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전두환 정권을 무너트린 1987년의 2개의 사건

by 썬도그 2017. 12. 27.
반응형

나이가 들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아마도 미래의 희망과 기쁨이 많지 않고 과거의 확정된 기쁨과 즐거움을 넘어서 고통마저도 아름답게 만드는 기억의 포장술 덕분에 자꾸 과거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영화 1987 예고편을 보다가 생각한 1987년 기억들과 추억들

오늘 영화 <1987>이 개봉합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의 신작이고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상영하는 영화를 5천원에 볼 수 있어서 볼 예정입니다. 영화 <1987>은 87년 6.10 만주화 항쟁을 담은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1987년의 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1. 내가 알던 세상과 친구가 알려준 세상이 달랐다. 

1987년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대학생 형, 누나들은 연일 대학가와 종로에서 시위를 했었습니다. 사실 중학생이 사회에 관심을 가질 일은 없었습니다. 중간고사 잘 봐서 mymy라는 휴대용 오디오를 갖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오로지 TV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였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TV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세상을 봤었습니다. 당시 TV는 땡전 뉴스를 열심히 했었던 시기였습니다. KBS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폭도에 가깝게 묘사를 했습니다. 

저도 땡전 뉴스와 서울신문 같은 어용 신문을 읽으면서 대학생 형 누나들이 미움을 넘어서 철없는 행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변에 대학생 형 누나들도 없었고 부모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어른들은 연일 보도하는 폭력 시위를 보고 혀를 찼습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할 짓 없어서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준 것이 친구였습니다. 중2 HR시간에 친구는 어제 대학생 누나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대학생들이 전경을 패고 까고 대학생이 던진 화염병에 옷에 불이 붙어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만 보여줬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맞고 특히 헬멧을 쓴 청자켓을 입은 백골단들이 대학생을 워커발과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머리 끄댕이를 잡고 끌고 간다고 하더군요.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럼에도 친구가 매주 시위 풍경 이야기를 해주니 친구의 말을 점점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1987년 중3의 된 봄에 대학생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영등포구 대림시장 근처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대학생 시위대들은 산 아래 마을인 저희 동네로 경찰들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몇 명의 대학생 형들이 평상에 앉아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른들은 TV에서 본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리 과격하며 왜 이리 정부를 못살게 구냐고 약간의 타박을 했지만 대학생 형들은 그건 다 언론이 만든 가짜이고 우리가 이렇게 투쟁을 하는 이유는 전두환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어른들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아! 호헌철폐는 해야해. 아니 자기들끼리 대통령을 나눠 먹는 세상이 어딨어!라면서 막걸리를 내오시더니 같이 마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네요.


2. 독재타도는 알겠는데 호헌철폐는 뭐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숨지고 그 자리를 꽤 찬 사람이 전두환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전두환은 독재자입니다. 전두환 시절에 고도성장기였고 경찰 병력을 동네마다 배치를 해서 치안도 좋았다고 좋아하는 친구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로 생각합니다. 이는 전두환 시절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독재자 전두환을 더 많이 옹호하지 그 80년대를 겪은 어른들은 전두환을 독재자로 생각합니다. 


제가 이 생각을 왜 하냐면 70,80년대 당시 반정부 시위는 대학생들의 시위이자 일부 반정부 세력의 시위였지 일반 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는 아니였습니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도 대학생들의 시위로 시작했다가 군인들이 새파랗게 젊은 대학생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죽이자 일반 시민들이 대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했습니다.

이는 1987년도 비슷했습니다. 독재타도!를 외치는 부류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고 이걸 반성하기는 커녕 4월 13일 호헌 발표를 합니다. 


4월 13일의 충격적인 발표 후 거리에서는 대학생과 함께 직장인인 넥타이 부대들이 속속 모여서 함께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저는 이 구호에서 독재타도는 알겠는데 '호헌철폐'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오늘 보게 될 1987라는 영화에서도 이 소리가 나올 것 같네요. 

'호헌'은 헌법을 지키겠다는 소리입니다. 독재자 전두환은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장충체육관에서 간선제로 뽑힌 대통령으로 정당성이 없는 대통령이 없는 대통령입니다. 이에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은 직접 국민이 뽑아야 한다면서 직선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해서 야당 후보가 당선이 되면 큰 후폭풍을 일것이 자명하기에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로 할 것을 확인합니다. 즉 호헌은 당시의 대통령 간선제를 지키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에 많은 국민들과 대학생들은 '호헌철폐'를 외칩니다. 


3.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동참하게 만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위에서도 말했지만 70,80년대 시위 대부분은 대학생들과 진보세력들만 주로 했습니다. 그 뜨거운 열기가 전국에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언론들은 연일 가짜 뉴스와 정권 입맛에 맞는 기사만 받아쓰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언론이 KBS와 조선일보 서울신문이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동아일보는 연일 정권 비판 기사와 대학생의 목소리를 담아서 보도했습니다. 이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뭉쳐서 만든 신문이 한겨레입니다. 

