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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디워의 심형래감독의 글이 아님을 명시합니다
개그맨 심형래
개그라는 단어가 희미하던 80년대 초반 코미디언과 울고 웃던 국민들은 개그맨이란 단어로
명칭대는 새로운 물결을 만나게 된다. 주로 만담이나 슬랩스틱 코메디가 대부분이었던
60,70년대에 80년대 개그맨이란 단어를 만든 전유성과 심형래, 이봉원, 김학래, 이홍렬,
주병진등등 신진 개그맨들은 슬랩스틱과 말장난식 콩트를 주로하는 개그맨이었다.
그 당시 폭소대작전과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는 개그맨들의 요람이었다.
그 개그맨중에 심형래씨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 여로의 코미디버젼
에서 영구역활을 한 심형래씨는 가히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아직도 표정연기의 대가이자
슬랩스틱의 대가인 심형래씨 그 영구말고도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많았다.
동물의 왕국에서 파리, 펭귄등도 있었구 변방의 북소리는 몇일전 SBS 예능프로그램에서
재연까지 했다. 심형래가 있어서 80년대는 국민들이 즐거웠고 그의 얼굴만 보고도
웃음을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을정도 였으니 그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슬램스틱을 질떨어지는 개그로 치부하는
언론들 그리고 미국식 스탠드 개그가 고질의 코메디로 칭송하는 모습들..
결국 고지식한 사람들 뜻에 따라 스탠드 코메디가 국내에서도 도입되기 시작하였구
그중에 하나가 주병진쑈나 일요일 일요일밤이였다. 화려한 입담꾼인 주병진씨
그의 인기는 심형래씨를 능가하거나 버금가기 까지 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어퍼지고 쓰러지고 떄리고 부시고하는 슬랩스틱 채플린식 개그를 하는 심형래와
정통 미국식 코메디인 스탠드 개그 오로지 입심으로만 승부하는 주병진식 개그가
먹어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심형래씨는 TV에서 볼수가 없었다. 아니 그 시절 스랩스틱을 하는 개그맨들
대부분이 TV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심형래씨야 영화한다고 안나왔지만 그와 함께했던
개그맨들중 대부분은 밤무대만 전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스탠드개그란 시류때문에 심형래표 슬랩스틱 개그가 사라진건 아니였다.
심형래씨 개그에 물린 사람들의 원성도 많이 있던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쇼비디오쟈키나 유머1번지의 심형래씨의 개그를 보면 처음 한 두달간은 정말
재미가 있다. 그런데 3개월 4개월 6개월 내내 똑같은 포멧에 변하지 않은 대사들
다음 장면에 뭐가 나올지 다 예상가능하다. 표정은 정말 지대론데 앞을 다 예상하고
그 예상과 전혀 틀리지 않으니 코미디가 지루하긴 스랩스틱만큼 지루한 코메디도 없었다.
그게 스랩스틱의 한계였나.. 결국은 굳어버린 몸의 언어대신 말의 유희를 들고온
스탠드 개그에 그 아성을 물려주게 된다.
지금은 스랩스틱개그는 찾아보기 힘들다. 말장난이나 심형래씨가 지적해준것처럼
학예회 스런 개그들만 남아 있는듯하다. 그 예전의 심형래표 슬랩스틱 개그가
그리울때가 요즘 많다. 다만 개콘처럼 식상하면 바로바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미덕만 첨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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