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탈락한 영화들 중에 꽤 좋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영화라는 소리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그랬고 이 <바튼 아카데미>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다 보고 나서 왜 제목을 저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원제목 그대로 The Holdovers를 사용하거나 재수생 정도로 번역해도 좋을 것 같지만 생각해 보니 원제목을 사용하기에는 뭔가 좀 어색하긴 하네요. 그렇다고 해서 <바튼 아카데미>라는 영화의 배경을 제목으로 삼은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전 또 하나의 <죽은 시인의 사회>로 알았네요. 그런데 이 영화 다 보고 나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유사 가족 영화 또는 버디 무비라고 느껴집니다.
바튼 고등학교에서 쓸쓸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는 3명의 외로운 사람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970년 미국 뉴잉글랜드 주의 유명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바튼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폴 허넘(폴 지아마티 분)은 까칠하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학생들도 다 싫어하고 교사들도 이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노인인 폴 허넘 교사를 싫어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폴은 거짓말을 아주 극혐하고 누구보다 공정해서 기부금을 많이 내서 입학한 재벌가 아들도 예외 없이 D를 줘서 낙제시킵니다.
교장이 설득해 보지만 단호하게 특권의식은 학교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생각해서 단칼에 거절합니다. 융통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바른 걸 잘 아는 교사입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향합니다만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남아서 보충 수업 같은 걸 하는 학생들을 이 폴 허드 교사가 함께 보냅니다. 이 학생 중에는 한국 학생도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1970년에 미국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는 한국 학생이면 재벌가나 고위직 집안의 아들일 듯하네요. 이렇게 말본새가 아주 안 좋은 매너가 똥인 재벌 2세 같은 학생과 어머니가 최근에 재혼을 한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 분) 등이 학교에 남아서 수업을 받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길렀다는 이유로 집에 오지 말라고 했던 또 다른 재벌가 학생이 아버지가 헬기를 타고 백기 투항을 합니다. 그리고 그 헬기에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 허락을 받지 못한 털리만 빼고 모두 헬기를 타고 스키장으로 떠납니다.
상처 많은 3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포근한 만찬 같은 영화 <바튼 아카데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학교에는 역사 교사 폴과 어머니와 연락이 안 되는 털리 그리고 아들이 바튼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월남전에서 사망한 학생식당 조리사인 메리 램(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분)만 남습니다. 전 명문 고등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학원 소란극을 예상했는데 이 영화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학교만 배경일뿐 다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즐기는 연말에 학교에 남아서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감싸주는 드라마입니다.
먼저 가장 털리는 의붓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산다면서 털리에게 일방 통보를 합니다. 겉으로는 센척하고 다혈질이고 신경질적이지만 누구보다 정의감이 높은 털리는 원치 않지만 모두가 싫어하는 폴 선생님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됩니다. 여기에 조리사 메리 램은 아들 커티스가 바튼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교 갈 돈이 없어서 군대에 입대한 후에 저녁 후에는 군 장학금으로 대학교를 다니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전사합니다. 그리고 폴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있다가 털리를 통해서 서서히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냅니다.
인생은 닭장의 횟대와 같다고 말하는 폴 선생님
재미부터 말하자면 아주 재미있거나 꼭 보라고 권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꽤 잔잔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조미료 맛이 없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맛이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거추장스러운 치장이나 꾸밈이 전혀 없어서 다소 소박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깊이 우려낸 사골국처럼 뽀얗고 상냥한 이야기가 마음을 붙들어 놓습니다.
털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갇혀 있다는 현실에 분노하지만 이런 털리에게 같이 분노로 다그치던 털리도 중재자 같은 메리와 지내면서 관용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또한 털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우울증 약을 먹는 것도 두 사람의 어떤 상황인지 잘 보여주죠.
털리는 크리스마스에 보스턴에 가고 싶다고 소원을 말합니다. 이에 학교 밖에 나가는 걸 허용할 수 없다는 폴. 그러나 메리가 소원도 못 들어주냐고 핀잔을 하죠. 이에 셋은 보스턴으로 외출을 합니다. 그러나 털리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어떻게 보면 유사 가족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안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사는 비밀이 많은 교사 폴과 아들을 잃은 메리 그리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듯한 털리. 셋은 신분과 위치를 잊고 아빠, 엄마, 아들이 되어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습니다. 3명은 학교 학생이나 선생님들은 전혀 모르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성됩니다.
폴 선생님은 말합니다. "인생은 닭장의 횟대와 같다"라고 말합니다. 항상 긴장하고 조심하고 주의해야 횟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재벌 2세들이 많이 다니는 바튼 고등학교에서 닭이 아닌 닭 농장주 같은 인간들이 참 많습니다. 자본주의의 총아 같은 곳에서도 신분과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매너 있게 대하고 과감하게 신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는 폴에게 마음속 아들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 듯한 억울함만 가득하고 짜증스러웠던 털리에게도 좋은 어른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여느 영화의 장면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스포라서 적지 않겠지만 변화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3명의 상처 입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모닷불에 모여서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영화 <바튼 아카데미>입니다. 메리 역을 한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여우 주연상을 받았는데 연기 아주 좋습니다. 감독은 <다운 사이징>을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입니다.
심심하지만 사람 마음을 흔드는 연출을 아주 잘하네요. 좋은 영화 참 괜찮은 영화를 봤네요. 넷플릭스에 있는데 바튼 아카데미로 검색해도 되지만 The Holdovers로만 적혀서 나오니 참고하세요
별점 : ★ ★ ★
40자 평 :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