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들은 공무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정형적이고 전형적입니다. 기승전로맨스에 지루한 설정과 익숙한 설정의 연속 끝에 지리멸렬함만 계속 뿜어냅니다. 반면 종편은 마음 껏 찍어보라고 전권을 줘서 그런지 <스카이캐슬>, <눈이 부시게>같은 독특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 새로운 감동을 매주 뿜어내는 명작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너도나도 지상파 드라마에 출연하려던 배우들이 이제는 종편이나 tvN 같은 케이블TV가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지상파는 새로운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드신 분들만 보는 매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신부님의 주인공인 SBS 드라마 열혈사제
이런 흐름 속에서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지상파 드라마가 주말을 꽉 잡고 있습니다. 바로 SBS의 금,토 드라마 <열혈사제>입니다. 주인공인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은 신부지만 악당을 보면 기도가 아닌 주먹부터 날아가는 말 그대로 열혈 사제입니다. 우리가 아는 신부님들은 종교인이라서 폭력과 막말과 거리가 먼 분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를 박살낸 캐릭터가 바로 김해일 신부입니다.
김해일 신부는 국정원 출신 요원으로 작전 수행 중에 어린 아이들이 있는 줄 모르고 무기 창고에 수류탄을 던집니다. 원치 않은 살인을 한 김해일은 이 일로 죄책감에 국정원 특수요원직을 내려 놓고 신부가 됩니다. 구담시의 한 성당의 신부가 된 김해일 신부는 자신을 신부로 이끈 이영준 신부가 의문의 죽음으로 사망하자 폭발합니다.
김해일 신부의 성당이 있는 구담시는 구청장, 경찰서장, 국회의원, 기업인으로 위장한 조폭과 부장검사라는 강력한 악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영준 신부의 죽음을 숨기려고 하는 경찰들과 검사까지 도시 전체가 썩어 문들어졌습니다. 이 썩은내 나는 구담시를 주먹으로 정화하려는 신부가 김해일 신부입니다. 이 폭력 지향적인 김해일 신부의 정의구현 활극이 드라마 <열혈사제>입니다.
열혈사제가 재미있는 이유 3가지
1. 시종일관 유쾌한 열혈사제
갑자기 빵 터지기도 하고 서서히 미소가 끌어올려지기도 하는 등 열혈사제는 코믹 드라마입니다. 웃음을 전담하는 캐릭터가 따로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코믹 드라마입니다. 주된 줄거리는 코미디가 아니지만 주인공인 김남길이 연기하는 김해일 신부와 코미디 연기를 잘 하는 김성균이 연기하는 구대영 형사 그리고 푼수같지만 출세 욕망이 강한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과 카포에라 장면으로 웃음의 핵펀치를 날린 장룡(음문석 분)과 잔잔바리로 웃기는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범죄물과 코미디가 섞이기 쉽지 않은데 드라마 <열혈사제>는 이 균형감이 꽤 괜찮습니다.
2. 폭력적인 신부가 주는 기이함과 쾌감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인 또는 신부님은 온화한 이미지에 화를 한 방울도 내지 않을 부드럽고 기품 높은 분으로 알고 있고 실제로도 신부님들은 온화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온화한 이미지의 신부님과 전혀 다른 신부님이 주인공입니다. 대화나 뛰어난 머리로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주먹과 막말이 앞섭니다.
기존의 신부 이미지를 파괴하는 재미가 있지만 동시에 저렇게 묘사해도 천주교에서 뭐라고 하지 않나? 하는 걱정도 동시에 듭니다. 그렇다고 거북스럽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국정원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과한 액션은 과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 같이 느껴집니다. 특히 김남길의 액션은 적재적소에서 시원 통쾌하게 팍팍 꽂힙니다.
