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1987년 6.10 민주 항쟁의 사진이 흘러 나올 때 마음 속에서는 또 하나의 영화가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 다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만든 민중이라는 영웅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뜨거웠던 1987년에 광장에 서 있었던 분들도 눈물을 흘렸지만 1987년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분들도 분노에 찬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저는 1987년을 직접 광장에서 경험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영화를 보고 젊은 분들이 이 1987년 6.10 민주 항쟁에 대해서 많이들 모르시더군요.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3.1절도 삼쩜일절로 읽습니다. 특히나 1987년 전두환 정권을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세력이 지난 9년 간 세상을 지배하면서 1987년의 거룩한 민주 항쟁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영화 <1987>는 6.10 민주항쟁를 소개하는 안내서이자 작은 교과서입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기록한 2장의 사진


1. 이한열을 촬영한 정태원 기자의 사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 촬영>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는 극렬한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에 전경들은 다연장 최루탄 발사 차량을 앞세워서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발사 했습니다. 전경들은 최루탄 발사기를 하늘로 향하고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최루탄 발사기는 곡사 화기입니다. 직사로 발사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일정 각도 이상으로 올려야 발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루탄 총을 개조했는지 사람을 향해서 직사로 발사를 했고 그 직사로 발사된 최루탄에 뒤통수를 맞은 연세대학생 이한열은 피를 흘리면서 쓰러집니다. 이 장면은 영화 <1987>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은 사경을 헤매다가 안타깝게도 몇 달 후에 사망을 합니다. 이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 앞에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이 있었습니다. 

정태원 사진기자는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 군을 촬영했고 이 사진은 전 세계 및 한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6.10 민주 항쟁은 활화산처럼 뜨거워졌습니다. 99도의 민심에 1도를 올려서 펄펄 끊게 했던 사진이자 6.10 민주 항쟁의 상징과 같은 사진이기도 합니다. 

다른 기자들이 연세대 입구의 철길 뒤에서 사진 찍고 있었지만 이 사진을 촬영한 정태원 기자는 시위대 10미터 앞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근거리에서 촬영 했기에 참혹한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 '네이선 벤'이 촬영한 사진>

이한열을 부축하던 연세대학생은 이 정태원 기자를 봤습니다. 이 연세대 학생은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쓰러진 이한열을 촬영하고 있는 사진기자가 야속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비판이 있었지만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세상을 고발하는 직업이라서 이런 비판에도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는 사진기자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이한열이 쓰러지는 사진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눈에 박힌 최루탄 사진처럼 대중의 분노를 유발했고 6.10 민주 항쟁의 완성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2.  고명진 사진기자의 '아! 나의 조국'

영화 <1987>은 1987년 6월 10일 6.10 민주 항쟁까지만 담습니다. 그러나 6월 10일 이후에도 시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1987년 6월 26일 부산에서는 평화대행진이 개최되었습니다. 부산 문현 로터리에서 평화대행진을 하는 시민들을 향해서 경찰들은 최루탄을 쏩니다.

이때 대형 태극기를 흔들던 시민 앞으로 한 남자가 윗 옷을 벗은 채 "최루탄 쏘지 마세요"라고 외치면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사진기자 고명진은 이 찰나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고명진 사진기자도 정태원 사진기자처럼 시위대 뒤쪽이 아닌 시위대 앞쪽에서 시위대를 바라보면서 이 사진을 촬영 했습니다. 그러나 보도검열이 존재했던 1987년에 이 사진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한국일보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6.10 민주 항쟁을 상징하는 2장의 사진 중 1장입니다. 몇 년 전에 한 언론사에서 태극기 앞에서 달려가는 이 남자를 찾는다는 노력을 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분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1987년 6월 15일 촬영한 고명진 사진기자의 사진>

고명진 사진기자는 6월 15일 시위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1987년 세계 보도사진전 3위에 입상하기도 합니다. 위 2장의 사진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사진입니다. 두 사진의 공통점은 다른 사진기자들과 달리 시위대 뒤쪽이 아닌 전경 앞에서 시위대를 보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야속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 기록 사진이 이한열이 꿈꾸는 세상으로 향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1987년의 분위기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100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해 줍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11693.html 링크를 클릭하시면 87년 6월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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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8.01.1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에서 첫 사진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했더군요
    길이 남을 사진입니다

  2. ... 2018.03.11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속하게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만.. 저희세대에서는 정말 감사하죠... 그당시사람이 아닌 저희한테 그 당시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게해주는 사진이였으니까요... 물론 어머니랑 영화를 봤습니다.. 네.. 어머니도 청주시청앞에서 맨 앞줄에 있었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 그 당시 함성.. 그 당시 비명도 기억하고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역사의 산증인을 하나둘.. 잃어갑니다.. 일제시대때 끌려가셨던 할아버님 할머님들... 한국전쟁때 고군분투하셨던 분들... 4.19때 시위하셨던 분들... 등등 셀 수없이 많죠... 그럴때마다 그들이 기억했던 그 순간도 함께 잃어갑니다.. 정말 기억해야 되는건.. 그들이 겪어왔던게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대한민국입니다... 지금도 우린 촛불시위란 산을 정복하고 정권을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고.. 늘 그렇듯.. 이 감동과.. 이런 감정들을 우리 후손들은 잃어가겠죠... 정말 그들에게 우리가 만들어가는 나라가 이런나라다 라고 역사에 남겨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