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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젊은이의 양지는 천민자본주의에 말살되고 있는 청춘을 담은 수작

by 썬도그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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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보는 영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재미를 추구하는 마블 영화들이죠. 그러나 어떤 영화는 볼 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눈물도 나고 화도 나고 증오심도 커지고 우울해지지만 다 보고 나면 그 감정의 자양분 속에서 보다 나은 성숙한 감정이 나오게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이 장점이 나를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줍니다. 

감히 말하지만 제 영혼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영화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상을 비판하고 고발하고 현실을 담아서 너만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하는 영화들이죠. 그래서 전 이런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참 좋고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다음 소희>는 제가 우울한 기분에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상태에서 봐야 제대로 또는 내가 영화에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는 영혼의 면역체계로 방어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연히 고른 젊은이의 양지에 푹 빠지다

젊은이의 양지

<다음 소희>를 보려다가 우연히 <젊은이의 양지>라는 저예산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기에 봤습니다. 사실 이 배우 때문에 봤습니다. 김호정 배우. 이 중년 배우를 가끔 보는데 참 묘하게 아름다운 배웁니다. 신뢰감 있는 얼굴에 연기도 좋고 이 배우가 주연을 하기에 그냥 얼굴 구경하는 겸 틀어 놓았는데 이 영화 <다음 소희>와 소재가 너무 비슷하네요. 그런데 내용은 더 적나라하고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보다가 이렇게 과격하게 담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상하게 그 장면이 꼭 필요하고 과한 표현이지만 그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 보고 난 후에는 꽤 우울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영화를 이제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고 꽤 연출력이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2020년 개봉한 영화이고 관객은 1만도 안 든 5천명 정도밖에 안 들었지만 올해 본 영화 중 TOP 5에 올릴 정도로 너무나도 인상 깊게 봤네요. 

고시원에서 사는 고등학생이 신용카드 콜센터에서 근무하다

젊은이의 양지

영화가 시작되면 조각상들이 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왜 나오나 했는데 후반의 이야기를 암시하네요. 전자고등학교라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준(윤찬영 분)은 사진부에 가입해서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캐논 크롭 미러리스를 하나 사서 틈나는 대로 출사를 가고 있습니다. 참 귀여운 학생입니다. 

젊은이의 양지

준은 졸업을 앞두고 신용카드 고객센터에서 근무를 합니다. 정식 고용은 아니고 실습입니다. 실습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한국은 안 그러는 나라입니다. 실습은 좀 더 싼 가격에 고용하는 편법으로 사용하죠. 배 따개비를 따다가 죽은 고등학생, 제주도 생수업체에서 근무하다 죽은 고등학생, 전라도의 한 유명 통신사 콜센터에서 근무하다 심한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여고생. 

이 학생들의 특징은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라는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공고, 상고라고 했던 그 고등학교입니다. 특성화 고등학교면 그 특성에 맞는 직업을 가지면 좋은데 현실은 콜센터네요.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초반부터 훅 들어옵니다.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리를 오래 비우면 콜이 쌓이고 이는 감점이 되고 월급을 덜 받게 됩니다. 

준은 눈치를 보면서 화장실에서 기저기를 갑니다. 순간 이게 진짜야? 사실 들어보긴 했지만 좀 설정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준은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고시원 돈도 내야 해서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젊은이의 양지

휴게 시간에 출사를 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준을 본 콜센터 센터장인 세연(김호정 분)은 그런 준에게 자기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서 여기서 인생 실습한다고 생각하자고 다독입니다. 꽤 자상한 어른 같이 보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힘든 일이라고 해도 견딜만하죠. 그러나 사람이 무너지는 건 힘든 육체적 노동 때문이 아닙니다.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말과 행동, 자존감을 파괴하는 구조 때문이죠. 

젊은이의 양지

콜센터 근무가 그렇듯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를 너무 순박하게 받는 준을 보던 팀장은 머리를 치면서 여기 쓰여 있는 대로 압박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 신용카드 연체는 사람이 독촉한다고 압박한다고 크게 줄거나 늘지 않습니다. 항상 %가 있죠. 따라서 그걸 감안해서 높은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거나 카드론으로 빌려줍니다. 그래야 영영 받지 못하는 돈을 대신 메꿀 수 있으니까요. 리스크가 높은 만큼 이자가 높은 것이죠. 그러나 자본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합리적일까요? 마른 수건까지 짜게 만들죠. 