여기에 구대영이라는 구멍 형사와의 앙상블도 좋습니다. 구담 경찰서에서 가장 무능한 구대영은 순박하지만 조직을 위해서 적당히 타락한 형사입니다. 그러나 신입 형사 서승아(금새록 분)과 함께 일말의 양심은 조금 남아 있습니다. 이 구대영이라는 인물과 이하늬가 연기하는 박경선이라는 검사가 김해일 신부의 은총을 받아서 악의 편에서 선한 편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3. 타락한 형사와 검사를 통해서 검,경을 비판하다
드라마 <열혈사제>가 최근 큰 이슈가 된 '버닝썬' 이슈를 감안하고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복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의 유흥업소 유착비리가 불거지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추락했습니다. 이미 추락한 상태여서 지하로 내려가고 있네요. 그렇다고 한국 검찰이 깨끗한 검찰이냐? 아닙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서 안하무인의 행동도 잘 합니다. 한국이 이렇게 부패한 이유는 벌을 주고 판단하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법원이 모두 썩어 문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박경선 검사 : 신부님 난 요. 아직 권력이 없어서 부패할 수가 없어요
김해일 신부 : 이 똑똑한 양반이 뭘 모르시네. 권력이 부패하는 게 아니고 부패한 사람이 권력에 다가가는 거에요
이 말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권력이 부패한 것이 아닌 부패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는 말이 딱 맞는 한국 사회입니다.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모두 부패한 인물들입니다. 이런 썩어빠진 구담시에 하늘에서 신부가 내려와 기도가 아닌 발길질로 응징하는 과정이 큰 쾌감을 줍니다. 구담시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담시에 신부라는 배트맨이 내려온 느낌이죠. 아마도 작가는 배트맨의 코믹 버전으로 이 드라마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열혈사제가 지루한 이유 2가지
SBS 금,토 드라마 <열혈사제>는 재미있습니다. 20% 가까운 시청률이 그 재미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점점 지루해지는 느낌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 40부작이라서 그런가? 너무 느린 진행
속도는 드라마의 개연성이나 연기 구멍 등 많은 것을 집어 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들은 진행이 아주 빠릅니다. 그래야 몰입감을 유지하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빠른 진행을 위해서 일본 드라마들은 40분 내외로 1화를 만들고 6부작도 많이 만듭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드라마 방영 시간이 상당히 깁니다. <열혈사제>는 무려 70분입니다. 깁니다. 너무 길어요. 물론 이는 <열혈사제>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국 드라마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열혈사제>는 보통의 드라마인 16부작이 아닌 무려 40부작입니다. 40부작은 꽤 깁니다. 40부작이라서 그런지 드라마의 진행이 상당히 느립니다. 빠르게 수사를 마무리하고 그 윗선을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5회가 되어서 구대영 형사와 김해일 신부의 공조 수사가 시작됩니다. 차라리 20부작으로 줄이고 좀 더 밀도 있고 빠르게 진행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네요. 과거 회상씬은 왜 그리 자주 많이 나오는지요.
2. 한치 앞이 예측되는 이야기
밀도가 높지 않음에는 극의 긴장감이 팽팽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한치 앞이 예상이 되는 이야기가 좀 맥이 빠지게 합니다. 또한 드라마 구도가 이미 많은 드라마에서 선보였던 명확한 선과 악의 구도입니다. 요즘은 이런 선과 악이 확실히 구분되는 구도는 잘 먹히지 않습니다. 주인공도 악당도 선과 악의 구분이 느슨해야 좀 더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데 너무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선명합니다.
그나마 구대영과 박경선 검사가 악의 편에서 선한 편으로 넘어올 것 같아서 그나마 좀 다이나믹하지만 이 마저도 제가 예상할 정도일 정도로 이야기가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또 볼 생각입니다. 김남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정말 멋진 캐릭터와 멋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김남일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이 드라마는 김남일의 매력이 가득한 드라마입니다. 여기에 김성균과 음문석이라는 코믹 캐릭터와 찰진 사투리가 좋은 조폭 역을 맡은 고준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재미있네요. 오늘은 또 누굴 두들켜 패줄까요? 정의의 사도이자 히어로인 김해일 신부의 활약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