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짝꿍이 몰래 보던 영화 잡지 스크린에 '숀 영'을 같이 한 참을 봤습니다. 분위기 쩌는 서양 여배우에 넋이 나갔죠. 제가 관심을 보이자 며칠 후에 친구네 집에서 '숀 영'이 나오는 영화 추적자(블레이드 러너)를 봤습니다. '숀 영'을 보려고 봤는데 영화에 반해버렸습니다. 영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음악과 비주얼이 끝내줬습니다. 지금봐도 촌티가 전혀 없는 영화로 SF 영화의 명작 중에 명작입니다.

대학교 입학한 후 영화 리뷰 쓰는 과제를 도와 달라는 동아리 여자 후배의 도움 요청에 신문을 넘겨보니 볼만한 개봉 영화가 없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이 영화는 82년 제작을 했고 이미 TV에서 방영을 했고 비디오로 나온 영화였지만 한국에서 정식 개봉은 안 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렇게 재개봉 같은 개봉을 93년 5월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비디오로 봤던 <블레이드 러너>와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한 버전은 감독판으로 영화 중간 1장면을 삽입했고 결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마지막 결말에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영화를 보고 나서 근처 커피숍에서 한 2시간 동안 후배에게 영화 썰을 풀었던 것까지 기억이 나네요. 


1982년 제작한 <블레이드 러너>

1982년에 제작한 <블레이드 러너>를 보실 분은 이 단락은 건너 뛰세요. 

이번 주에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1982년에 제작한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입니다. 따라서 전작을 알고 봐야 더 재미있습니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영화 초반에 자막으로 간단히 설명을 하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개를 해야 오롯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블레이드 러너>를 관람하고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만 바로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실 분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를 하겠습니다. 

서기 2019년 인류는 우주 개발을 위해서 복제인간(리플리컨트)를 만듭니다. 리플리컨트는 복제인간이라서 인간 대신 전투와 노동 등 굳은 일을 도맡아 합니다. 인간과 외모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등은 동일하지만 전투형 리플리컨트는 인간보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는 등 특정 능력은 인간보다 월등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자식을 낳을 수도 없고 수명이 짧은 핸디캡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체 로봇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리플리컨트들 중 일부가 노예와 같은 삶을 거부하고 지구로 돌아와서 숨어 버립니다. 인간 생태계를 교란 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숨어버린 리플리컨트만 찾아서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를 투입해서 리플리컨트를 제거합니다. 이 블레이드 러너 중 한 명이 '릭 데카드(해리슨 포드 분)'입니다. 데카드 형사는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다가 리플리컨트인 레이첼(숀 영 분)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결말은 감독판과 제작자 버전이 다릅니다. 감독판에서는 리플리컨트 사냥꾼인 '데카드'도 '리플리컨트'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49년 리플리컨트를 추격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데카드 형사가 잠적한 뒤 30년 뒤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 분)은 자신이 리플리컨트인 것을 아주 잘 압니다. 인간 상관이 지시하는대로 충실히 잠적한 리플리컨트를 추적해서 체포 또는 사살을 하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합니다. 동료 경찰이 껍데기라고 말해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습니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로봇처럼 느껴집니다.

그날도 L.A인근의 한 농장에 방문해서 리플리컨트를 체포하려다가 격투 끝에 사살합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리플리컨트를 제거하고 나오는데 황폐해진 지구에서 보기 드문 죽은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밑둥에 6.10.21이라는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자신에게 심어진 유일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K의 유년 시절 기억에는 목마 인형 밑에 6.10.21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누군가의 탄생일 같은 이 숫자가 겹치자 약간 혼란을 느낍니다. 그 나무 밑을 조사해보니 한 유골이 있었고 그 유골을 조사해보니 데카드 형사와 도망간 데카드 형사의 연인인 '레이첼'의 유골이었습니다. 유골을 살펴 보니 놀랍게도 '레이첼'이 임신을 했고 누군가를 잉태했습니다. 



리플리컨트 신모델은 임신을 할 수 없지만 초기 구모델은 임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리플리컨트를 제작 생산하던 타이넬사가 망한 후 합성 농법으로 큰 돈을 번 '나안더 웰레스(자레드 레토 분)'는 타이넬사의 기술을 인수 받아서 리플리컨트 신모델을 계속 생산합니다. 그러나 10일간의 대정전 사태 때 많은 자료가 사라지면서 임신을 할 수 있는 리플리컨트 생산 기술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이첼'이라는 리플리컨트가 놀랍게도 임신을 했습니다. 이 정보를 얻은 웰레스는 리플리컨트 비서를 시켜서 '레이첼'과 '데카드' 형사의 아들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웰레스는 2세를 낳을 수 있는 리플리컨트를 만들어서 생산량의 한계가 있던 리플리컨트의 한계를 돌파하고 그 리플리컨트를 노예로 만들어서 우주 정복에 나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키웁니다. 그러나 이는 리플리컨트에게는 악몽입니다. 한편, K는 리플리컨트가 자식을 낳은 사실을 상관으로부터 철저히 비밀로 붙이고 그 아들을 찾아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렇게 K는 아들을 찾다가 자신의 유일한 기억이 만들어진 기억이 아닌 누군가의 실제 기억임을 알게되고 그 기억 속 현장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데커드 형사의 아들임을 알게됩니다. 이후 영화는 격조 높고 깊이 있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가득한 비주얼과 묵직하고 어두운 사운드

1982년 제작된 <블레이드 러너>는 스토리, 비주얼 그리고 배경음악의 3박자가 잘 맞았던 SF 명작입니다. 이런 명작의 바통을 이어 받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잘해야 본전이죠. 그러나 놀랍게도 이 영화는 그 괘를 같이하면서도 '드니 빌뇌브'감독 자신의 색채를 아주 잘 투영했습니다.

