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른 이유는 2가지입니다. 파행을 겪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장건재 감독, 고아성 주연의 <한국이 싫어서>이 선정되었다는 것과 제목이 내 맘 같아서였습니다. 전 한국을 싫어합니다. 몇 번은 좋아한 적이 있지만 잠시 잠깐일 뿐 평균값은 한국이 싫습니다. 그렇다고 엄청 싫어하고 혐오하는 건 아니고 여러 가지로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고 불편한 구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가 느낀 한국 사회의 병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병폐가 발생하는 예를 들어 왕따 문제라든지 빈부격차로 인한 아이들의 대놓고 따돌리는 형태 등등 점점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최근 묻지마 살인과 칼부림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 나라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도심 밀집 지역 순찰 강화한다면서 말도 안되는 의경제 부활을 외쳤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는 국무총리와 전쟁이 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막말과 전쟁 준비만 하면서 야당과는 단 한마디의 말도 섞지 않으려는 대통령을 보면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그중에서도 한국의 최대 문제는 무한경쟁사회라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니가 노력을 안 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 모든 문제점을 경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에 넌더리가 납니다. 그래서 전 경쟁을 바탕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잘 안 봅니다. 승자독식 세상, 모든 것이 경쟁으로 내몰리는 세상, 제로썸 국가가 되는 한국이 너무 싫어서 이 책을 골랐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의 이야기
이 책은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계나가 주인공입니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중략) 내가 여기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한국이 싫어서 10~11페이지 일부 발췌>
책을 펼치면 아현동에 사는 계나가 호주로 가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화법으로 말하기에 이 주인공이 친구랑 수다 떠는 이야기인가 했네요. 마치 옆에 있는 친구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친근한 화법입니다. 이게 친근하긴 한데 과거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고 현재 이야기를 하는 등등 시제가 헛갈립니다. 이게 현재야 과거야 수시로 두 이야기가 섞이다 보니 읽는 것 자체는 술술 읽히지 않습니다.
그냥 시간 순으로 쭉 말해도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먼저 밀려오네요. 계나는 아현동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사는 20대입니다. 대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 지명을 두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납니다. 호주에서 경력을 쌓고 영주권을 따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명은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아버지는 교수입니다. 그런대로 잘 나가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죠. 군대까지 이어지던 사랑은 지명이 기자 입사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계나는 지명에게 이별을 고하고 호주로 떠납니다.
호주에서의 삶과 한국의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 <한국이 싫어서>
계나는 호주에서 여러 남자를 사귑니다. 재인도 있고 인도네시아 상류층 집안 남자도 만납니다. 여러 가지 호주 생활과 한국 생활을 보여주는데 이 내용이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평이합니다. 읽다가 내 친구들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가서 겪은 모험담 같은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듣던 것이 더 재미있다고 할 정도로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평이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돈 내고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죠. 색다른 시선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같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기들이 호주에서 사는 분들과 작가 자신의 경험과 여러 커뮤니티에서 영감이나 소재를 얻어서 쓴 글들이라서 그럴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건지 경험이 많이 쌓여서 그런 건지 이 이야기들이 한 번 이상 들어본 이야기들이고 직접 목격한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신선한 맛은 없네요. 또한 어떤 깊이기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20대 여자와 남자가 학교 커플로 만나서 결혼을 하려고 하니 남자 쪽 집안에서 반대하는 것과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살던 계나가 새새 24평 아파트로 이사 가려면 분담금 1억이 필요로 하는데 그걸 계나가 내려다가 계나가 크게 아파서 난 여기서 못살겠어 호주로 떠날거야라는 다소 무책임 또는 무대책적인 행동 등을 담고 있습니다.
가족은 그런 계나의 호주 떠나기에 뭐라고 하지 않지 않지만 섭섭했는지 언니와 동생에게만 여행비로 500만 원을 내놓는 등 가족에서의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서러움도 살짝 담고 있네요.
"사람은 가진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감히 말하지만 책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보다 말다 보다 말다 겨우 대충 다 읽고 덮었네요. 초반은 뭔가 있겠지 했는데 그냥 호주로 떠난 사람이 느낀 호주와 한국의 삶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의 얼마나 살벌한 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계나는 지나치게 사회비판적이지도 않고 지나치게 세상에 대해서 관심 없지 않은 평범한 20,30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게 이 책이 높은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공감대는 높을 수 있으나 전 참 재미없게 읽었네요.
그나마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계나가 두 번 호주로 떠나는데 한 번은 아현역에서 지옥철을 타고 강남까지 가는 그 험난한 하루하루에 지친 모습은 마치 제20대 후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매일 지옥철을 타고 다녀야 했던 것이 몸서리가 쳐지네요. 그래서 지금도 사람이 꽉 찬 지하철을 잘 못합니다. 그냥 30분만 기다리면 텅텅 빈 전철이 오는 걸 아기에 그냥 지하철 플랫폼에서 책 읽고 음악 들으면서 시간을 즐깁니다. 그렇게 첫 탈출을 한 계나는 여러 나라의 또래들을 말합니다.
텍사스에 온 모험심 자립심 강한 여자와 인도네시아의 상류층 남자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국가와 계층을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 지명을 만납니다. 지명은 입사에 성공해서 기자가 되고 집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냥 지명 부모들이 반대해도 지명은 계나를 사랑하고 계나고 오케이만 하면 집 있는 30대가 될 수 있고 집이 있다는 자체가 서울에서 살 수 있고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이 갖추어진 그래서 한국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게 된 후에도 계나는 호주로 다시 떠납니다. 계나가 다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개인의 삶을 위한다면 안 돌아올 것 같네요.
한국이 싫어서 깊이는 없지만 그냥 저냥 읽어볼 만한 책
이 책이 왜 재미없나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2015년에 나온 책이니 거의 10년 다 되어가네요. 그리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책을 2015년 당시에 읽었다면 공감대가 너무 높아서 맞아 맞아!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겠지만 이 소설 자체가 여러 경험담의 짜깁기 정도이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한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의 삶의 장점과 단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뒤늦게 텍스트로된 이 이야기를 들으니 각인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너무나도 흔하고 평이했습니다. 더 자극적으로 자세하고 진솔하고 재미있는 유튜브 채널을 보는 게 더 나으니까요. 이 <한국이 싫어서>가 좀 더 한국 사회의 병폐를 구조적으로 담고 좀 더 과감한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장강명 작가는 동아일보 출신의 소설가로 유명하죠. 최근에도 다양한 소설책 그것도 소재를 가리지 않고 쓰는 열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인가 라디오에서 들은 '현수동 빵집 삼국지'가 저에게는 더 좋네요. 그때 장강명 작가를 알았거든요. 이렇게 현실적인 소재를 찰지게 담는다고. 제 취향은 그 단편 소설이 더 좋더라고요 <산 자들>이라는 장강명 소설집에 들어가 있는 단편 소설 '현수동 빵집 삼국지'를 라디오가 아닌 책으로 다시 읽고 독후감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재미없다를 너무 남발했네요. 제가 이런 류의 콘텐츠를 많이 섭취하다 보니 제 기준이지 그냥저냥 읽어볼 만한 책 <한국이 싫어서>입니다. 특히 20,30대 분들에게는 좀 더 와닿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