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상영한 한국 영화 중 좋았던 영화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는 <마녀>, <소공녀>, <미스백>, <버닝> 그리고 <공작>이 있었습니다. 영화 <공작>은 총성 한 번 나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긴장감이 팽배해서 손에 땀을 쥐고 본 기억이 나네요.
영화 <공작>은 1990년대 국정원이 고용한 흑금성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첩보원의 활약과 90년대 중반 총선 전의 총풍 사건과 97년 대선 전의 총풍 시도를 한 사건의 이면을 담은 남북한 정치 공작을 다룬 영화입니다.
방구석 1열을 찾아온 공작의 윤종빈 감독, 이성민 배우
즐겨보는 JTBC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방구석 1열>에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과 배우 이성민이 찾아왔습니다. <방구석 1열>이 좋은 점은 지상파를 포함 다른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 달리 연출자인 감독과 배우 또는 관계자가 직접 출연해서 영화 제작, 연출, 연기 후일담을 들려줍니다. 또한 윤종신과 감독 변영주 감독의 뛰어난 통찰력과 입담 그리고 JTBC 아나운서인 장성규의 재치 넘치는 질문과 입담이 재미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영화관을 빌려서 시청자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었는데 이 방송도 참 좋았습니다.
많은 배우들과 감독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예능에 나오지만 자신의 영화 홍보는 제대로 못하고 예능에 이용만 당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방구석 1열>은 개봉 직전의 영화를 소개하지 않지만 지나간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연출을 했던 배우나 감독들을 모시고 영화 후일담을 캐냅니다. 많이 궁금했던 영화가 <공작>이었는데 이번 주 금요일 방송에서 재미있는 후일담을 많이 방출해 주었네요
<공작> 97년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총풍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입니다. 실제 이야기와 가공의 이야기를 아주 잘 섞었습니다. 이 총풍 사건은 지금의 20대 이하 분들은 잘 모르는 사건일 겁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서 IMF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IMF 국가부도 사태를 일으킨 민자당은 국민들의 원성을 엄청나게 받습니다. 나라 말아 먹은 여당이 민자당이고 그 당시 대통령이 김영삼입니다.
이런 안 좋은 여론을 피하기 위해서 민자당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은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개명한 후 대선에 나섭니다. 여기에 안기부(현 국정원)은 북한에 돈을 주고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 도발을 해서 남한 선거에서 다시 보수정당인 신한국당 대선후보가 승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흔히 보수는 북한과 적대적 관계라고 알고 있는데 서로 돈을 주고 받으면서 선거에 이용하는 비지니스 파트너 관계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 사건은 거의 묻혀져 있었는데 영화 <공작>이 다시 끄집어 냅니다.
하지만 영화 <공작>이 그리고자 하는 핵심은 그런 총풍 사건의 비열함을 넘어서 남한과 북한 정권에 충성을 맹세한 공작원과 핵심 고위층도 자국의 국민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참으로 뭉클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만 바라볼 줄 알았던 북한 엘리트인 리명운이 인민들이 굶어죽고 개보다 못한 삶을 사는 모습에 안타까워 하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북한도 권력자 중에 왕이 아닌 백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를 알게 캐릭터입니다.
여기에 리명운 역할을 한 배우 이성민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 공작을 하드캐리합니다. 황정민과 이성민 두 배우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 공작을 총성 한 번 울리지 않고 영화내내 습하고 깊은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방구석 1열>에 출연한 윤종빈 감독은 이성민과 황정민 두 배우가 첫 대면의 긴장감을 이끈 연기를 극찬을 합니다. 하기야 제가 봐도 두 사람이 액션 없이 표정과 말로 기 싸움을 해야 하는 데 이걸 연출하기도 연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걸 해내는 두 배우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 <공작>의 밀도 높은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윤종빈 감독은 평양 장면과 김정일 별장과 주석궁 재현에 대한 뒷 이야기도 많이 풀어 놓았습니다.
윤종빈 감독을 스타 감독으로 만든 영화인 <범죄와의 전쟁>도 참 좋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별 기대없이 봤다가 우리네 아버지들이 살아온 삶을 엿보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주인공인 최익현은 건달이라는 폭벽과 검사나 고위층이라는 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기회주의자들을 손가락질 하죠? 그런데 경제 호황기이자 사회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고도성장기인 50~90년대 초반 아니 지금까지도 기회주의자들이 경제적으로 아주 잘 삽니다. 최익현은 뛰어난 기회주의자입니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이런 최익현 같은 캐릭터가 마지막에 철저하게 응징을 받지만 삶은 영화가 아닙니다. 최익현 같은 사람이 오히려 떵떵거리고 호가호위하면서 잘 삽니다.
그래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칭송을 받는 이유입니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을 블랙코미디로 담았습니다.
소속이 어디야?라고 반말로 시작하고 나이가 몇이야로 연타를 날립니다. 지금 이랬다가는 꼰대 취급 받고 받아주지도 굽신 거리지도 움추려들지도 않습니다. 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제대로 풍자한 영화가 <범죄와의 전쟁>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아버지 세대 또는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풍자 코미디입니다. 이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아버지 세대에 대한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80년대는 허세의 시대 같기도 했습니다. 총알 없는 총을 들고 깡패를 위협하는 허세 또는 객기가 남자다움이자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한 용기이기도 했고요.
내가 이깄으.. 내가 이깄으!라고 말하는 최익현의 대사는 정말 명대사입니다. 뭐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들 안에 숨어사는 찌질함이 다 분출된 대사입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아버지 세대 고발 영화입니다. 그래서 통쾌했던 것 같습니다.
<방구석 1열>에서는 주제가인 '풍문으로 들었소'를 선택한 이유와 상대방 조직을 박살내러 가기 전의 때거지 장면의 숨은 비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윤종빈 감독과 이성민 배우로부터 영화 뒷이야기를 들으니 시간이 후딱 가네요. 그래서 제가 <방구석 1열>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