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역사라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추켜세웁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나 방송에서나 민족정기 고양을 위해서 반만년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렇게 공감 가는 단어는 아닙니다.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흔적들은 별로 없습니다. 종로에 가면 무슨무슨 터가 있던 곳이라는 수많은 조선시대 건물들의 묘비만 있고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조상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도 있는 것 보존보다는 개발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많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재개발지역이라고 성북동 한옥 밀집지역을 철거하려다가 한 외국인이 발품을 팔아 주민동의를 얻어 재개발을 막아냈고 한옥을 보존시켰습니다. 이런 한국에서 반만년이라는 단어는 좀 초라하네요
저는 몇년전부터 서울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고 서울의 옛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직접 가서 그 흔적을 찾아보곤 하는데 생각보다 서울은 역사적인 건축물과 옛 문화에 대한 배려와 보존의 손길이 없더군요.
7백 년 가까이 한나라의 수도였고 수도일 서울, 그러나 7백 년이란 세월은 완벽하게 파괴되고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은 변태를 위해 허물벗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사한 지 얼마 안 된 곳 같은데 또 도로를 까 뒤집고 공사를 합니다. 새로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목표 아래 서울은 현대 도시로써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4대 고궁을 빼고 거의 완벽하게 옛것이 사라진 서울속에서 1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극에서 처럼 지금과 다르지 않게 깨끗한 삶을 살았을까? 혹은 행복한 삶이었을까? 머리는 어떻게 감고 다녔을까?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살았을까? 양반과 노비의 신분 차이는 정말 하늘과 땅이었을까? 한양이라는 도시는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 1백 년 전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네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 시대인 1백 년 전 한국의 모습을 우린 박물관에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다행히 1900년대 초 한양과 조선을 정밀묘사한 프랑스인 고고학자인 에밀 부르다레의 책이 있었습니다.
이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은 조선에 프랑스 강사와 철도 및 광산개발 고문 역할로 온듯한 프랑스인 에밀 부르다레가 1900년도 초 조선에 입국해 목포, 제주도, 서울, 평양, 개성 등을 돌아보고 1904년에 프랑스에서 발간한 책을 한국에서 올해 번역하여 나왔습니다. 1900년대 초는 명성황후 시해 후 놀란 고종이 조선인과 외국인 모두 믿지 못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라는 조선 말기의 암울함을 지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일본이 호시탐탐 대한제국을 집어삼키려는 시대였습니다. 이 에밀 부르다레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에 한국에 왔었다면 또 다른 시선으로 대한제국을 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1905년의 역사적인 사건 바로 전의 고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세밀화로 적고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일본에서 부산으로 입항하는 에밀 부르다레의 모습이 보이고 정크선(사극에서 많이 보이는 연안을 왕래하는 돛단배)과 하얀 옷을 입은 조선인들을 묘사합니다. 지적이며 온순해 보이는 조선인들, 그리고 역한 냄새가 이 유럽인에게 다가옵니다.
이 책에서 에밀은 조선의 미개함을 적나라하게 적어내고 있습니다. 그 미개함은 조선인들의 게으름보다는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온 종속적 닫힌 시스템에서 미개함을 찾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미개하고 추레하기 때문에 조선도 비슷하다고 위로합니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조선인들 그러나 그 옷은 단벌인지 여기저기 헤어지고 포장된 도로는 전혀 없어 원시적인 짚신을 싣고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 아수라장이 되는 길을 걷다가 애통하게도 민족의 색인 하얀 옷에 흙탕물이 튀는 조선인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봅니다.
거기에 온통 악취가 심하다고 조선을 묘사하죠. 듣기에는 참 기분이 나쁘지만 에밀 부르다레가 악감정이나 조선인들을 미개인들이라고 낮춰보기 보다는 조선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식견을 통해 조선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합니다.
