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은 <무간도>와 참 비슷한 언더커버 영화 <신세계>로 대히트를 칩니다. 이 <신세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힘이 아주 큽니다. 물론 연출도 좋긴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의 역량이 만들어낸 히트 영화입니다. 이후 박훈정 감독은 <대호>와 <브이아이피> 같은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영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박훈정 유니버스의 시작인 2018년 <마녀>를 세상에 선보입니다.
영화 <마녀>는 너무 우려먹어서 쉰 내가 나는 슈퍼솔저 프로젝트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초인 만들기를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마녀>는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성긴 구석이 있지만 김다미라는 놀라운 배우가 하드캐리하면서 스토리의 구멍이나 만듦새를 다 메꾸었고 2편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마녀 2>와 <낙원의 밤>을 보면서 이 감독 감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액션은 나름 잘 찍는데 스토리는 갈수록 이상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귀공자>는 안 봤습니다.
디즈니플러스의 4부작 드라마 폭군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에 큰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빙>이 대박을 낸 이후 이렇다 할 흥행 성공작이 없네요. 그래서 아마도 내년부터 한국 드라마 제작이 확 줄 듯합니다. 디즈니플러스 가입자가 200만 명이나 줄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는 8월 14일 4부작 드라마 <폭군>을 오픈했습니다. 감상평부터 짧게 말하면 박훈정 감독이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 안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흔한 소재와 뻔한 진행과 매력 하나 없는 여주인공 때문에 재미가 없네요. 다만 유일하게 눈길을 끈 장면은 후반 초인끼리 대결인데 이 장면 말고는 피칠갑한 여주인공 얼굴을 보는 내내 한숨만 나오네요. 졸작입니다. 전체적으로 참 못 만들었습니다.
다만 <낙원의 밤>을 보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지만 그보다는 재미있네요. 그러나 처음 보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스토리 진행과 구도와 주인공 캐릭터를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한숨만 나오네요.
이야기는 별거 아닌데 뭘 그리 비비 꼬았을까?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이걸 비틀어야 계속 보게 하는 힘이 생깁니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살인청부업을 하던 아버지가 살해된 걸 딸 채자경(조윤수 분)이 봅니다. 친 부모는 아니고 아버지 밑에서 살인 기술을 배워서 채자경도 살인귀입니다. 채자경이 실질적인 주인공 같지만 드라마에서 다루는 태도를 보면 너무 엉성해서 주인공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채자경에게 정부쪽 업자가 찾아와서 살인 의뢰를 합니다. 그렇게 채자경은 무장한 차량을 쓸어 버리고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들어 있는 가방을 넘겨주지만 총질을 당합니다.
이 모든 것을 지시한 사람은 최 국장(김선호 분)으로 국정원 소속 요원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장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직 장악력이 엄청납니다. 이 최 국장은 국수주의자로 차체 핵개발이나 ICBM을 만들다가 미국 정부에 걸려서 문제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이 최 국장은 슈퍼 솔저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지만 미국 정보국이 알아채자 모든 것을 없애고 샘플 1개만 남겼습니다.
미국 정보 기관 요원인 폴(김강우 분)은 최 국장과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속셈을 아주 잘 알고 있죠. 폴은 최 국장에게 슈퍼 솔저 아니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샘플을 넘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 국장은 넘기지 않습니다. 미국 니들은 다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따지자 무력으로 최 국장을 압박합니다.
미국과 한국 정보원 사이에서 초인을 만드는 샘플 쟁탈전을 그리고 있는데 이걸 조금씩 보여주다 보니 4명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모래알 처럼 흩어져 있다가 드라마 3화 후반부터 한데 모입니다. 이전까지는 각자의 서사로 진행하다 보니 따로국밥처럼 이야기의 몰입감도 스릴도 느껴지지 않네요.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킬러 임상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다시 기용합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영화와 캐릭터가 이어지거나 이야기가 이어지나?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최 국장 밑에서 일하는 킬러 임상은 누가 봐도 <낙원의 밤>의 마 이사와 <독전>의 브라이언을 석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이 <폭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입니다. 약간은 코믹스러우면서도 프로페셔널한 2가지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2G 폰을 쓰는 모습을 통해서 올드한 킬러이지만 소음기를 단 샷건으로 모든 걸 날려 버리는 무시무시함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이 캐릭터가 왜 최 국장에 충성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네요.
폴과 최 국장 캐릭터는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다만 최 국장의 AI 같이 무감정한 캐릭터가 오히려 마 이사 아니 임상과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이 3명의 캐릭터는 잘 굴러갑니다. 문제는 주인공 채자경입니다.
몰입도 공감도 안 되는 채자경 캐릭터
박훈정 감독은 피칠갑한 소녀 이미지에 대한 애착이 강한가 봅니다. 영화 <마녀>에서 김다미를 통해서 그 소원을 잘 이루었지만 그건 김다미이기에 가능한 캐릭터이고 공감이 갔습니다. 김다미는 순진한 여학생과 돌변한 후에는 건조한 무력시위까지 아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채자경이라는 캐릭터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킬러의 딸로 살면서 킬러로 활동하는 채자경은 국정원의 말단 행동요원이 되었다가 배신을 당한 후 최고 윗선까지 가서 단죄를 내리기 위해서 피칠갑을 하면서 뛰어 다닙니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볼만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하나도 매력이 없습니다. 감정 하나 없는 채자경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없고 울분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을 배신한 윗선에 대한 복수심 하나만 있습니다.
캐릭터가 공감을 얻으려면 시청자와 연결이 되는 끈이 있어야지 감정의 끈 하나 흘리지 않고 다 뚜까패고 부셔버리기만 합니다. 이런 캐릭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왜 캐릭터를 이 따위로 만드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4명의 주연급 캐릭터 모두 매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이해도 공감도 안 가는 것이 채자경입니다. 조윤수라는 처음 보는 배우를 기용한 것은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배우 자체가 주는 매력도 없네요. 그리고 몸 안에 이중 인격체가 있는 건지도 이해가 안 가네요.
베놈의 한국판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요즘 한국 CG업체들이 괴물 크리처를 잘 만드니 그걸 이용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툭튀 크리처가 튀어 나올 때 짜증이 확 나더라고요. 또 크리처 물인가 했네요. <경성 크리처>도 짜증 났지만 요즘 너무나도 많은 크리처 남발에 촉수 액션에 질려 버리네요.
설정도 그래요. 뭔 기름 같은 것이 몸에 들어가더니 초인이 된다는 것은 딱 <베놈> 아닙니까? 여기저기 기존의 이야기를 얼기설기 껴 맞추어서 엮어 놓았는데 보는 내내 기시감이 가득 들어서 흥미가 끌어 오르지 않네요. 다시 말하자면 마지막 액션 장면은 아주 좋았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스토리, 캐릭터 형성 및 연출 모두 안 좋네요.
이제 이 마녀 유니버스 그만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미 실패했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우려먹는지 모르겠네요.
별점 : ★★
40자 평 : 익숙한 소재에 피칠갑한 캐릭터 어둡고 습하고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