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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사진은 맥락이다. 사진은 시선이다.

by 썬도그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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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진축제 심포지엄이 지난 주에 끝이 났습니다. 이 심포지엄에는 흥미로운 사진 강의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공감이 가는 사진 강의들을 블로그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제 들은 사진 강의는 사진작가 강홍구의 강연이었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의 강의 제목은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메모, 의도하지 않는 기록>으로 의도하지 않는 변화를 기록한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미술가로 출발했다가 최근에는 사진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은평뉴타운이 들어서기 전의 북한산 자락의 기자촌과 진관동을 촬영한 사진으로 유명합니다. 




그 이야기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몇년 전에 서울사진축제에서 강연을 한 번 했었습니다. 그때 은평뉴타운이 시작되기 전의 북한산 자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바르고 곳곳한 최신 건물이 가득한 구파발역 주변이지만 2천년도 초만 해도 주변은 달동네 풍경이었습니다. 노후, 불량 주택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은평 뉴타운 개발로 싹 사라졌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2001년입니다. 이 은평뉴타운이 있는 근처로 이사한 후 산책 삼아서 진관동과 기자촌 등을 설렁 설렁 걸어다니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그때는 여기가 싹 사라지고 아파트촌이 될 지 몰랐습니다. 그냥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2년부터 이명박 서울시장이 은평 뉴타운 사업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 시켰다고 하지만 솔직히 부동산 폭등에 더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아파트 가격 오르는 것을 기대했죠. 그래서 아파트 소유자들은 입을 막고 함박 웃음을 웃었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의 뉴타운 사업은 많은 부작용과 용산참사라는 생채기를 내고 현재 좌초 되어서 사라졌지만 은평 뉴타운은 사업 초기라서 밀어부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에 철퇴가 내려쳐지자 서울 곳곳의 뉴타운 사업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은평 뉴타운도 그 철퇴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은평 뉴타운도 입주자가 없어서 가격을 인하하고 팔아도 잘 팔리지 않아서 예정 되었던 상가 개발이나 여러가지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동산 이야기는 여기서 각설하고요. 다시 사진 이야기로 가보죠



그냥 찍었던 사진이 기록 사진이 되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그렇게 어슬렁 어슬렁 사진을 찍다가 은평 뉴타운 개발 소식을 듣게됩니다. 그리고 철거되는 집과 마을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대단한 기록을 하겠다고 큰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다만 개발 속도가 빠르다는 것과 어디에 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좀 찍어두자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촬영을 합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은 시간이 지나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먼저 시간의 더깨가 내려 앉자 강홍구 사진작가가 촬영한 은평 뉴타운 이전의 모습은 기록 사진이 됩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역사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사진의 맥락 변화는 사진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만들어진다

                                                   <1978 압구정, 사진기자 전민조>

이는 사진작가의 의도가 아닙니다. 위 사진은 1978년 압구정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강남 개발을 기록한 기록 사진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강남 개발의 느낌이 확 와닿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촬영한 전민조 사진기자가 이 사진을 촬영할 때  다음 세대들이 이 사진을 보고 강남 개발의 느낌을 확실히 느끼겠지? 라고 촬영을 했을까요? 물론 그런 의도로 촬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촬영하기 보다는 그냥 습관적으로 촬영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일반인들보다는 의미를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촬영하는 프로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진들은 그냥 찍은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다만, 그 사진이 세월이 지나면 큰 의미가 생기는 사진들이 많죠. 솔직히 위 사진을 1978년에 봤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것입니다. 어디 압구정만 저랬겠습니까? 서울의 많은 부분이 저랬죠.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대림동이나 신대방동도 예전엔 논 밭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거길 싹 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로공단을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이라는 것이 사진을 촬영할 때의 느낌과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을 의도로 촬영한 사진이 아닌데 마을이 사라지자 의미가 생기는 것을 목격합니다. 



