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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커피보다 달고 시고 쓴 아름다운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by 썬도그 201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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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알못(커피 잘 알지 못하는)이었다고 뜻하지 않게 커피를 많이 배우고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냥 싼 원두커피만 먹다가 커피를 말면 알수록 커피라는 것이 깊고 오묘하며 상당히 매력적인 기호 식품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직접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마시고 라떼 아트도 도전 중에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문턱이 높지 않은 분야지만 활자화되지 못한 부분이 엄청 깊고 넓은 것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올해 안에 생두를 직접 사서 홈 로스팅을 하고 다양한 추출 방법으로 커피를 마셔볼까 합니다. 

이렇게 커피에 빠지다 보디 커피 관련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생각보다 커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지 않네요. 그중에서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영화를 봤습니다. 바로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입니다


커피향 가득한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영화가 시작되면 실종된 아버지를 사망으로 처리하게 되면 아버지의 빚을 딸인 요시다 미사키(나가시쿠 히로미 분)가 갚아야 하는데 갚겠냐는 질문을 채권자가 합니다. 30년 넘도록 연락 한 번 안하고 살던 아버지라서 대부분은 빚 인수를 거부합니다. 채권자도 기대도 하지 않고 말을 건냈는데 놀랍게도 미사키는 갚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라곤 유일하게 바닷가 어선 창고 밖에 없습니다. 

미사키는 짐을 챙겨서 자동차를 몰고 아버지의 어선 창고에 도착합니다. 마사키에게는 유년 시절 뛰어 놀던 작은 어촌입니다. 4살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와 살다가 부모가 이혼을 하자 미사키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유년 시절 자신을 품고 기타를 치던 아버지를 잊은 것은 아닙니다. 미사키는 아버지의 어선 창고를 개조해서 원두 커피를 볶는 '요다카 로스터리 커피숍'을 만듭니다. 


요다카의 로스터리 커피숍 옆에는 커피숍이 내려다 보이는 민박집이 있습니다. 미사키가 아버지 창고에 도착한 후 민박집에서 하루 묵겠다고 집주인인 에리코(사사키 노조미 분)에게 말하지만 에리코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하고 찬바람을 일으키고 집 속으로 들어갑니다. 에리카는 아리사와 쇼타라는 딸과 아들을 키우는 유부녀입니다. 중학교만 졸업한 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매춘을 합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직업을 어렴풋이 알지만 너무나도 엄마를 사랑하기에 무서운 아저씨가 집에 찾아와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지냅니다. 

미사키도 이런 풍경을 어렴풋이 봅니다. 어린 아리사가 남동생 쇼타와 함께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서 에리코 집안이 무거운 공기를 느낍니다. 


엄마가 자주 시내로 일을 하러 나가면 남매는 하루 종일 컵라면을 먹으면서 지냅니다. 그러다 집 앞에 요다카 커피숍에서 일하는 미사키를 봅니다. 
토마스 기차 같은 커피 볶는 로스터 기계를 훔쳐보면서 관심을 보이자 미사키는 이 아이들을 커피숍으로 안내합니다. 철없는 엄마 에리코는 딸 아리사가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거지 또는 도둑이라는 소리를 듣고 지내는 것을 모릅니다. 우연히 학교 담임 선생님이 요다카 커피숍에서 아리사 이야기를 통해서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형편을 듣게된 미사키는 아리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일해 보지 않을래? 그렇게 아리사는 미사키와 함께 커피를 배우면서 아픈 상처를 치유해 갑니다. 1주일 일한 급료로 급식비를 낸 아리사. 아리사는 요다카라는 이름이 궁금합니다. 요다카는 쏙독새라는 새인데 너무 못생긴 새입니다. 세상에 상처 받은 쏙독새 이야기를 듣고 아리사는 미사키에게 말합니다.  "여길 떠나지 마세요"


커피로 치유되어가는 에리코 가족

에리코의 쌀쌀맞고 독이 오른 모습은 한 사건으로 사라집니다. 에리코는 자신 때문에 미안하다면서 미사키에게 커피를 타줍니다. 이 장면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드립 커피를 탈 줄 모르는 에리코는 자신으로 인해 큰 일을 당할 뻔한 미사키를 위해 못타는 커피를 타줍니다. 드립할 줄을 모르는 에리코에게 힘겨워 하는 목소리로 얇고 길게 안에서 밖으로 동심원을 그리라는 미사키. 그렇게 에리코는 드립 커피맛을 알게 됩니다. 


