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요 몇 년 사이에 본 드라마 중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완벽에 가깝다는 말, 역대급이라는 말이 난무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과잉된 단어가 딱 맞는 드라마도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입니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 음악과 미술과 CG까지 할리우드 자이 가득 묻은 한국 아니 정확하게는 모국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에게는 잊혀진 존재인 자이니치(재일동포)를 세상에 알리는 훌륭한 드라마입니다.
파친코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재일동포들의 고통
친일 대통령이 세상에 나올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라는 친일부역자들을 색출해서 퇴출시키는 위원회를 이승만 대통령이 박살을 낸 이후 그 서슬 퍼런 군부 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 때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친일을 외치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게 국민 정서였으니까요.
명백히 일본은 한국을 강탈한 가해 국가이고 그 가해의 사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머리 숙여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 고고학과의 아주 늙은 교수가 강연을 하는데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말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생각보다 한국 엘리트 중에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일제를 대놓고 미화하지 못하는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현 대통령의 묵인 아래 친일파들이 다시 들끓어 오르고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한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도둑이 물건 훔치려고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훔쳐갔는데 사다리를 놓고 갔다고 고마워해야 한다. 신문물 사다리를 준 도둑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최근 개편한 교과서에 뉴라이트 계열의 집필진이 들어가는 걸 봐도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일제강점기의 피해는 많이 아물긴 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재일동포들입니다. 이 재일동포는 한국 사람들도 잊은 존재들입니다.
파친코에서 모자수 역을 연기하는 재일동포 배우 박소희의 인터뷰를 보면 재일동포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재일동포 국적 중에 한국도 있지만 정대세 같은 북한의 국적을 가진 조선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적을 가진 분들은 한국에 방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는 100%에 가깝게 허용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같은 보수 정권 때는 조선적을 가진 재일동포의 입국 허가율이 50%도 안 되었습니다. 참 웃기죠. 남북으로 갈리고 동포도 남북으로 갈립니다.
이분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또는 그 이전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분들도 많은데요. 물론 드라마 파친코에서처럼 자발적으로 간 분들도 있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분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환영을 받았을까요? 아니죠. 화냥녀도 그렇고 아무 죄도 없이 나라가 힘이 없어서 끌려간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요즘 젊은 세대나 좀 개방적이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분들이 참 많아요.
이런 존재가 세상에 있을까요? 모국이 없는 분들이죠. 모국이 왜 없어? 한국이 모국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박소희 배우는 자신의 태어난 나라는 일본이라서 모국은 일본이지만 할머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즉 할머니가 자신의 모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으로 온 할머니를 선택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풍경입니까? 내 뿌리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할머니라고 말하는 자체가 이 재일동포들의 고통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런 재일동포의 고통을 잘 담은 영화가 <박치기 1>, <박치기 2>입니다. 재일동포들의 삶이 어떤지를 아주 잘 표현한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손정의가 1990년에 한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 바꾼 걸 봐도 한국 국적이든 조선적이든 뿌리를 지키고 사는 건 참 쉽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손정의 집안이 큰돈을 번 건 아버지가 파친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기 때문입니다.
왜 파친코인가?
재일동포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해도 특정 발음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드라마 <파친코>에서도 나오지만 일본어 십오원 오십전을 쥬우고엔고쥿센라고 발음하면 일본인 주고엔고짓센으로 발음하면 조선인이라고 구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특정 발음을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특징을 이용해서 특정 단어를 발음하라고 해서 제대로 하면 우크라이나인, 틀리면 러시아인으로 구분했듯이요.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적국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차별을 하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우물에 독을 탔다는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무려 6천 명의 조선인들을 학살합니다.
이런 일본에서 재일동포는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각종 차별과 대우에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웠죠. 그러나 일본인들이 꺼려하는 것이 있었는데 파친코 같은 사행 사업은 잘하려고 하지 않았죠. 이에 온갖 차별과 멸시로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은 1950년대부터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1989년에 모자수가 파친코 게임장을 개설한 것도 다 재일동포로서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없고 이미 재일동포들이 이 파친코 사업을 꽉 잡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기도 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차별 대우를 받자 할 게 없어서 대부업을 한 것처럼요.