작년에 은평뉴타운에 살던 사람들이 강홍구 사진작가를 직접 찾아옵니다. 커뮤니티 센터 안에 작은 카페에서 사진전을 할 수 있냐는 부탁이었죠. 그 분들은 이 은평 뉴타운의 원주민도 아니였습니다. 원주민 정착률은 15% 내외라서 대부분은 외지인들이죠. 

외지인들, 즉 은평구 진광동과 기자촌에 대한 기억도 추억도 없는 분들이 왜 강홍구 사진작가가 촬영한 개발 전의 사진을 원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현재 이전의 삶에 대한 조망을 위한 것이 아니였을까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외지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옛 진관동 사진을 전시하려는 이유는 "여기가 예전엔 이랬데" 식의 시선이죠. 어떻게 보면 구경꺼리로 보는 시선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진관동 폭포 마을에서 살던 분은 같은 사진을 보고 내가 살던 동네!라는 추억이 가득한 시선으로 사진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강연 후에 자신이 살던 동네 사진이라면서 강홍구 사진작가와 사진 찍는 분도 계시더군요. 
이렇게 같은 사진이라도 시선이 다르면 해석도 달라집니다. 이 해석은 사진작가의 의도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감상자의 자유의지이자 덕목입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뭐에 쓸지 모르겠지만 그냥 찍어두자는 별 의도 없이 촬영하던 사진들이 그곳에 사는 사람과 살던 사람의 시선이 다르고 관공서에서 보는 입장과 학교에서보는 시선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사진은 맥락이 끊임없이 변화된다.

<조습 사진작가>

강홍구 사진작가 다음에 강연을 한 조습 사진작가는 사진의 맥락에 대한 강연은 아니였지만 흥미로운 말을 살짝 했습니다. 
위 사진은 2007~8년 경에 촬영한 조습 사진작가의 초기 사진작품입니다. 5.16 혁명을 풍자한 사진이죠. 사진 속 군인은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부 정권의 권력자입니다. 

이 사진은 2007년 당시에는 풍자 사진이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2015년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인 제2의 유신시대라고 하는 세상 밑에서 바라보니 패러디가 아니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사진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조습 사진작가는 농담으로 말했지만 당시는 패러리로 촬영한 사진인데 현실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같은 사진도 그 사진이 해석되어지는 세상의 기류와 풍토와 개인들의 성향과 트랜드 등의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맥락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죠. 얼마전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를 쓴 한 대학교의 대자보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 시가 노무현 김대중 정권때 붙었다면 이슈가 되었을까요? 아예 대자보로 붙이지도 않겠지만 붙여도 이슈꺼리도 안되죠. 

이렇게 시는 똑같은데 정권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지면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진비평가의 말을 빌리면서 "사진이 회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진은 변하지 않지만 사진의 맥락과 어떻게 보고 읽히는지는 계속 달라진다"라는 말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의 정체성은 사진을 해석할 수 있는 권력이 규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은 대상과 너무나 유사해서 사진 그 자체로는 말을 할 수 없고 그 사진이 어떻게 읽히는 것인지는 사진의 맥락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예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는 IMF 원흉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그가 죽은 후에는 IMF 원흉이지만 민주투사였다는 투사의 이미지로 덫칠해 버립니다. 

IMF 원흉에서 민주 투사로 맥락이 바뀌었습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맥락 이야기가 나와서 좀 더 해보겠습니다. 사진작가 조습은 위 사진을 선보였을 때 386분들로부터 불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네요. 위 사진은 1987년 6월 10일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연세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다른 학우가 부축이는 사진을 재현했습니다. 그런데 Be the Reds!라는 2002 한일월드컵 응원티를 입고 있네요. 

