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잊어가는데 왜 꺼내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몰라"
"그러게요. 다 지난 이야기인데 왜 또 꺼내서 영화로 만드는지 참!"
어머니가 시골에 계신 친척분하고 통화를 하는 목소리에 잠을 깨서 한참을 들었습니다. 이때가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었던 2007년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영화 봤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당시 10대, 20대들이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이야기이고 한국 현대사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역사라서 많은 사람이 봤으면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680만 명 관객이 들어서 중대박을 냈습니다.
그러나 그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과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영화에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어머니의 통화 속에서 들었습니다. 통화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영화가 잊혀진 역사, 가리려고만 하는 역사를 발굴해서 소개하는 이유가 많이 알고 멀리 퍼지고 깊게 알수록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함이라서 고마워했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아픈 기억, 봉인된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 고통 이해하고 이해하고 이해하지만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는 막기 위해서는 여전히 숨겨진 역사,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가해자가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슬프로 어둡고 알려지기 두려운 역사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일이자 살아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마지막 배웅이 아닐까 하네요.
죽은 자는 산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가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을 계속 후손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를 읽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좀 시들해졌지만 여행이 인기 키워드였던 시절 '다크 투어'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가 되었습니다. 보통 여행은 밝고 맑고 발랄한 곳을 찾아가죠. 인생 샷을 남기기 위해서 온기와 햇볕, 햇빛 가득한 유명 관광지에서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온갖 호사를 누립니다. 그 좋은 기억이 최소 1년 최대 평생까지 기억되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크 투어'는 다릅니다. '다크 투어'는 단어에서 거론되듯 밝은 여행은 아닙니다. 어둡고 현지인들조차 숨기고 싶어하는 어두운 과거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입니다. 그런 여행을 왜 가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 가지 감정으로만 살 수 없고 슬픔을 치유하는 치유 감정이 쾌활이 아닌 더 깊은 슬픔일 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공감이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같이 어깨를 기대고 울어주는 감정. 그래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작가 김여정의 책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는 좀 독특한 책입니다. 보통 이런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되새기는 책은 다큐 톤인 건조체로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라는 과거의 사건을 균형감 있게 담으려면 건조체가 가장 좋죠. 그러나 김여정 작가는 이 책을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여행기 형식의 체험담으로 담습니다. 크게 보면 여행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여정 작가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시골로 내려갑니다. 자신을 기워준 할머니는 항상 아랫목에 밥 한공기를 넣고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자란 김여정 작가는 같은 날 제사가 많았던 어린 시절 풍경을 기억합니다. 제사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맛있는 음식이 많았던 제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오빠를 부르면서 돌아가십니다. 작가는 이후 회사일에 치이고 시름시름 앓게 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됩니다. 이후 작가는 할머니가 애타게 찾던 오빠! 를 대신 찾아보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다크 투어'와 연계됩니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전남 영암이라는 지역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의 고향입니다. 영암은 생각보다 큰 지역이고 어머니의 고향과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유심히 봤습니다. 그리고 놀랍고도 슬프보고 화가 나고 분노하게 되는 숨겨진 한국의 슬픈 역사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6.25 동란 당시 전라도는 그래도 덜 피해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전라남도 영암 구림 마을 학살 사건을 들여다보면 빨치산 도와다는 이유로 골로 끌려가서 집단 학살을 했습니다.
네! 인정합니다. 빨갱이 도운 것은 잘못된 일이죠. 그럼에도 촌 사람들이 무슨 이념을 알겠어요. 단순히 도왔을 수도 있죠. 그런데 모두 골로 끌고 가서 죽입니까?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더 슬픈 것은 이런 아픈 역사를 숨기고 살았고 피해자 가족들 조차 숨죽이고 잊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여정 작가가 할머니 오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돈 주고 호적에서 판 빨갱이였던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면서 역정을 냈습니다.
마치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당시가 떠오르네요. 어머니에게는 이 영암 집단 학살 사건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이라서 기억에 없겠지만 대부분의 집단 학살이 자행된 지역 사람들의 반응이기도 했죠. 그래서 제주 4.3 사건도 피해자 사람들이 진상 조사를 싫어했다는 소리가 나오잖아요. 지금이야 한국 정부가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추념을 하고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숨기려고 했는지 죽은 사람들의 제사를 치루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슬펐던 건 저자인 김여정 작가가 누구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기록하려고 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친 오빠 행적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점과 반겨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할머니 오빠는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나고 자랐고 농민운동을 펼치다 빨갱이로 내몰려서 목포 형무소에 지내게 됩니다. 김여정 작가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는 배롱나무를 바라보면서 신작로에서 돌아올 오빠를 생각했습니다.
