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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일본 영화 모성 일본의 여성 인권만 떠오르게 하는 졸작

by 썬도그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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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화병이 날 것 같아서 보다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를 보게 만든 건 넷플릭스에 올라온 <미타라이 가, 불타다>라는 독특한 이야기의 드라마 주인공인 '나가노 메이' 때문입니다. <미타라이 가, 불타다>는 좀 보다가 말았는데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길어서 중간에 보다 말고 이 배우의 영화가 뜨길래 봤습니다. 영화는 짧잖아요. 

나가노 메이 때문에 본 일본 영화 <모성>  보다가 분노가 치밀다

일본 영화 모성

오른쪽 배우가 '나가노 메이'입니다. 맑은 눈의 미녀입니다. 눈이 너무 맑아서 눈길이 떠나지 않게 하네요. 이 배우의 얼굴이 떠 있길래 눌러봤습니다. 일본 영화 <모성>은 2022년 일본에서 개봉한 후 한국에 수입 소개가 안 되었던 영화인데 넷플릭스를 통해서 우회 개봉이 된 듯하네요. 이런 식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일본 영화들이 꽤 있어요. 한국에서는 투자한 영화마다 적자를 내서 철수한 워너브라더스가 일본은 여전히 영화에 투자를 하고 있나 봅니다. 워너브라더스 로고가 뜨네요.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학생이 자살을 한 장면이 나옵니다. 평소에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네요. 이에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야카(나가노 메이 분)이 남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동시에 사야카의 엄마인 루미코(토다 에리카 분)도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동시에 고백을 합니다. 

이야기도 엄마인 루미코와 딸인 사야카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이 이야기가 교차되는 건 아니고 엄마 먼저 쫙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딸의 기억으로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별거 없습니다. 오히려 보다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엄마인 루미코가 제정신이 아닌 듯 그려집니다. 

치사랑에 미친 엄마 

일본 영화 모성

80년대 루미코가 20대 시절 루미코는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문화센터에서 남편을 만나죠. 남편이 그린 장미 그림이 너무 어둡다고 핀잔을 줬는데 루미코의 어머니는 그림이 힘이 있다고 칭송을 합니다. 이에 루미코는 바로 태세 전환을 합니다. 루미코는 효심이 깊은 딸 같지만 미저리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아무리 딸이 엄마를 좋아하고 따른다고 해도 그렇지 정도가 있어야죠. 아니 엄마가 좋으면 다 좋은 건 그렇다고 쳐도 내가 좋은 건 뭡니까? 놀라운 건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엄마가 좋아한다니 결혼을 합니다. 친구가 시어머니가 까탈스럽다고 해도요. 

여기서부터 이 루미코에 대한 시선이 좋지 못합니다. 난 이런 캐릭터 너무 싫거든요. 요즘 영화 트랜드와 맞지 않고요. 이런 캐릭터는 저 80년대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는 억압받고 쓰러져도 일어나는 캔디 만화 시절이나 통했지. 요즘은 이런 캐릭터 답답해서 못 봅니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을 사용하나 했을 정도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여성 인권이 아직도 후진스러운 걸 보면 이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게 남편 보다는 엄마가 좋아해서 결혼한 듯한 루미코는 딸이 생깁니다. 당연히 엄마에게 먼저 말을 하죠. 그렇게 그럭저럭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지만 딸 사야카가 태어나자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지 딸을 아주 못되게 눈빛 레이저를 쏩니다. 아! 저런 엄마 밑에서 자란다면 제정신으로는 힘들겠다 할 정도로 이상한 엄마가 주인공이라니 보다 껐습니다. 도저히 보기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보다 말고 자려고 했는데 국회도서관 무료 전자책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소개되어 있네요. 응? 소설이 원작이야?

일본 영화 모성

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믿음직하지 못한 시대라고 해도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렸다면 뭔가 있겠지하고 또 봤습니다. 어린 사야카가 할머니가 선물해 준 자수에 기뻐하면서 다음에는 헬로 키티! 를 원한다고 하자 루미코가 쏘아봅니다. 그리고 타이르죠. 아니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고 딸에게 눈빛 레이저를 쏩니다.

에효. 진짜. 며칠 후에 비가 내리는 날 할머니, 엄마, 손녀가 함께 자던 중 번개가 쳐서 나무가 쓰러지고 그 나무로 인해 집에 불이납니다. 어린 딸과 함께 자고 있던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루미코가 방에 들어가려고 하니 루미코의 엄마는 자신이 아닌 손녀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죠. 이에 루미코는 딸은는 또 낳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소리를 합니다. 뭐 흔한 선택지를 담은 장면이죠. 