파친코가 뛰어난 드라마인 이유 3가지
1. 뛰어난 원작과 시나리오
이민진 작가는 무려 4년 동안 일본에서 머물면서 수많은 재일동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중에 모자수 역을 연기한 박소희 배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집필한 소설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도 1권을 읽어 봤는데 드라마와 꽤 다르더라고요. 내용은 동일한데 드라마는 1940년대, 198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2개의 시간대가 동시에 출발해서 교차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원작 자체도 뛰어나지만 더 뛰어나게 만든 건 시나리와 연출이었습니다. 원작도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를 했는지 개연성을 넘어서 실제 존재했던 삶을 담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건 4년이라는 지난한 인터뷰와 연구 과정이 잉태해 낸 결과겠죠. 그렇다고 오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시즌 1에서 민족주의자였던 어부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면서 홍난팜의 봉선화를 불렀지만 1920년대 배경에 친일 이력이 있는 40년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는 역사 전문가 심용환의 자문에 바로 어부가로 수정을 합니다. 이런 유연성도 드라마의 몰입도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도 뛰어난 자문가가 붙어서 대본을 수정하고 정정하고 가는 이런 탄탄한 원작 위에 유연함까지 들어가니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연출과 미술팀
파친코시즌 1의 연출은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같이 연출을 했습니다. '저스틴 전'은 2016년 개봉한 다큐 <트윈스터즈>를 총괄 기획하고 몇몇 영화를 연출했지만 '트와일라잇'에서 조연을 하는 등 연기자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코도나다'는 2022년 갭오한 여러 평론가들이 칭송을 한 <애프터 양>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두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원작을 더 맛깔스럽게 만들었네요.
파친코 시즌2는 미국 감독이 1,2화, 3,4,5화는 중국 감독 그리고 이상일 재일동포 감독이 6,7,8화를 맡습니다. 1,2화의 연출도 꽤 좋지만 이상일 감독편이 무척 기대가 되네요.
미술팀도 칭찬을 안 할 수 없습니다. 1940년대 오사카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이 한 방에 그 시절로 안내합니다. 여기에 복장이나 여러 소품을 보면서 탐복을 했습니다. 미술팀이 정말 열일했습니다. 미국 드라마지만 한국 드라마 보다 더 뛰어난 미술팀의 활약에 이게 가능한가 했네요. 스크롤을 살펴보면 미술팀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한국 분들이 자문 역할을 했네요. 엄청난 재현에 탐복했습니다.
3. 배우들
보면서 같은 배우도 무대가 달라지면 그 배우가 더 뛰어나게 보일 수도 있구나를 느끼게 했습니다. 윤여정 배우야 말할 것도 없고
낯선 배우였던 주인공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의 연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배우가 있었나 할 정도로요. 이외에도 이삭 역을 한 노상현과 모자수의 박소희와
한수의 이민호의 연기도 꽤 좋습니다. 이민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은 이전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파친코>에서는 좀 더 무게감 있는 연기를 해서 좋네요. 이외에도 연기 잘하는 한국 배우들과 외국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참 좋네요.
파친코 시즌2가 더 재미있는 이유
파친코 시즌2는 1945년 오사카와 1989년 거품경제의 절정이었던 도쿄를 배경으로 합니다. 파친코 시즌2를 보려면 시즌 1을 봐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네! 꼭 봐야 합니다. 안 보면 이야기를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다이제스트 영상으로라도 봐야 합니다. 다만 압축 영상으로 보면 감동도 재미도 압축되어서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파친코 시즌 1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숙박업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선자가 일본에서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번 한수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렇게 선자는 한수를 손절합니다. 이때 선자네 민박집에 목사 수업을 받는 이삭이 숙식을 하게 되고 병색이 심했던 이삭은 죽다 살아납니다. 이삭은 배가 불러오는 선자를 보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하죠. 이삭은 선자와 함께 오사카로 향하고 거기서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도 아닌 노아를 키우면서 모자수를 낳습니다.
그러다 이삭이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선자는 김치를 담가서 가족을 먹여 살립니다. 시즌 1이 이 장면에서 끝나고 시즌2는 바로 이어집니다. 1945년 오사카는 미군의 폭격이 예정되어 있었고 누구보다 정보력이 좋고 돈이 많은 선자 주변을 여전히 맴도는 한수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삭이 감옥에서 나옵니다.
시즌 1에서는 마무리되지 못했던 1989년의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금융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담길 듯합니다. 집을 팔지 않겠다던 재일동포 할머니가 드디어 마음을 여네요. 이게 다 선자가 수시로 솔로몬에게 너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간직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여기에 오사카가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자수의 똘망함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노아가 겪는 따돌림과 울분의 눈물이 자박자박하게 깔립니다. 시즌 1이 시작이었다면 시즌 2는 시즌 1의 인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 인기에 더 힘을 내는 부스터를 단 드라마입니다. 최근에 본 드라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이고 친일을 외치는 현 정부의 행동에 더 분노하면서 보게 되네요.
어쩌다 나라가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네요. 국민이 분노하지 않으면 친일파들이 일제 시대를 찬양하는 일은 더 많아질 겁니다. 그래서 파친코 시즌2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