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 해안가 마을을 휩쓸던 모습을 우리는 생생히 봤습니다. 마치 영화 속 한장면 같은 거대한 파도가 온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는 참혹하고 살벌한 장면에 기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참혹함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많이 회복되고 복구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재앙이 계속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높은 해일로 인해 냉각수를 공급하는 전원이 차단되었고 그로 인해 냉각수를 공급받지 못한 원자로가 수소 폭발을 일으킨 후에 멜트다운 상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원전 사고는 방사능 누출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만들었습니다. 후쿠시마 인근은 소개령이 내려졌고 지금은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5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복구가 되지 않고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무려 200조라고 하니 재앙 중에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재앙이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재앙이 원전 사고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원전 줄이기 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원전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사고가 나면 그 재앙이 어마무시하다고 판단을 하고 원전을 줄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나라인 한국은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지켜보고도 원전을 더 짓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원전 더 짓기 역주행에 대한 꾸짖음 같은 영화가 <판도라>입니다.
<안정적이지만 뻔한 신파극>
재난 영화는 스토리 운신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거대한 자연 재해나 재앙에 맛서거나 재난의 한복판에서 가족을 위해 또는 국가를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운신의 폭이 커봐야 자연 재해를 주인공 일가가 잘 피하거나 주인공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더 큰 재앙을 막는 스토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러다 보니 재난 영화 대부분은 신파로 흐르게 됩니다. 영화 <판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상도 해안가에 있는 원전 마을에 사는 재혁(김남길 분)은 원전 반대 이유를 줄줄줄 말하지만, 정작 그 원전에서 기능공으로 근무하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재혁은 가족을 방사능 누출 사고로 잃어서 원전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원전으로 인해 먹고 살기에 불만만 있을 뿐 가족들과 함께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입으로만 바른 말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흔한 소시민이죠. 영화는 시작한 후 30분이 지나자 대재앙의 전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규모 6.1의 큰 지진이 원전 주변에서 일어나고 만든지 40년이 지난 오래된 원전 1호기 냉각수 파이프 라인이 깨져서 냉각수가 줄줄 샙니다.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하면 원자로가 과열되다가 폭발하게 되면 방사능 누출로 인해 거대한 재앙이 일어납니다.
영화 <판도라>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진행과정을 모티브로 했는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나리오대로 진행을 합니다. 원전 1호기 냉각도 냉각이지만 1호기 옆에는 원전에서 다 쓴 폐 연료봉이 냉각수에 담겨져 있는데 이 냉각수가 사라지면 서울까지도 안심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 거대한 재앙을 주인공들이 막아선다는 내용이 영화 <판도라>의 내용입니다. 영화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냥 흔한 재난 재앙 영화 스토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예측한대로 흘러가는 스토리는 좀 지루한 면이 많습니다. 이런 건조한 스토리에 투입한 양념이 바로 한국식 가족주의 신파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파 영화 참 싫어할 것 같지만 실제로 흥행 대박 나는 영화들을 보면 신파 스토리가 참 많습니다.
7번방의 기적이나 인천상륙작전, 국제시장 등이 대표적인 신파 영화입니다. 영화 평론가들이나 영화 마니아들은 이런 뻔하고 눈물을 억지로 흐르게 하는 영화를 혹평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관객들은 신파라고 해도 재미있는 신파라면 기꺼이 재미를 느낄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판도라>는 신파지만 그 신파가 그렇게 미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행할 행동들을 충분하고 과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중간 중간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다만,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마지막 신파 장면에서 호흡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 참 아쉽네요. 모든 배우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연기를 잘 했습니다. 특히 재혁의 어머니로 나오는 김영애의 울부짖음과 재난 영화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문정희의 연기는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다만, 주인공인 재혁이라는 캐릭터가 생동감이 없고 계몽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쉽습니다.
