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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종이달. 가짜 같은 세상 진짜 쾌락을 찾아 떠나다

by 썬도그 201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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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평범한 주부인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은 은행에서 계약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른 직원들과 달리 직접 가정에 방문해서 은행 상품을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로한 그러나 돈이 많은 노인들이 은행에 오는 것을 대신해서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서 적금을 받아서 대신 입금해주고 은행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그 날도 새로운 은행 상품을 판매하고 나오는데 한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화를 냅니다. 그 청년은 대학생인 코타(아케마츠 소스케 분)으로 대학 등록금을 빌리러 할아버지를 찾았다가 면박만 당하고 나왔습니다. 코타는 아줌마인 리카에 첫눈에 반합니다. 그리고 리카도 코타라는 대학생을 밀쳐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불륜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은밀한 관계가 계속되다 코타가 대학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대출 빚이 많다는 것을 리카가 알게 됩니다. 리카는 그런 코타를 돕고 자신을 돕기 위해서 은행 전표를 조작해서 고객이 맡긴 돈을 훔쳐 쓰게 됩니다. 처음에는 평소에 사지 못하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 고객 현금으로 산 다음 그 다음 날 채워 넣었는데 점점 도덕적 해이가 커지면서 몰래 훔치는 돈의 금액이 커지게 됩니다.

그렇게 대학생 애인인 코타에게 천천히 갚으라며 대학등록금 대출 갚으라고 큰 돈을 줍니다.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던 코타는 리카가 잘 사는 줄 알고 리카의 흥청망청에 함께 동참합니다. 최고급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에서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는 등 두 사람의 씀씀이는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다 리카의 불법 행각이 걸리게 되면서 파국을 맞게 됩니다.

이 영화 '종이달'은 영화 스토리 자체는 별거 없습니다.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흔한 횡령죄 밖에 되지 안됩니다.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있는 사건을 당시 일본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을 아주 잘 담고 있는 꽤 빼어난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만으로는 큰 굴곡이 없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1995년 당시 일본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현재 한국의 문제점을 아주 촘촘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세대가 손주 세대를 잡아 먹는 시대

리카가 고객의 돈을 횡령하게 된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원 없이 돈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과 또 하나는 남을 돕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던 리카의 심성 때문입니다. 남을 돕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자체는 좋은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돕는 행동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애인인 대학생 코타의 등록금을 고객의 돈으로 갚아줍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돈은 코타 할아버지가 예금한 돈입니다. 코타 할아버지는 재력가이지만 빚 있는 인간들을 경멸하면서 손주가 등록금 좀 달라고 해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이 코타 할아버지의 행동은 1995년 일본에서 흔하게 있었던 듯 합니다. 

몇년 전에 들은 '시골의사 박경철'는 이런 내용을 말했습니다.
일본은 80년대 경제 대호항기였습니다. 이때 많은 돈을 벌어서 하와이의 땅을 사는 일본인들이 많았다고하죠. 거품 경제가 정점을 찍던 일본은 넘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거품이 쫘악~~ 빠지면서 부동산 붕괴가 일어납니다. 부동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깡통을 차기 시작합니다. 당시 부모 세대들은 자식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해외유학도 보내도 있는 돈을 다 투자 했는데 이 자식들이 부모들의 헌신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기에 90년대 초 중반 제로 금리에 가까이 금리가 떨어지자 돈을 쓸어 담았던 이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부모세대들인 돈을 은행에 넣어 놓기 보다는 집안의 개인 금고에 넣어 버립니다. 

지난 동일본 대지진때 수 많은 금고가 떠내려갔다는 말이 있더군요. 현재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돈을 쓰지 않고 금고에 돈을 쌓아 놓고만 있습니다. 이 돈 많은 세대가 돈을 써야 경제가 도는데 자식이나 부동산에 투자 했다가 망한 적이 있어서 벌어 놓은 돈을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고 금고에 쌓아 놓고 만 있습니다. 

이런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바로 코타의 할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손주라고 해도 등록금을 빌려주거나 줄 생각이 전혀 없는 옹고집 할아버지입니다. 돈은 스스로 벌어야지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인정안하고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사는 노인이죠. 

불행의 발화점은 어쩌면 이 코타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코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점점 한국에도 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소비가 팍팍 늘어야 하는데 돈 없는 사람들이 생활을 하기 위해서 돈을 쓰지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아도 일정량 이상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기대한 낙수효과는 헛깨비라는 것이 판명났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할아버지 세대들이 손주 세대를 잡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다만, 한국은 일본과 달리 부모의 희생정신이 강해서 자식이 놀고 있으면 부모 세대가 품고 있거나 일을 나가거나 재산을 일본보다 활발하게 물려주는 면이 좀 다르긴 하네요.  모든 것을 누리는 노인층, 반대로 복지 사각지대가 보다 넓은 청년층. 이 두 세대의 갈등에서 리카의 욕망이 피어납니다. 

