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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음악창고

8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마이클 잭슨

by 썬도그 200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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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국내의 10대를 뒤흔든것은  원더걸스같은 걸그룹도 서태지같은 뮤지션이 아니였습니다.
외국가수인 마이클잭슨이었습니다.  70년대는  팝송세대라고 해서 국내가요의 얇은 스펙트럼에  식상한  젊은이들이 팝송을 끼고 살았습니다. 70년대가 아바와 사이먼 앤 가펑클,  카펜터스가 존덴버가 주름 잡았다면 듀란듀란,  마돈나, 퀸, 아하,  그리고  팝의 황제인 마이클잭슨이  음반시장을 꽉 잡았던것이 한국의 80년대였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이문세의 발라드와 소방차의 댄스음악이 폭발하면서 90년대에는 가요가 팝을 이기는 음반시장의 주류가 되고 그 주도권은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80년대를 통틀어서  마이클잭슨만큼  강력한 파괴력과 영향력을 가진  뮤지션은 없을것입니다. 왜 마이클 잭슨에게 팝의 황제라는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있는  닉네임을 사람들이 붙여주었을까요?   지금의 1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 그는  80년대 황제로써 살았습니다.

  82년에 발매된 드릴러 앨범은 전세계를 강타하고 한국을 강타하게 됩니다. 
이 곱슬머리의 흑인 청년은  잭슨파이브라는 가족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한후 Off the wall에 이은 두번째 앨범 드릴러에서  대박을 터트립니다.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전세계 판매량이  5천4백만장이나 됩니다. 단일앨범 사상 가장 많이 판 앨범인 드릴러.

더불어 개그프로그램에서나 코메디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마이클잭슨 복장을 한  개그맨들이 나왔습니다.
김명덕씨로 기억되는데  마이클잭슨의 황태자복을 입고  문워커를 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이 82년도의 드릴러에는  명곡들이 많습니다.
빌리진, Beat it, 드릴러등이 있는 이 앨범은  그를 단숨에 팝의 황제로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혜성같이 어느 별에서 날아온 스타는 아니였습니다



잭슨 파이브 시절

잭슨파이브에서  5살부터 노래를 불렀고  훌륭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잭슨스에서 활동하가가  79년 솔로로 데뷰합니다.
흑인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하기 쉬운 지름길이 바로  이 음악부분이었는데  마이클 잭슨은 특유의 미성으로  인기를 끕니다.   


만화영화 벤의 주제가로 마이클이 14살때 부른 이 벤은  빌보드차트 정상까지 오릅니다. 



퀸시존스와의 만남

이런 훌륭한 음악적인 선천적인 소질과 환경에서 자란  마이클은  퀸스존스라는  유명한 프로듀서를 만나게 됩니다. 마이클잭슨이 변성기를 맞은후 솔로로 데뷰한후  슬럼프에 빠졌을때 퀸시존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냥  가창력 좋은 흑인가수는  우리에게 잊혀졌을수도 있었을 것니다.  그런데 퀸시존스와 만난 마이클은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이전의 팝뮤지션들이  오디오쪽 가수였다면  마이클잭슨은  비디오형 가수였죠. 그렇다고 노래를 못하는것도 노래가 떨어지는것도 아닙니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그의 무대는 전세계를 흥분시킵니다.  저도 팝스타 처음안게 마이클잭슨이었습니다.  다른 팝가수들은 한번듣고 그런사람이 있는가 보다 헀는데 마이클잭슨은 한번보고 잊혀지지 않더군요.

다른가수들과 다르게  춤이 정말  진국이더군요. 지금은 한국의 문화가 되어버린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의 비보이들이   전세계 비보이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사실 비보이란것도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춤꾼들을 말하죠.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심어준 브레이크 댄스 문화는   거리 풍경을 바꾸고  한국가요계도 바꾸게 합니다.

연체동물과 같은 흐느적거림을 보여주다가  로보트같이 절도 있게 움직이는  팝핀과 로버트춤 다 브래이크 댄스문화의 한 부분이죠.  마이클 잭슨의 춤은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고 그가 무대에서 문워커를 보여주면  수많은  여성팬들이  실신했습니다.

마이클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에너지였습니다. 파워플한 브레이크 댄스와 함께 강렬한 전자기타음악과 강렬한 비트등은   전세계 젊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84년 그래미시상식에서 8개부분을 싹쓸이한  이 드릴러 앨범은  37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웁니다

이 당시 셀러브레티(유명인) 사진을 코팅하는게 유행이었는데  마이클잭슨이  황태자복입고  그래미상 8개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렇다고 84년  당시 가수들이 허접들이었냐. 아닙니다.  지금도  활동중인 가수들도 있고 당시 정말 기라성같은 가수들인데 이들을 다 뒤로 재친것이 바로 마이클 잭슨이죠.

마이클잭슨의 친구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에게 팝의 황제라는 닉네임을 선물해줍니다.  이 선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85년  아프리카 난민 기금운동을 마이클이 나서서 하게 됩니다. 지금도 가끔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말하는  We are the world라는  아프리카 난민돕기 프로젝트를  이끌어 냅니다.
마이클 잭슨이 작사작곡한(맞나?)  이 노래에는 39명의 당시 유명한  미국 팝스타들이 나옵니다.


