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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꺄악!!
조용필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슈퍼스타였습니다. 정말 독보적이다 할 정도로 슈퍼스타였죠.
조용필이 한국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한국가요를 진일보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이영훈씨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문세의 노래로 잘 알려진.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지나가면, 굿바이,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붉은 노을을 작곡한 작곡가이죠. 작사도 다 이영훈씨가 했습니다
이문세는 라디오DJ로는 유명했지만 이렇다할 히트곡이 많지가 않은 가수였습니다. 그런 이문세가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되게 해준것은 이영훈씨를 만나서부터였죠. 이영훈씨와 함께 만든 이문세3집은 조용필에 열광하던 소녀들을 이문세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문세4집을 먼저 듣고 이문세3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문세씨가 TV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나오지를 않으니 소녀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히트를 쳐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중3 겨울방학때 이문세4집을 알게되고 그의 음악의 주옥같음에 연일 별밤을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죠.
이영훈씨의 노래는 세련됨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클래식적인 선율과 서정적인 노래가사는 한편의 시와 같았죠
거기에 보이스매력이 별로 없을것 같은 이문세의 새로운 보이스적인 찰진 매력이 잘 묻어나오고요. 이문세 4집은 28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판매량을 기록합니다. 저희집에도 있었고 이문세4집이 없었던 집이 없었을 정도로 정말 많이 팔렸죠
김건모 3집이 330만장으로 단일 앨범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CD와 LP TAPE등이 다 판매되던 시절이라서 CD가 없었던 87년에 발매한 이문세4집을 개인적으로는 1위로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을 폄하하는것은 아니구요.
가수영향력 사회적 반향등 종합적으로 보면 이문세4집이 국내 앨범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3집과 4집 연이은 대히트로 킹프로더션은 킹레코드라는 레코드공장을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붉은노을이 있는 5집을 내죠.
5집앨범은 4집앨범보다 5백원이나 비싸서 욕좀 먹었어요. 인기있어졌다고 앨범가격을 5백원이나 올리고 당시 5백원은 큰돈이었거든요. 그리고 노래도 4집에 비해서 별로였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붉은놀을등이 대표곡으로 나왔구 시를 위한시도 있었죠.
그러나 5집이 못났다고 하기보단 4집이 워낙 대박을 터트리고 4집수준을 요구했던 팬을에게 5집은 그 욕구에 미달된 앨범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서서히 이문세는 인기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문세, 이영훈은 계속 앨범작업을 하다가 예전같이 않은 인기와 매너리즘에 푹 빠져서 대중들에게 잊혀져 갑니다.
그리고 이영훈씨의 대장암 말기소식을 듣게 되었죠. 우리가 잊고 살았던 내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작곡가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 한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그리고 이문세씨의 눈물속에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영훈씨가 몇년전에 라디오에 나와서 이야기하는것을 정말 우연히 들었는데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번 똑같은 멜로디만 나와서 대중들이 외면한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몇일전에 정동길에서 이영훈씨 노래 광화문연가 노래 제막비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연가는 이문세5집에 있던 곡인데요.
당시 들을때만해도 가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동길이 어딘지도 몰랐구요. 그러나 이제는 자주 걷는 거리가 되었죠.
광화문연가 가사에 보면 정동길과 조그만 교회당이 나옵니다. 그 교회당은 바로 정동교회인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세월은 흘러서 사람은 변해가고 사라지지만 교회당은 사라지지 않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정동길은 참 아담하고 소박하고
다소곳하고 정갈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리입니다. 정동교회와 정동극장, 이화여고가 있고 러시아 공사관과 예원학원과 정동시네마, 캐나다대사관 그리고 그앞의 나이많은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곳을 추억에 젖어서 걸어 봤습니다. 작곡가 이영훈씨가 수없이 걸었을 그 길을 광화문연가를 MP3에 다운받아서 귀에 걸치고
음미하면서 걸어 봤습니다. 이영훈씨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보석같은 노래는 여러 사람의 입에서 구전될것 입니다.
