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하고 우울할 때면 전 미술관이나 사진갤러리를 갑니다. 보고 싶은 전시회를 보러 갈 때도 있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마냥 큰 미술관에 가서 여러 작품들을 봅니다. 그냥 봅니다 보고 난 후에 설명을 듣거나 작품명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울했던 마음이 정화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느끼게 됩니다.

우울할 때 생기 넘치는 시장에 가는 분들도 많죠. 미술관도 사람이 아닌 조형물과 그림과 이미지이지만 사람이 만든 그림과 조형물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느끼는 생기를 동일하게 느끼게 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서울에는 거대한 미술관이 많습니다. 특히 종로 쪽에 많은 대형 미술관들이 몰려 있죠. 경복궁 옆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고 덕수궁 담벼락을 따라가면 나오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습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규모가 더 크지만 난해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기도 하고 유료 전시회이기도 하고 접근성이 떨어져서 주로 '서울시립미술관'을 갑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을 하니 <보이스리스 -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이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네요. 전시회는 6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합니다. 여름방학 내내 하네요. 이 전시회는 포스트 식민주의를 주제로 한 전시회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미지, 영상,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단어가 압박을 하네요. 전시회 서문을 한참 읽어봤습니다. 오늘날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탈각된 채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포스트식민주의' 개념은 적어도 서구와 비서구에서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닌다라는 서문을 읽다가 두통이 확 오네요.

'포스트식민주의'가 광범위하게 쓰는 단어라고 하는데 그건 예술가 사이에서나 그렇지 대중미술관 그것고 공공미술관을 찾는 대다수의 대중들은 몰라요. 서문을 읽어보니 이런 내용 같네요. 식민주의는 잘 아시죠? 서양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후 전 세계가 유럽인들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배를 타고 가서 물물 교환을 했다면 범선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깃발 꽂기를 하듯 식민지 쟁탈전을 하던 서구 열강들은 마구잡이로 모든 나라를 식민지로 만듭니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는 19세기까지 계속 되었고 한국도 미국, 러시아, 일본 등등 서구 열강과 일본제국의 위협을 받다가 결국 식민지가 됩니다. 식민지는 지배, 피지배의 관계죠. 요즘의 갑을 관계의 끝판왕이라고 할 정도로 지배층은 상위 계급, 피지배층은 하위 계급입니다. 이런 야만스러운 시스템이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야만스러운 식민주의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제국주의가 총과 칼과 대포를 압세워서 무력으로 식민지를 지배하고 굴복시켰다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자유 민주주의는 돈의 힘으로 말 한 마디 없이 무릎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갑과 을'이라는 새로운 식민 시스템에 살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식민주의' 즉 '포스트 식민주의'를 담은 전시회가 <보이스리스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입니다. 7명의 작가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식민주의  현실을 담았습니다. 주제는 전쟁, 난민, 여성, 죽음 등입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귀환> 지면작업 (볼, 2007, 187p), 2014

가장 먼저 소개할 작품은 호랑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 아주 많이 봤던 그림이죠. 일제가 한반도고 토끼같이 생겼다고 놀리자 육당 최남선이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를 그립니다. 흥미로운 건 이 기개 넘치던 육당 최남선은 일제 말기 변절하고 친일의 길을 걷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일제 말기에 일제가 영원할 것이라고 판단했는디 참 많이 변절하고 친일을 합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이 작품은 폭격기가 지나가는 모습과 불꽃 놀이를 섞어 놓았네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전시회 방문할 때 읽었는데 블로그에 소개하려고 하니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없네요. 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면 좋을텐데 그런 마인드는 없어 보입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호랑이를 잡고 즐거워하는 듯한 병사들의 모습이네요.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에르칸 오즈겐'의 <원더랜드>입니다. 대형 스크린에 한 소년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설명합니다. 이 소녀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을 못합니다. 말을 한다고 해도 아랍어는 잘 모르니 그냥 들었을겁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13세의 무함마드는 ISIS에 납치 되었다가 탈출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일을 몸짓으로 자세히 설명합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전 보통 이런 비디오 영상 작품 잘 안 봅니다. 무엇보다 20분 이상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대부분 재미가 없고 느낌도 없습니다. 이 영상도 그냥 좀 보다가 가려고 했는데 무함마드가 자신이 경험한 참혹한 일들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두 손을 뒤로 묶고 구덩이에 밀어 넣고 뒤에서 총을 쐈는데 머리를 뚫고 총알이 나갔다는 설명을 듣다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1주일이라고 하는데 이 아이는 너무나도 참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계속 봤습니다.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처참한 일을 당해야 하나요? 돌아보면 무함마드의 경험은 한국에서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4.3 사건이나 6.25 당시 동족끼리 총을 쏘고 같은 마을 사람끼리 총을 겨누고 찌르던 그 참혹한 일들이 많았죠.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에르칸 오즈겐'의 <보호자>

