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위로주 같은 영화

by 썬도그 2016. 7. 30.
반응형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이룬 어른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어렸을 때 과학자가 되겠다 선생님이 되겠다 같은 구체적인 직업의 꿈,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 식의 삶의 방향성을 꿈으로 가진한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 꿈을 이룰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걸 수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제 경험이나 제 주변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렸을 때 꿈과 다른 직업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꿈이 거세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거야?라고 묻는 아들

왕년에 잘나갔던 소설가 료타(아베 히로시 분)은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흥신소에서 근무를 합니다. 돈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번 돈을 경륜 같은 도박에 탕진하는 습관 때문에 이혼까지 합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해서 매달 100만원의 양육비를 마련해서 아들과의 단 하루의 데이트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우리 주변의 못난 아버지의 모습이죠. 

이런 못난 아버지지만 료타의 어머니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소중한 장남입니다.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하지만 나비에게는 소중한 귤나무"처럼 장남을 살갑게 챙깁니다. 료타는 무능한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돈 벌이가 시원치 못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렸을 때 꿈이 지방공무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와 점점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발견하게 됩니다. 

중학생인 아들 '싱고'는 이런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거야?"


이 <태풍이 지나가고>은 고레에다 히로카츠의 다른 영화처럼 일상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퍼서 옮긴 듯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어떤 뚜렷한 주제가 없습니다. 이혼한 아버지가 태풍이 오는 날 전 처와 아들과 함께 어머니 댁에서 하루를 보내는 지긋히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느끼는 감동이나 초점이 다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누군가는 남녀의 사랑 방정식의 차이를, 누군가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츤데래 같은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전 이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초점이 저절로 맞혀지네요. 저도 몇 년 전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어렸을 때  꿈이 뭐였냐고 여쭈어보던 때가 생각나네요. 싱고의 이런 질문에 아버지 료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지"

하지만 압니다. 료타는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갑부집 고등학생의 사생활을 캐서 돈을 뜯어내던 료타는 그 고등학생에게 "당신 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거야"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이 장면은 중요한 장면은 아닌데 이 장면이 전 잊혀지지 않네요. 우리네 아버지들이 이런 소리를 듣고 살지 않았을까요? 료타는 정말 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우리네 아버지들이 겪는 수 많은 부정한 행동들이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서 료타가 근무하는 흥신소 사장이 의뢰비를 부풀리기 위해서 조사 날짜를 부풀려서 고객을 등쳐 먹어도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정직하지 못한 어른이 꿈인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들 그런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들 때문아닐까요? 그렇게 더럽게 돈을 벌어서 아들에게 미즈노 운동화를 사주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라고 생각하죠. 

영화는 이런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 싱고와 료타의 관계를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게 되네요. 
료타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결국 똑같이 무능력한 아버지가 됩니다. 할머니가 아버지가 좋으냐고 싱고에게 묻지만 싱고는 싫다고 말합니다. 삶도 유전일까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수 많은 아들 딸들이 자라서 똑같은 소리를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듣게 됩니다.

아마도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산과 어머니라는 강을 건너보기 전에는 그 산에서 바라 본 풍경이 어떤지, 그 강물의 세기가 얼마나 쏀지 알지 못합니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은 아들 료타가 아버지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아버지 료타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또한, 못난 아들이지만 료타의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불행의 원흉은 료타에게 있습니다. 버는 족족 경륜에 써버리니 이혼까지 당했지만 그런 못난 아들도 매일 물을 주는 귤나무처럼 아낌없이 퍼줍니다. 심지어 소설에 쓸 멋진 말도 아주 잘 합니다. 참! 이 영화는 메모해야할 주옥같은 대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죠. 이런 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아들 싱고는 애 어른이 되었습니다. 야구부에 있지만 프로야구 선수가 꿈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아들 싱고의 꿈도 료타와 동일한 공무원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가 많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어렸을 때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살겠죠. 그렇다고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가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모습이죠. 그러나 우리는 아들 딸들에게 꿈을 가지고 이루라고 강요를 합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할 때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을 실패한 삶, 또는 먹고사니즘에 저당 잡힌 삶을 살면서 고개를 떨구고 아들 딸만 바라보고 사는 것일까요?