조용필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슈퍼스타였습니다. 정말 독보적이다 할 정도로 슈퍼스타였죠.
조용필이 한국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한국가요를 진일보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이영훈씨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문세의 노래로 잘 알려진.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지나가면, 굿바이,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붉은 노을을 작곡한 작곡가이죠. 작사도 다 이영훈씨가 했습니다
이문세는 라디오DJ로는 유명했지만 이렇다할 히트곡이 많지가 않은 가수였습니다. 그런 이문세가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되게 해준것은 이영훈씨를 만나서부터였죠. 이영훈씨와 함께 만든 이문세3집은 조용필에 열광하던 소녀들을 이문세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문세4집을 먼저 듣고 이문세3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문세씨가 TV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나오지를 않으니 소녀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히트를 쳐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중3 겨울방학때 이문세4집을 알게되고 그의 음악의 주옥같음에 연일 별밤을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죠.
이영훈씨의 노래는 세련됨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클래식적인 선율과 서정적인 노래가사는 한편의 시와 같았죠
거기에 보이스매력이 별로 없을것 같은 이문세의 새로운 보이스적인 찰진 매력이 잘 묻어나오고요. 이문세 4집은 28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판매량을 기록합니다. 저희집에도 있었고 이문세4집이 없었던 집이 없었을 정도로 정말 많이 팔렸죠
김건모 3집이 330만장으로 단일 앨범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CD와 LP TAPE등이 다 판매되던 시절이라서 CD가 없었던 87년에 발매한 이문세4집을 개인적으로는 1위로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을 폄하하는것은 아니구요.
가수영향력 사회적 반향등 종합적으로 보면 이문세4집이 국내 앨범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3집과 4집 연이은 대히트로 킹프로더션은 킹레코드라는 레코드공장을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붉은노을이 있는 5집을 내죠.
5집앨범은 4집앨범보다 5백원이나 비싸서 욕좀 먹었어요. 인기있어졌다고 앨범가격을 5백원이나 올리고 당시 5백원은 큰돈이었거든요. 그리고 노래도 4집에 비해서 별로였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붉은놀을등이 대표곡으로 나왔구 시를 위한시도 있었죠.
그러나 5집이 못났다고 하기보단 4집이 워낙 대박을 터트리고 4집수준을 요구했던 팬을에게 5집은 그 욕구에 미달된 앨범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서서히 이문세는 인기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문세, 이영훈은 계속 앨범작업을 하다가 예전같이 않은 인기와 매너리즘에 푹 빠져서 대중들에게 잊혀져 갑니다.
그리고 이영훈씨의 대장암 말기소식을 듣게 되었죠. 우리가 잊고 살았던 내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작곡가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 한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그리고 이문세씨의 눈물속에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영훈씨가 몇년전에 라디오에 나와서 이야기하는것을 정말 우연히 들었는데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번 똑같은 멜로디만 나와서 대중들이 외면한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몇일전에 정동길에서 이영훈씨 노래 광화문연가 노래 제막비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연가는 이문세5집에 있던 곡인데요.
당시 들을때만해도 가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동길이 어딘지도 몰랐구요. 그러나 이제는 자주 걷는 거리가 되었죠.
광화문연가 가사에 보면 정동길과 조그만 교회당이 나옵니다. 그 교회당은 바로 정동교회인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세월은 흘러서 사람은 변해가고 사라지지만 교회당은 사라지지 않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정동길은 참 아담하고 소박하고
다소곳하고 정갈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리입니다. 정동교회와 정동극장, 이화여고가 있고 러시아 공사관과 예원학원과 정동시네마, 캐나다대사관 그리고 그앞의 나이많은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곳을 추억에 젖어서 걸어 봤습니다. 작곡가 이영훈씨가 수없이 걸었을 그 길을 광화문연가를 MP3에 다운받아서 귀에 걸치고
음미하면서 걸어 봤습니다. 이영훈씨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보석같은 노래는 여러 사람의 입에서 구전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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