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거대한 발전을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문자의 발명이었습니다. 문자가 없던 인류는 말로 자신의 경험을 자식과 후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이 휘발성이 강해서 잘못 전달되기도 하지만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이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자가 발명된 후 먹이를 잡는 방법, 곡식을 키우는 방법 등등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문자로 기록했고 후손들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상의 지혜를 자신의 삶에 녹였습니다.
이게 바로 교육이죠.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삶의 지혜와 지식을 주입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내가 해봤는데 이건 좋고 이건 안 좋아! 라고 적어 놓은 세상 설명서가 바로 교육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일까요? 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이 아닌 남을 밟고 올라가는 도구, 경쟁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참 서글픈 풍경이죠.
교육에 대한 발칙한 예술의 질문! 현대미술관 전시회 레슨 제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층 2전시실에서는 2017년 3월 31일부터 6월 18일까지 <레슨 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교육을 주세로 한 현대미술 전시회입니다. 현대미술이란 것이 꽤 어렵다면 어렵지만 삶을 돌아보거나 성찰하거나 현 시대에 대한 준엄한 또는 가벼운 질문 또는 삐딱함을 가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개념 미술이다 뭐다 해서 어려운 것도 분명 있긴 하지만 쉽게 보려면 또 한 없이 쉽게 봐지는 것인 현대미술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회 <레슨 제로>는 여러 현대 사회의 이슈 중에 교육을 주제로 다양한 질문을 하는 전시회입니다.
'교육'은 사회 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해서 국가가 국민을 계도하고 계몽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사회 적응과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이 대부분이죠. 문제는 이런 교육을 정권 호위용으로 가르치려는 모습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만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이렇게 가르치라고 해서 학교가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친일 국정교과서 파동이 그 예이죠.
<우리가 되는 방법. 2011. 이완>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면 많은 저울이 바닥에 촘촘하게 도열하고 있습니다. 마치 과천현대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저울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연상되네요.
이 작품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뭔가 모를 우리 주변을 차지하고 있는 일상용품과 소비재를 저울에 올려 놓았는데 저울들이 똑같이 5.06kg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저울 위에 올려져 있는 오브제들을 보면 완전한 상태가 아닌 잘려 있는 일상재들이 많습니다. 작가는 60개의 저울 위에 올려 놓을 오브제 60개를 주변에서 구합니다. 그리고 그 오브제를 자르고 붙여서 한 개의 오브제 무게를 5.06kg으로 맞춥니다. 느낌 오시나요?
사람마다 DNA와 인생과 이름이 다르듯 우리는 독립된 개체입니다. 그러나 교육은 모두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 똑같은 삶을 추구하라고 다그칩니다. 모습이 다 다른데 똑같이 생각하라고 강요하죠. 이런 획일화된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작품입니다. 아마 5.06kg이 가르키는 저 무게는 우리의 똑같은 생각이겠네요.
실제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번 나와 같은 생각을 해 달라는 강요를 받고 삽니다. 줏대 없고 생각을 깊게 하고 살지 않으면 남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고 살죠. 그러면서 획일화 된 생각을 하고 살게 됩니다. 그게 왜 옳은지 묻고 따지기 보다는 남이 좋다니까 국가가 하라니까 무조건 따르는 행동들이 바도 저 5.06kg라는 획일화 된 생각 아닐까요?
우리 얼굴이 다 다르듯 우리 생각도 다 달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워낙 판단할 것도 생각할 도 많은 정보 과잉의 시대가 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점점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경향이 되어가네요. 교육이라는 것도 그렇죠. 정답이 없는 이슈도 정답이라고 달달 외우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획일화된 교육에 대한 멋진 비꼼이네요
<블로썸32. 2013. 팡 후이(중국)>
입구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외계인 같은 색을 입은 소녀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중국 작가 '팡 후이'의 작품입니다. 현대미술계에서 중국 시장이 커지고 있고 중국 작가들이 뜨고 있습니다. 중국 작가들은 색을 과감하게 사용합니다. 이 작품도 사람 얼굴을 녹색으로 칠하는 과감성이 돋보입니다.
이 녹색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인가? 외계인인가? 하는 혼돈이 머리속을 강타합니다. 작가는 어린 소녀의 순수함과 함께 사춘기의 혼란스러움을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희망도 많은 나이, 그 깊이 만큼 괴로움도 혼돈도 많은 나이입니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김범>
교육은 사람과 동물과 같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말을 들을 수 없는 식물이나 돌맹이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향수'라는 시로 유명한 정지용 시를 돌에게 알려주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돌이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말을 못 알아듣는 말의 부재가 드러난 돌을 통해서 교육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영상 작품으로 무려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작품입니다.
<레슨 제로 관람법 , 김민애>
요즘 인터렉티브한 작품들이 늘고 있습니다. 나 작품이야! 너 관람객은 그냥 보고 가!라는 식의 주입식 또는 일방적인 시선의 제공을 넘어서 관객이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자로 투입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그런 작품 중 하나 입니다. 전시회장에 놓여 있는 A4 용지에 적힌 글대로 따라하라고 권유합니다.
전 이걸 골랐네요. 영상물을 보고 눈 마사지했습니다. 미션 완료
<소녀 연기, 2003. 오형근>
이 작품은 참 많이 보게 되네요. 큰 전시회에 꼭 들어가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오형근 작가는 우리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서 그들을 관찰하게 합니다.
