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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풍토에 일침을 놓는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by 썬도그 201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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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론을 좀 길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기술자 혹은 엔지니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버를 고치고 컴퓨터를 고치고 자동차를 고치고 고치고 고치는 사람들


같은 고치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고치는 의사는 우러러보지만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름때가 쩌든 모습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낮게 바라보지 않나요?

90년대에 이런 이야기가 한때 많이 들렸죠
한 엄마가 아이손을 잡고 거리를 가다가 건설현장을 지나가게 됩니다. 비계에 매달려 집을 짓고 있던 인부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너 공부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돼"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그 건설인부가 화가 난다며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몰상식한 부모가 없을것 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만 대놓고 말을 안 했지 자신의 아이들이 자동차 정비소나 컴퓨터 수리공 혹은 건설현장에서 일하지 않고
소위 먹물이라고 부르는 펜대나 굴리면서 어떠한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말장난 같은 글들만 쓰면서 돈을 받는 속칭 지식노동자가 되길 원하실 것입니다.

분명 지금은 후기 산업시대이자 정보화 시대로 정보취득력이 높은 사람이 잘 사는 시대가 되었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식노동자들에 비해 월급 수준이며 여러 가지로 떨어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같은 육체노동자들도 귀족 육체노동자(현대자동차 생산라인 같은)가 있고 배달업을 하는 분들이 있겠죠. 대체적으로 우리는 육체노동을 괄시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같은 엔지니어 출신이라도 먹물티 팍팍 내는 엔지니어들이 있죠.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할게요

인터넷 붐이 일던 2천 년도에 세계 최고의 기업은 한 네트워크 장비업체였습니다. 한 번쯤 들어본 시스코라는 회사죠
이 시스코는 주로 라우터나 스위치 같은 백본망의 고급장비들을 잘 만드는 회사인데 이 장비들을 다루려면 CCNA( Cisco Certification Network Associate) 같은 네트워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당시 네트워크 회사를 다니던 저는 회사에서 CISCO장비 세팅하는 것을 알려준다는 말에 낚여서 회사에 입사했지만 결코 단 한 번도 장비세팅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네트워크 공사나 스위치 세팅만 조몰락거리면서 혼자 독학으로 배웠죠 그리고 고급장비인 CISCO 라우터 세팅은 새로 들어온 저 보다 연봉이 5백만 원이나 더 받는 직원이 하게 되었는데
이 직원은 CCNA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학교로 불러서 장비 세팅을 요구했더니 이리저리 한 6시간 혼자 만지더군요. 전화는 수시간째 붙잡고 있고
결국은 해결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자 자기가 알아서 나가더군요. 이론만 빠삭하지 경험이 전무하니 해결이 되겠어요. 제가 전화로 물어물 어서 해결했습니다. 또 한 번은 나이 어린 상사가 어깨에 힘을 주면서 왕년엔 말이지~~~~라는 말로 신입직원들을 교육시키더군요

강서구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서 방화벽 서버 설정을 해야 하는데
신입직원 8명 앞에서 교육시키겠다고 하면서 장광설을 펼치는데 이상하게 노트북에서 서버로 접속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다가 오후 반나절 홀라당 다 까먹고는 세팅을 포기하더군요.

부하직원인 내가 경험이 더 많았고 이론은 그 나이 어린 상사보다는 잘 몰랐지만 제 경험상 이 학교가 학교선생님 네트워크와 학생컴퓨터실의 네트워크가 VLAN이라는 가상의 칸막이로 막아 놓은 것 같았고 제가 랜선을 이리저리 옮겨서 결국 접속을 시켰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모습 참 많아요. 그래서 군대에서 소위들이 상사보다 계급은 높지만 경험이 없어서 권위가 안 사는 것이죠.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병장들이 군대 짠 밥이 높다고 소위들 쏘가리라고 부르면서 소위 길들이기 하고 그랬잖아요

이 책은 그런 먹물들 즉 지식노동자들(여기서 지식노동자라고 함은 펜대만 굴리는 직업과 함께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 아닌 이론만 가진 엔지니어까지 포함한다)에 대한 우러러보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모습을 조목조목 따박따박 따져 들면 왜 우리가 이 시대에 지식노동이 아닌 육체노동을 해야 하며 그 육체노동만이 바른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저자는 이력이 특이한 매튜 크로포드입니다.
이 매튜 크로포드는 작은 오토바이 정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지만 전직은 정비소 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철학자이자 워싱턴 싱크탱크의 소장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이 분이 왜 펜대 굴리던 일을 내버리고 오토바이 수리공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관념만 프린터 해서 발표하는
일 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혹은 고치면서 땀을 흘리면서 느끼는 삶이 더 좋다고 느껴서죠.

