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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냥 친구들과 놀러갔을때 찍사나 하는 정도의 관심이 있었구 주요 관심은 주말마다 친구들과 출사겸 놀러가는것과 이성친구 만들기였죠. 부던히도 많이 놀러 다녔던것 같네요. 그러다 군대를 갔다 온후 예비역이 된 어느날 여느날과 같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끄러운 음악이 나와서 대화가 불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멍때리면서 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벽에는 거대한 산을 담은 흑백사진이 있었죠.
아니! 흑백사진 그것도 풍경사진이 칼라 사진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나? 그 술자리 내내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수첩에 사진작가의 이름을 담아서 나왔습니다. 그 이름은 안셀 아담스였고 이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니 흑백 즉물사진의 대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칼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칼라사진이 아름답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셀 아담스의 흑백사진을 본후에는 흑백사진이 때로는 칼라사진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것 입니다. 인물사진은 칼라보다는 흑백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흑백사진은 칼라사진의 불필요한 색의 정보를 말끔히 제거해줘서 인물의 본질 자체에 더 많은 시선을 머물르게 합니다. 따라서 흑백 인물사진을 보면 인물의 옷이나 악세사리와 화장과 치장을 보기보다는 인물 자체의 자세와 얼굴에 시선이 더 많이 가고 인물이 수많은 것으로 감출려고 하는 내면을 칼라사진보다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경사진은 자연이 만드는 칼라 자체가 하나의 매력이기 때문에 풍경사진을 흑백으로 찍는 사진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깨게 만드는게 안셀 아담스의 사진들이죠.
흑백사진하면 떠오르는 사진작가가 바로 안셀 아담스인데 이 사진작가도 칼라사진을 찍었더군요.
1948년 아오오와주 그랜드 탠톤 국립공원에서 담은 칼라 사진입니다. 위 흑백사진과 약간 다른 각도이죠.
안셀 아담스는 1984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할때까지 대부분 흑백사진만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흑백사진만을 고집한것은 아닙니다.
칼라사진의 보급은 1935년 코닥의 코닥크롬이라는 칼라필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칼라사진을 좀더 쉽게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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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에 칼라필름이 나왔지만 바로 반응이 있지 않았습니다. 칼라사진의 신뢰도와 색재현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1960년대 까지도 흑백사진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2차대전 사진 대부분이 흑백사진인 이유도 그런이유죠. 간혹 2차대전당시 칼라사진이 나오면 다들 놀라곤 할 정도로 칼라로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안셀 아담스도 칼라사진을 보고 많은 갈등을 합니다. 그 갈등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처자식이라는 생계도 있었죠.
흑백사진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안셀 아담스였지만 서부를 배경으로한 칼라사진을 원하는 광고주와 구겐하임같은 미술재단의 후원들은 그에게 칼라사진을 요구했습니다.
48년도에서 49년 사이에 미국의 중서부 주요소에는 거대한 안셀 아담스의 칼라 풍경사진이 걸렸던 적이 있었죠.
그렇다고 칼라사진을 예찬하지는 않았습니다. 칼라사진은 생계를 위한 실리적 사진이었고 미학적으로는 흑백을 좋아했고 그의 작품 대부분은 흑백사진이며 유명한 사진 모두가 흑백사진입니다.
암실의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안셀 아담스는 인화의 대가였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안셀 아담스의 손을 거치면 정확한 계조의 사진이 나옵니다. 그런 아담스의 능력을 이미 알아본 코닥과 폴라로이드사는 수십년동안 그를 색의 컨설턴트로 고용해서 조언을 받았습니다.
참 재미있죠 흑백사진의 대가에게 색의 컨설턴트를 받다뇨. 하지만 흑백과 칼라는 크게 다른것은 아닙니다.
안셀 아담스의 흑백사진에는 정확한 광량의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출과 광량의 교과서라고 할수 있죠.
그런 아담스의 천재적인 소질을 코닥과 폴라로이드가 알아 본것이죠. 아담스는 죽기전에 틈틈히 찍은 칼라사진을 가지고 뉴욕 현대미술관인 모마에서 전시회를 할려고 했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보기드문 칼라 사진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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