책은 아주 얇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하루 만에 다 읽겠다 싶었지만 2주가 지난 지금도 다 못 읽었습니다. 그만큼 쉬운 책이 아닙니다. 읽다가 힘들면 내려놓고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집단 학살의 폭력은 1980년까지 이어집니다. 이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는 문장들이 너무 생생합니다. 소설이 아닐까 할 정도로 화려하네요. 너무 생동감 넘치게 담다 보니 마치 내가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런 생동감은 너무 진해서 소설인가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염연히 저자의 경험이자 여행기입니다. 이 할머니 오빠를 찾아가는 '다크 투어'를 시작으로 저자는 다른 나라의 집단 학살 기억을 찾아갑니다.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의한 집단 학살이 아닌 남한 우익 청년단이나 우익 단체에 의한 집단 학살은 꽤 많았습니다.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단순 오해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행동은 한국이 시작도 끝이 아닙니다. 비슷한 일은 전 세계에서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이어질 겁니다.
2014년에 개봉한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배경으로 한 집단 학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는 반공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집단 학살합니다. 이 이야기도 참 가슴 아픕니다. 이웃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모두 죽였고 매일 마주치지만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울분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집단 학살 현장을 캐묻고 다니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모습에 집단 학살에 대한 공포와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음을 목도합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고귀함을 앍기에 집단 학살 현장을 찾아보게 되죠. 그리고 이 집단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담깁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학살 사건이 1947년 2.28 사건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만 역사를 모릅니다. 그리고 왜 대만인들이 한국을 싫어하고 일본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일제 강점기를 그리워하는 천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대만의 역사도 참 복잡합니다. 간단하게 보면 제주도와 비슷할 수 있지만 좀 더 복잡합니다. 대만은 청나라 때부터 살던 사람들인 본성인이 있습니다. 본성인 들은 일본 제국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을 청나라로부터 통치 허락을 받았을 때 극렬한 반대와 시위를 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장세스가 이끄는 중화민국이 중국 공산당에 연전연패하면서 밀리게 되고 결국 대만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중화민국은 한족이 만든 나라입니다. 청나라 후손들이 많은 원주민 다음으로 오래 살고 있는 본성인들들은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을 세운 외성인들에게 밀려 탄압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중화민국은 수십 년 간 계엄령을 선호파고 본성인 들을 탄압합니다. 그래서 본성인 들은 "개가 가고 돼지가 왔다"라고 한탄을 합니다.
그리고 1947년 2월 28일 본성인들이 시위를 하자 무려 3만 명의 본성인들을 외성인들이 집단 학살합니다. 이 이야기는 대만 영화 <비정성시>에 담깁니다. 대만은 1987년 계엄령을 풀고 민주화가 됩니다.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대만이기도 합니다. 특히 제주도와 비슷한 아픈 역사가 있네요. 저자는 이 대만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을 찾아가서 그들의 영혼을 기리고 아픈 역사를 보듬습니다.
제주도 경찰의 무례하고 몰상신한 행동으로 폭발한 4.3 제주 사건, 담배 팔던 여성이 단속반원에 폭행당한 사건에 분노한 본성인(내성인)들의 대규모 시위로 인해 3만 명이 죽은 집단 학살. 책은 읽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용서하지만 우리는 기억 할 것이다
집단 학살의 역사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여정 속에서 속에 담아 놓기만 했던 이야기를 찾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 속에서 후손들이 이 집단 학살의 광기를 기억해서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저자는 기원합니다.
"용서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영화 <피에타>가 충격적이었던 건 죄책감을 모르고 살던 폭력이 일상인 사람에게 어머니라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서 죄책감을 심어주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집단 학살을 한 가해자들은 여전히 죄책감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평생 죄책감을 못 느끼겠죠. 그러나 피해자들이 숨길수록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낄 확률은 낮아질 겁니다.
반대로 아프지만 나를 위하고 후손을 위하고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위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거론하면 가해자 중 일부는 반성할 겁니다. 반성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밝은 미래가 우리 앞에 기다릴 겁니다. 어두운 여행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찾는 여정이 뛰어난 표현력으로 담긴 책이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입니다.
<책을 무상 제공 받아서 간섭없이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