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88올림픽과 서울 전시회와 함께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가 8월 22일부터 10월 21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화문 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서 서울시청 및 경복궁 놀러 가실 때 함께 들리기 좋고 다양하고 정말 잘 꾸며진 전시회가 많으니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은 곳입니다. 1층 기획 전시실에 가면 88올림픽 전시회와 함께 볼만한 전시회가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입니다. 

신촌은 요즘도 핫플레이스이긴 하지만 그 핫플레이스 자리를 홍대에 넘겨줬습니다. 신촌의 전성기는 70~90년대가 아니였을까 합니다. 아니 90년대 초반부터 근처에 있는 홍대가 인기가 높아졌고 지금은 주도권을 홍대와 연남동 일대로 넘겨준 느낌입니다. 인기로 보면 신촌이 아닌 헌촌이죠. 

그러나 신촌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선함과 풋풋함은 여전히 좋습니다. 신촌은 항상 청춘의 느낌이죠. 


신촌의 유례

신촌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조선 초기 새터말이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신촌(新村)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신촌이 됩니다. 신촌이라는 지명이 공식화 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이고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어 고양군 연희면 신촌리에서 신촌정이 됩니다. 해방 후인 1946년에 서대문구 신촌동이 되어쏙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촌은 신촌동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신촌은 신촌역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와 창천동과 이화여대 인근까지 신촌이라고 합니다. 동으로 말하면 신촌동, 대신동, 대현동, 창천동, 봉원동입니다. 한 때 이대 상권이 크게 부각되면서 신촌과 이대가 근거리지만 상권이 다르게 퍼졌지만 지금은 두 상권 모두 무너져서 신촌 상권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옛 명성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한 번 기운 상권이 되살아나기는 어렵습니다.

신촌 상권이 무너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높은 임대료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유동인구가 많이 떠난 지역에 임대료를 낮춰도 사람들이 다시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보다 신촌은 강북 상권을 대표하는 곳 중 한 곳입니다. 

항상 서울역사박물관은 전시를 참 잘 합니다. 디스플레이도 좋고요. 전시회 바닥에 신촌역 주변의 지도를 붙이고 주요 인기 상점을 빔프로젝트로 표시했습니다. 참 전시 잘 합니다. 전시 노하우가 대단하네요.



서울 역사 600년 이라고 하지만 그 서울 600년 역사는 종로, 중구 즉 4대문 안이 600년이고 변두리 지역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습니다. 신촌은 4대문 밖입니다. 서대문구라고 하지만 정확히 서대문이 있던 곳을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서대문은 돈의문이라고 하는데 경희궁 옆, 서울교육청 인근에 있었습니다. 돈의 박물관 마을에 가면 그 뒤로 서울 성곽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1950~60년대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때 서울시는 상경하는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시를 계속 확장시킵니다. 피난민과 지방민들의 유입으로 서울 변두리(당시 기준으로)에는 무허가 불량 주택 일명 하꼬방(판자촌)이 많이 생깁니다. 신촌도 그런 곳중 하나였다가 70~80년대에 교통망이 촥충되고 도시계획이 추진대면서 신작로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성산대교라는 한강 다리가 생기면서 한강 남쪽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지금도 영등포에서 홍대나 신촌가는 택시 손님이 많다고 할 정도로 성산대교는 신촌의 대동맥입니다. 

1980년 개통된 성산대교 덕분에 신촌은 강북, 강남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저도 처음 신촌에 간 것이 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됩니다. 



신촌 교통의 메카이자 중심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신촌 로타리입니다. 주변에 영화관도 많았고 쇼핑센터인 신촌 그랜드 백화점 등이 있었습니다. 전 '인디아나 존스3'를 신촌 신영극장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도 친구랑 본 기억이 나네요. 2류 극장들이 신촌에 많았습니다. 영화관에서 입석까지 팔던 시절이라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를 10대 또래들과 함께 보면서 웃고 울고 했습니다. 

