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좋은 것은 거대하고 큰 피사체나 눈에 보이지 않는 피사체를 우리 눈에 보기 좋게 만들어서 배달해 준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피사체 중에는 건물들이 참 많습니다. 이 거대한 건물을 우리는 사진으로 보고 반하고 직접 찾아가서 사진보다 더 웅장한 모습에 놀랍니다.
그래서 건축에게 있어 사진은 아주 중요합니다. 건축가 중에 사진가가 많은 것도 건축과 사진이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대로 사진가 중에 건축만 전문적으로 촬영하고 건축이라는 피사체를 주제로 수십 년간 사진을 찍는 분도 있습니다. 아주 좋은 건축 사진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김중업 박물관의 공간기억
집 근처에 가장 가까운 휴양지 같은 곳이 안양예술공원입니다. 안양유원지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변신을 한지 15년 이상 지속되고 있네요. 계속 따라서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 및 박물관과 갤러리가 살짝 있습니다. 이 안양예술공원에 있던 유유산업 공장이 떠나면서 그 공간을 '김중업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중업을 기리는 이 '김중업 박물관'은 가끔 흥미로운 전시회를 진행합니다. 접근성이 좋지 못하고 대부분 등산객들만 왔다갔다 하는 곳이라서 관람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철역 접근성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산과 계곡이 가까이에 있어서 이쪽으로 이사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듭니다.
김중업 박물관에는 여러개의 건물이 있는데 이중 2층짜리 건물은 각종 전시회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6월 23일까지 <공간기억>이라는 건축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건축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담은 사진전 <공간기억>은 유명한 사진가들이 많이 참가했네요.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네요. 총 44인의 사진가의 작품 121점이 전시되고 있는 생각보다 큰 규모의 사진전입니다. 이렇게 많고 유명한 사진가를 어떻게 모을 수 있었을까요? 이 전시회는 무료는 아닙니다. 입구에서 입장료 1천원을 받는데 입장료는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되기에 입장료 겸 기부금입니다.
요즘 지갑에 현금들고 다닌 적이 없어서 난감해 했는데 카드 결제도 가능하네요.
1. 시간의 켜
건축물은 인간과 닮았습니다. 태어나고 사멸합니다. 모든 사물이 태어나고 사멸하지만 무기체인 건축은 사멸하는 시간이 아주 깁니다. 그래서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은 사라졌지만 건물은 우뚝 서 있죠.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우리 조상들이 만든 건축과 조각과 공예품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정지현 사진작가 / 철거현장>
정지현 사진작가는 철거되는 건물 사진을 참 잘 찍고 많이 찍습니다. 건축물들은 자연스럽게 사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부셔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만들어진 건물들은 이상하게 내구 연한이 30년으로 짧습니다. 미국은 보통 50~60년이 넘는데 한국은 30년만 지나도 아주 낡은 건물이 됩니다. 안전 문제로 또는 재개발 수익을 위해서 건물들이 파괴되고 으리으리한 건물이 올라섭니다. 재건축으로 지탱하는 도시. 그래서 도시는 삭막하지만 빌딩이 죽순처럼 올라가는 걸 보면 살아 있는 생명체 같습니다.
<권상원 사진작가 / 대구의 오지 >
한 허름한 건물을 전경으로 높고 단단해 보이는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이네요. 도시의 흔한 풍경입니다. 서울도 이런 곳이 있긴 한데 그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건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탈진 곳에서도 아파트를 심어서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시리아 내전으로 파괴된 건물 앞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을 담은 사진입니다. 건물은 인간이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파괴하기도 하지만 전쟁이 파괴하기도 합니다.
2. 도시 변주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건물이 많고 빼곡하다입니다. 건물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죠. 사람들은 건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건물은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인큐베이터입니다. 우리 인류는 50%가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는 많은 편의를 제공합니다. 교통, 배송, 소비, 문화, 직장 등등 모든 것이 몰려 있어서 편합니다.
반대로 도시가 아닌 지역은 치안, 직장 등등 모든 것이 미흡하고 불편합니다. 그래서 집 값이 싸고 부동산 가격이 저렴하겠죠.
<구와바라 시세이 / 청계천 판자촌>
그러나 도시는 많은 병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불량 주택에서 사는 빈민촌이 늘고 교통 불편과 공해 등 각종 문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김기찬 사진작가 / 삼성역 인근 1985년>
위 사진은 아주 흥미로운 사진입니다. 위 사진에는 한 허름한 기왓집이 보입니다. 여기는 한전터로 현재는 현대자동차가 10조원에
지금의 10,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70~80년대에 급속도로 성장했고 특히 서울은 88올림픽 전후로 엄청난 발전을 합니다. 공터만 있으면 아파트 올리기 시작했던 시기라서 사방이 공사현장이었습니다. 건축 자재들을 가지고 놀던 유년 시절이 생각나네요. 이는 도시의 팽창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김민주초원 사진작가 / 보통집(삶의 질)>
홍콩 아파트 같습니다. 도시의 삶을 대표할 때 항상 나오는 곳이 홍콩아파트입니다. 홍콩 아파트는 보통 60층이 넘습니다. 워낙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고층으로 짓습니다. 서울의 미래의 꿈이 홍콩이죠.
그러나 좁고 높은 홍콩 아파트의 삶이 쾌적한 삶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편의성은 좋지만 삶의 질은 높지 못한 도시의 삶을 대변하는 사진이네요.
