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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개관 그리고 이걸 왜 지었을까?

by 썬도그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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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4대 고궁이 무료 개방 합니다. 사람들이 정말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덕수궁 및 덕수궁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미국 대사관저와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데 저 서양식 건물이 보이네요. 저 건물 코로나 때 봤는데 언제 완공되나 했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렇게 지나가려고 하는데 사람이 보입니다. 응? 개방을 했나보네. 발길을 다시 덕수궁으로 향했습니다. 덕수궁 갔다가 석조전 뒤쪽은 안 봐서 몰랐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왔던 길로 돌아갈까 하다가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영국대서관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는 수년 전에 영국대서관저와 수많은 설득으로 개방을 한 덕수궁 돌담길입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평상시에는 이렇게 거대한 볼라드가 서 있어서 차량은 못지다닙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오른쪽 쪽문으로 들어가면 덕수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팬스가 있는데 펜스를 넘지 못하게 사람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으로 지어진 돈덕전 영빈관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렇게 돌아돌아서 들어왔네요. 마치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 같습니다. 2층짜리 석조 건물인 돈덕전은 고종 시절에 만든 영빈관입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2층짜리 석조 건물로 구한말 프랑스 석조 건물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어진 영빈관입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건물이 어마어마하게 잘 지어졌네요. 건축비가 200억이나 들었다고 하니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은 즉위 40주년 기념해서 칭경예식이라는 서양식 연회를 위해서 신축간 건물이 돈덕전입니다. 연회를 통해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아울러 중립국가 요청을 할 계획이었다고 하죠. 그러나 콜레라 발병과 러일 전쟁의 시작으로 실패합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바로 앞에는 석조전이 있습니다. 저 석조전도 외국 자본이 아닌 가난한 조선 왕가의 돈으로 무리하게 지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물론 고종이 서구 열강 속에서 나름 버티려고 노력한 건 아닙니다만 고종이라는 임금이 훌륭하고 유능한 임금이 아니었음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돈덕전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해보죠.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1층과 2층에는 거대한 빔프로젝트로 영상쇼를 벽면에 하고 있네요. 이게 복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돈덕전은 복원이 아닌 그냥 재건이네요. 복원은 옛것 그대로 지어야 하는데 옛 자료가 없다고 그냥 대충 재건을 해놓았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1903년 계획된 동서양 대사관 대사와 가족을 모시고 잔치를 했었네요. 나라는 풍전등화인데 이런 행사를 했네요. 물론 어떻게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1903년 칭경예식을 하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됩니다. 한 마디로 아무 효과도 없었다는 겁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렇게 1905년 나라를 일본에 넘긴 후에 1907년 고종은 승하합니다. 일제가 독을 타서 죽였다는 소리가 많죠. 우리는 일본을 무척 싫어합니다만 그건 그때그때 다른가 봅니다. 최근 일본 맥주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대통령이 일본 편을 들어줘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하고 있잖아요. 

나라가 이랬다 저랬다 해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돈덕전은 복원을 시도한 흔적은 있습니다. 이렇게 바닥과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당시 사용했던 서양식 가구들이 있고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러나 이런 거대한 스크린이 있는 방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부산 EXPO 홍보 영상은 뜬금없습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냥 인스타그램 갬성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이지 역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이걸 왜 복원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경복궁 복원에 비하면 졸렬하기까지 하네요. 누구 집 개 이름이 200억 도 아니고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실제로 복도에는 줄을 서서 사진 찍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돈덕전 터를 볼 수 있는 투명 바닥도 있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드라마 촬영지로 수시로 빌려서 촬영하겠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2016년 부터 복원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네요. 2019년 공사를 시작해서 2023년 9월 말에 오픈을 했습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2층도 1층과 비슷합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조선 말기의 역사적 배경이 설명되어 있고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빔프로젝터 쇼그 가득하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진짜 옥새인지 모르겠지만 옥새도 있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행한 위대한 업적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격' 등이 대표적이죠. 당연히 고종 특히 이 돈덕전에 관한 슬픈 역사는 숨겨 놓았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2층에는 왜 있는지 모를 거대한 테이블과 책장이 있는데 공간 구성을 깊은 고민 없이 한 느낌도 드네요. 그냥 오래된 고가구 배치한 정도네요.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덕수궁 돌담길 옆에 있는 중명전을 보면 거긴 을사늑약 과정을 담은 마네킹과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가득한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네요. 왜냐하면 여기 돈덕전은 활용을 거의 안 했습니다. 1903년 완공한 후 2년 후에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강탈당하고 고종은 1907년 승하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순종이 황제로 즉위할 때 사용한 공간입니다. 이후 방치되다가 1933년 일제 당시에 사라집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를 공주로 안 고종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역사책을 들쳐 보다 보면 미국 공주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간이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두 달 전인 9월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여기 돈덕전에 머물게 됩니다. 미국은 공화국이라서 왕이 아닌 대통령이 지도자이고 가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고종은 미국 공주님이라고 극진히 모셨습니다. 

물론 그런 행동을 통해서 미국이 조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눈감아 주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습니다. 한 마디로 일제의 만행을 못 본 척 했죠. 이게 국제 정세입니다. 지금도 미국이 한국이 필요하니까 동맹이지 언제 또 국제 정세가 바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여러 장치를 걸어 놓아야 하죠. 

앨리스 공주 아니 앨리스는 고종을 '황제다운 존재감 없이 애처롭고 둔감했다'고 고종을 비웃었습니다. 
고종이 얼마나 둔감했는지는 프랑스와 미국이 인천과 평양 앞바다에 군함을 끌고 와서 개항을 하라고 요구했는데 이에 놀란 고종이 옆 나라인 일본에게 그쪽에도 서양 배들이 왔냐고 물었냐고 하잖아요. 이미 일본은 개항을 한 지기 20년이 넘었는데요. 이렇게 국제 정세도 모르던 임금이었습니다. 많은 드라마가 고종과 명성왕후를 미화하는데 실제 그 둘의 행동을 보면 잘한 행동보다는 못난 행동이 더 많았고 특히 명성왕후의 민 씨 외척 세력 때문에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고종의 영빈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

그런 돈덕전을 200억 들여서 복원도 아닌 재건했다? 누구 결정인지 당시의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정말 이런 곳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200억 원이 누구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요. 중명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에 실망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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