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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먹고사니즘과 내새끼리즘을 담은 영화 보통사람

by 썬도그 2017.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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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통사람입니다" 87년 대선에 나온 민정당(현 자유한국당 전신) 대선 후보인 '노태우'후보의 구호는 참 소박했습니다. 
나! 보통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의 친구이자 독재 정권을 탄생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노태우. 그러나 그는 평범함을 강조하는 보통사람이라는 수사를 활용해서 대선에서 1위를 차지하고 대통령이 됩니다. 87년 대선은 민주 세력에게 큰 타격을 줍니다. 동시에 시대의 변화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비록 독재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권이지만 국민들의 무서움을 알아서인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조금씩 사회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두 재야 세력이 분열이 가장 큽니다. 결선 투표제가 없는 한국에서 노태우는 야권 분열로 쉽게 당선을 합니다. 박근혜 최순실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촛불을 든 40,50대 분들 중에는 1987년 6.10 민주 항쟁을 많이 떠올렸을 겁니다. 그 뜨거웠던 1987년 6월의 함성을 2016년 겨울 다시 느꼈으니까요. 그 뜨거운 1987년 6월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바로 <보통사람>입니다. 


1987년 소시민으로 살던 주인공이 공작 정치와 만나다

시대 배경은 1987년입니다. 1987년은 80년대에서도 가장 뜨거웠던 해였습니다. 6.10 민주 항쟁이 있던 해이기도 했지만 민주화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인 형사 성진(손현주 분)은 장애가 있는 아들과 청각장애를 가진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발발이라는 연쇄 성폭행범을 잡지 못해서 안달복달 못하는 상부의 지시로 그날도 발발이를 검거 하는 듯 했지만 신참 형사의 실수로 눈 앞에서 놓칩니다. 대신 피 묻은 바지를 맡긴 손님을 의심스러워한 세탁소 사장의 신고로 지능이 떨어지는 태성(조달환 분)을 잡아 넣습니다. 


위에서는 태성을 발발이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하고 성진은 80년대가 흔히 그랬듯 위에서 내리는 지시대로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한 행동에 지적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군대에서 만난 추 기자(김상호 분)입니다. 언론사 열혈 기자로 정의를 위해서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 대쪽 같은 기자입니다. 형님 같이 모시는 추 기자가 발발이 사건 조작을 알아채고 채근하자 태성은 짜증을 내면서도 옳지 못함을 아는지 발발이 진범을 잡습니다. 그렇게 태성은 조용히 풀려날 것처럼 보였지만 태성은 구타에 얼떨결에 살인 자백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태성을 연쇄살인범으로 만드는 공작을 펼칩니다. 성진은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서 지시대로 태성을 연쇄살인범으로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태성을 조사하다 보니 연쇄살인을 하려면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운전면허가 없는 태성이 범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형님인 추 기자가 연쇄 살인은 공작이라고 알려주면서 성진은 고민하게 됩니다. 


태성을 연쇄살인범으로 만들면 차와 장애가 있는 아들을 고칠 수 있고 2층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겁한 행동이고 옳은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몇 번 비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는 이 나라의 삶의 분위기로 보면 크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속물 근성을 비난하지만 정작 내가 속물로 사는 것은 잘 모릅니다. 

더구나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속물이면 자신이 속물인 줄도 모릅니다. 그렇게 속물 덩어리인 태성은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부성애를 앞세워서 공작 정치의 앞잡이가 됩니다. 그러나 큰 사건이 터지고 형사 성진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먹고사니즘과 내새끼리즘의 화신, 형사 성진

흔히들 그럽니다. 부정한 일을 해도 먹고 살려고 했다고 변명을 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요즘도 이 말은 구차한 변명이지만 뭘 해도 노력만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었던 80년대는 더 구차한 변명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부정한 일은 물론 궃은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내 새끼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내새끼리즘이 추가되면 부정한 일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한국을 대표로 하는 2가지 생활 철학인 먹고사니즘과 내새끼리즘의 화신이 형사 성진입니다. 문제는 먹고 살기 위해 남을 등쳐먹고 내 새끼를 위한다면서 남의 새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형사 성진은 합니다. 새끼를 위해서 합니다. 이에 추 기자가 그런 행동을 막아섭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성진을 막아섭니다. 니가 뭔데라는 성진의 대듬에 추 기자는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권력 있는 놈들이 못된 행동, 추한 행동 한다고 똑같이 따라하지 말고 보통 사람처럼 살라고 다그칩니다. 여기서 '보통 사람'은 상식이 통하는 보통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죠. 