오형근 작가는 소녀들을 촬영하기 위해서 서 있으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소녀들은 소녀를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느낍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고 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고 이목을 의식했는지 소녀가 소녀 이미지를 연기합니다. 또한, 소녀의 혼란스러운 나이, 밝은 홍조와 두려움과 싱그러움의 혼합된 느낌을 담습니다.
이 작품 말고도 아줌마라는 사진 시리즈도 아줌마라는 제 3의 성을 담은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무명 학생 작가들의 흔적, 2001. 양혜규>
이 작품은 아주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동글뱅이이 가득하고 밑줄이 쫙~~ 모르시겠어요? 돼지꼬리 땡땡~~
이러면 좀 알겠죠. 우리가 교과서나 참고서에 밑줄치고 동글뱅이를 한 그 흔적들입니다. 책과 참고서에서 인쇄 활자를 지우고 그 위에 칠한 필기와 공부의 흔적만 담았습니다. 작가는 폐품으로 버려진 참고서나 교과서에서 학생들이 칠한 그 무수한 공부 흔적만 추출했습니다.
<교과서 (철수와 영희), 2006~2008. 오석근>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이 이 교과서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은 60~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 주인공인 철수와 영희가 바른 생활 세상을 뛰쳐 나와서 리얼월드로 나온 모습을 형상화 했습니다. 작가는 주변 지인과 친구들의 유년 시절 기억을 철수와 영희를 통해 재현했습니다.
교과서에 담겨 있지 않는 세상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잘 담은 작품입니다.
<Who Am We?. 2000. 서도호>
요즘 핫한 작가 중 한명인 서도호 작가의 Who Am We?라는 작품입니다. 거대한 벽이 서 있는데 떨어져서 보면 그냥 하얀 벽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수 많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이 얼굴들은 졸업앨범에서 추출한 사진들입니다. 이 작품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징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멀리서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점과 같은 군중입니다. 개성이고 이름이고 얼굴이고 뭐고 관심도 없는 그냥 하나의 군중이죠.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개성이 또렷하고 생긴게 다 다른 개성이 들어간 인간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교육이 몰개성화를 지향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 같은 학생들을 매년 찍어냅니다. 불합격 판정 받은 학생은 학교라는 공장에서 버려집니다. 그럼 사회가 그들을 보듬어 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포용력이 넓은 사회가 아닙니다. 익명의 학생들의 이미지를 활용한 재미있고 멋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Who Am We?라ㅐ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느끼신 분이 있다면 전형적인 한국 교육을 받은 분입니다.
<창의적 체험 II. 2017. 임윤경>
위 영상물의 오른쪽은 선생님입니다. 먼저 선생님이 평소처럼 강의를 합니다. 그걸 보고 왼쪽 학생이 따라합니다. 선생님의 화법, 말투, 몸짓을 따라하는 흉내내기를 합니다. 버릇 없는 행동이라고요? 그런데 교육이라는 것이 흉내내기부터 시작했잖아요. 아기가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고 같이 웃습니다. 웃음을 학습하는 과정이죠. 어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배웁니다. 교육의 근본적인 행동도 흉내내기입니다. 이 흉내내기를 통해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의 괴리감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정교과서 주식회사 작품도 재미있습니다. 지금의 40,50대 분들이 배운 국정교과서를 전시하고 있네요.
<당신의 미래를 말해드립니다. 2011. 타카유키 야마모토>
이 작품은 세계 여러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예술 워크숍을 촬영한 영상물입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부스를 제작하고 점쟁이가 됩니다. 미래를 알고 싶은 의뢰인이 오면 아이들은 의뢰자의 미래를 예언해 줍니다. 이 예언들이 무척 깹니다. 아이들의 맑고 밝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예지력이 있냐고요? 알게 뭐에요!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요. 점쟁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교과 프로젝트 . 2012. 안정주>
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가에 관악산이 들어가 있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관악산 정기에서 벗어나질 못했네요. 이상하게 우리네 교가들은 첫줄에 왜 산과 강이름이 그렇게 나올까요? 산과 강이 거대하고 존경할 대상이라서 그럴까요?
이 <교가 프로젝트>는 동일여고와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 고등학교 학생들과 진행한 워크샵 결과물로 제작된 영상물입니다.
교가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내서 학생들의 발랄한 생각을 넣었습니다. 첫 줄에 산과 강이름이 나온 후 두 번째 줄은 정의, 사랑, 진리, 애국 등 사회가 소히 여기는 가사가 들어갑니다.
무색무취 지루한 교가들이죠. 그러나 전 교가에 설립자 이름이 들어간 교가를 불렀고 지금도 부르는 학교를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설립자 2명이 친일파 명단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가 안 바꾸는 모습에 질려 버렸습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제가 교가 가사 비판했더니 동문들이 제 블로그에 와서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더군요. 한국 사회의 병폐를 학교에서 다 배웠다는 말이 헛말이 아닙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학교에서 배우네요. 솔직히 한국 학교들이 바르고 정직하면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겠습니까? 누가 그러잖아요.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가 가장 순수하게 잘 부패했다고요. 물론, 정직하고 바른 선생님들 많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한국 교육계는 썩었습니다. 위안이 된다면 다른 카테고리들도 다 썩어서 교육계만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죠.
너무 떠들었네요. 소개 안 한 작품도 많습니다. 관람료는 2,000원으로 무료는 아니지만 데이트 하면서 교육에 대한 가볍고 무거운 질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트 셔틀 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과천관과 서울관(소공동)까지 무료 셔틀을 이용하면 관람한 후 서울관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반대도 가능합니다. 언제 한 번 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