저자인 에밀은 고고학자 답게 한국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적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몰랐던 한국의 역사를 아주 정밀하게 그려냅니다. 그 정밀성이 얼마나 오밀조밀한지 1900년대 초 그 어떤 조선인도 담지 못한 내용을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에밀은 고고학자 특유의 역마살 때문인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양에 도착한 후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건축, 사회, 역사적으로 꿰뚫어 봅니다. 책에 있는 1백 년 전 한국의 모습을 살짝 들여보면
1. 망자들과 무당의 나라 조선
우리의 조상숭배는 세계에서 가히 최고의 숭배가 아닐까 합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나 조선은 산자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라였죠. 에밀은 이런 모습을 진부하고 고쳐야 할 개혁의 대상이라고 지적합니다.
망자들이 산자들을 집어 삼치고 산자가 망자를 먹여 살리는 모습 속에서 조선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유럽인의 시선입니다만 새겨들을것도 많습니다. 또한 병이 나면 병에 대한 연구를 해야지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는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샤머니즘을 연상케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뭐 요즘도 무당을 찾는 분들이 많죠.
무당이 비과학적이다 아니다는 요즘도 논란거리지만 적어도 무당이 병을 치료해주지는 않습니다. 지금이야 병원에서도 포기한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것을 무당이 치료하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죠.
그 무당에게 들어가는 돈이면 그 돈으로 과학적으로 병을 치료하는게 낫지 않냐고 지적하며 무당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그려냅니다.
병에 걸리는 이유도 악령 때문이다. 여기서도 무당이 활개를 칠 뿐만 아니라 조선 어디에서나 절대적 여주인으로 군림한다. 이 나라를 착취하는 마술사, 무당, 천문가, 지관의 무리는 정말 나라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이자 약점이다.
85페이지 중에서
2. 구경꾼이 많은 조선
저자는 조선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길거리 노천식당에서 국밥을 돌담밑에서 말아먹고 있는 사람을 돌담 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백수들이 많은지 구경거리가 생기면 가던 길도 멈추고 구경을 한다고 합니다.
하기야 지금도 종로에 가보면 구경하는것을 소일거리로 여기시는 분들 많죠.
제 친구가 지독한 구경중독증이 있었는데 이 친구와 시내나가면 진도를 못나갑니다. 한참 구경하다가 별거 아니네~~ 라고 가고 또 조금가다가 구경하고. 저자가 유럽인이라서 그 구경의 시선이 거북스러워서 세밀하게 묘사한것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구경을 참 좋아하는것은 사실인듯 합니다. 외국에서는 뻔히 쳐다보면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는데 우리는 남이 불쾌하던 말던 그냥 빤히 쳐다볼때가 많죠.
3. 냄새나는 조선
조선 음식에 대한 칭송은 대단하더군요. 다만 양반집에서 먹는 음식은 최고라고 하지만 평민들이 먹는 밥은 위생도 맛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 곳곳에서 냄새나는 조선인과 조선거리를 묘사합니다.
서양과 같이 하수도가 있는것이 아니고 집안에 외양간과 닭장등이 있어서 위생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옷이 많아서 세탁을 자주해서 입고 다니는것도 아니고 남자들도 머리를 길러 상투를 하기 때문에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조선인들을 묘사하지만 불쾌하다고 적지는 않습니다. 고고학자 답게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묘사는 하돼 문화적 상대성을 담는듯 하더군요. 프랑스도 18세기 들어서 하수도와 상수도 개념이 생겼지 15세기 정도에는 아주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도시 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4. 여자들이 빨리 늙는 조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한국에서 여자로 살기에는 그리 좋은 여건은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더했죠. 지금의 아랍, 아프카니스탄과 같았습니다. 여자팔자 뒤웅박팔자라고 한번 보지도 못한 남자와 결혼해서 평생 시댁귀신이 되어야 하는 여자들의 팔자를 저자는 애처롭게 봅니다. 항상 남자들은 빈둥빈둥놀고 여자들은 애보고 일도 하고 빨래도 하는 고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레이디 퍼스트!! 조선에는 통할리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이 빨리 늙는것 같다고 적고 있더군요.
5. 착한 조선인들
저자가 한결같이 칭찬하고 좋게 보는것은 조선인들의 성품입니다.
