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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을 담은 놀라운 영화 분노

by 썬도그 2017.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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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다양한 감정을 안고 영화관을 나섭니다. 통속적인 멜로 영화를 보고 나오면 훈훈함과 따뜻한 감정을 안고 나오고 청량 음료같은 화려한 액션이 가득한 액션 영화를 보고 나오면 함박 웃음과 활력을 안고 나옵니다. 인간의 내면을 담은 뛰어난 드라마를 보면 감동 또는 슬픔의 눈물을 안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정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슬픔인가? 벅찬 감동인가? 분노인가? 한숨인가? 어떤 단어로도 이 감정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벅찼습니다. 내 안에 감정의 그릇에 다 담지 못한 감정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바닷가에서 절규하는 소녀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본 느낌입니다. 

그 소녀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그리고 내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요?


상당히 놀랍고 독특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연출

 영화 <분노>는 상당히 놀랍고 독특하고 짜임새 있는 연출과 일본 톱스타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뭉친 꽤 좋은 영화입니다. 이는 스토리부터가 아주 독특합니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분노>는 시작하자마자 한 부부가 잔혹하게 살해된 살인 현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 3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출발합니다. 홍등가에 있는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 분)을 고향으로 데리고 온 요헤이(와타나베 켄 분)는 마음이 착찹합니다. 그러나 딸 앞에서 전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잘 압니다! 작은 어촌이라서 작은 소문도 크게 퍼지고 다 안다는 사실을요. 딸의 그런 행실에 마을 사람들이 앞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손가락질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런 부초 같은 딸을 출신이 불분명하지만 요헤이의 일을 돕는 알바생 테츠야(마츠야마 켄이지 분)이 잡아줍니다. 아이코와 테츠야는 그렇게 급속도로 친해지더니 연인이 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오키나와에 사는 여고생 이야기입니다. 이즈미(히로세 스즈 분)은 엄마와 함께 오키나와로 이사를 와서 같은 반 남학생과 친하게 지냅니다. 같은 반 남학생 타츠야의 보트를 타고 근처 무인도에 가까운 섬에 도착해서 혼자 섬을 돌아 다니다가 폐가에서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 분)을 보게 됩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이즈미에게 타나카는 자신을 봤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게이 커플인 유마(츠마부키 사토시 분)과 나오토(아야노 고 분)의 이야기입니다. 나오토는 20대 후반 청년으로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삽니다. 반면 유마는 게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당당함에 나오토는 빠져듭니다.


이 3개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과거가 명확하지 않고 신분이 명확하지 않는 3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오이의 연인인 테츠야는 어디서 뭘 하다가 작은 어촌에 왔는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무인도 같은 섬에 사는 타나카도 어디서 살다가 어떻게 섬에 기거하게 되었는지 남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게이인 나오토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츠야, 타나카, 나오토는 과거가 의뭉스러운 사내들입니다. 영화 <분노>는 이 3명의 의뭉스러운 사내를 용의자로 내세우면서 관객들에게 과연 이 3명 중에 누가 살인범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이 3명의 용의자 중에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이런 궁금증은 영화 후반까지 길게 이어가지만 중반 이후로 이 3명이 구축한 스토리가 힘을 얻으면서 3명의 용의자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알게 됩니다.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나오토와 사채 빛에 쫓겨서 숨어사는 테츠야 그리고 왜 숨어 사는 지를 알리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타나카. 이들은 과거가 의뭉스러울 뿐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소심하지만 바른디 바른 청년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분노>는 과거를 숨기고 살지만 평범한 청년들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배치합니다. 테츠야에게는 아이코를 나오토에게는 유마가 타나카에게는 그를 따르는 이즈미를 배치합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던 3명의 용의자에 경찰의 새로운 몽타주 발표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믿음과 불신 그리고 분노 (약간의 스포가 있어요)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보실 분들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세요>

불신의 시대입니다. 특히 요즘 같이 진실과 거짓이 혼재하고 있는 시대에는 불신에서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정도로 불신은 현대인의 병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불신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불신의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누군가는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에는 근거가 있는 믿음도 있고 맹목적 믿음도 있습니다. 

1년 전 살인사건 용의자의 성형한 후를 담은 새로운 몽타주가 방송에 나오자 의뭉스러운 3명의 청년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애인 또는 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아이코는 테츠야를 유마는 나오토를 의심합니다. 반대로 니편이 되어줄께라는 말로 타나카를 더 깊숙히 믿어버린 타츠야라는 고등학생도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홍등가에 있는 딸 아이코를 고향으로 데리고 온 아버지 요헤이는 딸에게 잔소리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딸을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과거가 의뭉스럽습니다. TV 방송에 새로운 용의자의 몽타주가 뜨자 딸의 애인인 테츠야와 닮은 몽타주에 크게 놀랍니다.  딸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요헤이는 딸의 애인인 테츠야의 과거를 찾으러 갑니다. 이런 행동은 딸을 위하는 것 같지만 딸에 대한 믿음이 깊지 못한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딸의 애인을 의심한 것을 들킨 요헤이는 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딸은 이미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 딸이 마을에 붙은 용의자 몽타주를 봅니다. 새로운 몽타주를 보고 아빠의 의견과 달리 테츠야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넘어갑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던 아이코가 테츠야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처음에는 테츠와와 몽타주가 닮지 않았다던 아이코가 왜 신고를 했을까요? 

