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이 2개가 있는데 짧은 머리를 한 경호원들이 차량 경호하는 모습과 함께 북한의 사진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 캐논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김정일 정권 때만 해도 사진 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는데 김정은은 나이가 젊고 해외에서 유학을 해서 그런지 미디어 매체 활용이 부쩍 높습니다.
갑자기 고해상도 사진 그것도 뛰어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을 주적으로 여기는 북한이 일제 카메라를 쓰는 것을 이제는 드러내 놓고 있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사실 이 카메라는 북한 제품이 없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카메라를 안 만듭니다. 한때 삼성전자가 만들었다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해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일본과 독일 미국 정도가 카메라를 만들고 이 마저도 일본 카메라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2021년 2월 8일 조선중앙 TV가 아동을 위한 '만화로 보는 발명의 역사' 시리즈 중 '사진 기계의 역사'편을 제작 방송했습니다. 이 방송을 dprknow 유튜버가 업로드했습니다.
북한 방송이지만 북한 정권 찬양 방송이 아닌 교양 방송이고 그냥 흥미롭네하고 지나가려다 영상을 보니 생각보다 꽤 내용이 좋습니다. 또한 북한이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수자식 카메라로 부르는지 처음 알았네요.
영상 제작 수준은 한국의 90년대 중후반 정도의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허술한 건 아닙니다.
북한 아이들을 위한 아동용 방송인 발명 시리즈에서 사진기에 관한 방송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북한은 영어를 거의 쓰지 않고 우리말로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따라서 카메라도 사진기라고 하죠. 그럼에도 영어를 쓰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카드입니다. 카드는 그냥 카드라고 하더라고요.
위 카메라는 캐논 1D X네요. 캐논 마크는 가렸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840년 암함 발명을 했다고 나옵니다. 암함이라고 하는 건 카메라 옵스큐라로 핀홀 카메라입니다. 당시는 렌즈가 없어서 그냥 암실에 구멍 뚫어 놓으면 신기하게도 바깥 풍경이 거꾸로 맺히는 걸 발견합니다.
이 원리는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발견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묵자, 서양의 아리슽텔레스, 알하젠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에는 중국사람과 아랍 사람이 있네요.
그렇게 1천 년 가까이 지난 후에 드디어 유리가 발명되고 유리를 이용한 렌즈를 끼운 카메라 옵스큐라가 발명됩니다.
1700년대에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큐라가 발명이 되어서 휴대용 카메라처럼 들고 다니면서 외부 풍경을 그대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는 상을 맺히게 하는 것이지 그걸 기록하게 하는 필름이 있던 시절이 아닙니다. 따라서 상이 맺히면 그 상의 테두리를 그대로 따라 그려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트레이싱지와 비슷하죠.
이 카메라 옵스큐라는 화가들의 보조 수단으로 인기가 높았고 그래서 18세기 당시 화가들의 묘사력이 엄청나게 발전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그림들이 꽤 많습니다. 실제가 아닌 광학의 힘을 빌리다 보니 렌즈 주변부가 왜곡되는 현상이 있는데 이걸 그대로 그림으로 그렸다는 자체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방증이죠.
우리가 존경하는 렘브란트, 베르메르, 카라바조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필름의 시조새가 1826년 발명됩니다. 바로 프랑스의 니엡스가 바깥 풍경을 촬영한 사진을 담습니다. 이걸 보면 사진이라고 하는 건 인화지에 맺힌 상을 말하는 것이지 카메라가 사진의 역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카메라는 광학 기술을 이용해서 외부 풍경을 맺히게 하는 도구이고 이 맺힌 상을 화학액인 인화액을 바른 인화 도구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엡스는 동판화에 기름을 먹여서 투명하게 한 후에 역청을 코팅한 유리판 위에 광학 도구인 카메라 옵스큐라로 햇빛을 장 노출하면 외부 풍경이 담긴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니엡스의 이 인화 기술을 눈여겨보던 다게르가 니엡스의 인화 기술을 발전시킨 은판 사진술을 발명합니다.
그러나 다게르 사진은 즉석 인화 사진처럼 오로지 1장만 인화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하면 뭡니까? 대량 복제의 도구 아닙니까? 1841년 영국의 톨버트가 음화로 촬영하고 그걸 빛을 쬐서 양화로 만드는 방식을 발명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필름도 이 음화인 필름을 이용해서 대량 생산하는 방식이죠.