딸이냐 부모냐. 딸은 내리 사랑, 부모는 치사랑, 딸은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다시 낳을 수 없다. 그런데 딸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고 부모님은 살날이 많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부모님들은 자신보다 자식들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게 본능일 겁니다. 동물 세계에서는 모성은 본능임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반에 다시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엄마 루미코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사야카가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죽음을 말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미워하는 듯한 느낌. 사랑받으려고 부단히 엄마에게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고 한상 자신을 타박했던 모습. 엄마는 집이 불타고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댁에 살면서 눈칫밥을 먹고사는데 이게 사야카는 너무 싫었습니다. 모든 것을 따지고 드는 사야카. 어떻게 보면 성격 차이 같지만 세대 차이 같기도 합니다. 요즘 여자분들은 참고 참고 또 참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부당함을 말합니다. 

치사랑을 하는 사야카

일본 영화 모성

여간해서는 내리사랑이라는 본능을 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뉴스에서 친자식을 방치하고 PC방에 갔다거나 친구들과 술먹고 왔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본능을 이기는 대단한 인간들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러나 치사랑은 본능이 아닙니다. 효(孝)라는 개념은 인간만이 가진 개념이라고 할 정도로 동물은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지 않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부모에 대한 사랑이 발견되는 동물이 있지만 동물은 인간과 달리 다 크면 따로 삽니다. 따라서 효라는 개념이 생길 시간이 없다 보니 그런 개념도 없습니다.  

일본 영화 모성



영화 <모성>은 내리 사랑이 아닌 치사랑을 보여줍니다. 20대의 루미코는 부모의 사랑을 너무나도 목말라하고 기대합니다. 뭐 그럴 수 있는데 자신의 딸인 사야카가 할머니를 힘들게 하거나 기쁘게 해주지 못하면 그걸 타박합니다. 아니 뭔 이런 엄마가 다 있나 했네요. 웃긴 건 그런 사야카가 엄마의 사랑을 너무 갈구한다는 겁니다. 엄마는 루미코 때문에 자신의 엄마가 죽었다고 느끼는지 살갑지 않게 대하고요. 뭐 어린 사야카에게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기에 그럴 수 있죠. 아빠라는 인간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역할도 안 합니다. 그렇게 두 모녀의 이상한 관계가 이어지다가 사야카 고모 그러니까 아빠 동생의 가출로 폭발하게 되고 과거의 일이 드러납니다. 

후반에 뭐 대단한 반전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여성 인권 영화로까지 느껴지는 영화 <모성>

일본 영화 모성

시어머니의 꼬장꼬장한 말투와 남의 집 자식 대하듯 대하는 저 태도. 여적여라고 여자의 적은 여자입니다. 이렇게 고부 갈등이 있으면 남편이 중재를 서거나 서로 이해를 돕게 해야죠. 이 영화에서 진정한 빌런은 남편놈입니다.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안 합니다. 자기 여동생이 빚쟁이 남자 데리고 왔다고 반대만 할 줄 알죠. 그리고 사야카가 충격적인 일을 발견합니다.

스포지만 밝히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보실 분을 위해서 소개는 안 하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이 남편입니다. 거론하고 싶지도 않네요. 변명도 되지 않고요. 그리고 그걸 또 그냥 넘어가네요. 참 이런 걸 보면 일본에서 여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은 이혼하면 100일 동안은 여자는 결혼 못한다고 해요. 영화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전 일본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꽂히더라고요. 

영화는 메시지도 잘 정리해서 읇어줍니다. 
모성은 본능인가? 학습인가?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모성은 본능입니다. 부성도 있지만 모성이 강한 이유는 아이를 낳을 때의 그 고통의 기억과 호르몬이 평생 몸을 휘감습니다. 그 고통이 아이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죠. 이는 동물 세계에서도 자주 보이는 행동입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DNA에 녹여져 있습니다. 생명의 기준 중 하나가 자기 복제인데 그 본능을 따라야 합니다. 다만 인간은 남의 자식을 키우기도 하고 아기가 바꾸어도 키우면서 정이 들기도 하잖아요. 이는 학습된 모성도 분명 존재한다는 겁니다. 

루미코는 학습된 모성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보여준 내리사랑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이건 본능이 아닌 학습이라서 무조건적인 모성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야카를 딸로서 키우지만 학습된 모성이라서 그런지 사야카를 쏘아붙일 때가 많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까지 그려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영화는 연출도 각색도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평생을 루미코는 딸로서 살아왔고 엄마를 욕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집살이의 고통을 참고 참고 또 참습니다. 영혼없는 시집살이는 시어머니의 학대에 가까운 행동을 막지 못합니다. 그나마 딸에 대한 원망과 엄마에 대한 숭배를 놓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모습에 그나마 놓았던 정신줄이 돌아오네요. 참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먹히나? 할 정도로 올드하고 너저분하네요. 제가 남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수 없이 지켜본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 많네요. 어느 엄마가 치사랑으로 살아요. 전 주변이나 다른 이야기에서도 이런 사랑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독특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추천은 못하는 영화 <모성>이었습니다. 

40자 평 : 내리사랑 대신 비이성적인 치사랑을 택한 엄마에 대한 분노심만 차오르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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