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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인간의 욕망을 가득히 담은 수작 만무방

by 썬도그 201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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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무방   [명사] 1.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 2. 아무렇게나 생긴 사람.

이 영화 만부방은 제 기억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봐서가 아닙니다.
94년도에 개봉한 이 만무방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영화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윤정희와 장동휘라는 60.70년대 전성기를 보낸 노배우들이 주연을 했고  인공기와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모습으로 봐서 반공영화인줄 착각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고 있는 모습만 보고 반공영화를 넘어서 한국전쟁이 만든 민초들의 피폐한 삶을 다룬 영화라고 지례짐작을 하고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해외 작은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더군요.  뭔 영화인데 해외에서 상을 받나 했네요
당시만해도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는것은 임권택 감독 밖에 없었고 도빌영화제등에서 가끔 수상을 하긴 했지만 지금같이 한국영화가 이목을 받던 시대는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제 뇌리속에 각인되었다가 사라졌고  그 각인이란 위의 한장의 사진이 전부였습니다.

어제 EBS는  윤정희가 영화 시를 찍기전에 마지막에 찍은 영화 만무방을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제 예상과 다르게 반공영화도  이념영화도 아니였습니다. 그건 하나의 소재일 뿐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이동을 담고 있더군요.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휴전선 부근의 한 작은 집 한채가 있습니다.  낮에는 태극기를 걸고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집이었죠. 국군이 진격하는데 인공기를 걸었다면  큰 변고가 일어나겠지만 다행히 그런일은 없습니다.

이곳에 윤정희는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다리를 다친 한 노인이 찾아오게 됩니다. 노인은 사랑방이 춥다면서 같이 자자고 합니다. 몸을 녹인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윤정희는 개를 끌어 안고 잡니다.

그러나 이후 노인과 윤정희는 같이 잠자리를 하게 되고 개는 방 밖으로 쫒겨 납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담아 냅니다. 평상시에야 여성의 순결과 지조를 운운할 수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통이여서 인간의 욕망이 숨김없이 발가벗겨집니다.
우리들 그러잖아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뭐할거냐고 하면 여탕에 가겠다라든지  투명인간이 되면 가장 먼저 여탕에 간다든지 하는 말들이요.

이렇게 둘은 몸을 같이 섞게되고  개는 쫒겨나게 됩니다. 다음날 개는 노인을 보고 우르렁 거리다가 혼자  산등성이에 올라갔다가 지뢰에 터져 죽습니다.



그러다 사내가 또 우연찮게 이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사내는  노인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냅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방이 펄펄 끓게 하니 윤정희의 마음은 점점 사내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결국  노인은 사랑방으로 쫒겨 나게 되고 윤정희는 젊은 사내를 남편으로 맞습니다.  사내는 낮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윤정희는 따뜻한 밥을 차리면서 이 새로운 권력자에 대한 기생을 시작 합니다.

노인은 하루아침에 개꼴난것이죠.  노인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야박하냐면서 화를 내지만 젊은 사내에 대한 질투라고 생각하고 말죠.

이때 또 한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전쟁통에 친정도 시댁도 다 불이타서 오갈곳이 없는 젊은 아낙은  노인과 함께 사랑방에서 기거합니다.
노인은 젊은 여자를 아내같이 데리고 삽니다. 그 모습에  윤정희는 눈꼴 시러워하죠. 그리고 젊은 아낙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언제 젊은 사내가 젊은 아낙에게 빠져들지 모르기에  아낙에 대해서 사사껀껀 화를 냅니다.

결국  윤정희가 예상했던 사단이 납니다. 나무를하러갔던 젊은 아낙과 사내는 산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낙은 나머지 3명과 다르게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사내와 윤정희 노인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동물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아낙은 욕망보다는 약속과 신의를 지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노인을 배신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내는 그런 아낙을 강제 추행해 보지만 아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욕망이라는 사랑의 잣대기는 헝클어지게 되고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윤정희는  불타버린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인공기와 태극기를 들고 나옵니다.

이 영화는 반공영화도 이념영화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태극기 인공기를 양손에 든 윤정희 사진 하나로 낚인거죠. 하지만  이 영화 연극과 같이 4명의 등장인물로 인간들의 욕망의 비루함을 잘 들어내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남는 장면은 미군의 쌕쌕이 전투기가 하늘을 지나가자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서  노인과 함께 잠자리를 합니다.

추잡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성이 이 모든것을  너그럽게 볼 수 있게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인간의 욕망만을 담을 수 있는 즉 생과 사가  아침밥상에 밥이 올라오듯 흔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인간 내면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상황극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속에서 아낙만이 전쟁통에서도  상식을 챙기고 살며 나머지 3명은 욕망대로 살다가 새로운 권력자에게 정권을 자동 이양하는 모습과 질투가 잘 들어나 있습니다. 영화보다는 연극으로 만들어도 꽤 좋은 작품일듯 한데요


적은 제작비에 인간의 원초적인 이야기를 담은 모습. 기대한 이념영화는 아니지만  또 다른 진면목을 본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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