전 이 장면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은 마음이 변하면 인식도 변하게 됩니다. 매일 반갑게 만나던 친한 친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의심은 의심을 낳고 점점 큰 의심은 의식까지 변화시킵니다. 즉 불신이 커지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을 용의자로 보이게 합니다. 

의처증, 의부증이 다 그런 것 아닐까요? 믿음이 불신이 되면 닮지 않은 사람도 닮게 만드는 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습속입니다. 이런 부분을 영화 <분노>는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해도 소용없는 것들에 대한 분노

믿음에 대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불신이 되고 의심이 되면 의심의 당사자는 심한 모멸감과 분노가 차오르게 됩니다. "믿었는데 어떻게 날 의심해"라는 분노는 믿었던 사람에게 향하기도 하지만 반은 자기 자신으로 향합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기에 믿었던 사람이 나를 의심할까? 영화 <분노>는 믿음이 깨진 그 후유증을 잔뜩 풀어냅니다. 

특히 자신은 소수자들에게도 편견 없이 대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막상 안 좋은 소문과 자신의 안위까지 위협을 받게되자 사랑하던 사람 믿었던 사람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 의심은 뒷골목에서 웅크리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배신이고 그 배신감은 분노가 됩니다. 그 분노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자신 안에서 소화를 합니다. 배출하지 못한 화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이즈미를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 타츠야는 이즈미와 함께 오키나와 시내에 나왔다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시위대를 만납니다. 타츠야는 그런 시위대에게 쓴소리를 합니다 "저렇게 항의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문장 중 하나이죠. 그렇게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이 말은 타츠야에게 되돌아옵니다. 

이렇게 한다고 그렇게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오키나와 안에 있는 미군기지를 반환하라고 한다고 반환되겠어? 내 분노를 당사자에게 퍼붓는다고 사람이 바뀌겠어? 어떻게 보면 순응주의자의 못난 행동이지만 정말로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거대한 갑 앞에서 항의 한다고 해서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것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좌절합니다. 그 좌절의 에너지는 분노가 되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향하거나 착한 사람은 끙끙 앓다가 화병이 생깁니다. 

영화 <분노>는 다양한 분노 중에 해도 안되는 것들에 대한 좌절에 대한 분노와 함께 자신의 컴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에 대한 분노도 등장합니다. 별거 아닌 일에 크게 화를 내고 분노를 내는 사람들이 있죠. 그건 그 사람의 컴플렉스입니다. 물론, 저도 가끔 제가 너무 화를 내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다가 내가 이쪽에 대한 상처가 깊구나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러나 가장 주된 분노는 해도 안되는 것에 대한 분노,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동성애, 사채 빚)에 대한 분노가 주된 분노로 담깁니다. 낙인이 찍힌 삶을 사는 사람들, 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세상,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하는 울분 섞인 세상의 분노가 자박자박하게 담깁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가에서 아즈미가 세상을 향애 울음 소리 같은 큰 소리를 치는 장면은 내 안에 있던 감정의 둑이 무너져 내리게 했습니다. 아즈미의 울분과 다른 주인공들이 느낀 울분과 괴로움과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터져나온 수많은 감정들이 바닷 위로 쏟아져 나옵니다. 말하지 못한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거대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내 안에 삭혀 두고 묻어 두었던 그 낡고 오래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수 많은 침전되어 있던 감정들이 아즈미의 굉음과 같은 울부짖음과 함께 쏟아져 나옵니다.

영화 <분노>는 정말 독특한 경험을 해준 영화입니다.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을 경험해주게 하는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분노만 담기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크게 분노하는 사람도 등장하지만 분노해도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안으로 삭히고 숙명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도 담깁니다. 분노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분노의 반댓말은 없습니다. 분노는 잔잔하다가 크게 출렁이는 존재입니다. 지진처럼 작은 분노라는 에너지가  쌓이다가 약간의 충격으로 큰 폭발이 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분노들의 치유제는 믿음입니다. 날 무시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노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분노의 에너지가 해소되거나 축소됩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면 쌓인 분노가 아닌 거대한 활화산 같은 분노가 터집니다. 



정말 좋은 영화 <분노>

영화 <분노>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입니다. 상당히 강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애둘러 표현하지 않고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따라서 강한 표현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 이 영화 추천합니다. 영화란 색다른 세상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간접 경험재인데 그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영화입니다. 

3개의 공간, 3쌍의 커플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지만 마치 3개의 공간이 하나로 엮인듯한 영특한 편집과 음악과 대사가 3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여기에 일본의 탑 스타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모두 단독 주연을 할 정도로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고 인기도 높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인셉션의 와타나베 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모리야마 미라이', 데스노트의 '마츠야마 켄이치', 요즘 크게 뜨고 있는 일본의 국민 동생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막내로 나온 '히로세 스즈',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의 '미야자키 아오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국민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합니다. 이 모든 배우가 주연으로 그려집니다. 

호불호가 갈릴 것이 예상되지만 저처럼 영화 후반 다양한 감정의 폭풍을 경험한다면 이 영화는 참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스릴러로 시작했다가 우리안의 분노를 돌아보게 하는 꽤 좋은 영화이지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분노의 울부짖음 속에 침전된 감정들을 길어 올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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