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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저주받은 걸작이 아닌 그냥 좀 잘 만든 영화 불한당

by 썬도그 2017.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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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흘러 지나가지만 글은 머물 수 있습니다. 그 글이 디지털 공간에 쓴 글이라면 영원히 보관될 수 있습니다. 그 글이 SNS라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매체라면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불한당>은 감독 변성현이 SNS에 쓴 비하성 발언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고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화라는 평에도 이 영화를 보이콧했습니다. 

그렇게 잊혀지는 것 같았지만 감독의 구설수로 묻히기엔 꽤 좋은 영화라는 평들이 계속 스물스물 나왔습니다.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소리까지 들리더군요. 정말 그냥 안 보고 넘기기엔 아까운 영화일까?라는 궁금증에 <불한당>을 찾아봤습니다.


흔한 소재인 잠입 수사물인 영화 <불한당>

영화 <불한당>은 <무간도>로 강렬하게 인식되었던 잠입 수사물입니다. 특히 감옥에 있는 악당에게 접근해서 범죄 조직의 정보를 캐내는 모습은 최근에 개봉한 <프리즌>이나 <신세계>와 흡사합니다. 이런 기시감 높은 스토리는 이 영화의 약점입니다. 이미 뻔한 스토리 진행이 예정되어 있는 듯하고 이미 본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한당>은 이런 기시감을 출소 후와 출소 전이라는 시간과 감옥 밖, 감옥 안이라는 2개의 시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지루함을 날립니다. 여기에 스타일리쉬한 영상 편집은 지루함과 고루함을 날립니다.


조현수(임시완 분)은 마약 조직의 중간 보스인 한재호(설경구 분)에 접근하기 위해 교도소에 잠입합니다. 교도소에서 몇 건의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통해서 조현수는 한재호의 생명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이런 조현수의 능력을 지켜보던 한재호는 조현수를 동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끈끈한 형동생 관계는 출소 후에도 이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고병철(이경영 분)이 이끄는 마약 조직의 중간 간부가 됩니다.


조현수를 통해서 잠입 수사를 계획한 사람은 똘끼와 당참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찰 간부 천인숙(전혜진 분)입니다. 이런 잠입 수사는 기간도 길고 위험성도 무척 높습니다. 무엇보다 교도소라는 곳은 자유롭게 지시를 주고 받기 어려운 폐쇄된 공간이라서 위험성은 더 높습니다. 만약 조현수가 경찰이라는 신분이 발각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현수가 교도소 잠입을 결정한 이유는 어머니 때문입니다. 

신장병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를 보장하겠다는 천인숙 팀장의 보상을 믿고 어려운 결정을 합니다. 영화 <불한당>은 잡입 수사물답게 주인공 조현수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한재호에게 접근하는데는 성공했는데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조현수는 세상이 무너집니다. 이런 고통을 천인숙 팀장은 공들인 작전이라면서 어머니 장례식 참석도 못하게 합니다. 마치 경찰이 조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니 조폭보다 못합니다. 조현수의 고통을 한재호가 보듬어주고 조현수는 한재호의 개인적인 매력에 빠집니다. 


영화 <불한당>은 이 갈등 즉 조현수가 경찰과 마약 조폭 중간 보스인 한재호 사이의 갈등을 영화 끝까지 끌고 가는 흥미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도 궁금하지만 조폭 한재호와 경찰 천인숙이 선과 악의 구분이 거의 사라져버려서 누구의 편에도 서기 어려운 모습을 잘 담고 있고 이 조현수의 갈등을 관객까지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무척 좋은 영화입니다. 여기에 스타일이 살아 있는 미장센도 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에 의뭉스러운 한재호의 비열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설경구의 뛰어난 연기와 전혜진의 연기도 이 영화의 박력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임시완의 연기는 드라마 <미생>에서 느끼지 못한 강인함까지 더해서 가장 인상 깊은 연기를 합니다. 아이돌 그룹 가수 출신 배우라고 꼬리표가 사라져 버린 임시완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임시완의 연기는 극찬을 받아야 할 정도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연출도 꽤 괜찮은 편입니다. 출소 전 교도소와 출소 후 현재의 시점을 교차 편집해서 한재호와 조현수 그리고 천인숙이라는 3명의 인물의 갈등과 덫을 통해서 3명의 인물의 의뭉스러움도 꽤 잘 담고 있습니다. 오래만에 보는 잘 만든 한국영화입니다만 걸작 반열에 오르기엔 아쉬움도 많습니다. 먼저 기시감이 드는 스토리 또는 흔한 소재가 되어버린 잠입 수사물이라는 한계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보면 빅재미는 없습니다. 또한, 숨겨 놓은 중요 장면을 숨겨 놓고 후반에 보여주는 것은 단순 흥미를 유발할 뿐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닙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사라진 세상, 누굴 믿어야 할 지 모르는 세상에서 부초 같이 흐느끼고 흔들리는 조현수를 통해서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메시지는 꽤 좋지만 깔끔한 느낌은 없습니다. 이는 조현수 뿐이 아닙니다. 한재호도 조직의 2인자이지만 언제 뒤통수 맞을 지 모르는 세상에서 피곤함을 느끼고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한재호에게도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초점을 잃어버린 눈동자를 한 2명의 주인공을 통해서 바라본 더러운 세상은 피곤과 절망의 연속입니다.

흔한 스토리, 기시감이 드는 스토리라는 약점에도 괜찮은 연출력과 임시완, 설경구, 전혜진, 김희원의 연기라는 엔진이 붙어서 매끈한 스포츠카를 탄 느낌이 드는 영화 <불한당>입니다. 그러나 걸작 반열에 오르기엔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너무 서로를 속이려고만 하다 보니 조현수라는 인물 조차도 의심을 하고 보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다 보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의 깊이가 깊지가 못합니다. 

잘 만든 한국영화입니다. 그러나 걸작은 아닙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저열한 한국 영화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기저효과로 더 잘나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예전엔 이런 한국 영화가 수시로 나왔는데 요즘은 가끔 나오다 보니 더 열광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볼만한 영화입니다. 괜찮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꼭 보라고 말은 하기 어렵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기시감이 드는 스토리, 그러나 영민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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