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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돼지의 왕, 개와 돼지라는 한국의 계급사회를 고발하다

by 썬도그 201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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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아시아게임이 있던 그해. 가끔 불어오는 최루탄 가스 때문에 수업이 수시로 중단되었든 그해는 나에게 최루탄보다 끔찍한 기억을 간직하게 한 해였습니다. 세상이 이런 것이라면 더 살아서 뭐 하냐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지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감독은 교실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조회후는 바로 동물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사라진 조회 후 1교시 전까지의 교실은 송두리채 깡패들이 득시글 거리는 골목이 되었고 전날 팔지 못한 압축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찹쌀떡을 돌렸습니다. 찹쌀떡 10개에 1천 원. 원가는 500원도 안 되는 그 찹쌀떡을 몇몇 만만한 녀석들에게 던져주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한마디로 강매죠. 제 앞에 있던 녀석은 매일같이 1천 원을 헌납하였습니다

그렇게 불러도 될 조폭의 유전자를 가진 힘좀 쓰는 그 놈들은 각반에서 하루에 2만 원 이상의 돈을 뜯어냈고 방과 후에는 오아시스라는 롤러장등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어른흉내를 냈습니다. 중2 그해를 송두리째 지우고 싶습니다. 그런 폭력의 현장을 매일 같이 목도하면서 나도 삥을 뜯기는 짐승 같은 놈들의 먹이사슬에 링크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그 놈들은 이상하게 조용한 존재감도 없는 나를 특별하게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생각하면 내가 공부를 잘하는 부류로 낙인을 찍혔거나 아니면 내 행색(당시는 교복 자율화였음)의 후줄근 함과 중저가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중2, 짐승들이 점령한 교실의 살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놈들은 지금 뭐 하고 살까요? 자신들의 중2 때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고 있을까요?

많은 리뷰에서 이미 짐작했지만 저 또한 이대의 아트하우스 모모를 나오면서 왠지 모를 찝찝함과 제기랄.. 같은 말만 계속했습니다. 너무나 직설적인 현실고발에 우울함도 밀려왔습니다. 때 마침 불어온 겨울 초입의 찬바람이 옷깃 속을 파고들자 서글픔도 흘러내렸습니다.

인생도 유전인 건가? 난 다람쥐인가? 챗바퀴에서 발버둥 쳐봐야 난 이 계급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이미 결정된 운명 속에 몇몇 운명을 벗어난 사람들이 책을 내고 강연을 하면서 희망을 설파하면서 돼지들을 혹하게 하는 걸까? 별별 생각이 나면서 울적해진 마음이 지금도 진정되지 않네요

 


중학교라는 동물의 세계를 경험한 남자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은 돼지의 왕

돼지의왕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남학교라면 한세대가 지났지만 교실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전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중학생입니다. 그 이유는 중학교라는 폭력의 왕국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학교 2학년때의 모습이 평생 지속되었다면 전 삶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잔인한 1년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를 떨게 되네요.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폭력의 논리가 사라진 세상에 진입하면서 그 폭력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돼지의 왕은 어른도 초딩도 아닌 경계인에 놓인 중학교 시절을 잘 담고 있습니다. 특히 남자 중학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죠. 뭐 여자 중학교도 비슷한 폭력의 세계에 노출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하더군요

영화는 강남의 모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학교가 그렇듯 초등학생 같은 몸을 가진 울보 경민과 지하 셋방에 사는 종석이 친구로 나옵니다.
종석과 경민은 반의 선도부 같은 공부도 잘하고 쌈도 잘하는 반을 쥐락펴락하는 녀석들의 노리개감이 됩니다.

그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인 경민과 종석, 그 힘없고 존재감 없는 존재들은 권력을 가진 녀석들에게 장난감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매일 당하면서도 찍소리도 아프다고 소리 한번 지를 수 없고 그냥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개가 점령한 교실. 돼지들의 왕이 나타나다

돼지의왕

영화는 내 중학교때와는 좀 다릅니다. 연상호 감독이 밝혔든 이 '돼지의 왕'의 배경이 된 학교는 강남의 모 중학교입니다.
이 강남의 모 중학교는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처럼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녀석들이 점령한 교실이었습니다. 저도 얼핏 들었는데 강남은 공부 잘하는 놈들이 싸움도 잘해서 짱도 먹고 공부도 잘한다는 말에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 강남 모 중학교의 이상한 생태계를 영화는 담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라는 시스템의 귀여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선생님들 앞에서는 모범생이지만 선생님이라는 감독이 사라진 후에는 자신보다 못한 녀석들을 괴롭히는 불량배였습니다.