고대 유물인 신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마틴 파'의 사진도 있네요. 안양에서 '마틴 파' 사진을 다 보네요. 뭐 사진이야 출력만 하면 되기에 쉽게 전시할 수 있는 점도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네요.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관광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네요. 관광 중에 중요한 것이 건축물입니다. 방병상 사진작가의 작품인데 사진 스타일이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안준 사진작가/ 셀프 포트레이트>
1층 복도를 나오니 백라이트에 달린 사진들이 도열해 있네요. 아주 익숙한 사진입니다.
안준 사진작가의 셀프포트레이트 사진 시리즈네요. 고층 빌딩이 가득한 공간에 위태로운 몸동작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도시의 날카로운 직선의 나열과 위태로운 몸 동작으로 인한 긴장감이 팽팽한 사진들입니다.
3. 공간 영혼
사진은 보이는 것을 담지만 보이지 않은 것도 담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간입니다. 채워져 있는 보이는 것을 담으면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담습니다. 우리는 공간에 참 잘 매료됩니다. 뻥 뚫리고 아무 것도 없어서 더 보기 좋은 뷰를 선호하죠.
2층 전시회 공간이 그런면에서 아주 보기 좋네요.
<뉴사 타바콜리안 사진작가 / 이란 , 테헤란>
우리가 사는 공간은 우리를 대변하고 우리와 닮았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를 닮았고 농가에 사는 사람은 농가와 닮았습니다. 자신이 사는 주거지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는 위치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삿말로 어디 사세요?라고 묻습니다. 강남에 사는 분들은 당당하게 압구정이요, 신사동이요라고 말하지만 이미지가 좋지 못하고 낙후된 곳에 사는 분들은 다른 동네에 산다고 하거나 사는 위치를 감추거나 부끄러워 합니다.
부동산 관련 뉴스 기사를 보면 어느 특정 지역만 거론하면 조선족의 동네다. 헬게이트다. 온갖 악풀이 자연스럽게 달립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를 나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아주 심합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기가 못났으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 사는 집, 사는 지역을 자기라고 소개할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임수식 사진작가 / 책가도 433>
공간을 채우는 방법 중 하나가 책장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책장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책장 3개에 약 1천여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 읽은 책은 300권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한 번도 안 읽은 책이 대부분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한 두권 모으다 보니 많이 모으게 되었네요. 그런데 요즘 책을 잘 안 읽게 되네요. 책 읽을 시간에 영화 1편이라도 더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장의 책은 그 사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책가도 사진은 책장 여러개를 촬영한 후 이어 붙인 사진입니다.
임수식 작가의 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보이네요. 사진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영감을 받는 매체가 책이라고 하죠. 책은 예술가들에게 뗄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자 도구입니다.
<구본창 사진작가>
사진계의 인기스타인 구본창 사진작가의 사진도 있네요. 구본창 사진작가는 하얀 공간에 대한 집착이 있나? 할 정도로 공간에 대한 천착이 강합니다. 그래서 사진들이 맑은 도자기를 보는 느낌입니다.
4. 건축 이후
건출을 소재로한 사진들은 우리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특히 사진작가들은 참 많이 애용합니다. 이 건축물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사진들이 있네요
<원범식 사진작가 / 건축조각 시리즈>
원범식 사진작가는 촬영한 건물을 해체한 후 재조립을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듭니다. 마치 아이들이 레고 블럭으로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네요. 저런 건물이 실재로 있지도 않겠지만 있다면 놀이공원에나 있을 듯 하네요.
<신병곤 사진작가 / 도시천문학>
도시의 불빛이 별빛처럼 보이네요. 서울 밤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야근하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하죠.
자세히 보니 대형 건물들의 불빛들이네요.
이 사진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이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건물들을 촬영한 사진을 다닥다닥 붙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이런 형태입니다.
<추영호 사진작가 / 도시의 생활 시리즈>
추영화 사진작가의 도시의 생활 시리즈로 부산, 서울,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주택을 수 없이 촬영한 후 그걸 잘라서 붙였습니다.
여긴 서울입니다. 서울의 양옥들 사진을 촬영후 모자이크처럼 붙여 놓았네요. 대단한 형식미입니다. 동시에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를 연상케 합니다.
5. 기억 기록
5장 기억 기록은 다른 건물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꼭 안내데스크에서 물어 보시고 건물 위치를 안내 받으세요.
<박형근 사진작가>
이 5장은 안양의 수 많은 재개발 단지들을 기록한 사진들입니다. 사람도 죽으면 사진 밖에 남지 않듯 건물도 죽으면 사진 밖에 남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건물이 사라지고 길이 사라지면 내 유년시절 뛰어놀던 동네에 대한 추억도 희미해집니다.
집을 고쳐 쓰기 보다는 다시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방식이 좋은 점은 새로운 건축 기술과 요즘 삶의 트랜드를 바로 바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오래된 건물들은 엘레베이터도 에어콘 설치하기 위한 구멍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에어콘이 없던 시절 지어진 건물은 싹 밀고 에어콘 매립형 건물을 짓죠.
문제는 용적율이 낮은 건물을 부수고 용적율이 높은 건물을 올리면 돈 한 푼 아니 수익을 내면서 재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더 이상 용적률을 올릴 수 없습니다. 아마 10~20년 후에 서울 곳곳에서 썩어가는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이 늘고 슬럼화가 심화될 것입니다.
사진작가 김재경, 진효숙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좋은 사진전이었습니다. 1천원 내고 이렇게 다양한 사진과 의미를 느낄 수 있다니 살짝 고마움도 느껴지네요. 안양예술공원 가시면 꼭 김중업 박물관 들려서 사진들을 둘러보세요. 추천하는 사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