그렇게 채권추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준은 점점 일에 지켜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성공을 꿈꾸는 세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준을 갈아 넣다

젊은이의 양지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반대로 곳간이 비면 악이 피어납니다. 40~50대로 보이는 세연은 콜센터 센터장입니다. 센터장이라고 하지만 하청업체라서 언제 센터 전체가 폐쇄될지 모릅니다. 취준생 20대 딸과 사는 세연도 삶이 고단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온갖 눈칫밥과 서러움을 받고 올라왔습니다. 세연은 샛강 다리 너머 여의도 본사로 입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사람은 곳간이 넉넉하면 너그러운 표정을 넘어서 베풀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곳간이 비고 내쫓길 위기에 놓이면 본색이 드러나죠. 그래서 고통을 줘야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옵니다. 세연은 우리 주변의 흔한 어른으로 보이지만 계약직인 센터장 세연에게 실적에 대한 압박이 옵니다. 

젊은이의 양지

준은 직접 밀린 카드 값을 받으러 가겠다면서 센터장에서 보고하고 퇴근길에 카드 값을 받으러 거 갑니다. 이거 불법인데 불법인지도 모릅니다. 또 그걸 허락하는 세연. 세연은 시장을 보고 오다 상사를 만나서 단란주점에 들어갑니다. 비닐 봉다리에 담긴 낙지가 탈출을 하고 그걸 조롱하는 못난 남자 상사들. 그 수모를 다 견디고 집에 왔더니 준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20만 원 밖에 못 받았다는 말에 65만 원 다 받아 내라고 다그치죠. 잠시 후 준에게 또 전화가 왔는데 그 전화에서 준은 울먹이면서 아이만 혼자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놀란 세연은 택시를 타고 가봤더니 채무자인  엄마는 자살을 하고 아이는 울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나중에 준의 시전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보면서 헉~~ 소리가 나옵니다. 너무나도 잔혹한 장면을 그대로 담습니다. 장면 자체는 넷플릭스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지만 문제는 아이 때문입니다. 이자를 받으러 간 집에서 여자가 죽고 그 주검을 본 19살 준은 흐느끼면서 핸드폰도 끄고 잠적을 합니다. 

준으로 보터 온 세연을 위한 인생 실습

젊은이의 양지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영화 중반 미스터리로 전환합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데는 호기심을 유발하게 하는 미스터리 장치가 좋죠. 사라진 준은 며칠 째 연락이 없습니다. 세연은 걱정을 하지만 딱히 노력하지 않습니다. 흔한 가출이라고 생각하죠. 오히려 세연은 경찰이 조사차 사무실에 오자 세연과 준의 마지막 통화 기록을 삭제합니다. 세연은 팀장을 시켜서 이상한 통화 내역이 있는지 찾아보는 정도입니다. 이것도 자신의 안위를 챙기려는 생각이죠. 

어떻게 보면 세연은 참 모진 인간입니다. 이렇게 모진 이유는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도 있습니다. 세연에게는 20대 취준생 딸인 미래(정하담 분)가 있습니다. 영화는 미래와 준이라는 두 청춘 사이에 세연을 놓습니다. 세연은 남의 자식인 준에게는 닦달하고 다그치면서 자신의 딸이 콜센터에 다니겠다고 하자 절대 못 다니게 합니다. 남의 자식들은 고되고 힘든 일 시키면서 내 새끼는 그러면 안 된다는 대한민국의 흔한 내새끼리즘이 철학인 흔한 한국의 중년입니다. 

그렇게 준이 사라진 후 며칠이 지나자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하는데 콜을 받는 손가락이 되었다는 영상과 함께 준의 손을 뜬 석고가 도착합니다. 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센터장님이 인생 실습을 할 차례라고요. 