영화는 이런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부류들을 개로 표현합니다.
반면 돈도 없고 초등학생 같은 작은 몸과 용기도 없는 대부분의 존재감 없는 개들의 먹이가 되는 돼지들이 있습니다.
두 주인공인 울보 경민과 가난한 종석은 돼지입니다. 돼지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을 찌우기 위한 게 아닌 먹히기 위해서 팔과 다리가 잘리고 인간의 식탁에 올랐을 때 그 존재의 가치가 실현되는 동물입니다.

이렇게 존재감도 없고 항상 개들의 먹이가 되는 돼지들은 항상 꿀꿀거리면서 개들의 으르렁거림에 공포감에 젖어서 하루하루를 삽니다. 이때 돼지들의 왕인 김철이 나타납니다. 김철은 선생님의 개들에 맞서서 폭력으로 개들을 제압합니다. 돼지들은 김철을 구세주로 받들면서 개들과 맞서게 됩니다.

 

나이키, GUESS가 가져오는 계급 인식의 시작

돼지의왕

이 영화 '돼지의 왕'을 보고 나온 후 대부분의 관객들은 찝찝함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 찝찝함은 바로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자신도 인식하지만 누구 하나 대놓고 말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계급사회라는 것을 돼지의 왕이 직설적으로 면전에 쏴대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애국조회 때 중저가 브랜드인 스펙스와 페가수스등을 신고 있는 학생과 나이키, 프로스펙스, 아디다스, 미즈노를 신고 있는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분류합니다. 가난한 집, 부자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분류합니다. 하지만 대놓고 말은 안 하죠. 워크맨을 가져보지 못하고 중저가 브랜드 혹은 시장에서 산 신발을 신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되죠. 우리 집은 가난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참아야 하는 인내를 어린 나이부터 배우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지하 단칸방에 사는 종석의 누나가 워크맨을 훔치고 놀이터에서 동생 종석 앞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맨날 참아야 하고 하면 안 되는 것이 그렇게 많고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도 못 가고 그렇고 그런 남자 만나서 나 같은 자식 낳아서 나처럼 부모 잘못 만난 탓이나 하고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서 누나는 부모님을 졸라서 GUESS라는 보호색을 입습니다.
그러나 GUESS라는 회사에도 없는 이상한 룰이 통하는 교실에 동생 종석이가 누나의 빨간 마크 GUESS를 입고 갔다가 바지는 찢기고 호모로 놀림을 당합니다. 남자는 파란색 GUESS마크가 있고 여자 것은 빨간색 GUESS마크가 있다나요?

이 '돼지의 왕'의 주요 내용은 계급에 대한 내용입니다.
개들이라는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받는 기득권층과 개라는 기득권층에 의해서 밟혀 사는 돼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계급사회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가난한 게 자기 잘못도 아닌데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움츠러들게 하고 또한 개들이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종석은 항상 그런 이유로 눈치만 보고 사는 돼지가 되었고 개들은 그런 돼지들을 개껌처럼 질겅질겅 씹습니다.

영화와는 좀 다르지만 이런 계급의 인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때 중저가 브랜드의 신발을 신어서 주눅이 들었고
중학교 올라가서 기를 쓰고 메이커라고 불리는 브랜드의 가방과 신발을 사 신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요즘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아니 아이들이 아닌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죠. 가난한 것이 무슨 죄로 인식하고 무리하게 가난을 명품백이라는 보호색으로 위장합니다.

