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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는 것을 삶의 여러개의 낙(樂)중에 하나로 삼고 있는 저로써는 옛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곳을 즐겨 찾아가 카메라로 담아 옵니다. 그래서 남산 한옥마을과 서울안의 4대 고궁등을 수시로 돌아 다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아쉬움을 되씹어 보면 그 곳은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박제된 건물만 가득한 박물관 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자연사 박물관은 싫더군요. 박제해 놓은 동물들이 초점도 생기도 없이 억지포즈를 서고 있는 모습에서 그냥 눈길을 돌려 버립니다. 고궁에서 산들바람에 취해 멍하니 풍경의 색의 흐름을 감상하다가도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고 객들만 들락거리는 모습에서 드라마 궁을 잠깐 떠 올려 봅니다. 드라마 궁이 좋았던것은 버려진 궁에 사람을 산다는 발칙한 상상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다 한장의 사진을 봤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테마파크가 아닌 주민이 실제로 사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저런 곳에 사람이 살어? 설마.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그리고 이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순천역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순천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도착한 낙안읍성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긴 여행이 될듯 하네요.
성의 반은 행정관리들이 사는 곳이고 그 반은 초가집들이 대부분 입니다. 이 낙안읍성이 특이한것은 이 성안에 양반들이 사는 집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권력이 있는 행정관리들과 양반집이 가까우면 부패의 고리가 생성된다고 생각하여 양반들은 성 밖에 나가 살도록 했습니다. 후손인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네요.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이런 모습을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네요.
양반들은 전쟁이나 왜구가 쳐들어 왔을때만 성 안으로 피신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낙안읍성안의 기왓집은 조선의 행정관리들이 사는 관사가 대부분입니다.
조상님들의 혜안에 한참 생각하게 하더군요. 우린 왜 이런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왜 권력과 재벌들은 왜 그리 궁합이 잘맞을까
못한 후손들 입니다.
낙안읍성은 고려말 왜구들의 잦은 침입으로 인하여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성입니다. 성이자 하나의 마을이었죠.
조선시대만 해도 낙안읍성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다음스카이뷰로 보니 지금은 논들이 들어섰네요.
처음에는 토성으로 지어졌으나 조선초기에 돌로 다시 쌓기 시작합니다.
낙안읍성은 여러 영화촬영장소로도 각광을 받았는데요. 아름다운시절,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춘향전, 태백산맥, 대장금등이
여기서 촬영되었구 가장 최근에는 디워가 낙안읍성에서 촬영했습니다. 조선시대 장면이 이곳 낙안읍성에서 찍은듯 하네요.
그 돌담을 허물고 진격하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오후 3시 10분 선암사를 들렸다 산을 구비구비넘어 순천시의 순천시티투어버스는 낙안읍성에 도착했습니다.
순천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낙안읍성이었는데 주어진 시간은 약 50분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하루에 순천시 명소 4곳을 들릴려다 보니 빠듯한 일정이죠. 먼저 짧게 들려보고 맘에 들면 나중에 민박을 해서 1박2일로 낙안읍성 구석구석을 찾아 봐야 겠습니다.
낙안읍성에 들어 설려고 하니 먹구름속 살짝 벌어진 입으로 빛이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낙안읍성은 아픔이 많은 곳인데요. 임진왜란때는 조선수군의 학 핵심적인 곳이었고 정유재란때는 왜놈들에게 이곳을 뺏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오봉산에서 왜군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네요. 그 왜군들의 귀신이 이 낙안읍성에 들어와 해꼬지 할까봐
석구를 만들었습니다. 개가 귀신을 잘 보잖아요. 개가 그런데 많이 망가졌죠. 사람들이 한번씩 쓰다듬어 줘서 그러는데
저 석구를 쓰다듬어 주면 복이 온다고 하네요.
성의 높이는 무척 낮습니다. 어른 3명크기 정도인데요 한 8미터에서 10미터 정도 되어 보입니다.
이곳은 동문인데요. 저 끝에 불뚝 튀어나온 성벽이 보이실 것입니다. 저걸 치성이라고 합니다.
적들이 성벽을 기어 오를려고 하면 저 치성에서 화살 같은 것을 쏴서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전망대 역활도 했겠는데요.
이 치성은 원래 12개를 계획했으나 4개만 만들어졌습니다.