미사키는 이에 명언으로 대답합니다. "남이 타주는 커피는 맛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케냐AA도 에디오피아 예가체프도 아닙니다. 남이 나를 위해서 타주는 커피입니다. 평생 남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타주던 미사키는 드립 커피 탈 줄도 모르는 에리코가 타주는 커피맛을 즐깁니다. 그렇게 두 여자는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줍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강제로 떨어져 살았던 미사키. 미사키는 아버지의 품을 잊지 못합니다. 7년 전 어선이 실종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올 것으로 믿고 아버지의 어선 창고를 개조해서 매일 커피를 볶으면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 좋은 등대가 '요다카 커피숍'입니다. 

에리코도 상처가 참 많은 엄마입니다. 어린 시절 임신을 한 후 집에서 쫒겨난 후 한 마음 좋은 할머니와 함께 민박집에서 삽니다. 그러나 삶을 포기 했는지 민박집을 운영하기 보다는 매춘으로 아이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 밑에서 매일 주눅들고 상처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사키와 에리코는 그렇게 서로를 기대면서 커피향이 나는 이웃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 '요다카 커피숍'

에리코는 미사키에게 어린 시절 미사키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실종자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그렇게 미사키는 아버지의 흔적을 하나 둘씩 찾아가게 됩니다. 미사키는 두렵습니다. 아버지의 실종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변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걸음을 걷듯 에리코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어렴풋히 느낍니다. 영화를 보다가 눈가가 여러번 촉촉해 지네요. 영화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 가득한 드라마가 커피향과 함께 흘러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커피 로스팅하는 장면과 드립 커피를 내리는 장면이 나와서 영화의 향미를 끌어 올립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커피를 소재로 했지만 커피를 가르치는 영화는 아닙니다. 로스팅이란? 드립 커피란? 식으로 커피에 대한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커피숍을 배경으로 하지만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 이게 좋았습니다. 커피를 가르치려고 했다면 상당히 쓴 커피를 마셨을 것입니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 커피를 소재로 할 뿐 부성애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요시다와 미혼모라는 상처 속에서 사는 에리코 그리고 그녀의 두 자녀의 상처가 함께 블랜딩(섞인)인 영화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좀 더 나은 내일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커피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요다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하고 블랜딩 원두 한 봉지 사오고 싶네요. 정말 오랜만에 가슴 뭉클하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를 봤습니다. 별거 아닌 이야기지만 일본은 감성 드라마로 잘 만듭니다. 신기한 것은 감독이 강수경입니다. 처음에는 한국 감독인가 했는데 대만 감독이네요. 대만 감독이 일본에서 너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시월애의 집처럼 바닷가를 걸치고 있는 요시다 커피숍에서 따뜻한 라떼 한잔 먹고 싶네요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좋습니다. 특히 '나가사쿠 히로미'는 여리면서도 강한 모습을 동시에 잘 연기를 합니다. 1970년 생으로 일본 걸그룹 리본 출신이라고 하네요. 이력이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1970년생 걸그룹이면 80년대나 90년대 초반에 활동했나 보네요. 걸그룹 출신이지만 연극 무대에서 착실히 연기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걸그룹 출신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리사를 연기한 꼬마 아가씨도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배우들 하나 하나가 참 눈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새벽에 따뜻한 라떼 한 잔 먹고 잠든 느낌의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역시 커피는 남이 타주는 커피가 최고입니다. 커피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가장 예쁜 영화가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이네요. 영화 제목은 일본 히트 영화인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차용한 제목인데 차라리 '요다카 커피숍'이라고 짓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이 좋은 영화를 다른 히트 영화의 제목을 따오다니요. 이 오점만 빼고 영화는 푸른 바다 풍경이 펼쳐진 커피숍을 배경으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요다카 커피숍은 좀 더 나은 길로 안내하는 등대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커피향을 풍기는 요다카 커피숍이라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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