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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뱅크시가 15억짜리 그림을 파쇄한 이유

by 썬도그 201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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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예술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 곳이 예술계입니다. 예술가 개개인은 순수한 분들이 많지만 그들이 사는 생태계는 그렇게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돈이 거래되는 시장인 예술품 거래 및 경매 시스템은 소수의 부자와 예술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신의 경매 작품을 파괴한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며칠 전 소더비 경매장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술가들이면 누구나 올리고 싶은 소더비 경매장에 뱅크시의 '소녀와 풍선'이 경매에 올랐습니다. 그의 명성 답게 뱅크시 그림은 15억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런데 낙찰되자마자 액자 속에 있던 자동 장치가 작동하더니 '소녀와 풍선'은 파쇄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무려 15억 짜리 그림이 파쇄되는 장면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게 되다니. 한 순간에 15억짜리 그림이 휴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행동에 전 빵 터졌습니다.

"역시 뱅크시다" 정말 유쾌했습니다. 미술 경매장 관계자나 관람객 등 미술 경매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통쾌했고 고소했습니다. 물론, 이런 반달리즘 행위가 뱅크시 본인이 직접 연출한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이 자체도 예술의 행위이자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해서 작품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별 가치도 없는 걸 고가의 돈으로 사고 파는 돈 많은 자들의 예술 놀이터인 미술품 경매 시스템 자체를 조롱했습니다.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영국인으로 알려진 뱅크시는 얼굴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아서 얼굴없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유명해 진 것은 야밤에 런던 곳곳에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그래피티를 그리는 거리의 예술가로 알려집니다. 이 그래피티들이 꽤 메시지가 강하고 은유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 뱅크시 그래피티에 열광을 하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테러 등 사회 이슈를 주제로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후 뱅크시의 인기는 꾸준하게 올라갔습니다. 여기에 권위주의 세상을 비판하는 이미지들도 많아서 저 같은 탈권위주의자들에게는 더 인기가 높았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에 몰래 걸어서 미술관을 조롱한 뱅크시

뱅크시는 탈권위주의자입니다. 특히 예술의 권위에 대해서 대담한 도전 및 조롱을 아주 잘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5년에 있었습니다. 뱅크시는 2005년 뉴욕과 런던에 있는 대형 미술관인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에 들어가서 자신의 작품을 빈 벽에 몰래 설치하고 나왔습니다.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못 보던 작품이 걸려 있으면 관계자들이 발견하고 이거 누가 걸었냐고 바로 발각 될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이걸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위 작품이 뱅크시가 만든 작품으로  다른 전시작품만 봐도 이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 명화들 사이에 방독면을 쓴 여인이라뇨. 그러나 관람객도 관계자도 바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작품 중 하나구나 하고 넘어갔죠. 앤디 워홀의 캠밸 스프 패러디한 작품을 걸어 놓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2006년에는 대영 박물관에 들어가서 돌 조각상 밑에 쇼핑 카트를 밀고 가는 원시인을 묘사한 동굴 벽화를 몰래 붙여 놓았습니다. 


원시 시대에 쇼핑카트라뇨. 딱 봐도 이상한 작품이지만 이것도 사람들은 고대 유물 중 일부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거대하고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아무 작품이나 걸어도 사람들은 그 박물관과 미술관의 권위에 눌려서 모든 것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미술관이나 갤러리 또는 박물관에서 보는 작품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보는 것 보다는 그 안에 있으니까 우러러 보는 건 아닐까요? 길가다 주운 돌맹이를 권위가 철철 넘치는 화이트 큐브 안에 전시하면 우와! 역시 예술 작품은 달러~~라고 외치지 않을까요. 특히나 복잡다단해진 현대 미술품은 이것도 작품이야? 라는 생각을 하지만 미술관의 권위에 눌려서 이것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의 전환을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됩니다. 뱅크시는 이 미술관과 갤러리의 권위를 신랄하게 조롱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뱅크시의 예술 테러적인 행동, 예술을 조롱하는 행위도 예술 강의에서 예술의 장르 중 하나라고 소개를 합니다. 따라서 이번 뱅크시의 15억 짜리 작품을 파쇄한 것도 예술사에서 큰 획을 긋고 꼭 설명되어질 행위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뱅크시의 예술 해적주의의 명성은 더 높아질 것입니다. 


뱅크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다큐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내가 본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웃겼던 그리고 가장 통쾌했던 다큐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 이 다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봤습니다. 뱅크시가 연출한 다큐라는 것은 다큐를 보다가 알았습니다.

이 다큐는 예술이 얼마나 허술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지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다큐가 시작되면 뱅크시를 좋아하는 L.A에서 구제 옷장사를 하는 티에리 구에타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항상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상을 기록하는 캠돌이였습니다. 그러다 그래피티 예술가들을 알게 되고 이들을 기록하다가 그래피티계의 거성인 뱅크시를 만납니다. 뱅크시의 작업을 촬영하면서 둘을 친해지게 됩니다. 


