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한 때 즐겨 보던 <동네 한 바퀴>가 나오기에 봤습니다. 동네 탐방 다큐 지향 예능 교양 프로그램으로 동네 구경하기 좋아하는 저에게는 아주 즐겨 봤던 방송이었죠. 그런데 이 방송에서 이상한 장면들이 꽤 보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역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안 보는 게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요.
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안 보는 이유 3가지
드라마는 잘 되면 방송사에 큰 수익을 제공하지만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서 망하면 리스크도 큽니다. 특히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서비스가 진출하면서 천정부지로 오른 드라마 제작비를 따라갈 수 없는 메이저 방송사들은 아예 드라마 제작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제작비도 적게 들고 시청률도 제작비 대비 좋은 편이라서 수많은 예능인과 연예인들이 다양한 예능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예능 중에는 교양 예능과 다큐멘터리 예능도 있지만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우연을 가장한 연출 예능 교양 프로그램
<동네 한바퀴>에서 진행자는 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많이 보여줍니다. 이에 반갑게 인사하는 분들이 참 많죠. 좀 이상하긴 합니다. 전 방송국 카메라와 연예인이 다가오면 공중파에 얼굴 드러나는 것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다들 반갑게 맞이합니다.
전 그게 편집의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다 섭외의 결과입니다. 우연히 만난 듯한 동네 주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넘어서 그 주민의 집까지 찾아가는 장면에 저럴 수가 있나?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반갑게 인사를 하는 주민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응????? 50미터나 떨어진 할머니의 목소리가 저렇게 선명하게 들린다고? 그때 알았습니다. 마이크를 찼구나. 이게 다 섭외의 결과구나라는 것을요. 제가 순진했죠. 아니 어찌나 섭외된 시민들의 연기가 좋은지 깜박 속았네요. 이런 제 말에 다들 그걸 속냐.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들이 마구 들리네요.
그러나 실제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담는 방송도 있긴 하잖아요. 지금은 사라진 <다큐 3일> 같은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도 따지면 섭외를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히 담은 걸 초상권 허락받고 찍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리얼 빙자 예능이 많아져서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인지 알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밝히면 좋지만 밝히지 않죠. 그냥 리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다 연출이야 식으로 만드는 것 같네요. 우연과 연출은 크게 다릅니다. 우연은 다큐이고 연출은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나 드라마입니다. 즉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죠. 그러나 한국 예능은 논픽션 빙자 픽션이 많네요.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논픽션이기 때문입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주는 재미는 어떤 것으로도 대처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구 예능 프로그램은 안 봅니다. 어차피 경기 결과가 다 나온 걸 재편집해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물론 경기 결과는 방송 전에는 모른다고 해도 현장성이 떨어지는 스포츠 예능은 예능이지 스포츠가 아니라서 안 봅니다.
2. 형 동생하는 연예인들 친목 도모의 장으로 변질된 예능 프로그램
예전에 한 연예인이 그러더라고요. 방송은 시청자라는 대중을 향해서 보여주기에 아무리 친하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따지지 않고 모두 호칭을 ~~ 씨라고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맞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능을 보면서 모두 친분, 선후배를 떠나서 공적인 방송에서는 ~~ 씨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부터 가끔 형, 동생, 친구, 선배 같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호칭을 방송에서 하는 모습이 가끔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 씨라고 부르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그냥 대놓고 형 동생하는 모습이 너무 진해졌네요. 보면서 그냥 자기들끼리 수다 떠는 걸 내가 왜 봐야 하지?라는 현타에 예능 방송을 끊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소비한 수 많은 시간 중에 가장 허망한 시간이 연예인들끼리 하는 수다를 경청한 그 시간들이었습니다. 친목 도모의 도구가 예능은 아니잖아요. 사회자와 게스트의 친분은 친분이지 그걸 사적인 장소에서 떠드는 걸 그대로 담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연예인 사생활에 엿보는 것도 악취미 느낌이 들다
연예인 사생활 관찰 예능이 아직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우고 혼자 살고 이혼해서 돌싱이 되어도 예능은 연예인들의 모든 것을 관찰 예능으로 만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이혼한 연예인 또는 유명인의 관찰 예능입니다. 아니 이제는 쳐다볼 것이 없어서 이혼하고 혼자 사는 걸 담는 것까지 봐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이런 사생활까지 예능으로 소비해야 하는 저 연예인 또는 유명인의 삶도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관찰 예능의 핵심 키워드는 관음입니다. 남 사는 것을 쳐다보는 예능이 넘친다고 하지만 내 삶도 바쁘고 복잡하는데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훈수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 봅니다. 정작 연예인들은 날 모르고 나에게 관심도 없는데요. 이런 거 보는 시간에 내가 관심 있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한국 예능 방송 안 본 지 꽤 되었네요.
그렇다고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안 보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무한도전 클립을 유튜브에서 넋 놓고 볼 때가 많습니다. <무한도전>은 연출과 리얼을 봐도 알 수 있게 잘 만들었고 리얼 빙자가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가장 만들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죠.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연출이고 연기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고 수많은 우연 속에서 웃음을 집어내는 방송국 장인들이 참 많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능은 웃을 일 없는 요즘 세상에 단비 같은 미소와 웃음을 제공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은 리얼 빙자 연출도 많고 연예인들 친목도모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관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까 하고 안 보게 되네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예능 볼 시간에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고 있는 시간을 늘렸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