이 노래는 2천만장이 팔려나가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후에 영국가수들이 이와 비슷하게  여러명이 모여서 노래를 불러서 아프리카를 돕기는 하지만  아류라는 소리를 받게 되죠. 뭐 기부행위는  다 좋은 행위지만요.


폴 메카트니와의 만남

폴 메카트니는 살아있는 전설이죠. 비틀즈의 리드보컬중 한명이었는데  이 폴 메카트니와 마이클은 
The Girl Is Mine과  "Say Say Say"라는 싱글곡을 만듭니다.  이 노래도 크게 히트하게 되고 마이클은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비틀즈 음악의 저작권인지 판권인지를 마이클잭슨이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인기가 있으면 구설수가 따르는법  86년 마이클잭슨은 한 영국의 타블로이드판이  고압산소 치료기안에서 잔다고 하는 내용이 알려집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 관리를 위해 마이클잭슨은  큰 투자를 한것은 틀림없습니다. 



게임과 영화로 만들어진 문워커

마이클 잭슨하면 뭐니 뭐니해도   누가 뒤에서 잡아 끄는 듯한  묘한 발놀임의 문워커죠. 문워커 똑같이 따라한다고  저와 친구들은  밑창 닳도록 따라하고 해보지만  뻣뻣한  다리는  맘대로 움직이지 않더군요.
이 문워커를 소재로 해서 영화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영화 문워커는  유치한 내용입니다.  마이클을 보면 피터팬신드롬에 걸린것처럼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삶을 사는  모습같아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마이클이 어른이 되는것을 거부하는것은 아닌가 할정도였습니다. 영화 문워커는 바로 그런  모습을 담습니다. 한마디로 아이드을 위해  문워커로 무장한  마이클 피터팬이  나오죠. 

영화내용은 간단합니다. 마약을 악으로 정해놓고  악이 아이들을 괴롭히면  느닷없이 나타나 아이들을  구하는 모습이죠.

저는 이 영화 노래방에서 첨봤어요. 노래방가서 노래는 안부르고 이 영화 넋놓고 봤네요. 비쥬얼이 대단했습니다.
마지막에 로봇으로 변신하는 모습에는 깨더군요 ㅎㅎ 영화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비쥬얼만은 대단했지요.

이 영화를 모델로 게임까지 만들어 집니다
이 게임 참 많이했던 기억이 나네요.  위험할때 버튼을 누르면 적들과 함께 문워커 춤을 함께 추모습은 압권이었죠
이 게임이 좋았던것은 마이클잭슨 노래인 배드를 배경으로 싸우는것도 재미있구  동전을 넣으면 마이클 특유의 호오~~~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오락게임까지 나온 뮤지션이 또 있을까요? 아마 유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문워커와 함께  마이클의 특기중 하나가 이렇게 몸 기울이기였습니다.  이 몸 기울이기는 특이한게 춤을 막 추다가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이는데 쓰러지지 않는것입니다. 마술이다 아니다 까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게 다 무대 노하우중 하나일것 입니다.  마이클잭슨 공연하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공연이라고 하잖아요.
그가 국내에 와서 공연했을때  많은 한국의 유명가수들이   무대연출 노하우에 감탄을 자아냈다고 합니다.



 마이클의 최대의 절정기는 87년 전후였습니다.  이후  데인저러스라는 앨범을 내서 건재함을 과시하죠.
그러나 93년부터  추문에 휩싸입니다. 가장 결정타가 아동성추문이었고 마이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합니다.
팬들에 의하면  그 재판  협의 모두 벗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명스타다 보니  죄가 있건 없건을 떠나서 이미 언론과 여론의 재판을 받은 상태에서  이미지 회복은  어려워집니다. 이후에   엘비스 프레슬리 딸과의 깜짝 결혼후 파경
아이를  호텔 베란다에서 들어 올려 보이는등의  괴이한 행동으로  그는 점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제 추측이지만 마이클잭슨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것 같습니다.  그를 잡아주고  다그쳐줄  스승이 좀 곁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이 없었던것 같네요.  가장 최근의 기사를 보니   이슬람으로 개종헀다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몇년전에  신곡을 발표하지만 허물어지는 코를 철저히 숨기고 찍은 뮤직비디오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왕년의 잭슨횽이 아니였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 제주도를 사겠다는 제안까지 할정도로  부자였는데  네버랜드의 동물까지 팔아버려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최근의 그의 모습이 추례했지만 마이클잭슨은  영원한 나의 팝스타이고 팝의 황제입니다.  외국가수 한명도 모르던 어머니도 마이클잭슨은 알 정도였는데  큰 별 하나가 졌네요.   김대중대통령과도  친분을 과시했는데 김대중대통령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이클잭슨의 죽음으로  큰 슬픔이 두번이나 있네요.  거기에 김동길교수는 막말까지 하구요.

82년  영화 E.T의 헌정곡 Someone In the Dark가  생각납니다. 가장 마이클이 행복해 보이던 모습들이 들어있는 노래입니다. 마이클잭슨의 죽음이  남의일 같지 않은 한국의 왕년의  대스타들 많을것입니다.   각설하고 그의 음악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Someone in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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