흥미로운 장면은 이 영화는 1995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리카가 횡령한 돈을 매꾸기 위해서 1년 이자 3%라는 프리미엄 고배당 저축 상품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일본은 이미 9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로 접어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은행금리가 2% 대인 것을 보면 20년 전 일본의 모습이 현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인 비정규직 문제를 담다

리카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발견하는 사람은 유리코(고바야시 사토미 분)입니다. 유리코는 경력이 많은 은행 창구 직원으로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 연륜에서 나오는 포스죠. 숙력 노동자인 유리코 눈에 리카의 행동이 의심스럽습니다. 
유리코는 나이가 많은 경력자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리스크가 많은 직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능숙하지 못해도 유리코를 해고 시키고 다른 신입급 직원으로 대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쉽게 해고할 수 없기에 본사로 불러서 볼펜 정리 같은 허드레일 시켜서 모멸감을 준 후 알아서 퇴사하게 유도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그렇게 유리코의 앞날은 암흑입니다. 그런 유리코가 리카의 불법 행동을 추적하게 되고 위조 전표를 발견하고 리카의 불법 자금 횡령을 알게 되죠. 

만약 유리코가 본사로 불려 갔다면 리카의 불법 행각은 언젠가는 걸리겠지만 좀 더 규모가 커졌을 것입니다. 아니 안 걸릴 수도 있겠죠. 은행이란 신뢰가 생명인데 직원의 불법 횡령이 드러나면 고객들이 믿고 돈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은행은 횡령 사실을 알고도 쉬쉬하고 덮고 넘어갔겠죠. 

정규직이 필요한 이유를 유리코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떨까요? 정규직을 짜르고 쉽게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레고 블럭 같은 비정규직 또는 파격직 근로자를 키우고 있지 않나요? 비정규직은 말 그대로 숙력 노동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미숙련에서 나오는 질 나쁜 서비스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정규직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죠. 

영화 '종이달'은 이 정규직 / 비정규직 문제를 살짝 다룹니다. 



가짜 삶에서 진짜 쾌락을 추구하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서 건물 전세비로 넉넉한 노후를 살고 있는 노인들을 보면서 신용카드도 없는 자신의 초라한 삶을 돌아봅니다. 남편이 벌고 있지만 자신도 벌어야 하는 현실 그러면서 넉넉하지 못한 삶을 탈출하고자 불법 티켓을 끊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 불법 티켓을 끊고 탄 열차 이름은 쾌락입니다. 쾌락이라는 이름의 열차는 자금 출처도 묻지 않고 초고속으로 달립니다.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대학생 애인과 호텔 스위트룸에서 지내고 명품 가방과 옷을 사고 사치란 사치는 다 누립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해봅니다. 

그러나 대학생 애인 코타도 리카도 압니다. 이 쾌락이라는 열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불안감이 조여오자 리카는 안절부절 못합니다. 의심의 눈초리가 있던 어느 날, 치매끼가 있어서 돈을 쉽게 횡령한 고객의 집에 찾아갔다가 할머니가 차고 있던 목걸이를 보고 리카가 한 마디 합니다.

"예쁘네요. 모조품이네요"
"가짜여도 상관없어, 뭐 어때, 예쁘잖아"

원하는 것을 사지 못하는 상대적 궁핍함이 가득한 자신의 삶이 가짜라고 느끼고 진짜의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횡령한 리카는 
가짜여도 예쁘면 된다는 실용주의자인 할머니의 말에 큰 느낌을 받습니다. 

종이달은 사진 스튜디오에서 가족 사진을 촬영할 때 행복한 가족을 표현하기 위해서 종이로 만든 가짜 달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제가 아닌 가짜 달을 사진을 꾸미는 액세사리로 다는 모습이 있다고 하네요. 그 종이달은 허영의 달이기도 합니다. 리카는 허영의 달을 단 완벽한 가족사진 같은 삶을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실제가 아닌 가짜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쓰는 돈의 크기가 얼마나 큰 돈인지 느끼지 못하던 리카가 돈의 크기를 느낄 때 놀라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네요. 리카 같은 사람은 세상에 꽤 많을 것입니다. 물질주의 세상에서 더 비싼 것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친구보다 비싼 차를 사는 것이 자랑인 세상. 

최근에 한 외제 승용차 광고에서 비싼 차 샀다고 부러워하고 졌다는 표정을 짓는 광고를 보면서 저런 것이 허영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의 심성 보다는 입고 먹고 마시고 타고 다니는 차와 집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 리카는 단지 그걸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었다는 것이 다를 뿐 겉모습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제 40대가 된 왕년의 스타라고 하기엔 여전히 아름다운 '미야자와 리에'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경제학적인 시선으로 보면 뜯어 볼 구석이 많은 영화 '종이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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