7명의 작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가 '에르칸 오즈겐'입니다. 터키-쿠르드 족 출신으로 터키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보호자라는 이 작품은 2명의 이슬람 여성이 니캅을 입고 있습니다. 이슬람 사회는 너무나도 종교에 경도된 사회 같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을 저렇게 억압하죠. 이에 무슬림들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온 몸을 천으로 가린다고 주장합니다만 다 궤변으로 들립니다. 

'에르칸 오즈겐'의 보호자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슬람 사회의 경직된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보시면 두 여자 분 뒤에 허수아비가 서 있죠. 저 허수아비가 파수꾼인가요? 이슬람 사회는 좀 변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야 합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에르칸 오즈겐'의 <정물화>

이런 이슬람 사회 비판은 정물화라는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유채꽃이 핀 꽃밭 한 가운데 한 여인이 누군가의 시체를 안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식이 아닐까 하네요. 꽃이라는 삶의 구덩이에서 죽음을 목노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슬람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전쟁이 떠오르네요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장서영 <듀레이션 바깥>

보이지 않음을 표시하는 아이콘이 뭐가 있을까요? 가장 흔한 것이 엑스박스죠.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모뎀으로 인터넷을 하던 시절에는 이미지가 안 뜨면 엑스박스로 표시했습니다. 장서영 <듀레이션 바깥>은 엑스박스, 외곽선, 투명 레이어를 배치해서 보이지 않음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장서영 <스핀-오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산다고 하죠. 다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진 일상을 계속 돕니다. 삶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안정된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정된 삶을 지루하죠. 그래서 가끔 차선을 이탈해서 달리고 싶습니다. 스핀오프는 주류에서 떨어져 나온 삶처럼 자동차 서킷을 탈선한 자동차처럼 계속 돕니다. 이탈 차량들은 TV 중계 화면에서 잡아주지 않듯 이탈된 삶을 자동차 서킷에 빗대어 소개한 작품입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홍순명 <바다풍경 - 시리아 난민>

홍순명 작가의 거대한 작품인 <시리아 난민>이라는 작품은 그 크기에 압도 당합니다. 그리고 슬픔이 자박자박 차오릅니다. 시리아에서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 에개 해를 건너는 시리아 난민들 이들은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으로 바다를 건너다 많이 사망합니다. 

제목을 보고 작품에서 시리아 난민을 찾아봤지만 없습니다. 없죠. 우리들은 시리아 난민에게서 시선을 돌리다 못해 난민은 폭력배라는 주홍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예맨 난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가학성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황폐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심성을 느낍니다.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소리 없는 사람들을 만드는 우리들. 우리는 또 하나의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식민 시대와 다른 점은 내가 누군가의 돈의 노예이지만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갑이 된다는 것이 다릅니다. 수평 사회가 아닌 수직 사회, 돈이 위에서 떨어져 아래로 내려가듯 돈줄을 쥐고 흔드는 새로운 포스트 식민시대를 비판한 전시회입니다. 

비디오 영상 작품이 많아서 좀 아쉬웠지만 우리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전시회입니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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