티에리는 그래피티 예술가를 담으면서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뱅크시는 그럼 너도 해봐라라고 힘을 실어줍니다. 그렇게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이름을 만들고 그래피티 예술가 활동을 합니다. 티에리는 예술 관련 교육을 받은 적도 그쪽 사람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뱅크시가 유일합니다.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대규모 전시를 L.A에서 개최합니다. 무명이기에 아무도 찾지 않았을 같았지만 뱅크시가 대충 써준 전시회 관련 축하 코멘터리를 대형 현수막에 걸고 뱅크시도 인정한 예술가라고 하자 지역 방송사가 와서 인터뷰를 합니다. 이후 지역 언론사 및 주요 언론사가 이 새로운 아티스트를 취재하고 전시회는 대박이 납니다. 구제 옷장사가 순식간에 세계적인 그래피티 예술가로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

뱅크시는 이 전체 과정을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 담았습니다. 보면서 어찌나 웃고 통쾌했는지 지금도 예술 관련 다큐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술을 좋아하지만 예술을 깊게 파면 팔수록 얼마나 알량한 생태계인지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예술가 전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건 아니고 예술가 한 명 한 명은 고귀할 수 있지만 그 생태계를 이끄는 소수의 예술 권력의 구린내 나는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그 구린내를 잘 담은 다큐가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 제목 자체도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대형 미술전 예를 들어 고흐나, 마네, 모네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전시회를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전시회 출구에 전시회 관련 상품을 파는 선물 가게가 꼭 있습니다. 그 선물가게에서 전시회 도록이나 스마트폰 케이스, 뱃지나 다양한 팬시 상품을 구매해서 친구들에게 전시회 갔다가 샀어!라고 선물로 주기도 하죠. 

미술관에 가면 꼭 예술 작품 앞에서 V질을 하면서 사진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꽤 많죠. 유명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내가 유명해지는 건 아니지만 난 이런 문화 생활도 하고 있어!라고 자기 자랑을 위해서 예술품을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소비되지 않고 자신을 꾸미는 액세서리 상품처럼 소비되는 풍토를 꼬집은 제목입니다. 


구제 옷가게 사장님은 이제 한국에서도 전시하는 유명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미스터 브레인워시 전시회가 인사동 근처 대형 갤러리에서 유료로 전시했었습니다. 전 이거 보면서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 그 자체일까? 유명하면 똥을 싸도 예술이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예술. 그 정점에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예술이란 어떤 틀을 만들면 그 틀을 깨는 예술품을 우대해주는 경향이 있고 그런 흐름에 보면 미스터 브레인워시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고 나니 허망함이 밀려오네요. 


다큐 영화 포스터의 상단 헤드라인이 강렬하게 다가오네요

"갤러리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불과할 것이다."

뱅크시는 길거리에 스텐실로 작품을 그리는 이유는 예술품은 누구의 소유가 아닌 누구나 보고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길거리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뱅크시가 워낙 유명해지자 뱅크시가 벽에 그린 그래피티들이 수억 원에 판매되는 모습을 무척 씁쓸해 했습니다. 

이에 뱅크시는 기발한 발상을 합니다.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녀와 풍선'을 스텐실로 만든 그림을 만들고 이걸 미술품 거래 시장에 판매를 합니다. 그렇게 뱅크시의 작품은 무려 15억 원이라는 로또 1등 당첨금으로 판매됩니다. 이때 뱅크시는 미리 설치한 그림 액자 뒤에 있는 파쇄기를 작동시켜서 돈 잔치 현장인 소더비 경매장 전체를 조롱했습니다. 제가 이래서 뱅크시를 좋아합니다. 예술의 허세와 허울 그리고 추잡한 생태계를 비판하는 모습을 참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뱅크시가 예술 비판만 하는 건 아닙니다. 위 그림은 몇 년 전 뱅크시가 기획한 전시회입니다. 거대한 가축 이동 차량에 귀여운 동물 인형을 집어 넣었습니다. 저 가축 이동 트럭에서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가 죽음의 비명을 지르면서 지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별 느낌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동물 인형들이 울어되면 표정이 달라지겠죠. 뱅크시는 동물 인형에 동물들의 울음 소리를 녹음해서 시내 곳곳을 돌아 다니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동물 인형을 보면서 동물을 생각했고 우리들의 육식 문화를 생각했을 겁니다. 

뱅크시 같은 작가가 한국에도 나왔으면 합니다. 학연, 지연으로 뭉쳐진 예술 생태계를 신랄하게 조롱하고 기존 한국 예술계에 빅엿을 먹이는 예술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 관장, 화이트 큐브의 총아인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의 관습과 권력, 권위를 타파하고 조롱하는 작품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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