차로 그 사람을 판단하잖아요. 솔직히 학생을 이 되바라지지 못한 것은 우리들 부모님 때문이죠. 이렇게 학교가 붕괴되는 모습의 가해자들은 부모와 교사의 합작품이 아닐까 하네요. 우리 어른부터 제대로 된 사고방식 와 삶을 보여줘야 학생들이 보고 배우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의 왕따가 생기는 이유인 배려라는 문화가 사라진 현재, 그 모습을 단단하게 구축한 사람들은 기성세대인 우리들이 아닐까 합친다. 배려와 존중으로 학생들을 따스하게 품으면 보다 많은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울지 않고 밝은 곳으로 나와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해결책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게 다 '내 새끼리즘'과 '먹고사니즘'이라는 이기심에 쩔어가는 대한민국의 살풍경 같기도 하네요
글이 너무 시니컬하고 어둡네요. 그럼에도 이런 책을 쓴 교사들이 있기에 서푼짜리라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전교조 교사가 쓴 책이라고 색안경 쓰고 보면 닥치고 빨갱이라고 덮을 책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절대 추천하는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 동의할 수 없다고 쳐도 적어도 학생들의 활어 같은 생생한 글들을 만나 보는 것이 현실에 대한 인식력을 높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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