나는 번번이 길에서 형사들이 사람 드을 붙잡아 감옥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힘이 펄펄 넘치는 덩치 큰 건달들이 18~20살쯤 되는 형사 한두 명에게 얼마나 순순히 끌려가던지, 이제 그런 장면을 본다고 해서 별로 놀라지 않는다. 죄수들 6~8명이 그저 동아줄 하나로 꿰였고 2~3미터 뒤에 서 형사 하나가 따를 뿐이다. 이 나라에서 죄인은 저항하지 않는다.
260페이지 중에서
이런 단편적인 모습과 유럽인이라는 피부색이 신분을 표시하는것인지 이 저자인 유럽인에게 조선인들은 극진한 친절함을 보여줍니다. 에밀때문에 배를 놓쳐도 불평하는 조선인이 없습니다. 이 모습은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네요.
서양인 특히 백인이면 우린 좀 많이 관대하죠. 그러나 에밀이 흑인이었다면 또 달랐겠죠.
6. 옷으로 개혁을 외치는 무능한 조선관리와 고위층들
에밀은 이 착하디 착한 백성들을 부정부패와 무능한 조선의 관리들 때문에 미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을 합니다.
시내로 들어서면 서대문 아래에 걸린 현수막을 주민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민족의 관습에 진정한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이 현수막은 시장의 공문을 서울 주민에게 고시한 것으로, 열흘 뒤부터는 더 이상 흰옷을 입지 말 것을 알리고 있다(이월 연말을 날부터 스무나흘 날까지) , 흰색이 눈에 너무 튀므로 상복으로나 입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지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그 공지의 대사이 되었던 사람들 중 새 옷을 사 입을 여유가 있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다.
백의민족의 옷도 머지않아 끝이 날지 모른다. 그날이 오면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부에서는 항상 큰 개혁은 옷으로 하려니 말이다. 옷이 중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잊은 정부인 것을(이 말은 조선인의 속담 아니던가!) 옷보다는 해묵은 제도를 개혁해야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에 주민에게 담뱃대 길이를 줄이라고 정부가 지시한 적이 있었다. 너무 건방져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다음에는 옷소매를 줄이라고 했다. 또 그 뒤에는 모자의 챙을 줄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것까지 줄이라고 할지. 오늘날은 색에 집착한다. 내일은 형태에 집착하리라. 하지만 정부는 불행하게도 극단적이며 낭비적인 관료제에 계속 사로 잡혀 있을 듯하다.
백년전 프랑스인이 본 서울의 행정이나 지금의 행정이나 달라 보이지 않네요. 오늘 기사를보니 서울시가 조례를 만들어서 서울,광화문 두개의 서울 중심의 광장은 문화예술 공연장으로만 쓸수 있다고 합니다.
1백년전 행정과 현재의 행정이 다르지 않음에 쓴 웃음이 나옵니다. 그 공무원이라는 자리에 사람이 앉으면 다들 그렇게 변하나 보죠?
저자 에밀은 서울을 떠나 평양에 갔다 다시 서울에 오는 여정을 그립니다. 그 가운데 파주와 고양시 개성의 1백년전 모습을 스케치하는데 이 모습도 참 좋고 재미있더군요. 물론 불편한 조선의 삶입니다.
저자는 조선 아니 대한제국을 떠나면서 계산에 빠른 일본인들이 집어살킬 조선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봅니다.
그리고 진보와 개혁을 조선에 충고합니다.
이책은 애국자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객관적으로 고고학자 입장에서 조선의 1백년전 모습을 담았다고 해도 읽기 불편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의 1백년전 모습이 궁금하거나 객관적으로 한국을 바라본 옛 유럽인의 시선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권장합니다. 1백년전에 나온 책이라고 해도 바로 눈앞에서 1백년전 조선을 보는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이 책의 세밀함에 감탄을 하면서 저는 너무 잘 읽었습니다.
또한 그 어떤책에도 읽을수 없었던 우리네 증조, 혹은 할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잃어버린 역사의 한페이지를 읽는 느낌 마져 들더군요.
분명 유럽인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지만 그걸 감안하면서 읽는다면 1백년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그려볼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