이미연 ,허석 주연의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많은 10대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학업에 시달린 우리들의 10대 시절이 참 불쌍했습니다.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이 한 트럭인데 정해진 것만 경험하고 그것도 간접 경험을 하라고 합니다. 그 당시 10대들이 지금은 10대를 키우는 40,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니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맞고 자란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면 아이를 때리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진짜 때린다는 소리는 아니고 자신이 그렇게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면 다른 세상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더 심해졌습니다. 

허석은 개명해서 지금은 배우 김보성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연희동, 서교지구에 불량주택이 참 많았고 이걸 싹 개발 했습니다. 지금 연희동은 또 하나의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습니다.


신촌하면 연세대학교, 이화여대죠. 연세대학교는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대를 합쳐서 만든 이름입니다. 인하대학교에서 하는 하와이 교포들의 개교에 큰 도움을 줘서 하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인천 하와이 대학교를 줄여서 인하대학교라고 합니다. 


연세대학교는 1917년에 이대는 1935년에 이전을 했네요. 이 2개의 대학교가 신촌을 대학촌으로 만듭니다.


5월의 여왕 선발 대회가 많은 비판 속에 사라졌군요. 어쩐지 요즘 안 보인다고 했어요. 요즘은 더더욱 사라져야 할 행사이기도 하죠. 


1986년이 개교 100돌이었군요. KTV 대한뉴스에 가니 마침 이대에 관한 영상이 있네요. 1분 30초 정도에 메이퀸 행사가 보이는데 한복을 입고 메이퀸 행사를 했네요. 갓 쓰고 힙합하는 모습 같네요.


연고전, 고연전은 아주 유명하죠. 요즘은 예전만큼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뉴스에 소개 될 정도로 연고전은 유명했습니다. 

옛 신촌의 모습을 소개한 뉴스 기사와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신촌은 역이 2개에요. 2호선 신촌역이 있고 신촌 기차역이 있습니다. 신촌 기차역은 완행열차가 다니는 기차역으로 교외선이 다녔습니다. 이 교외선 타고 장흥, 일영으로 사진 출사 가고 M.T 같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경의선이 다니는 기차역으로 변신했습니다. 


예전 신촌로터리 풍경이네요. 


신촌에는 다양한 문학 청년들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가온누리, 오늘의 책, 독수리 다방, 빠리다방, '카페 섬'이 있었습니다. 이 이름들을 아는 분들이라면 지금 5,60대가 됐을 것 같네요. 전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압니다. 다방의 성냥 문화. 당시 다방은 너구리 잡는 곳이라서 담배 오지게 폈습니다. 하루 종일 담배 피는 곳으로 인식될 정도였죠. 담배 하면 침은 필수였습니다 재떨이에 어찌나 침을 뱉어 놓는지 지금은 카페 문화로 바뀌어서 쾌적한 공간, 공부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마티카 앨범이네요. 90년대 초 해외 마삼트리오라고 해서 마이클 잭슨, 마돈나, 마티카가 유명했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미모도 대단해서 섹시 가수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신촌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들도 많습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김승옥의 무진기행,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 신촌에서 탄생합니다.


신촌과 이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입니다. 이 '바보 선언'이라는 영화는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로 TV에서 보자마자 각인된 영화입니다. 80년대 오락실 게임 효과음과 이장호 감독 아들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로 김명곤, 이보희가 주연을 했습니다. 80년대 군부 정권 아래서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자 온통 은유로 떡칠해서 될 대로 대라라고 만든 영화인데 한국 영화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바보 선언, 1983년 제작>

제가 옛날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살지 못했던 살았던 장소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옛날 영화는 그 자체로 그 시대를 담은 아카이브 자료입니다. 1983년 제작 개봉한 바보 선언 도입부에는 1980년대 초 이대 앞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는 이대 정문 앞에 있는 길입니다. 저 위로 올라가면 아현동이 나오죠.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책가방을 메고 가고 있네요. 저 앞에 이대 정문이 보입니다. 이 영화 초입부를 보면 차량이나 행인 통제도 하지 않고 그냥 막 찍는 티가 납니다. 촬영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도 꽤 보입니다. 


포니 택시도 보이고 이대 앞 다양한 상점도 보입니다. 당시 이대 앞은 미용의 거리, 패션의 거리였습니다. 이대 앞에서 머리 하고 왔다면 먹어주는 시대였어요.