먼저 비주얼은 전작이 네온싸인 가득하고 현란한 미래 도시 세계를 그렸다면 이번 <블레이드 러너 2048>은 네온싸인 가득한 현란한 미래 도시 풍경과 동시에 기하학 조형미를 가득 담아 놓았습니다. 보고 있으면 사진공모전 건축분야 수상작들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건물과 조형성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물빛을 이용해서 거부 웰레스의 사무실을 재현한 미장센은 아주 출중합니다. 마치 상업 영화가 아닌 예술 영화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여기에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인공지능이 만든 홀로그램인 조이와 비행이 가능한 경찰차들을 배치해서 미래세계의 풍경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하드드라이브 돌아가는 소리나 CRT 모니터 등을 배치해서 아날로그 적인 감성도 함께 녹였습니다. 

반젤리스의 전자 사운드의 배경음악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대신 묵직한 사운드를 입혔습니다. 저는 처음에 쿵쿵 끼이익 거리는 기계음과 듣기 거북스러운 묵직한 소리들이 영화 속 배경 소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입힌 사운드더군요. 이 기이하고 음침한 사운드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어둡게 만듭니다. 

빌뇌브 감독의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도 시종일관 듣기 거북한 묵직한 소리에 침울한 분위기가 가득했는데 그걸 또 다시 이 영화에 재현했습니다. 이 사운드는 호불호가 강합니다. 영화적 분위기를 이끄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2시간 30분 동안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2시간 이상 별거 아닌 장면에도 긴장하게 됩니다. 


더 깊어진 가짜와 진짜의 이야기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진짜와 가짜의 이야기였습니다. 리플리컨트라는 복제인간을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 영화였죠. 이 영화는 훗날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 시리즈'에 영향을 줍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8>은 리플리컨트임을 인지한 K를 통해서 진짜와 가짜의 이야기를 합니다. 가상 현실에서 사는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인공지능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를 투입해서 이야기를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K는 자신이 껍데기라는 놀림을 당해도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인간의 복제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자존감 없이 사는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나 인간 상관에게 묻습니다. "리플리컨트가 자식을 낳으면 우리도 영혼이 있지 않을까요?"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가장 큰 차이는 태어났느냐 만들어졌느냐의 차이입니다. 인간은 부모의 유전자를 이어 받아서 태어나지만 리플리컨트는 DNA 조작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인간과 달리 유년 시절이 없고 유년 시절 기억도 심어진 기억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태어난 존재라면? K는 자신이 데카드 형사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평점심을 잃습니다. 로봇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존재는 또 있습니다. K가 유일하게 기대는 존재인 조이입니다. 조이는 가상현실로 만든 AI 홀로그램입니다. 집에 오면 조이가 음식을 차리고 K에게 위안을 줍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K를 통해서 진짜인 인간과 또 하나의 가짜인 조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K의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원본과 복제가 무의미해진 디지털 시대의 원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DNA 염기서열인 A,C,G,T로 만들어진 인간과 0과 1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체 둘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요? 껍데기만 인간과 닮은 K, 껍데기가 없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조이. 영화는 이 인간, 인공지능, 복제인간를 병치해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외에도 디지털 시대의 자료 보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수 많은 자료를 디지털 저장매체에 저장을 합니다. 아주 빠르고 간편해서 좋죠. 문제는 이 디지털 저장매체는 한 번 깨지면 복구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정전이 되면 다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자료원에서도 디지털 영화들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선한 의지는 동일하다

인공지능체, 복제인간(리플리컨트)는 인간을 재현한 복제 존재입니다. 인공지능체는 인간의 정신을 복제했고 리플리컨트는 인간의 하드웨어를 증가시켰습니다.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체가 물리적인 존재로 업그레이드되는 모습과 동시에 리플리컨트인 K가 자신이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점점 인간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아버지 인간을 닮아가면서 동시에 좌절하는 모습은 무척 안쓰럽고 측은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잔혹성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편의를 위해서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를 만드는 인간들. 리플리컨트와 인공지능체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정체성인 '선한 의지'까지 닮았습니다. 인류 진화의 발전이 기술로만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거부 웰레스와 달리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서 인류가 진화함을 증명합니다. 


대중성은 낮아지고 예술성은 높아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국내외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는 영화이자 해외 많은 나라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먼저 액션 장면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SF영화하면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을 예상하는데 이 영화는 전작보다 액션이 줄었습니다. 대규모 액션신도 없습니다. 볼거리는 스모그 가득한 미래 세계의 암울한 풍경과 뛰어난 홀로그램 CG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다가 나가는 커플도 있더군요. 

오로지 깊이가 더 깊어진 스토리와 조형미가 가득한 미장센 밖에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개봉 스크린수도 600개 내외로 중간 규모의 개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화광이나 평론가들에게는 극찬을 할 영화가 확실합니다. 전작의 아우라를 계승 발전 시키면서도 빌뇌브 감독의 손길도 잘 녹였습니다. 

조용히 혼자 볼만한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대중성은 낮추고 예술성은 끌어 올린 SF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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