그런데 거룩해야할 민주 항쟁을 패러디 했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전 이런 모습이 참 짜증스럽습니다. 386세대라고 하는 분들의 그 엄숙주의를 보면 꼰대끼가 가득합니다. 물론 민주 항쟁에 대한 노고와 희생정신 인정하고 고맙습니다. 다만, 그걸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무겁게만 보려고 하는 모습은 거북스럽네요. 전 6월 10일 민주항쟁도 분명 집단 의식의 한 면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그 당시 6월 10일 민주항쟁 동조하던 넥타이 부대 분들이 모두 학생 시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반대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걸요. 다만, 이 천인공노할 군사독재 정부가 어린 학생을 죽이고 물고문으로 죽이는 등 잔인무도한 면을 많이 보이면서 등을 돌린 것이지 학생 시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즉, 나도 전두환이 싫지만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폭력 시위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폭력 시위를 하고 우매한 대중을 계몽해서 우리가 승리를 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의 거품은 좀 빼야 합니다. 그 거품이 빠졌다면 위 사진을 보고도 그냥 껄껄 웃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정색을 하고 비판을 하죠. 


이렇게 조습 작가는 386 분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바로 다음 사진을 보고 비판을 멈췄다고 보네요. 위 사진은 박종철 물고문 사건을 블랙 코미디로 담은 사진입니다. 아! 이 작가는 우리편이구나 느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우리편이라고 느끼면서 비판을 철회했던 분들이 물고문 욕조 뒤에서 유유자적 때를 미는 모습은 봤을까요?
조습 사진작가는 그냥 시대를 다 풍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요? 



사진은 시선이다

<조습 사진작가의 어부들>

이건 강홍구 사진작가의 강연 내용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일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같은 사진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설명 안해도 대충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강연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습 사진작가는 강연에서 최근에 발표한 어부들이라는 사진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어부라는 존재는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 갇힌 제주를 떠도는 영혼을 구체화 한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처음 알았네요. 사진전에도 구체적 설명이 없어서 뭔지 몰랐거든요.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고통스러운 이승보다 저승으로 떠날 영혼들이 더 좋아보이는 것 같아서 표현했다고 하는데 크게 공감은 안 가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었네요. 

어쨌거나 작가의 의도를 꼭 동기화 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4,3 항쟁 때 죽은 넋을 표현한 이 작품에 한 분이 질문을 합니다. 

"왜 4.3항쟁입니까?, 4,3 사태에요"
그분은 노인 분이였는데 자신은 4,3 항쟁이 아닌 4,3 사태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합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시선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아마도 그 노인분은 평생 보수주의자로 사셨나 봅니다. 조습 작가는 4.3 항쟁이라고 국가가 정했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라고 넘어갔지만 솔직히 무례한 질문이죠. 아무튼 한 사건을 두고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릅니다. 
하물며 같은 사진을 보고 다른 해석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강홍구 사진작가는 사진은 사진을 촬영 한 후에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되는 경향이 많은데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주장하면서 너무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신경 쓰지 말라는 말도 살짝 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사진전에 가면 전시 서문을 꼼꼼하게 읽습니다. 그건 작가의 의도를 적은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서문을 쓴 사람이 작가의 사진을 본 의도이자 해석입니다. 

사진 작품 해석에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해석에 자기 해석을 동기화 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편하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진전 서문에서 사실을 담은 정보만 읽고 의도나 해석은 그냥 참고만 하세요.  작가가 A로 해석했는데 내가 B로 해석했다고 해도 그걸 오답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류인 것이지 해석에 오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마스터피스라고 하는 명작들은 여러가지 다의적인 해석이 나오는 작품들이 마스터피스라고 하잖아요. 본질만 담으면 수 많은 현상에 휘둘리는 관람자들이 자신이 보고 느낀  현상에 사진의 본질이 와 닿으면 거대한 감정 폭풍이 일어납니다. 안 일어나면 안 일어나는대로 느끼면 됩니다. 그것도 하나의 해석이자 느낌이니까요

사진은 사진 작가의 손을 떠나면 사진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되기도 하고 사진 작가의 무의미하게 촬영한 것도 보는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볼 수 있으며 사진작가의 의도가 사진을 보는 사람이 무의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재현할 뿐 의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드는 강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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