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스크린에 상영하는 영화는 끝이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영화인 감상이라는 영화는 막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친구나 가족 또는 함께 본 사람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합니다. 혼자 영화를 보더라도 블로그 같은 곳에 영화 감상평을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감상평을 주고 받다 보면 내 감상과 다른 감상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 정말 재미없게 본 영화를 누군가는 아주 재미있게 봤다면서 극찬을 합니다. 그러면 살짝 기분이 상기되면서 넌 왜 그런 식으로 봤냐고 따박따박 따지면서 내가 본 감상평이 정답이라고 하시나요? 아니면 개인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감상평이 다르겠구나하고 그냥 넘어가시나요? 이런 같은 영화를 보고 평이 달라서 화를 내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는 같은 영화라도 다르게 평가하는 이유는 주관 때문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난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를 재미없게 봤다는 감상에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화를 내는 모습이 있지만 그런 내 모습을 내가 인지하면 스스로 그 화를 거두어들이고 대부분은 나와 다른 감상평을 이해나 공감은 못하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생각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평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평을 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른 평을 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화나 책을 읽을 때 그 영화나 책의 내용을 그대로 흡수하지 않고 내 경험을 섞어서 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개봉한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에서 70년대 스타워즈 3부작을 본 중장년들은 '마크 해밀'을 보고 70년대 추억과 함께 많이 늙은 '마크 해밀'을 보면서 해후의 애잔함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를 1편도 보지 않았거나 10,20대 분들은 '마크 해밀'에 대한 추억이 없기에 그냥 레전드 할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인물을 봐도 누군가는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 들고 누군가에는 수염난 할아버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내 경험을 통해서 받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다른 경험과 가치관, 사고관과 성격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사건 사고, 영화, 소설, 음악 등 세상 모든 것을 각자 다르게 판단합니다. 

경험과 가치관, 사고관, 성격을 한데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주관입니다. 사람마다 주관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관이라는 각자 다른 색을 가진 필터를 끼고 보기 때문에 영화의 평이 다 다르게 됩니다. 그 각자의 영화 평은 주관이지만 비슷한 주관들이 모이고 모이면 객관이 됩니다. 그렇다고 객관이 정답이고 주관은 오답이라는 시선도 잘못된 시선입니다. 많은 관객이 든 1천만 관객 돌파를 한 영화라도 해도 내 주관으로 졸작으로 보이면 졸작일 수 있습니다. 주관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니 주관은 틀렸어! 오류라고 하는 자체고 오류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한 주장은 수정되어야겠지만 감정을 기반으로 한 글은 감정에 오답이 없듯이 틀렸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나와 영화평이 비슷한 사람을 더 좋아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영화평을 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나와 다른 영화 평을 보고 화를 내는 이유는 영화 감상평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왜 우리는 다와 다른 영화평을 한 사람에게 화를 낼까요? 제가 보기엔 나와 다른 영화평이나 영화 리뷰를 읽고 내 생각과 다른 리뷰 글을 보면서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리뷰와 평이 옳고 나와 다른 영화평을 한 글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반대로 내 영화평이 틀릴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화평에 화를 낼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생각이 자신을 스스로 화나게 합니다.  세상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생각이자 못난 생각입니다. 


영화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 올바른 영화 감상일까?

생각을 확장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본 후에 감독의 의도를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A라고 느꼈으면 했는데 관객 대부분이 A라고 느꼈다면 감독의 의도가 잘 맞아 떨어져서 감독이 좋아할 겁니다. 또한 우리는 영화를 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감독의 의도 찾기를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감독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감독의 의도를 물어보곤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한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이 장면은 이런 의도로 담으신건가요?" 라는 말에 감독은 "그게 그렇게 볼 수도 있군요. 그런데 전 아무런 의도가 없었습니다"라고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과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나 책은 감독이나 저자가 영상과 텍스트에 감독이나 저자의 숨은 의도들을 숨겨 놓습니다. 직적접으로 표현하고 대사로 담지 않고 여러 상징물과 메타포를 넣어서 관객이나 독자에게 제공을 합니다. 이 숨은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내면 제대로 된 감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고전 해석학을 기초로한 생각입니다. 이 고전해석학으로 영화를 보면 영화 감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과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무척 노력을 하죠. 그럼에도 해석이 안되는 부분은 영화 평론가나 영화 마니아가 쓴 글을 통해서 정답을 맞춰봅니다. 이런 고전해석학을 바탕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영화평을 하거나 잘못된 해석의 글을 보고 첨삭 지도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전해석학은 철저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낸 감독과 저자 중심의 해석입니다. 이 저자 중심의 해석을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시나 소설에 대해서 정답이 있다는 식으로 교육을 하죠. 이런 고전해석학은 없어져야 할 구태입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감독이나 저자 같은 크리에이터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축이 서서히 독자에게로 넘어옵니다. 

저자의 의도가 A이지만 그걸 읽는 독자가 B라고 느끼면 B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B가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는 순간 영화는 독자라는 또 하나의 창작자를 만나서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즉 감독의 의도와 독자의 주관적 해석이 만나서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똑같은 영화를 봐도 그걸 받아들이는 주관이 각자 다 다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느낌은 다 다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감독의 의도를 무조건 무시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감독의 의도도 중요합니다. 감독의 의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감독과 관객이 함께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감독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서 그 해석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독자의 주관으로 만들어낸 감상이죠. 감독의 의도를 찾아보고 읽어보고 거기서 내 주관의 넣어서 감상평을 담으면 주관만 가득한 글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감독의 의도도 찾아내고 없는 의도도 만들어서 영화를 해석해서 보여줍니다. 그 해석은 하나의 의견이지 절대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따라서 영화 평론가들의 영화 감상평은 참고 텍스트일 뿐입니다. 영화 해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석을 하던 손가락질 받을 해석은 없습니다. 다만 공감을 받거나 공감을 받지 못할 뿐이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감상이 나와 다르다고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했다고 말다툼하거나 갸우뚱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쓸데 없는 곳에 에너지 쏟지 마시고 자신의 감상을 차분히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 영화 감상의 힘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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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7.12.18 1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갑니다^^
    거의 비슷하지만 저와 다른 부분도 가끔은 있으시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