료타는 스스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노래부르는 방 3개짜리 집을 사드리지도 못하고 이혼까지 당했습니다. 소설가상을 받았지만 그 상이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상이 왕년에~~~라고 시작하는 잔소리 같은 과거타령이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엉망이 된 삶이라고 생각하죠. 이런 료타의 삶을 아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던 날 밤에  동네 놀이터에 있는 문어 속에서 아들과의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라는 삶을 복원해 갑니다. 


주옥 같은 대사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 기적>,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비해서 큰 감동이나 뭉클함은 없습니다.
전체적인 주제의 명확성이나 스토리의 다이나믹함이 떨어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추억을 담기 위한 영화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감독이 실제 자란 집과 동네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니 아마도 이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되겠지만 그걸 관객의 공감대를 울리기에는 좀 힘이 약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옥 같은 대사들이 엄청나게 나옵니다. 먼저 귀여운 할머니인 료타의 어머니가 하는 대사 하나 하나가 명언입니다. 남자는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면서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고 타박을 합니다. 엄청난 내공의 말입니다. 남자들은 나이들면 술이 들어가면 했던 왕년에 잘나갔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는 현재의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모르고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는 큰 목소리를 냅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사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관한 대사입니다.
남자의 사랑이 이전 사랑을 지우지 못하는 수채화라면 여자의 사랑은 유화라서 새로운 사랑으로 덫칠한다고 합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법이죠. 그런데 덫칠한 거지 이전 사랑을 지운 것은 아니라는 대사는 깊은 통찰을 느끼게 합니다. 

이외에도 명언 같은 대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영화 스토리는 단촐한데 대사들이 엄청나네요. 그것도 삶의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대사들이라서 대사가 끝난 후에도 5분 간 머리속에서 되새김질 하게 됩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다가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네요. 

 


현재를 살지 못하는 남자들을 채근하는 <태풍이 지나가고>

"왜 남자들은 현재를 사랑하지 못하는 거지?" 료타의 어머니는 태풍이 불던 밤, 아들에게 채근하듯 말합니다. 
료타는 과거의 영광인 소설가상을 받은 료타를 기준점으로 후회의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아니면 이혼한 아내가 만나는 남자 뒤를 캐면서 미래에 대한 질투를 하는 소심남입니다.

남자들은 잃어 버린 후에 사랑을 꺠닫는다는 대사처럼 료타는 가족을 잃어 버린 후에 가족의 소중함과 아내의 소중함과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상실감을 느껴야 뒤늦게 그게 사랑이었다고 아는 남자들 많죠. 

돌아오지도 않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 오늘을 소비하는 우리 남자들을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현재를 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가장 행복한 분은 료타 어머니입니다. 남편도 죽고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아들과 딸 뒷바라지까는 모든 것을 퍼주지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대사들 떄문에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하네요. 나는 정말 과거의 영광에만 살고 있나? 현재가 주는 달콤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라고 돌아보게 되네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어머니가 다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 내내 불행해하고 실패한 삶을 사는 듯한 아들에게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 현재를 바라보라고 하는 듯하네요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위로주 <태풍이 지나가고>

되고 싶은 어른이 되기 못한 어른이 대부분입니다.  되고 싶다고 다 된고 하고 싶은 일들만 하려고 하는 사람만 가득하면 세상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되고 싶지 않는 어른들이 남들이 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삽니다.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합니다. 아니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아빠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오늘을 버리고 자식이라는 미래와  내 가장 빛났던 과거 속에서 삽니다. 이렇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다보니 오늘도 술과 담배로 현재를 버팁니다. 이런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당신의 삶은 실패한 것도 잘못한 것도 죄송한 것이 아닌 참으로 잘 살고 있다면서 어꺠를 두드려주는 영화가 <태풍이 지나가고>입니다.


그 위로주가 담긴 맑은 술잔을 들고 있다가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심호흡'이라는 영화 주제곡의 가사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던 잘 가! 어제의 나"
돌아갈 곳이 없다고 터벅터벅 걷지 말고 돌아갈 곳이자 출발점인 현재에  충실하게 살라고 귓속말을 해주는 영화입니다. 
전작들에 비해서 다이나믹함은 좀 떨어지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수 많은 아버지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시리즈 영화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라는 대사가 아직도 머리 속에 메아리치네요. 과거가 현재인 줄 아는 남자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 자평 :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해도 괜찮아요. 다 그렇게 살고 있어요. 현재를 느끼고 즐기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