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오면서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최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함정은 제가 올해 본 한국 영화가 5편도 안 됩니다. 그것도 2편은 모바일 무료 영화로 봤습니다. 그 5편은 오빠생각, 동주, 히말라야, 검사외전, 로봇소리입니다. 이 5편 중에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는 동주와 로봇소리 정도고 나머지 영화는 별로네요. 특히 히말라야와 검사외전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억지 스토리 때문에 눈쌀이 지푸려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많이 보지도 않았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한국 영화 개봉해도 잘 안 봅니다.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지나 지하로 내려간 상태라서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해도 시큰둥하네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제목이 뭐 이리 촌스러워
영화관 가보세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만 틀어 댑니다. 지난 주에 이미 관람을 완료한 사람에게는 볼 만한 영화가 없습니다. 마치 TV를 틀었는데 12개 채널 중에 10개는 캡아를 상영하고 1개 채널은 아동 애니 채널 1개 채널은 한국 영화 채널을 상용하는 것 같네요.
퐁당퐁당질 당하지 않고 오롯하게 1개의 한국 영화 채널을 지키고 있는 영화가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입니다. 볼 게 없어서 골랐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보다 매력이 꽤 있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꽤 많습니다. 매도 먼저 맞으면 덜 아프다고 쓴소리부터 해보겠습니다.
영화 제목이 참 촌스럽습니다. 홍길동? 그런데 탐정? 소설 홍길동의 홍길동은 의적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는 조선 시대 히어로 소설입니다. 영화는 이 홍길동 이미지를 차용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홍길동은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캐릭터이지 어른들은 홍길동 캐릭터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크게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의적 홍길동이 탐정 홍길동으로 변신했네요. 캐릭터 자체가 매혹적이라고 하기 힘든데 영화 속 홍길동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영화 내내 갈팡질팡하는 의뭉스러운 캐릭터를 묘사해서 정체모를 캐릭터로 비추어집니다. 그 이유가 후반에 풀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맑은 느낌이 없네요. 이는 홍길동을 연기하는 이제훈의 자연스럽지 않은 연기도 한 몫합니다.
군대 갔다와서 오히려 연기가 더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드네요. '건축학개론'의 그 이제훈이 너무 좋아서였을까요?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그렇고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에서도 아주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없네요. 이건 있습니다. 이제훈이 선과 악이 모두 담긴 캐릭터를 잘 연기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확확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밍밍하게만 느껴지네요. 여기에 황회장(고아라 분) 캐릭터가 너무 작게 나오는 것도 아쉽네요.
반대로 좋은 점은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는 아닙니다. 영화 <히말라야>의 엄대장처럼 밑도 끝도 없이 정의감 100%로 채워진 인간미 없는 캐릭터와 달리 홍길동은 의뭉스러우면서도 착한 캐릭터도 아닙니다. 비겁하고 정의감도 없이 복수심만 가득한 캐릭터입니다. 영화 후반에 점점 보편적인 주인공 캐릭터로 변신해 가는 것도 그런대로 자연스럽습니다.
전체적으로 홍길동이 어떤 조직의 어느 위치인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고 본부인 황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약하고 협업 플레이가 후반에 큰 반전을 이루지만 그 전에는 홍길동 혼자 싱글플레이 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홍길동과 말순의 케미가 빵빵 터지다
홍길동(이제훈 분)은 탐정입니다. 활빈단이라는 의적단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서 의로운 일을 하는 탐정의 수장입니다. 뛰어난 추리력이 특기인데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김병덕(박근형 분)을 찾아서 죽이겠다면서 김병덕이 사는 강원도에 갑니다. 김병덕 집에 도착을 하니 방금 전까지 있던 김병덕은 없고 두 손녀 딸만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말순이 다른 캐릭터보다 더 크게 부각되다 보니 전체 줄거리를 좌지우지하는 다른 캐릭터들을 가리는 모습도 있습니다. 뭐 그럼에도 말순의 연기나 되바람직한(?) 말뽄새는 관객을 너무 즐겁게 합니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2편이 나온다면 말순과 동이는 꼭 투입해야 합니다. 워낙 두 아역 배우들이 자기 역할 이상을 해주네요. 솔직히 이 영화는 헛점과 구멍이 있지만 말순이가 혼자 그걸 다 막고 있는 느낌도 있습니다.
광은회라는 조직과의 사투를 담은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홍길동은 김병관을 쫒다가 한 남자와 격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남자 홍길동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름과 여기온 목적까지 알고 있습니다. 홍길동은 어머니를 죽인 김병관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그외의 기억은 지워진 상태입니다. 이 묘령의 남자는 강성일(김성균 분)으로 거악 단체인 광은회의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 후반은 이 강성일과 홍길동 그리고 김병덕의 관계가 풀어지면서 거대한 스토리가 풀어집니다.
영화 전반이 말순이가 이끌어 갔다면 영화 후반은 반사코팅을 한 안경을 하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 터미네이터의 느낌도 나는 강성일이라는 캐릭터가 이끕니다. 영화는 이 3명의 남자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후반에 한올 한올 풀리면서 유머를 지우고 스릴을 잔뜩 집어 넣습니다.
환타지 같은 영화 톤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영화 <탐정 홍길동>
영화가 시작된후 스텔라를 타고 강원도로 가는 장면이 이상합니다. 어? 이거 CG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수준인가? 왜 이렇게 촬영했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씬시티처럼 모든 것을 CG로 만들었네요. 일부러 CG티를 확 내는 것이 이 영화는 환타지니까 너무 심각하게 보지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리얼리티는 관심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한 색감 변조와 이미지 리터치를 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한국을 하고 있지만 시공간은 한국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감독 조성희는 사실을 재현하는 흔히 말하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의 대척점에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이야기에 최적화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모습이 좋았습니다. 색달라라서 좋았습니다. 스타일리쉬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감독이 몇 안되는 한국에서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조성희 감독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감독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이런 제 칭찬을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일리쉬한 영화가 거의 없는 한국 영화에서 이런 낯선 시각적 표현 방식이 호오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2편이 더 기대되는 탐정 홍길동 비긴스
원래 제목은 '탐정 홍길동 비긴스'라고 지으려고 했습니다. 시리즈로 만들 것을 염두한 제목이죠. 영화 내용도 한국형 히어로인 홍길동의 탄생을 다룬 영화입니다. 문제는 이 1편이 흥행에 성공해야 2편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마블표 슈퍼히어로들이 영화관을 꽉 점령했네요.
그럼에도 유일하게 퐁당퐁당질을 당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영하는 한국영화입니다. 제가 관람한 영화관은 매진이 되었습니다.
어설픈 캐릭터도 아쉬운 캐릭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에는 말순이 후반에는 강성일이라는 악당이 재미를 이끕니다. 문제는 홍길동 캐릭터가 성긴 면이 많네요. 감독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담은 양가적인 캐릭터로 만드려고 했나 본데 그게 잘 담겨지지는 않아 보입니다. 병맛 캐릭터로 만드려면 데드풀 정도는 되어야죠. 그럼에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흔하고 뻔하지만 매끄럽게 잘 담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교통정리가 다 되었으니 홍길동 본연의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영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올 상반기에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재미있네요. 영화 스토리도 그런대로 좋고 스타일리쉬한 영상미도 좋고요. 말순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캡아 시빌워를 봐서 볼 영화가 없는 분들에게 가볍게 볼 만한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홍길동과 말순의 케미가 짜릿짜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