음화 즉 사진의 검은 부분은 밝고 밝은 부분은 어두운 음화를 인화기에 꽂고 인화기 전등을 필름을 통과시키면 필름에서 어두운 부분은 빛이 덜 통과하고 밝은 부분은 빛이 많이 통과해서 인화지에 빛을 쬡니다. 인화지는 빛을 많이 받을수록 탑니다. 따라서 빛을 덜 쬐이면 하얀색, 빛을 많이 쬐면 검은색이 됩니다.
음화에서 밝고 어두움이 거꾸로 됐다면 인화기와 인화지를 통해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 음화-양화 사진술은 드디어 사진의 대량 복제 즉 1장의 필름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출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판 사진술의 단점은 꽤 오랜 시간 그 자세 그대로 있어야 했습니다. 1장 촬영하는데 20~30분이나 걸리기도 했죠. 이에 빨리 촬영할 수 있는 유리 사진술이 1851년이 발명됩니다.
유리판 위에 요오드화은을 바르고 그게 마르기 전에 촬영해야 해서 촬영 시간이 짧았고 사진 품질도 꽤 좋아서 한때 크게 유행을 했습니다.
대충 이런 느낌인데 독특한 사진이라서 지금도 유리 사진술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이 좀 있습니다. 유리 사진술보다는 습판 사진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죠.
이때부터 필름과 인화지가 분리됩니다. 즉 필름만 있으면 언제든지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사진 대량 복제가 기본이 됩니다.
1871년에는 유리판이 마르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 습판 사진과 달리 언제든지 찍을 수 있는 편리함이 추가되었습니다.
1888년은 이스트만 코닥이 함형 사진기를 발명합니다. 이 함형 사진기는 상자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함형이라고 했네요.
이 함형 필름은 크기가 작아져서 야외에서도 촬영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대량의 필름을 장착해서 한 번에 여러 번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처럼 다 촬영한 브라우니 카메라를 사진관에 맡겨야 사진관에서 암실에서 필름을 꺼내서 인화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역사에 가장 큰 발명이 투명 롤필름입니다. 이스트만 코닥이 만들어서 코닥 왕국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의류 브랜드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애플급 회사였습니다.
상하단에 구멍이 있고 이 구멍에 톱니바퀴가 걸려서 다음 필름을 쉽게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 촬영에도 이 롤필름을 사용했습니다.
롤필름을 장착한 후에 사용자가 직접 필름을 교체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발명됩니다.
1900년 2월에 출시된 브라우니 카메라입니다. 이 카메라도 함형 카메라로 이스트만 코닥이 만든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1924년 카메라 계에 혁신이 일어납니다. 품 안에 넣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소형 필름 카메라가 발명됩니다.
바로 라이카 카메라를 발명한 '오스카 바르낙'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전까지는 카메라가 커서 야외 사진보다는 주로 실내 정물, 초상 사진만 주로 촬영했고 가끔 대형 카메라를 야외에서 촬영하기도 했지만 기동성이 떨어져서 야외 풍경이나 전쟁 사진도 전쟁이 끝난 후의 사진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소형 카메라가 발명된 후 전쟁터에 같이 뛰어들어서 생생한 전쟁의 사진과 사건 사고 및 실내에서도 촬영할 수 있게 됩니다. 보도 , 다큐 및 일상 사진들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영상 중간에 이 장면을 보고서 북한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제라면 무조건 까부수자의 나라이고 미 제국을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미키마우스가 보이네요.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지나서 지금은 소강상태이고 적대적 자세를 좀 풀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즉석 인화 카메라 이야기를 꽤 자세히 다루네요. 그리고 1990년 중반부터 수자식 사진기가 나옵니다. 수자식? 이게 뭔가 했더니 디지털이네요.
북한에서는 디지털을 수자식라고 합니다. 즉 디지털식 카메라를 수자식 사진기라고 하네요. 메모리 카드도 기억기 카드라고 하네요. 여러모로 북한은 한글 조어력이 엄청나네요.
영상 꽤 볼만합니다. 내용이 좋아서 쭉 다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