<대규모 군중씬은 역대급>
한국의 재난 영화는 꽤 나왔지만 만족할만한 재난 영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해운대와 부산행이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두 영화도 월드워Z 같은 거대한 공포가 퍼져 나가는 모습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부산행 같은 경우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에 공포를 집어 넣어서 밀도감을 높일 수 있었지만 개방된 공간에서 재난 앞에 공포에 물든 대중을 담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있다면 영화 '괴물'의 한강 장면이죠. 영화 <판도라>는 역대급 군중들의 공포 장면을 잘 담아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대규모 엑스트라를 동원해서 밀치고 달리는 장면을 아주 잘 연출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규모 탈출 장면은 무척 흥미롭고 잘 연출되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재난 영화와 달리 영화 <판도라>의 재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입니다. 거대한 화재도 거대한 해일도 좀비가 쫒아온다면 그 공포의 실체가 더 효과가 있을텐데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는 방사능을 피해 달아납니다. 공포가 구체적이고 실체화되지 않다 보니 영화 내내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피하고 두려워하는 장면 묘사력은 역대급이지만 그 강도가 더 커지질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재난 영화 소재 중에 최악의 소재가 방사능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군중들이 터미널과 공항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보면서 저 뒤에 고질라 한 마리 세워 놓으면 대박일텐데라는 헛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런면에서 재난 영화지만 긴장감은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이는 연출의 아쉬움도 한 몫 합니다. 뻔한 신파 스토리라고 해도 쪼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정작 재난 상태에 대한 쪼이는 맛이 높지 않네요. 그 아쉬움을 잘 빚어낸 가족 신파가 촘촘하게 스며들어서 지루함을 달래줍니다.
파괴의 규모나 묘사력은 훌륭합니다. 예고편 보면서 CG에 대한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CG는 아주 잘 나왔습니다. 원자로에 거대한 높이의 살수차가가 물을 퍼 넣는 모습이나 아수라장과 생지옥에 대한 묘사력은 탁월합니다. 제가 신파가 아닌 부분에서 눈물을 글썽였던 부분도 바로 이 생지옥에 대한 강렬한 묘사 때문입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현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눈물이 흐르다. >
팩트의 힘을 이용한 영화들이 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역사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배치한 뻔뻔한 영화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진짜 있었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죠. 그게 팩트 파워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판도라>는 모든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며 만약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건 우연이라고 말하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연이 많은 건지 영화 속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서 이미 봤던 기시감 가득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먼저 정부의 대처입니다. 원전 사고가 나자 국무총리는 대통령에게 가는 정보를 차단하고 원전 폐쇄는 거대한 경제적 불이익과 원전 더 짓기 사업에 차질을 준다면서 최대한 원전 사고를 은폐합니다. 그러나 언론과 외국인들이 자국민 소개령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불안해 하다가 불신으로 치닫습니다.
정부가 원전 사고를 은폐하려고 하자 불신에 찬 국민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네요. 이는 영화 자체의 뛰어난 묘사력과 함께 현 정부의 강력한 협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저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구의 영화속 세계를 보면서 현실을 투영하면서 "이런 나라에 살고 있구나"라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습니다.
이미 우리는 메르스 사태와 경주 지진 사태, 세월호 사고를 통해서 한국 정부의 무능력함을 여실히 잘 지켜봤습니다.
여기에 주인공 재혁의 어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이 내탓으로 알고 사는 노인들에 대한 비판과 그럼에도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흔한 우리 주변의 노년층에 대한 묘사력도 탁월합니다.
영화와 현실이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에서는 무능 상태에서 불끈 일어나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를 지휘하는 대통령이 있었다는 점은 다른 점입니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응원해 주고 싶은 영화 판도라>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먼저 어떤 메시지를 강하게 넣고 싶다는 욕망이 컸는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계몽주의적인 느낌을 가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국이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라는 자막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런 세련되지 못한 국정홍보물(메시지는 반대지만)같은 방식은 촌스럽습니다.
또한, 계몽주의적인 메시지 전달 보다는 은근하게 은유를 섞어서 전달하는 방식이 세련되고 더 오래갑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들은 은유 보다는 직설화법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한국 영화 관객들이 직설화법에 더 크게 반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영화 마니아들이나 평론가들이 보면 이런 식의 구태스럽고 천박해 보일 수 있는 직설화법이 못마땅하겠지만 요즘 관객들이 직설화법을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에 촌스러워도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네요.
빈틈이 많은 영화지만 그럼에도 제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재미있게도 저 직설화법이 주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원전을 수출하는 나라 한국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을 하는 영화입니다. 정부 비판 영화라서 개봉이 늦춰졌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메시지 전달 방식은 촌스럽지만 이 말은 또렸하게 기억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보다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수 있는 안전한 나라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주인공의 이 대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극장 안을 가득 매웁니다. 볼만한 영화입니다. 절대 수작은 아니지만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실체적인 재앙에 대한 묵시록을 담은 영화 <판도라>입니다.
별점 : ★★★☆
40자평 : 안전빵 스토리에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신파 원전 반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