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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내가 기억하는 1988년 88올림픽의 추억 10가지

by 썬도그 2008.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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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0년이 지났네요. 88올림픽이 개최된지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국민들 참 많을듯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에 88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그 추억의 올림픽을 다시 추억해 봅니다.


1.  한국을 세계에 알린 88올림픽

88올림픽은 한국 경제성장및 한국이란 나라의 성장에 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88년도 한국의 위치란  세계에서 보잘것 없었습니다.  88년도 올림픽이 서울이란 한국의 도시에서 열린다는 소리에
전세계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며 서울이 어디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한국이란  미국에 휴가철에 타고가서 휴가지에서 버리고 온다는  저가의 차량을 만드는 나라,
미국시장의 저가의 제품을 만드는 나라, 신발공장이 많은 나라  싸구려 옷을 만드는 나라였습니다. 지금의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88년도에는 한국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이란 곳이 지구본의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게 해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듣보잡에서  인지도가 있는 나라로 탈바꿈했죠.  88올림픽은 전두환대통령의 업적중 하나로 추앙되고 있지만
사실 유치배경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좋은 모습만 있었던것은 아닙니다.
광주의 피를 밟고 일어선 군사정권이란 오명을 씯기 위해  측근들의 귓뜸을 듣고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국력을 총동원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88올림픽을 개최한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였습니다. 바덴바덴에서 쎄울~~이라고 사마란치 ICO의장이 외치게 한것은  바로  한국이 아디다스사장을 포섭한 결과였지요.   아디다스 사장의 파워가 막강했던 그시절  아디다스사장은 한국을 지원하는 대신  방송중계권을 아디다스가 가져가는것로 딜을 하고  따냅니다.  과정이 어쨌건  88올림픽은  우리나라 성장의 큰 견인차를 한것은 사실입니다.


2.  고등학생들이 동원된 매스게임

집근처에 있는 미림여고에 가면 아직도  88올림픽 심벌이 걸려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서울의 큰 여고나 여상들은 86년 아시아게임과 88올림픽 매스게임에 여고생들이 대규모로 동원됩니다.
수업시간을 쪼개서 학교운동장에서 수개월이상을  매스게임 연습에 연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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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국영상역사관 (http://film.ktv.go.kr/)

이런 컴퓨터로 재단한듯한 픽셀아트가 가능했던것은 매스게임에 참가한 고등학생의 노력이 컸습니다.
 저도 기억나네요.  저 오륜기중  노란색이 찌그려졌어~~ 하면서 가슴조리면서 봤어요. 어린 저에게
찌그러지고 어정쩡한 매스게임을 보면서  저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전세계인이 보는데~~~ 하면서 보던
기억이 나네요. 그 만큼 전국민이 똘똘 뭉쳤습니다. 지금 이렇게 하라고 하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겠죠 ^^


3. 소매치기들도  올림픽기간에는 소매치기를 하지 말자고 했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인천의 소매치기단들이  올림픽기간에 외국인들및 내국인들에게 소매치기를 하지말자는
결의를 했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올림픽 기간에 범죄도 거의 없었고  무사하게 치루어졌던것은
온국민의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 그 많던 대학생들의 시위도 이 기간동안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의 중국정부처럼  성화봉송로길에 지저분한게 있다면서  상계동의 판자촌을 공권력으로 부서버립니다.  하지만 어느 국민이 그런 모습에 반기를 들지 않았고 일부 대학생들만 항의를 했었죠.


4.  88올림픽대로, 88고속도로, 담배 88, 88전차

88이 난무했습니다. 올해 중국이 2008년 8월 8일 8시 8분에 개회식을 시작한다는 8이란 숫자에 대한 히스테리적
집착을 보이는데 88올림픽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속도로 이름은 지역과 상관없이 88고속도로였고
강변북로라는 한강을 끼고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반대쪽이 강변남로가 아닌 88올림픽대로로 이름지어집니다.
그 대로 끝에 잠실 주경기장이 있기 떄문이죠. 담배는 88이 최고였습니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솔담배를 제치고 아버지 담배심부름에 88이란 단어가 제 귀에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방에서는 88전차가 나왔습니다. 그냥 다 88이었습니다. 지금도 88이란 숫자를 보면 올림픽이 떠오릅니다.


5. 강남공화국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88올림픽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강남은 논이였습니다. 그런데  82년도인가  바덴바덴에서 쎄울~~을 외치더니  올림픽을 치루어야할 경기장을 지을곳을 찾아보니 잠실이 딱좋았습니다. 88올림픽 주경기장은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닌
이미 만들려고 진행중이였는데 올림픽개최를 함과 동시에 주경기장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잠실체조경기장,잠실수영장,그리고 선수촌아파트. 이 선수촌아파트는  기존에 보기힘든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난뒤 고가에 팔립니다. 강남공화국이 시작되는 시금석은 아니지만 기폭제를 만든게
88올림픽이었습니다. 그 당시 강남을 가서 놀란게 몇년사이에 엄청난게 올라간 빌딩에 놀랐구   다른 지역에서 보기힘든 바둑판같은 도로에 놀랐습니다. 이러니 땅값이 안오를수가 없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 곳곳에 산이 많고 도로가 산을끼고 만들어진데 반해  강남은 산이 없는 넓은 평지에서 건물올리기도 쉬웠고
사람살기에도 편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서울은 강남이란 지역에 흡수되는듯한 모습입니다.
세상은 강남만을 말하면 강남은 어쩄는데 강남땅값이 어쩌고 저쩌고 강남트린드가 어쩌고 저쩌고 하루에도
강남이라는 단어를 TV에서 듣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강남은 졸부들의 지역이 됩니다.
피땀흘려서 버는 월급보다 가만히 있어도 1년연봉의 수배를 벌어다주는 부동산가격의 상승,  강남아줌마들을
만들어 내는 부작용도 만들어 냅니다.  강남은 분명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계획된 신도시였지만 지금의 강남은
서울시에 내야하는 세금이 아까워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비판을 했나요?  하지만 그게 현실인듯 합니다.  강남부자들 대부분이 땅부자였으니까요.


