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독특한 한국 영화는 단연코 <더 테이블>이었습니다. 2015년 개봉한 <최악의 하루>로 인기 감독이 된 김종관 감독이 기획,각본,연출한 저예산 영화 <더 테이블>은 한 편의 맑은 수필 같은 영화입니다.
지난 8월 말 개봉해서 저예산 영화 치고는 무려 10만 명이라는 중박을 쳤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 이 영화를 봤습니다. 모바일 영화로 봤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영화라서 보면서 수 차례 졸다가 한 번에 보지 못하고 몇 번을 끊어서 이틀에 걸쳐서 봤습니다.
모바일로 영화를 보면 이런 점이 좋지 않아서. 진득하게 봐야 하는데 조금만 지루하면 건너 뛰기를 하고 보다가 말다가 보다가 말다가 합니다. 덕분에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블로그에 호평 보다는 혹평에 가까운 리뷰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한 이틀이 지난 후 <더 테이블>에 대한 제 리뷰를 후회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보통 오타 검사도 안하고 그냥 발행해 버리고 한 번 쓴 글은 아주 큰 오류가 아니면 수정을 잘 안 합니다.
특히 영화 리뷰는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제가 쓴 영화 리뷰가 제대로 영화를 보지 않고 쓴 엉성한 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모바일 또는 시간이 없을 때 보는 것이 아닌 영화관 또는 진득하게 한 번에 봐야 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빨리 음식 안 나온다고 닥달하고 패스트푸드 먹듯이 우격다짐으로 먹고 나서 이 집 맛이 형편없네라는 리뷰를 썼네요
그렇게 못되게 영화를 봤음에도 그 맛의 느낌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영화 볼 때 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영화가 피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더 테이블>의 4명의 여배우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뒤늦게 영화의 교감이 열리기 시작하기 시작한 이유를 찾다가 알았습니다.
연애 세포가 죽은 나에게 미세한 떨림의 결을 가진 영화를 봤으니 지루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테이블>이란 마중물을 마시고 나니 편린처럼 흩어졌던 영화의 이미지들이 물기를 머금은 테이블 위의 꽃처럼 한올한올 살아나더니 저를 연애 기억의 광장으로 옮겨 놓네요.
영화를 보고 있을 때의 생각과 영화를 본 이후 생각이 이렇게 다른 영화도 처음 봅니다. 그건 아마도 영화적인 완성도나 재미 보다는 이 영화가 일깨운 내 추억의 연애 시절의 기억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이 내려가듯 스물스물 피어 났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참 고마운 영화이자 참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고 기억날 영화입니다. 환기! 영화 <더 테이블>은 죽어버린 연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환기시키는 영화입니다.
제가 영화 리뷰에서 이 영화는 너무 단조로운 연출과 구성으로 영화 보다는 단편 소설로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 책으로 나왔습니다. 영화 <더 테이블>의 시나리오와 4명의 커플의 뒷 이야기와 감독 인터뷰와 감독이 전하는 말이 담긴 영화 후일담 같은 책입니다.
책 소개를 하기 전에 영화 <더 테이블>에 대한 간단한 소개이자 책 소개를 하겠습니다. <더 테이블>은 한 카페의 창가 쪽 2인 테이블에서 4쌍의 남녀, 녀녀 커플이 나누는 대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오전, 오후, 늦은 오후, 저녁이라는 4개의 시간으로 분할해서 4쌍의 커플이 4개의 사연을 풀어 놓습니다.
오전 11시, 스타 배우인 유진과 전 남자친구인 창석, 오후 2시 30분 원나잇을 즐긴 후에 다시 만난 경진과 민호의 가까운듯 멀어 보이는 커플, 오후 5섯 시 결혼식을 앞둔 은희가가짜 엄마를 고용한 은희와 숙자의 이야기, 오후 9시 결혼을 앞둔 혜경과 이전 연인인 운철의 이야기가 소복하게 내립니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한 커피숍 창가 테이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라서 상당히 정적인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요소를 배치합니다. 먼저 4개의 사연을 귀동냥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각 커플들이 먹는 음료를 보면 어떤 관계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커플은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고 어떤 커플은 맥주나 홍차 등 다른 음료를 마십니다. 이 음료가 다른 커플들은 마음도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가벼우면서도 짙은 은유가 영화 <더 테이블>을 꽉 채웁니다. 여자 배우들 소개를 안 했네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자 배우 4명이 출연합니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이 4명의 아름다운 배우들이 각 사연을 아주 잘 연기를 합니다. 특히 정은채는 너무 인상 깊은 연기를 합니다. 정색과 호감 사이의 줄타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합니다.
4개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이자 막 사랑을 시작하는 커플, 사랑을 위장하려는 커플, 사랑을 끝내려는 커플, 사랑을 끝낸 후에 치근덕 거리는 쓸쓸함까지 사랑의 피고 지는 모습을 한 테이블이라는 공간에 담고 있습니다.
책 <더 테이블>은 시나리오로 시작합니다. 시나리오는 영화 속 대사들이 다시 들립니다. 그런데 지문이 거의 없고 대사와 표정 묘사만 있네요. 시나리오와 영화와 다른 점은 거의 없지만 테이블에 앉는 순서가 다릅니다. 영화는 정유미가 연기한 유진과 창석이 가장 먼저 나오지만 시나리오에서는 썸남썸녀 커플인 정은채가 연기한 경진과 민호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시나리오가 끝이 나면 이 네 커플의 후일담이 시작됩니다. 커플의 이전 만남과 이후 이야기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담기기도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스타 배우가 된 유진이 한 사진 갤러리에서 사진을 보고 구매한 후 사진작가와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혜경과 운철의 후일담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글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촬영일 수 7일, 시나리오 작업 3주 정말 짧은 시간에 영화의 뼈대인 시나리오를 쓰고 빨리 제작을 했기에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좋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감독 김종관의 뛰어난 감수성 덕분이겠죠.
이 뛰어난 감수성은 참 좋은데 대신 구멍도 많이 보입니다.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만들면 그 따끈따끈한 생동감은 좋지만 동시에 갑자기 부풀어 올라서 꺼지면서 생기는 구멍도 많이 보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금 제가 김종관 감독과 비슷하게 글을 쓰고 있네요. 자아비판 같네요
장점을 부각시켜 단점을 가리는 힘이 좋았던 영화 <더 테이블>은 책에서 그 여운을 더 길게 남깁니다. 감독 김종관의 인터뷰와 개봉 당일 쓴 수필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책이 무척 쉽고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떨림과 해후와 후회와 그리움이 섞인 네 커플의 이야기를 햇살 좋은 카페 창가에 앉아서 4 조각의 단편을 진한 커피와 함께 마시면 좋을 듯 합니다.
책 <더 테이블>을 구매하면 영화에서 주연을 한 4명의 여자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담긴 미니 포스터(엽서)가 들어가 있습니다. 선착순으로 손거울과 엽서를 제공하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 받아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