친구들의 모임은 돼지들의 모임입니다. 공부 잘하는 녀석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갑부인 녀석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녀석 집도 부자고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 PC가 있던 그 녀석은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모임에도 자주 나오지 않아서 나에게는 그냥 그런 있어도 친한 척 안 하고 없어도 별 느낌이 없던 그 녀석이 한 번은 저에게 심한 분노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군 전역 후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녀석은 유일하게 회계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곧 장교로 군입대를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유일한 회사원이어서 평소 때도 술자리에서 술값을 많이 냈습니다. 한 번은 회를 사주더군요. 그 녀석 혼자 다 낸 것은 아니고 회값의 반 이상을 냈습니다. 전 군 전역 후에 회를 처음 먹어봤습니다. 회를 먹을 줄 모르니 회 문화를 잘 모릅니다.
회 밑에 깔려 나오는 무를 집어 먹었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더군요

"너 회 첨 먹어보냐"
첨 먹어봤습니다. 첨 먹을 수 있죠. 물론 평균적으로 20대 중반에 회를 처음 먹는다는 게 비상식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날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뭔 잘못을 했나요? 늦은 나이에 회 첨 먹어본게 무슨 죕니까? 무슨 잘못한 행동을 타박하는 그 소리에 화가 너무 났지만 돼지처럼 참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온게 한두해였나요. 그날 따라 그 회계사 녀석은 흥분을 좀 하더니 자기가 맨날 술값 다 낸다는 취중의 말을 했고 그 날 술자리는 싸움이 날뻔했습니다. 돼지들의 반란이었는지 아님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그 친구랑은 데면데면합니다. 반의 짱이 돼지의 왕인 김철이 정학을 먹고 사라진 교실에서 다시 나이키 신발로 종석을 밟습니다.

인정하기 싫을 뿐 한국은 엄연한 계급사회

돼지의왕

돼지의 왕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애니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감독관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공부 잘하는 녀석들만 편애할 때 돼지들이 느끼는 세상은 암울함 그 자체입니다. 선생들과 개들이 서로 공생하면서 돼지라는 잉여들은 오늘도 내일도 개들의 먹잇감이 됩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차용하면서 한국의 계급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영화이고 그 목소리가 너무나 날카롭고 직설적이라서 보는 사람마다 이 영화를 무서운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폭력장면이 많긴 하지만 눈을 돌릴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우리 중학교 때 봤던 수많은 폭력 중 일부분을 담고 있고 실제 중학교의 모습을 담고 있을 뿐이죠

이 영화는 경민과 종석이라는 하찮은 계급들. 맨날 이용만 당하고 제도권이라는 선생들의 보살핌도 못 받는 돼지들과
선생이라는 제도권에서 항상 귀여움을 받고 사랑을 받는 개들이 벌이는 추악함을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돼지들의 왕인 김철이 나와서 개들과 맞짱을 뜨면서 돼지우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보지만 다시 돼지우리로 들어가는 그 슬픈 현실을 담기에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모래알을 씹는 느낌으로 영화관에서 나오게 됩니다.

영화는 디즈니 만화처럼 희망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희망이라는 사탕발림 속에 개들에게 오늘도 이용당하고 휘둘리지만 결국은 돼지로 삶을 마감하는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희망을 지워버린 그것도 애니라는 희망만을 담는 장르가 희망은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니 그 무서움과 충격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 남아있고 너무 슬픈 동화를 본 듯 머릿속은 온통 우울함이 가득하게 되네요

한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자가 한 개그맨을 고발했습니다. 개가 돼지의 왕을 저격했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에 공분을 일으켰고 개는 돼지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삶의 생리일뿐 세상 이면에는 오늘도 개들의 돼지를 이용해 먹는 세상이 현실이 아닐까요? 부정했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래도 착한 개들도 있고 돼지들의 왕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자신감이 없네요.

 

폭력의 간사한 본능

이 돼지의 왕은 30대 중반이 된 울보 경민이 아내를 죽인 후에 흥신소를 통해서 중학교 때 단짝인 종석을 찾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둘은 국민학교와 중학교 1학년을 같은 반에서 지내게 됩니다. 단짝이라면 단짝인 둘을 금 가게 한 것은 폭력입니다.

약자들이 그렇듯 서열과 힘의 균형을 잘 파악합니다. 단짝이라도 나에게 해기 끼치면 베드로처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친구도 파는 모습, 그렇게 폭력에 시달리던 두 주인공은 어른이 되어서 한 명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아내를 죽이고 또 한명은 3류 작가의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늦게 들어온 부인에게 발길질을 합니다.