드디어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초가집이 보입니다. 입구에는 기념품들과 주전부리들을 파는 곳들이 많더군요.
들어오자 마자 좀 실망했어요. 설마 이런식으로 음식점이 전부인가 하구요. 하지만 입구에만 음식점과 매점같은곳이 있는 것 입니다. 시간이 좀 있었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서 천천히 마을을 둘러 봤을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보지못하게 폐쇄적인 콘크리트 담들과 달리 돌담은 높게 쌓기가 힘듭니다. 공고롭게도 그 높이가 사람 어께 높이 정도가 되네요.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마당너머를 들여다 볼수 있습니다. 담너머를 들여다 보다 주인과 눈길이 마주쳐도 눈인사 정도 해주는
정겨움 이게 우리네 과거의 삶이였습니다. 내것 니것의 경계가 확실해진 현대사회. 편리함은 극대화 되었지만 마음의 삭막함도 극대화 되어 버렸습니다.
고궁에 가면 태극문양이 있는 이런 문들 많이 보죠. 이 문이 지금 기억나지 않는데 왕이 지나간 곳은 이런 문을 세웠다고 하네요.
씨름장이네요. 명절때 이곳에서 행사가 있을듯 하네요. 그러고 보니 곧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네요
마네킹을 흔들고 만지면 곤장을 매우 맞습니다.
무료체험장을 잘 찾아서 듣고 보고 배우면 즐거운 시간이 될듯 합니다. 전통가옥 체험장에 들어가 봤습니다.
어 저 녹색 전화기, 80년대 초에 봤던건데요. 오랜만에 보네요. 이곳은 주민들이 사는 집이면서 가게이기도 합니다.
초가집처럼 호롱불키고 사는것은 아닐까 처음에 생각했지만 전기가 다 들어 오더군요. 전봇대가 안보이는데 지중화 처리 했나 봅니다.
이 서쪽 성곽은 언덕위에 있어서 다른곳 보다 높습니다. 삿갓을 쓴 도인들이 수명이 서 있는듯한 초가집의 누런 지붕이 조선시대에 온 착각까지 느끼게 합니다. 성곽안에도 초가집이 있지만 성곽밖에도 여러채의 초가집이 보입니다.
몇가지 체험도 곁들이면서요.
이곳 주민들중에는 예술가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서 별빛을 보고 산다면 누구나 다 시인이 될듯 합니다.
묻어 나옵니다.
짧은 50분이 지나고 목화가 보였습니다. 이 목화로 솜이불과 겨울옷을 해 입었을 조선시대 사람들을 잠깐 떠 올려 봤습니다.
예전엔 정말 춥기도 엄청 추웠어요. 요즘같이 겨울같지 않은 겨울이 아니였죠.
낙안읍성에서의 짧은 시간이 여행을 갔다온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각나네요
검색엔진에서 낙안읍성 검색해서 다른 분들의 낙안읍성 기행문을 일고 있는데 제가 못본것들도 많네요. 나중에 기되면 저곳에서 1박을 하면서 남도의 정취와 초가집이 가득한 민속마을의 싱그러운 정겨움을 느끼고 와야 겠습니다.
http://www.nagan.or.kr/ 에서 낙안읍성 모든 정보를 찾아 볼수 있습니다
얼마전 청계천을 지나다가 커다란 플랜카드를 봤습니다. 한국관광공사건물에 걸려 있던 플랜카드를 봤더니
2월 19일부터 22일까지 코렉스에서 내나라여행박람회를 한다고 합니다. 작년에 국내여행을 몇군데 해보고 나서
느낀것은 2009년에는 바쁘다는 핑계 말끔이 치워버리고 계절마다 여행을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여행도 좋긴 하지만 경제도 어렵고 지방은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사는 곳도 있고 해서 일부러라도 국내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박람회에 가서 국내여행중 추천할 만한곳이 있나 찾아보고 여행정보도 얻어와야 겠네요
국내에서도 찾아보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참 많은 듯 합니다.
작년 초겨울에 갔던 순천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이었습니다.
작은 나라지만 산이 많아서 각 지역마다 지역색이 있는 나라. 그 지난 여행을 생각해보면 제 삶의 하나의 충전제가 되었습니다.
삶의 활력이 떨어질때 또 다른 여행을 통해 재충전을 해야 겠습니다.
여행은 계획세우고 이렇게 기행문을 씀으로써 마무리 되는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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