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이 커피를 마시던 서울역은 못생긴 새로운 서울역에 자기 역할을 넘겨주고 '문화역서울284'로 재탄생했습니다. 서울역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이라서 건물 자체가 무척 예쁩니다. 뭐 일제가 만든 건물이라서 부셔야 한다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꼭 부실 필요 있나요? 아픈 역사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남겨둬야죠.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문화의 향기로 덫칠해 놓은 곳이 '문화역서울284'입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융복합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올해는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가 진행되었네요. 사실 몰랐습니다. 바쁘게 산 것도 있지만 이런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몰랐네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지 않으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릅니다. 신기하게도 이 '복숭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지난 주에 처음 봤고 전시회 마지막 주인 지난 주 토요일에 부리나케 봤습니다.
작년처럼 올해도 단순히 전시회만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전시, 공연,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의 향기를 동시에 뿜어 냈었네요. 이중에서 전시회만 볼 수 있었네요 입구부터 화려합니다. 거대한 팔레트를 쌓아 올려 놓았네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줄을 서서 보는 것은 아니였지만 대림미술관의 인기와 버금가는 전시회네요.
문화서울역 284는 전시회를 위한 건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공간이 하나 하나의 갤러리가 되어서 많은 전시품을 전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건물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죠. 그러나 고풍스러운 근대 건물을 자세히 보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튼 이 건물을 스크린 삼아서 전시하는 작품도 있네요.
<명(明), 신성환. 2011>
이 작품은 물방울에 갇힌 자화상을 표현한 작품이네요.
캠코더 앞에 작은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는데 그 물방울에 투영된 사람의 모습이 담깁니다.
<Particles, 로랑 페르노. 2004>
<무제, 김명범>
전체적으로 전시회가 관람자 참여를 요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렉티브 예술품도 많았고 위 작품처럼 셀카의 배경 또는 사진 배경이 되기에 좋은 화려한 작품들이 많네요.
<제의적 소리, 김준 2014~2016>
깜짝 놀랐습니다. 관이 열리더니 사람이 벌떡 아이! 깜딱이야~~~ 관 속에서 음악을 듣는 작품이네요. 줄을 서서 관 속에 잠시 누워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회의 총연출자는 신수진 예술감독입니다. 이분 참 흥미로운 분이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심리학자다 사진평론가였다가 요즘은 사진을 넘어서 시각 예술로 확장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확장해가는 모습이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진과 조형 시각 예술이 쉽게 넘나들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사진이 시각 예술의 한 분야라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진심리학자가 예술감독으로 등장하는 것이 괜찮은 건지 좀 의문이 들긴 합니다.
그러나 전시회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설치 예술 작품들이 주를 이루어서 그런지 관객 반응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움직이고 화려한 작품들이다 보니 사진 찍기에도 좋고 감상하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어떤 주제를 관통한 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작품만 그러 모아서 소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주제일 수도 있겠네요. 최근 대림미술관이 화려함만 추구하는 전시회를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화려함이 좋아서 많은 20,30대 여성분들이 찾아가고 있죠.
이에 대한 비판도 많이 있습니다. 깊이는 없고 너무 가벼운 전시회, 화려하기만 하고 알맹이가 없는 전시회라고 비판을 합니다. 반면, 옹호하는 쪽은 그렇게라도 미술관 문턱을 낮춘 것이 어렵고 문턱이 높아서 안 가는 것 보다 낫지 않느냐는 반대의 주장도 있습니다.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죠. 아무튼 대림미술관의 인기는 다른 미술관에 영향을 준 듯합니다. 아니, 대림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이런 관공서에서 하는 전시는 대중을 의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민들이 찾지 않는 전시회는 실패한 전시회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니까요.
작년보다 올해 문화서울역 284 전시히는 더 화려했습니다. 화려한 만큼 반응도 인기도 좋았습니다.
가장 흥미로웟던 것은 낭독실입니다. 진열된 책을 골라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마이크 앞에서 낭독을 합니다. 낭독은 녹음이 되며 이 녹음된 음성은 개인 이메일로 전송이 됩니다.
내 목소리를 친구들에게 메일로 보낼 수 있는 관객 참여 작품입니다. 아주 아주 아이디어가 좋네요. 줄을 서서
이 작품은 의자에 앉아서 사진 촬영을 해주는 것 같네요. 멀리 떨어져서 서로 바라보는 자체가 흔한 풍경이 아닌데 예술이 색다른 경험재라면 그에 합당한 작품입니다.
WiFi-SM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타인의 고통을 모니터로 감상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잠시 눈물을 흘리다가도 스크롤을 내리고 깔깔 웃고 다시 씁쓸해 하다가 깔깔거리는 감정의 변화가 큽니다.
이렇게 매일 같이 다양한 뉴스와 타인의 고통을 섭취하면서 점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집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닌 내 감정의 소비재로만 활용하죠. 이런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이네요
팔찌를 차고
검색창에 고통에 관련된 단어를 넣으면 그 고통이 팔찌로 전달이 됩니다.
문화의 꽃이 가득폈던 문화서울역 284는 또 다른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