6.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올림픽 기간은 초가을이었습니다.1988년 9월 17일~10월 2일이었는데 한국의 가을하늘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기적같았습니다. 하늘이 비한방울 내리지 않고 경기하기에 최고로 좋은 날씨를 연일 선보였습니다.
캐스터들은 하늘이 우릴 돕고 인다면서 한민족의 위대함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번 비가 내립니다.
폐막식을 앞둔  저녁에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아침에 언제 비가왔냐는듯 태양이 반짝였습니다.
지금도 그 88올림픽때의 날씨는 기억이 남네요.  유럽인들은 이런 좋은 날씨에 반해서 웃통을 벗고 경기 관람을 했는데 그 당시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뭐 지금도 그렇지만)한국사람눈에는 남세스러운 풍경이었고  캐스터가 질타하는 모습도 약간 보이더군요.  그게 전 문화의 차이인줄 첨 알았습니다.


7. NBC방송의 한국비하방송 그리고  반미의 움직임이 보이다.


반미운동이 온국민에게 퍼진 것이  88올림픽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반미구호는 대학생 형들이나 외치는
구호인줄 알았는데  전국민이 반미를 외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NBC로 기억되는데 미국 방송국직원들이
한국을 비하는 문구가 적힌 옷을 동대문시장에서 주문했다가 들통이 나고 한국을 비하하고 편파보도를 해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 섭니다.


8.   육상 100미터 신기록 9,79 벤존슨이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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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이었죠. 캐나다의 벤존슨과  미국의 칼루이스의 대결 88올림픽 최고의 승부였습니다.
땅~~~질풍같은 발걸음이 시작되었고 벤존슨이  세계 최고 신기록인 9,79으로 승리합니다.
저 위의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벤존슨입니다. 하지만  약물복용으로 실격처리 당합니다.
칼루이스를 싫어했던 저로써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칼루이스는 88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됩니다.



9. 냉전시대의 종말을 미리 보여준 88올림픽


80년모스코바 올림픽을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소련이 했다는 이유로 불참합니다. 재미있는게 지금은 미국이 침공했습니다. 84년 LA올림픽은  미국의 그런 보이콧행동을 고대로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앙갚음을 해줍니다.
그리고 88년 두 냉전국가는 모두 참가합니다. 다만 북한이 참가하지 않습니다.
88올림픽이 성공했던 이유중에 하나는 두 냉전의 우두머리 국가를 모두 불러 모았다는것에 있습니다.
이 88올림픽이 있고  소련은  페레스토로이카를 외치면서 개방의 길을 걷고  소련은 붕괴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해는 곧 우리도 통일을 할수 있겠구나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아 져버렸네요
도로 나미아부타불~~~ 입니다.  전세계에 화해무드를 마련해 놓고 정작 한민족은 여전히 으르렁 거립니다.



10. 금금금  역대 최고 성적인 세계4위를 하다

놀랐습니다. 주최국이란 잇점이 있고 선전할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4위를 하다니요. 뭐 그중에는 부끄러운 금메달도 있었지만  정말 감동적인 금메달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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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탁구에서의 금메달은 전국을 기쁨의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영남 레슬링(74kg급G)
1988년 대한민국(서울) 한명우 레슬링(82kg급G)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재엽 유도(60kg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경근 유도(65kg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손미나 여자핸드볼(총15명)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영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송지현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명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춘례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현미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기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기미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미영
1988년 대한민국(서울) 성경화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경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석민희
1988년 대한민국(서울) 임미경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현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한현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수녕 양궁(여자개인)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성수 양궁(남자단체)
1988년 대한민국(서울) 전인수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한섭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수녕 양궁(여자단체)
1988년 대한민국(서울) 왕희경
1988년 대한민국(서울) 윤영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양영자 탁구(여자복식)
1988년 대한민국(서울) 현정화
1988년 대한민국(서울) 유남규 탁구(남자단식)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광선 복싱(플라이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시헌 복싱(라이트급)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랑스러운 이름들입니다.


88올림픽은 우리에게 무었이었을까요?  한국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린 기회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강남공화국을 만든 기폭제가 되었을까요?  우리도 선진국이 될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을까요?
우물안 개구리의 시선을 세계로 향하게 했을까요?

그 의문의 답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이제 우리와 너무나 닮아보이는 나라가 올림픽을 치룰것입니다.
우리보다 20년늦게 도착한 중국이라는 나라. 그 올림픽을 통해 우리와 같이 긍정적인 요소가 될지 아니면
실패해서 자책감이 들게 할지는 지켜봐야 할것입니다.

가끔은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서울,서울,서울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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