호메로스는 소피아(sohpia. 지혜)라는 뜻은 목수의 전문 기술을 같은 '기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계나 장비를 고쳐본 적이 없는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자기 PC 스스로 고치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과 같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하나씩 경우의 수를 줄여 나가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또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 혹은 경쟁회사의 엔지니어의 조언도 무시하지 않고 서로 교류를 합니다.
아무리 경쟁회사라도 엔지니어들끼리는 서로 으르렁 거리지 않습니다. 영업사원은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무엇인가를 고치는 그 과정 자체는 하나의 구도승이 수행을 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저자 매튜는 이런 과정을 눈여겨봤고 이런 삶이 펜대나 굴리는 직업보다 더 자신에게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자 정말 잘 생겼네요.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매튜는 말합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대학에 다들 몰려가서 학력인프라를 만들어 건물 수위직을 하는데 대학원 졸업자가 지원하는 이 망국의 학력인프라를 따끔하게 지적하죠. 너도 나도 지식노동자가 되겠다고 그게 편한 삶이라고 하지만 헛바람이 들어가기만 하죠 지식은 많지만 지혜가 없는 지식노동자들, 그런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이 과연 좋은 모습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또한 매튜는 점점 공구를 쓰지 않고 엔지니어마저도 지식노동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엔 라디오가 고장 나면 콘덴서나 다이오드 하나를 갈고 수리를 마쳤습니다 고장 난 부품을 찾는 과정에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엄청난 정신적 노동과 함께 육체적 노동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죠. 뭐 하나 고장 나서 A/S센터에 가면 보드 전체를 갈고 부품 전체를 갈아버리는 식으로 작은 고장도 통째로 뜯어내서 버리는 모습입니다. 제가 한 번은 핸드폰 때문에 찾아갔는데 핸드폰 커넥터 부분이 고장 났다면서 커넥터만 갈 수는 없고 무조건 메인보드까지 다 갈아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고 작은 제품이기에 그렇죠. 그러나 이것 말고도 요즘 가전제품들이나 기계들 보면 뭐 하나 고장 나면 그 전체를 갈아 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그게 엔지니어인가요 오퍼레이터인가요? 그런 식으면 고장 난 부분만 찾아내서 복사기 토너 갈듯이 쑥 빼서 새로운 것으로 갈아주면 되는데요. 이런 식이면 세상은 앞으로 엔지니어가 점점 필요 없어질 것 같습니다.
공구를 들고 작은 부분을 고치면서 거치는 수많은 경험과 인내, 협동심과 해결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가장 중요한 행위의 주체성을 얻을 수 있지만 점점 사람들은 기계의 일부분이 되어서 고장 난 부분만 쏙 뽑아서 갈아껴주는 하나의 부속품이 되고 있습니다.

매튜는 행위주체성을 강조하면서 그 예로 요즘 유행하는 튜닝카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튜닝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내부를 들여다볼 줄 아는 게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자동차에 대한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산 물건을 모두 알지 못하고 겉만 핥는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물건을 주체적으로 들여다 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고장 난 부분을 찾아내는 경지는 아니더라도 공구를 들고 라디오를 뜯어볼 줄 아는 호기심정도는 갖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튜닝카나 튜닝 PC 등 남이 만들어준 제품을 그냥 단순하게 쓰지 않고 그걸 변형시킬 줄 아는 주체적인 삶, 매튜가 말하는 삶은 바로 이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이 싱크 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하는 삶보다는 보기와 함께 하기를 하는 삶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식노동을 낮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체노동 혹은 기술직들에 대한 시선을 좀 더 높게 봤으면 하는 바람도 적고 있습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책이죠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것, 특히 IT 쪽에서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것은 수명이 무척 짧습니다. 30대 중후반 되면 벌써부터 영업 뛰라고 압력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새파란 20대 엔지니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죠. 사람들은 그럽니다. 미국은 50대에 PC나 서버 A/S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50대에 서버 고치고 네트워크 장비 고치는 사람 없다고요. 싼 연봉의 새파란 20대 엔지니어를 그 대타로 고용하지만 문제는 이 20대 엔지니어들이 영어도 더 잘하고 기술적인 무장은 잘 되어 있어도 경험이 없기에 현장에서 버벅 거릴 때가 많죠

육체노동에 대한 예찬론 같은 책입니다.
하지만 쓴소리를 안 할 수가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 책은 정말 읽기가 힘듭니다. 읽다가 하도 진도가 안 나가도 무슨 소리 하는지 몰라서 내가 갑자기 독해력이 떨어졌나 하고 서평들을 살펴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네요. 이 책 너무 어렵습니다. 이건 지은이 잘못이라기보다는 번역가의 문제가 커 보입니다. 번역가가 이 철학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것 같고 솔직히 번역이 너무 조악해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다만 중간에 오토바이 정비모습을 스케치한 부분은 너무 술술 잘 읽혀서 좋았고 에피소드를 다룬 쪽은 참 좋았지만 이걸 현학적인 어휘로 표현할 때는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문맥과 맞지 않는 단어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다가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책은 참 좋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번역의 질이 높지 않아서 아쉬운 책이기도 합니다.
엔지니어들은 실패를 자양분 삼아 경험이라는 진한 직감으로 일을 합니다. 소통을 기본덕목으로 경쟁사 엔지니어와도 정보교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펜대만 굴리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은 실패하면 바로 욕하고 반성문을 쓰게 합니다.

사물에 대한 행위주체성을 키우며, 자립감과 스스로 세상을 만드는 법, 남들이 주어진 삶(제품)을 단순 이용하는 모습을 넘어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식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기를 쓰고 갈려는 수많은 학생들과 지식노동자만이 정답인 삶이라고 강요하는 학부모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책이 너무 뻑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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