대학생들만 하는 시위를 전두환 정권이 무서워 할리가 없습니다. 페루에 수출했다가 너무 독해서 어떻게 이렇게 독한 최루탄을 국민들에게 쏠 수 있냐는 말을 들었던  최루탄과 백골단으로 대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패고 깠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생들만 하는 시위가 일반 국민에게 옮겨 붙기 시작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바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입니다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인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나 당시 치안본부장인 강민창은 단순 쇼크사라고 발표합니다. 그 유명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죠. 이 '탁하고 억하고 죽었다'는 정치에 무관심 하거나 TV로만 세상을 보던 대부분의 국민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해야 속지 이건 너무 억지라서 국민들이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전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대학생+일반국민의 시위에 전두환 정권은 크게 당황합니다. 여기에 4.13 호헌을 발표해서 그 분노는 펄펄 끊게 됩니다. 박종철은 시위 주도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대라는 공안 경찰에 끝까지 그 소재를 밝히지 않다가 물고문으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참 웃기는 곳입니다. 박종철이 목숨으로 지켰던 박종운은 1987년의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2004년 부천 오정구에 출마를 합니다. '배신의 끝판왕'이라는 소리를 듣는 분입니다. 


1987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한 해였습니다. 생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좋은 친구들도 좋은 선생님도 많이 만났습니다. 하루 하루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평생 1987년으로 살 수 있다면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세상은 알을 깨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해보다 1987년은 뜨거웠습니다. 


99도의 민심을 끊어 넘치게 한 1장의 사진

<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인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아서 사망하다 /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 촬영>

시위는 대학생을 넘어서 넥타이 부대와 택시기사들까지 합류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의 시위라면 막아낼 수 있지만 국민들 그것도 일반 시민까지 시위를 참여하는 것은 전두환 정권에 큰 부담이 됩니다. 불어난 시위대에 경찰들도 시위를 막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렇게 시위가 격렬해지던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청년을 촬영한 사진이 국내 일간지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합니다. 이 사진은 어린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머리에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은 대학생 형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아직도 잊조 못합니다. 이 사진 1장으로 인해 참고 있던 민심마저도 대폭발을 합니다. 

보통 최루탄은 공중으로 발사하는 곡사화기입니다. 일반 총처럼 직격으로 쏘려면 안전장치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곡사화기를 직사로 쐈습니다. 이는 시위를 막기 보다는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사진으로 인해 99도였던 민심은 100도씨가 되어서 펄펄 끊게 됩니다. 이 사진 1장이 세상의 큰 변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블로그명을 '사진은 권력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진 1장이 6.10 민주화 항쟁을 다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99도로 끊던 민심에 1도를 더해서 끊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 1도의 가치 이상을 한 것이 위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본 시민들은 분노에 가득차서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으로 모입니다. 6월 10일 택시기사들은 정오에 경적시위를 하고 넥타이 부대들과 일반 시민들과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를 합니다. 그렇게 87년의 6.10민주 항쟁이 완성되게 됩니다.

이 6.10 민주항쟁을 본 전두환은 크게 놀라고 결국 다음 대통령으로 낙점되어 있던 전두환의 친구이자 쿠테타 핵심 세력인 '노태우'는 6월 29일 6.29선언을 통해서 대통령 간선제를 버리고 연말에 대통령 직선제를 하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두 대학생의 죽음이 독재의 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순응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입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자주 하죠. 여기서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 인권의 자유라기 보다는 자유자본주의의 자유일 겁니다. 돈에게 자유를 줘서 돈 많은 사람은 보호하고 돈 없는 사람을 패는 그 돈이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돈폭력의 자유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의 시대는 길게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박종철, 이한열이라는 두 대학생의 희생으로 인해 독재의 시대가 무너집니다. 그렇게 독재가 사라질 것 같았던 21세기에 독재는 아니지만 독재자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명박, 박근헤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스스로 세운 왕국이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우리가 세워준 왕국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때는 그래 '당해봐야 정신차리지'라는 생각이었지만 '박근혜'가 당선 되는 날은 절망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역시 안되는구나!라는 열패감으로 살았던 지난 4년입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을 보고 제 생각이 틀렸구나를 느꼈습니다. 21세기의 첫 시민혁명이 촛불혁명은 폭력 없이 정권 교체를 잘 이끌어냈습니다. 이 촛불을 보면서 87년 광장에 있던 시민들이 생각났습니다. 

절망의 노래는 다시 희망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영화 <1987>은 그 시절 뜨거웠던 민심을 담아서 보여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1987년 그리고 2017년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아이들과 손잡고 가서 볼 만한 영화라는 평이 많네요. 기대가 많이 됩니다. 

1987년 그 뜨거운 여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최규석의 만화책인 100도씨'를 추천합니다. 그 80년대 독재정권의 잔혹함과 시대의 아픔을 제대로 담고 있는 책입니다. 1987년의 뜨거움을 느끼러 가봐야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