 천민자본주의를 담은 영화 <젊은이의 양지>

젊은이의 양지

잔혹한 세상을 만든 중노년들이 꼭 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똑똑히 목격했으면 합니다. 제가 기성세대가 아닐 때는 책임감이 덜 했지만 지금은 기성세대이다 보니 우리 세대가 만든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서 목격했으면 합니다.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미래라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인 준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아전인수 격으로 살고 있는지와 함께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하게 만드는 잔혹스러운 천민자본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적나라함이 서두에도 말했지만 잔혹스럽고 놀라울 수도 있고 과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과하가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다 보고 나면 그렇게 과하게 담아야 세상을 오롯하게 담고 이런 세상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됩니다. 

젊은이의 양지

사람이 돈만 쫓아서 살게 되면 자본이 낳은 괴물이 됩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야 하는데 요즘 한국이 돌아가는 걸 보면 괴물 양성소가 된 느낌입니다. 모든 것을 경쟁에서 승리하라고만 하고 네가 못난 것은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죠. 과연 그럴까요? 개인 때문일까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는 곳이 다르고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면 달라지는 개천에서 절대로 용이 나오지 않고 부모의 자산과 배경이 성공의 척도가 된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된 세상에서 준이 못나서 밤에 밀린 카드 값 받으러 가는 것일까요?

루시드폴 사람이었네!

젊은이의 양지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채권추심 전화를 넣었던 준이 한 청년이 틀어준 노래에 감동을 합니다.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를 틀어준 청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쉴 수 있었던 준은 청년을 찾아갑니다. 청년은 준을 이해합니다. 자신도 콜센터에 근무해 봤다면서 잠시 휴식을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런 준을 이해하는 또 한 명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센터장 세연의 딸인 미래입니다. 깨진 준의 데스마스크 석고상을 접착제로 붙이는 장면 등등 영화는 상당히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양지

연대라고 하죠. 같은 고통과 슬픔을 가진 분들은 쉽게 친해지고 공감을 하고 연대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순하고 아름답게 포장하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세연과 청년이 다른 점은 반성입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사람은 변하니까요. 그러나 성장하지 않은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연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준을 불행으로 내몰아도 자신의 자리부터 생각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영혼 없는 인간입니다. 

영화는 꽤 정교한 퍼즐과 세련된 연출로 수미상관식으로 담고 있으며 꽤 은유가 많습니다. 이점이 좋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보이네요. 답답하다면 답답하고 이해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고구마로 느껴졌지만 다 보고 하루 종일 생각해 보니 세연의 입장도 보이더라고요. 좋은 영화는 이런 의문을 이끌어내죠. 

나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이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이끌어낸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절 한 뼘 더 자라게 했습니다. 변화는 성장을 이끌고 좋은 영화는 날 성장하게 합니다. 영화 제목이 좀 아쉽습니다. 검색하면 드라마가 먼저 검색되네요. 영화처럼 좀 더 직설적인 단어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합니다. 다만 우울한 마음 상태보다는 다이빙을 해도 바닥에 충돌하지 않을 만큼의 마음의 온기가 있을 때 보면 좋습니다.

 
젊은이의 양지
“인생실습 한 번 해보실래요?”채권추심 콜센터의 계약직 센터장 세연은 업무실적과 정규직 채용을 빌미로 자리를 위협받는다. 세연의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게 된 19살의 준은 사진이라는 자신의 전공과는 너무나도 무관한 일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준에게 세연은 자신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며 꿈을 포기하는 게 아닌, 잠시 세상을 배우는 ‘인생실습’한다 생각하라고 조언한다.여느 날처럼 늦은 밤까지 독촉 전화를 하던 준은 얼떨결에 직접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가게 된다. 엄마 회사에 취직하면 안 되냐는 취준생 딸 미래와 다투고 있던 세연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울먹이며 전화한 준에게 어떻게든 돈을 받아오라며 윽박지른다. 그리고 다시 걸려온 전화. “…연체자가 죽었어요”그날 밤, 유서를 남긴 채 사라진 준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세연에게는 준으로부터 사건의 단서가 담긴 메시지가 하나씩 도착하는데…
평점
7.4 (2020.10.28 개봉)
감독
신수원
출연
김호정, 윤찬영, 정하담, 최준영, 김보윤, 한지원, 김재록, 주광현, 이지봄, 안예림

 

별점 : ★★★★
40자 평 : 비현실적이지만 그게 현실인 수많은 젊은이들의 신음소리를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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