폭력을 당하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가 아닌 자기보다 못한 생명체에게 해코지를 하는 지질함을 담고 있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요? 상사 앞에서는 한마디 못하면서 자신이 상위에 있는 곳에 가서는 으르렁거리고 발톱을 세워서 할큅니다. 특히 한국의 남자들은 아니 전 세계의 남자들은 이런 서열관계를 분석하는데 뛰어난 두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를 처음 보면 나보다 위인가 아닌가부터 따져보고 이래 저리 따져지지 않으면 나이를 물으면서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자신이 나이가 어리다면서 동생하겠다고 머리를 숙이거나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자신이 나이가 많다면서 형님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서열이 정해져야 놀기 편하고 만나기 편한 게 한국이죠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이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서열을 서로 인정할 때는 폭력이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서열을 정하고 관계를 정할때 무례가 나오고 그 무례를 좀 확대하면 폭력입니다.

이 영화는 중학교 시절을 그대로 담은 리트머스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학생 아니 고등학생도 볼 수 없는 19금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중학교 현실이 19금입니까?
엄연한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중학생은 못 보게 하는 모습. 마치 영화속의 개들과 같은 모습이죠. 물론 폭력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하고 경험을 한 중학교 시절임에도 이 영화는 고등학생도 못보게 하네요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중학생이 가장 무섭습니다. 알몸 졸업식 대부분이 중학교라는 모습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이 가장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중학생들의 폭력적인 모습들에 우리 어른들은 무섭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어른들의 세계가 폭력적인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지 않을 뿐이지 돼지의 왕 속의 중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돼지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계급의 정착화가 뚜렷해진 한국사회를 고발한 돼지의 왕

돼지의왕

영화 속에서 종석의 누나가 놀이터에서 종석에게 말한 말이 잊히지가 않네요
누나가 말한 인생도 유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 노비로 태어나면 평생 노비로 살고 상놈은 자식도 상놈이 되는 계급사회, 양반으로 태어나면 놀고먹어도 양반인 세상.

한국사회가 다이내믹한 이유는 서양과 달리 계급 간의 이동이 다이나믹했기 때문입니다. 상놈도 양반이 되고 양반도 상놈이 되는 계급간의 이동이 활발했던 50,60,70,80년대와는 달리 현재는 계급이 고착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부잣집 아빠밑에 부자아들이 있고 가난한 집 아빠 밑에 가난한 집 아들이 있는 이 현실, 온갖 매스컴에서 온갖 몇 안 되는 가난한 집 아이가 자라서 크게 성공한 저자들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떠들고 있는 책을 그걸 사 읽으면서 나도 희망을 갖고 살자고 다짐하는 모습이 다 거짓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가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봐서 그런 것이겠지만 통계적으로 봐도 가난의 고착화는 기정사실화가 되어 가고 있네요.

이 돼지의 왕에서 두 주인공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돼지의 왕인 김철이 개들이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목표와 같은 다짐이 고스란히 두 돼지 주인공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갔을 때의 울분은 아직도 남아 있네요

좋았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디즈니 같이 서푼짜리 싸구려 희망동화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발한 너무나 가슴이 아픈 현실이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 돼지의 왕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울분을 쏟아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화는 맘에 들지 않지만 스토리와 구성이 너무나 뛰어났던 '돼지의 왕' 개봉한 지 3주가 되어 가지만 뒤늦게라도 이 좋은 애니를 보게 되어 다행이네요. 보고 나면 기분이 무척 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그대로 박제한 듯한 내용이 너무 좋았던 애니입니다. 강렬함도 있고 현실비판도 폭력에 대한 직설적인 이야기가 많네요

현재의 우리 교실에도 개가 있고 돼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관자들이 있습니다.
내가 돼지가 되지 않을까 오늘도 노심초사하면서 돼지가 손을 내밀까 봐 무섭고 개가 날 돼지로 보지나 않을까 두려운 나날을 보내는 학생들이 전국에 수십만이 있습니다. 학교라는 사각의 링에 내팽개쳐진 우리 학생들을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한 우리는 심판 없는 사회라는 사각의 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참 생각할게 많은 애니입니다. 올해 본 영화 중에 최고의 충격울 준 영화입니다. 이 영화 박찬욱 감독이 실사영화로 다시 만들면 어떨까 할 정도로 스토리도 구성도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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