이대 앞 정문입니다 지금의 이대랑 크게 다릅니다. 지금은 ECC가 생기면서 풍경이 확 바뀌었습니다.


소극장도 많았다고 하는데 가본 곳은 없네요. 신촌의 문인들이 소개되어 있네요. 아는 문인은 기형도와 김승옥 밖에 없습니다. 기형도가 젊은 나이에 죽었죠. 연세대학생인지는 몰랐네요. 광명 이케아 바로 뒤 동산에 가면 기형도를 기리는 공간이 있습니다. 


80,9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 최인호는 큼직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참 많았죠. <고래사냥>, <별들의 고향>, <상도>, <겨울 나그네>, <불새>등이 있습니다. 특히 소설들이 영화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작가이기도 합니다. 최인호 작품들은 스토리가 참 좋고 통쾌했습니다. 시대의 아픔도 잘 담았고요. 소설만 잘 쓴 건 아닙니다. 한국영화 TOP10에 거론되는 '바보들의 행진'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병태와 영자'라는 영화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신촌 앞 유명한 가게들을 표시한 지도도 있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고 80년대 신촌 활황기 때 지도입니다. 


신촌하면 블루스죠. <신촌 블루스>는 한국 대중음악의 거대한 원류입니다. 엄인호, 이정선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언드그라운드 음악의 대표 그룹입니다. 

신촌에는 대형 음반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90년대까지 '목마 레코드', '태림레코드', '키티사운드'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저는 잘 모릅니다. 이 당시 잘 안 가봐서요. 90년대 초반까지 가득했던 음반 가게는 CD가 등장하고 MP3가 등장하면서 점점 사라집니다. 지금은 음반 가게는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음악이 소유의 시대여서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간 후 음악은 액세서리 시장으로 전락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같이 음악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그 소중함은 점점 퇴색되어 가네요. 이런 흐름은 영상, 영화가 그대로 바통 터치 할 겁니다. 영화관은 점점 줄어들고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나 푹TV나 넷플릭스가 주류가 될 것 같습니다. 


신촌파 뮤지션들의 공간들도 소게 되네요. 신촌블루스를 탄생하게 한 '레드 제플린'도 소개되어 있네요. '레드 제플린'은 큰 스크린으로 뮤직 비디오를 보고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음악 다방 같은 곳이였나 봅니다. 안 가봐서 저도 잘 몰라요. 


신촌파 뮤지션 중에는 양병집, 들국화, 송골매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는 '들국화'입니다. 

이대는 신촌 안에 있지만 상권은 이대 상권이 따로 있을 정도로 신촌 상권과 이웃하는 인기 상권입니다. 여자 대학교 앞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양장점, 양품점, 미장원이 많았고 80년대에는 패션의 성지이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이대 앞에는 보세 옷가게가 많이 생겼고 옷을 사러 이대에 가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도 옷가게가 많이 있지만 예전 만큼의 인기가 있지는 않습니다. 영국식 티셔츠와 면바지를 팔던 옷가게 '잉글랜드'는 '이랜드'가 됩니다. 기억나네요. 80년대 인기 캐주얼 브랜드 이랜드, 브렌따노, 헌트. 이 3개 브랜드는 모두 이랜드에서 만든 브랜드입니다.


놀고 먹고 하는 유흥 문화만 소개했네요. 신촌은 시위가 참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연세대 앞에는 시위가 참 많았죠. 영화 <1987>에서 재현한 이한열 군의 죽음이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한열 같은 청년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민주주의가 주는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옛 명성이 사라진 신촌, 그러나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신촌 상인들과 지자체입니다. 이에 신촌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여러 축제를 투입해서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청년 문화가 사라진 이 시대에 신촌은 청춘 시절을 넘기고 노년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2018년 청년의 이미지는 홍대가 다 가지고 갔습니다. 청춘에 안주하다가 자신이 늙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중년의 뒷모습 같아졌네요.

그럼에도 다시 신촌은 기지개를 켜고 있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전시회입니다. 신촌에서 청춘을 보낸 분들에게 그 시절 추억을 되돌아 보게 하는 전시회입니다. 

전시명 :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1층

전시기간 : 10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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