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대부분이 남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카메라를 여러개 들고 현장에서 뛰어 다녀야 합니다. 게다가 전장터라면 더더욱 여자에게 두렵고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이 험난한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세계 최초로 첫발을 들인 여장부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마가렛 버크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1904 ~ 1971))입니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마거릿 버크 화이트가 여성 최초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폴란드 유대인인 아버지는 공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아버지는 버크 화이트에게 강한 개척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에 버크 화이트는 생계를 위해 사진을 찍어서 학교 교지나 학생들에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클래런스 화이트'에게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후에 본격적인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라이프를 창간한 <헨리 루스>
버크 화이트가 처음으로 사진을 시작한 분야는 보도 사진이 아닌 산업 사진이었습니다. 1920년대 말에 오하이오 주의 오티스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버크 화이트의 사진을 본 출판업자 헨리 루스는 기업전문 잡지인 포춘지에 사진기자로 채용합니다.
이 헨리 루스는 1936년 다큐 사진 잡지인 라이프지도 창간합니다. 라이프지는 기존의 잡지의 관습을 바꾼 잡지입니다. 이전에는 텍스트 기사가 주고 사진은 삽화 정도였지만 라이프지는 사진이 주고 그 사진을 텍스트가 설명하는 사진 전문 잡지였습니다. 1930년대는 카메라 성능과 보급이 높아지면서 뛰어난 사진들이 많이 나왔고 이 사진들을 잡지에 실어서 전 세계인들이 사진을 보다 쉽게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진계에서는 기념비적인 잡지죠.
<1936년 창간호 표지 사진을 찍은 마가렛 버크 화이트>
라이프지 창간호 표지 사진은 놀랍게도 여성 다큐 사진가인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촬영합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의 대표 사진들
<Kentucky Flood 1937>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1930년대부터 다큐 사진가로 대단한 활약을 합니다. 한 가족이 자동차를 몰고 피크닉을 가는 듯한 거대한 간판 앞에 정부가 주는 얼마 안되는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간판 꼭대기에 새겨진 세게 최고의 삶이라는 문구가 더 또렷하게 보이네요.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켄터키 홍수로 인해 이재민이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입니다.
<라이프지 1943년 12월호>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대단한 것은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2차 세계대전 전장터에 뛰어듭니다. 1941년 버크화이트는 콜드웰과 함께 모스크바로 향합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소련이 참가하게 되는 확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양 기자 최초로 스탈린 초상을 촬영합니다.
<뉴욕 상공을 날고 있는 맥도널 더글라스기>
<한국 전쟁>
버크 화이트는 1943년 여성 최초로 미국의 폭격기에 탑승해서 촬영을 했고 1945년에는 패튼 장군과 동행하면서 독일에 진격한 미군과 참혹한 독일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녀의 뛰어난 활약은 2차 세계대전을 지나 한국 전쟁에까지 이어집니다.
내가 본 가장 참혹한 한국 전쟁 사진도 버크 화이트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 사진 1장이 어쩌면 한국 전쟁을 압축한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너무 참혹한 사진이라서 구체적으로 묘사도 소개도 못하겠네요.
<마하트마 간디 1946년>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또 하나의 역작은 위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평화주의자인 간디의 상징이 된 사진입니다. 버크 화이트가 뛰어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진정성과 뛰어난 관찰력과 인내입니다. 버크 화이트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직접 물레를 돌리면서 물레질을 배웁니다.
사진과 물레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그러나 버크 화이트는 물레질을 배워야 물레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 속에서 세심한 관찰력이 담긴 사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깬 사진가 '마가렛 버크 화이트'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기 전에 버크 화이트가 여자인지 몰랐습니다. 주로 버크 화이트만 주목해서 그런지 여자인지 몰랐네요. 여자라서 히트한 사진가일까요? 아닙니다. 위 사진을 보면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그녀는 척척 했습니다. 여장부가 따로 없습니다. 위 사진은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네요
군복을 입고 카메라를 주렁주렁 메고 다니면서 전장을 누볐습니다.
놀라운 것은 버크 화이트는 주로 대형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초대형 목측 카메라네요. 아마도 이 카메라는 항공기에서 촬영할 때 사용한 카메라 같네요. 항공 사진은 전쟁의 승패를 갸늠하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형 필름을 쓰는 카메라가 해상도가 좋아서 주로 항공기에 장착해서 정찰 사진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카메라르 항공기를 넘어서 땅 위에서도 사용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다른 종군 기자들은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그녀는 대형 필름을 쓰는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다른 사진가와 달리 필름 테두리까지 인화해서 대형 필름을 사용하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대형 필름으로 전쟁 사진을 찍는 여성 사진가가 바로 마가렛 버크 화이트입니다.
진실을 얻으려면 많은 관찰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버크 화이트는 한국 전쟁 후에 파킨슨 병을 앓기 시작합니다. 무려 18년 동안 파킨슨 병과 투병하면서도 버크 화이트는 카메라를 내려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투병 생활 끝에 1971년 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카메라가 뭐냐고 물어요. 이건 이런 질문과 같아요. 외과의사에게 어떤 수술 도구가 최고로 좋아요?. 필요가 따라 카메라는 달라져요. 난 큰 카메라에 애정이 있어요"
유명 사진가에게도 어떤 카메라 좋냐는 질문은 항상 따라 다니나 봅니다. 가끔은 유명 사진가들에게 제안하고 싶어요. 어떤 카메라 쓰는지 어떤 카메라를 추천하는 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그런 질문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목에 건 푯말을 가르키면 안 물어 보겠죠.
버크 화이트 같은 경우는 최고의 카메라는 아니지만 항상 휴대하는 카메라는 대형 카메라였습니다. 큰 카메라는 큰 사진을 인화할 수 있고 세상을 좀 더 크게 펼쳐 보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