영화 <보통사람>은 소시민인 형사 성진을 통해서 1987년의 온기와 한기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귀한 바나나를 아내와 아들에게 양보하는 월급쟁이 아빠의 한 없는 희생정신을 담으면서도 동시에 공작 정치에 참여하는 형사 성진을 담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공간, 같은 나라이지만 온기와 한기가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옵니다. 성진은 그렇게 야누스 같은 삶을 살면서 괴물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이 영화 왜 흥행에 참패를 했을까?

느닷없는 소리인 것을 알지만 바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스토리나 1987년 6.10 민주 항쟁 무렵의 사회 분위기와 소시민의 삶 속에서 공작 정치의 한기를 그런대로 잘 담은 이 <보통사람>은 흥행에 참패를 했습니다. 흥행이라는 것이 작품의 짜임새와 별 상관 없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100억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이고 배우들도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연기도 꽤 좋았던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를 했습니다. 손익 분기점에 한 참 모자른 38만 명만 봤습니다. 

영화 자체는 이렇게 흥행에 참패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꽤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안 봐도 본 듯한 기시감이 가득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저도 보려다가 또 정치 드라마야?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게 되더군요. 2천년 대 초반에는 조폭 영화만 나오더니 요즘은 세상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정치 드라마가 계속 나옵니다. <내부자들>에 이어서 <더킹>이 정치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묘사 했습니다. 그런데 또 정치 드라마를 들고 나오다니 보지도 않고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더구나 박근혜 탄핵이라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같은 일을 겪다 보니 정치 드라마가 현실보다 못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최근 개봉한 <특별시민>도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이 정치보다 더 막장이다 보니 정치 드라마의 비장함이 사라졌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정치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좀 더 가벼운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 <보통사람>은 시종일관 무거운 톤을 유지합니다. 영화는 한 형사를 통해서 80년대의 무거운 분위기를 재현을 했지만 그 재현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지루한 면이 많습니다. 물론, 20,30대 분들은 그 분위기 잘 모를 수 있습니다만 이미 다른 영화들을 통해서 그 80년대의 공기를 느껴봤기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스토리도 약간 성긴 면이 있습니다. 좀 더 밀착도가 높게 그렸으면 좋으련만 단단하지 못하고 물렁거림이 많이 보이네요. 
그럼에도 전 이 영화가 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밀도 있게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87년 6월 10일 민주항쟁으로 향해가는 길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보통사람>

조달환의 영화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오고 많은 장면에 나오지 않지만 연기 하나 하나가 '연기의 신'이 보여주는 연기 같았습니다. 제가 연기에 잘 감탄하지 않는데 조달환의 연기 보고 감탄에 감탄을 계속 했네요. 정말 연기 잘합니다. 얼마나 잘하는 지 연기 잘하는 손현주를 잡아 먹을 정도입니다. 

어눌한 전라도 말투는 마치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조달환 때문이라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손현주, 김상호야 워낙 연기를 잘 하니 그렇다고 쳐도 조달환을 다시 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반면 보는 내내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는 장혁의 연기는 아쉽고 아쉽네요. 추노의 연기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시종일관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색하네요. 


<보통사람>의 시대에 보통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80년대 분위기 재현도 꽤 잘되었고 그 당시의 보통 사람의 삶의 풍경도 잘 담았습니다. 여기에 서슬퍼른 공안정국의 날이 잔뜩 선 모습도 잘 담았습니다. 그러나 2개의 모습을 잘 섞어내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아무리 아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너무 쉽게 공작에 휘말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을 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결말도 똑뿌러지지도 않고 6.10 민주항쟁으로 물타기를 하는 형태로 끝이 납니다. 

주인공의 반성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반성 대신 복수만 보입니다. 이러다 보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의 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재미 없는 영화들의 특징은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는 것인데 이 영화도 그런 구석이 보이네요. 그럼에도 87년 공안 정국의 분위기를 제대로 잘 담았습니다. 또한, 당시 보통 사람들의 비겁함도 잘 재현했습니다. 


보통사람이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는 내용의 영화들은 많습니다. 이 영화 <보통사람>도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다른 영화와 달리 비열한 보통사람의 속물 같은 근성을 담았습니다. 이게 거북할 수 있지만 우리 안의 속물 근성을 제대로 담았습니다. 이점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안의 '먹고사니즘'과 '내새끼리즘'이 몰고 온 파국이라는 시선으로 보면 이 영화는 꽤 괜찮지만  보통의 대중의 시선으로 보면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습니다. 지루함도 많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이야기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같아서 아쉬움도 많네요. 내새끼리즘을 시대정신과 연결하는 고리가 약한 점이 아쉽지만 배우들의 연기나 80년대 분위기를 그런대로 잘 담은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내새끼리즘과 시대정신의 불협화음.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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