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괴물이 된 세상을 영화로 비판하던 김기덕. 스스로 괴물이 되다

by 썬도그 2018. 3. 7.
반응형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홍상수 영화처럼 호불호가 강합니다. 누구에게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명작을 잘 만드는 명감독이라고 칭찬하지만 영화 소재와 주제 모두 자극적인로 혐오스러운 장면들이 많아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김기덕 감독 영화를 혐오스러워 했다가 그의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거칠고 비린내 나고 충격적인 내용과 영상이 있긴 하지만 강한 에너지로 추악한 세상을 투영하고 비판하는 모습이 무척 좋았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 영화들마다 놀라운 에너지와 뛰어난 스토리와 거친 이야기들이 매혹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렇게 에너지가 강하고 야생의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매년 만드는 감독이 없습니다. 

영화 <빈집>, <피에타>, <파란대문>, <악어>, <그물> 같은 영화는 꽤 좋게 본 영화입니다. 워낙 저예산으로 빠르게 촬영하다 보니 초점 나간 장면도 영상미는 전혀 없는 영화도 많습니다. 특히 최근 영화들이 더 심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같은 뛰어난 영상미의 영화도 있지만 예산 때문인지 조악한 촬영 현장이 비추어진 영상들이 많네요. 그럼에도 강렬한 스토리와 소재와 장면들이 모든 단점과 아쉬움을 덮습니다. 

영화 <피에타>같은 경우 초점 나간 장면이 많이 있지만 폭력의 세상에서 살던 조폭에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머니라는 온기를 통해서 변해가는 과정을 충격적인 이야기로 담고 있습니다. 괴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던 영화 <피에타>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김기덕 감독 같은 감독이 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영화 창조자입니다. 

김기덕 감독 영화가 날 것의 느낌, 화면으로 담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내는 이유는 김기덕 감독이 철저히 아웃사이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골 학교를 나온 후 무작정 파리에 가서 노숙을 하면서 그림을 배웁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학과 출신도 영화계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입봉작인 영화 <악어>를 촬영할 때 영화 포스터에도 나오는 물속 장면을 위해서 수영장을 둘러보다가 촬영장에 3시간 정도 지각을 합니다. 현장에서 오전부터 기다리던 제작자는 정오에 촬영 현장에 나타난 김기덕을 구타했습니다.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다 보니 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90년대 당시는 물주인 제작자의 입김이 강했고 감독은 제작자가 절대권력자였습니다. 특히나 신인 감독이면 아무런 힘이 없죠. 그렇게 구타를 당한 김기덕 감독은 스텝이 사온 김밥을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습니다.

이렇게 아웃사이더에 세상의 유형 무형의 폭력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그의 영화들은 날이 잔뜩 선 면도칼 같습니다. 삶이 그래서 그런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의 소재나 주인공들을 보면 온통 아웃사이더들입니다. 김기덕 감독은 세상 아웃사이더들을  세상의 주류와 부패함과 추악함을 들여다 보는 거울로 활용합니다. 


김기덕 감독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방송이 어제 방영되었습니다. 설마했습니다. 워낙 저예산으로 촬영하다 보니 김기덕 감독 영화 촬영 현장이 험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예산을 해결하려면 아주 빠르게 찍어야 하기에 다른 촬영 현장보다 빡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방송에서 한 전직 스텝은 육체적인 힘듬이 아닌 정신적인 힘듬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폭로가 담겼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에 대한 성폭행이 폭로 되었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까이서 본 김기덕 감독은 에너지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분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부드러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피에타>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이후에 성폭행을 했습니다.

좀 충격입니다. 저에게는 문화계의 '황우석 사태'라고 할 만큼 충격입니다. 아무리 그의 영화가 폭력적이고 여자들이 보면 기분이 드럽다고 할 지라도 그가 영화로 보여주는 추악한 세상과 메시지가 좋아서 그의 영화를 옹호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사는 모습에 더 적극적으로 그의 영화를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영화 길소뜸>

우리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제시스템이고 능력보다 인맥이 중요한 영화계에서 감독은 왕이었습니다. 감독은 모든 상황을 컨트럴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많은 스텝과 배우가 있어도 감독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그게 개성 강하고 감독의 색을 담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각종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누구 하나 말릴 수 없기도 합니다. 

또한, 배우를 자신의 영화의 재료가 되는 수단으로 여기는 감독도 많습니다. 배우는 영화의 부품이 아닌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따라서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원하면 사람의 언어로 대하면서 설득을 하고 연기를 끌어내야 합니다. 따귀를 때리고 언성을 높이거나 협박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은 이런 상식적인 룰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고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아주 심했죠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추앙받고 있는 임권택 감독. 몇 년 전에 임권택 감독이 1985년 <길소뜸>에 출연한 한 여배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린 자신에게 강압적으로 전라 장면을 촬영한 임권택 감독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했습니다. 당시 그 여배우는 14살이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어린 여배우에게 전라 장면을 요구했고 여배우는 거절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 너 돈 많니? 너 돈 많으면 지금까지 촬영한 필름 다 물어 놓고 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조용한 협박이었습니다. 이런 협박에 14살의 여배우는 전라 노출 장면을 촬영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세상이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임권택 감독은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이런 행동을 했었습니다. 뭐 그 당시는 다 그랬다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세상의 도덕적 잣대가 달라졌다면 그 당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도 현재의 기준으로 문제가 된다면 사과를 해야 합니다. 

이번 김기덕 감독 사건도 미투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냥 <뫼비우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손찌검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투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저기서 김기독 감독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김기덕 감독의 몰상식한 행동을 제지하고 말렸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강하고 감독이 절대권력을 지닌 영화계는 이런 일이 있음에도 수년 간 침묵을 지켰습니다. 아마 이번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계속 나왔을 겁니다. 

정말 큰 실망입니다. 괴물이 된 세상 괴물 같은 세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던 김기덕 감독. 그 자신이 괴물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합니다. 특히 피해자에게 정중하고 확실하게 사과를 한 후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정말 추잡스러운 일입니다. 이번 일로 영화계는 성폭력과 성추행이 없는 크린 지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안 합니다. 쉬쉬하고 조심하지만 할 뿐 몇 년 지나면 또 스물스물 올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미투운동을 통해서 피해자들은 성폭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습니다. 그 무기는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는 무기입니다. 문제는 이 무기가 자신에게도 큰 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백을 했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엄청난 고통을 수반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이 한국 사회가 받아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미투 운동을 불편해하고 펜스룰이라고 아예 여자와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못난 남자들이 많습니다.

여성을 동료가 아닌 쾌락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여자를 아예 멀리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물론 오해의 소지를 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일 수도 있지만 여자를 이성이 아닌 동료로 본다면 펜스룰을 둘 필요 까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사무실 안에서는 말도 편하게 나누면 되고 사무실과 현장을 떠나면 따로 만나지 않으면 되지 업무도 문자로 서로 주고 받는 것은 못난 남자들의 모습 같습니다. 이러다가 여자 사원을 뽑지 않은 회사들이 나오겠네요.  그럼 그 회사는 잘 돌아갈까요? 성폭력에서 성이 빠진 폭력이 난무하겠죠.

바뀌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위계질서에 의한 성관련 문제 더 이상 덮어두고 갈 수 없습니다. 동시에 남자들이 파수꾼이 되고 목격자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