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 소설가는 누구일까요? 세익스피어? 괴테? 헤르만 헤세?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하는 서양 소설가는 '생 텍쥐베리'입니다. 누구나 어렸을 한 번 정도 읽어보는 소설이 '어린왕자'입니다. 전 '어린왕자'를 책으로 읽은 기억은 없지만 내용은 다 압니다. 워낙 이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전 영화로 접한 듯하네요
이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정도로 주옥같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우를 통해 길들이기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샘이 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불교의 선문답 같은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장미를 통해서 수 많은 장미 중에 내 장미가 소중한 이유는 거기에 들인 시간이라고 하는 말은 명언 중에 명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원하는 것은 그 대상 자체도 있지만 그 사랑의 대상에 들인 내 시간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1만원 도 내 주머니속 1만원이 다른 사람 주머니 속 1만원 보다 더 가치있다고 느껴요. 사람은 상실의 고통이 그 어떤 고통보다 심합니다.
그래서 이별이 아픈 것이 정말 그 사람을 다시 못 만난다는 공포 보다는 내 것이었던 것이 사라진다는 상실이 더 고통스러운 것 아닐까요? 아무튼. 이 '어린왕자'는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세상 사는 이치를 아름다운 동화로 잘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고 이 소설을 읽는 어른은 없고 대부분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이 많이 읽습니다.
지긋지긋한 어린왕자를 애니로?
2015년 크리스마스 전전날에 개봉한 '어린왕자'는 소설 '어린왕자'를 그대로 애니로 만든 애니로 생각하고 안 봤습니다. 내용 다 아는데 딱히 볼 마음이 안 나더라고요. 특히나 어린왕자를 모르는 아이들이나 보는 애니로 생각했습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섞여 있다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이 들렸습니다. 이 '어린왕자'라는 애니는 '어린왕자'를 단순 재현한 애니가 아니였습니다. '어린왕자'를 다 읽었다고 가정하고 '어린왕자'를 통해 한 소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성장 영화네요
효율만 강조하는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사는 소녀
좋은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 면접 질문을 달달 외우고 간 꼬마 소녀는 예상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이 나오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헬리콥터 맘은 포기를 모릅니다. 그 학교에 꼭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서 이사를 갑니다.
소녀는 엄마와 둘이 명문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합니다. 그런데 소녀의 삶이 좀 이상합니다. 엄마는 딸의 인생 계획표를 다 짜놓고 하루 일과 계획을 다 짜놓았습니다. 심지어 인생 계획표까지 짰는데 놀랍게도 생일날 무슨 선물을 받는지까지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날도 엄마는 출근하고 혼자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에서 프로펠러가 날아들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버립니다. 프로펠러는 옆집 할아버지 마당에 있던 프로펠러 비행기에서 날아온 프로펠러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를 무척 싫어합니다.
그렇게 소녀는 할아버지와 얼굴을 익히게 됩니다. 그날 저녁 열린 창문으로 종이 비행기가 날아듭니다. 종이비행기에는 어린왕자라는 소설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소녀는 그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할아버지와 점점 친해지게 됩니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진 어린왕자
할아버지는 아마 어린왕자라는 소설의 그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이 영화'어린왕자'는 어린왕자라는 소설을 액자식 소설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 아저씨가 나이가 들어서 우리 옆집에 산다면?이라는 기발한 발생으로 담겨 있네요.
그렇게 소녀는 할아버지가 쓴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그 세계에 푹 빠집니다. 영화는 소녀와 할아버지가 사는 세상은 3D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담고 액자 소설인 '어린왕자'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담았습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효과는 동화같은 이 소설을 더 동화처럼 보이게 합니다. 또한, 현실 세계와 어린왕자라는 소설의 세계를 구분하는 표현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디지털 애니와 조금씩 움직여서 만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아날로그 애니가 섞이게 되니 그 비벼지는 맛이 아주 상쾌하네요. 마치 짬짜면을 먹는 느낌입니다.
어린왕자에 대한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애니는 그 어린왕자를 자세히 다루고 싶은 마음이 없나 봅니다. 한 번 읽어 본 관객이라고 가정을 하는데 어린왕자 내용을 상당히 압축을 합니다. 특히, 그 유명한 여우가 길들이기에 대한 표현으로 니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설레일 것이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 점이 좋았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복습하는 것은 좀 지루하죠.
'어린왕자'가 청년이 된다면?
이 영화는 흥미로운 상상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청년이 된다면? 소녀는 할아버지가 쓴 '어린왕자'라는 책을 다 읽고 '어린왕자'가 뱀에 물려 죽는 모습에 화를 내고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 버립니다. 죽음을 잘 모르는 나이이기에 충격이 컸나 봅니다.
비가 오는 날 엄마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보니 할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소설 내용처럼 끝이 있다고 암시를 했습니다. 효율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민들레 홀씨 같은 할아버지를 만나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되찾습니다. 그렇게 흑백이 된 세상에서 총천연색을 알게 해준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자 소녀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 있는 고물이 된 쌍엽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상상인데 굳이 이걸 상상이라고 밝히지는 않습니다. 소녀가 쌍엽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어린왕자를 만나러 갑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액션 활극이 살짝 가미됩니다. 소녀가 만나러간 어린왕자는 청년왕자가 되었습니다.
굴뚝 청소부가 되어서 사장의 지시에 따라서 이직을 밥먹듯히 하는 우리네 20대 청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의 과거까지 잊고 사는 청년의 모습에 많은 실망을 합니다.
"어른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어린 시절을 잊는 게 문제지"
어린왕자의 핵심은 이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옆집 꼬마 숙녀에게 한 말입니다. 어린 시절 그 철없지만 명확한 생각들이 왜 어른들이 되면 흐트러질까요? 그래서 떄로는 아이들의 시선이 올바르고 올곧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정확하고 명확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나이들면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고 살아 갑니다.
어린왕자는 그 어린 시절을 잊고 사는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짝 떠올리게 하는 애니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아이가 아닌 엄마 아빠들을 위한 애니네요.
영화를 다 보고 검색을 해보니 감독은 '쿵푸팬더1편'을 만든 '마크 오스본'이고 할아버지 목소리는 '제프 브리지스', 엄마는 '레이첼 맥마담스'였네요. 마음 따뜻하게 하는 애니입니다. 큰 감동은 없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는 마중물 같은 따뜻한 애니입니다.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 보면 좋은 가족 영화입니다.
별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