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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96년 겨울 목순옥 여사님의 귀천에서 먹던 감귤차가 생각납니다.

by 썬도그 201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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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시인은 아이같았습니다. 아이같이 맑은 영혼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 맑고 고왔습니다.
가난을 벗삼아 인사동거리를 거닐면서 술을 마시던 천상병 시인에게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었습니다.

바로 목순옥여사 입니다.

천상병시인이 동백림사건으로  워커신은 사람들에게 갖은 고문과 고초를 당하고서  영혼히 걸레처럼 헤어지고 너덜너덜 해졌을 때도
천상병 시인을 말없이 지켜보며 든든한 힘이 되준것도  목순옥여사입니다.

천상병시인이   김일성이라는 새끼 라는 시로 세상을 조롱 해도 세상은 그게 조롱인지도 몰랐을 때도 목순옥여사는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김일성이라는 새끼


천상병


우리니라 신문에서나 방송에서나

잡지에서

‘김일성의 독재’라고만 하지

‘36년 독재’란 말은 아니 합니다.

잠깐 독재라도

호되게 당하는 판국인데

36년이나 혼자세상이었다니

아무리 공산국이라도

이건 역사상 처음 일입니다.


공산국의 독재는 흔해 빠지지만

스탈린 소련 독재도

30년 정도였는데

36년이라니

요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새끼입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의 악독성을 밝히는

포스터와 같은 짐승입니다.


아들 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니

요놈은

공산주의의 원리조차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진시황같은 욕심쟁이입니다!


사람이 사람 다와야 말이 통하지

요따위 사람 탈 뒤집어 쓴

숫 짐승하고 무슨 말 하시겠다니

우리 전두환 대통령님께서는

너무나 너무나 한 나이팅게일입니다.



며칠 전 인사동 쌈지길를 가다가  낯익은 이름이 하나 보였습니다. 바로  '귀천'이라는 전통찻집이었습니다.
'귀천'은 목순옥여사님이 운영하던 곳 입니다.  직업도 없고 벌이도 없는 천상병 시인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전통찻집 귀천'을 운영했던
목순옥여사

제가 천상병 시인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것은 90년대 초  천상병시인의 사망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동기녀석이 안타깝다면서  한숨을 쉬기에
그 때부터 천상병시인을 알게 되었죠.  동기는 틈만 나면 인사동골목길을 이야기 하면서  저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던 인사동

동기는 인사동 가면 꼭 가보라면서  천상병 시인의 부인인 목순옥여사가 운영하는 '귀천에 가서 감귤차를 마셔봐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전역후 여자친구와 함께 인사동에 갔습니다. 귀천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콜록거리는 모습에 안쓰럽더군요.  추운겨울 콜록거리는 모습에  감기에 좋다는 감귤차가 생각 났고  군대동기가 알려준 '귀천이 생각 났습니다


귀천 정말 작습니다. 귀천이라는 푯말을 발견하고 한 5미터를 들어간후 작은 문을 여니 한 일곱 여덟명이 앉으면 꽉찰 정도의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여자친구와 서로 마주 보고 앉기도 힘든 그 테이블에서 같이 나란히 앉아서  이리저리 둘러 봤습니다

이곳이 천상병 시인의 체취가 남은곳이구나 둘러보고 있을 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였습니다.
목순옥여사님이 주문을 받으시네요.  여자친구도  목순옥 여사를 잘 알더군요. 둘은 그렇게 서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 허름한 귀천. 하지만 함지박만한 큰 사발에 감귤차가 나왔고 그 감귤차를 마시던 그 겨울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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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귀를 살짝 덟는  단발머리셨는데  14년이 지나도 아니 오랫동안 단발머리셨네요.
오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작가와   목순옥 여사님의 부고가 연달아 들여오네요. 그 누구의 부고보다 가슴이 아픕니다.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던  천상병시인.  그런 시인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몇번이나 보듬어 주었던 목순옥여사.

인사동가면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목순옥여사였는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귀천이라는 찻집은 이후  인사동이 전통의 탈을 쓴 거리로 변모하면서 몇차례 이전을 했습니다. 며칠 전에 귀천이 보이길래 멈칫 했는데
다음에 한번 들려봐야 겠습니다.

그만그만한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카페보다  한 사람의 생이 올곧이 담겨 있고 그 향이 가득한 귀천이 14년 지나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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