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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괴물의 아이 .아빠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존재

by 썬도그 201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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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장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소식에 전 세계 많은 영화 팬들이 아쉬워했습니다. 하야오 감독의 빈자리는 절대로 매꿀 수 없다고들 생각했죠. 일견 맞는 말이지만 전 그 빈자리를 메꾸고도 남을 감독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크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빈자리를 메꾸고도 남을 사람은 바로 '호소다 마모루'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우리에게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고스톱을 소재로 한 '썸머 워즈' 그리고 많은 평론가들이 별 다섯을 투척했던 '늑대아이'를 만듭니다.

늑대아이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의 감수성과 표현련과 스토리텔링 능력이라면 포스트 하야오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저만 하는 것이 아닌 평론가와 많은 영화팬들이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가 만든 애니는 무조건 봐야 하는 위치에 까지 올랐네요. 일본을 대표하고 일본 애니를 이끌 '호소다 마모루'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어른들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 괴물이 키우다

렌은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9살 꼬마 아이입니다. 아버지는 이혼해서 어딘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렌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떠나게 되고 렌은 혼자 남게 됩니다. 친척들이 자신들과 함께 살것이라며 렌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혼한 아빠도 아빠라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사무치게 느낍니다. 그리고 가출을 합니다.

시부야 밤거리를 헤매이던 렌은 마음 속에 큰 응어리를 안고 삽니다. 그런 렌을 지나가던 괴물이 발견하고 자신들이 사는 세계로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평행우주론은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세계와 인간이 사는 세계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갈 곳도 없던 렌은 곰을 닮은 괴물이 들어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가 쥬덴가이라는 괴물들의 세상에 도착합니다. 이 괴물들이 사는 도시는 생긴 것만 우락부락하고 짐승 얼굴을 하고 있지 인간 보다 더 고귀한 영혼과 세계를 구축하고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나약하고 마음의 어둠이 있다면서 자신들의 세상에 사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배척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괴물의 나라의 수장은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이 괴물의 나라에는 수장이 있는데 그 수장이 신이 될 예정입니다. 어떤 신이 될지 결정을 못했지만 그의 빈 자리를 대신해서 후계자를 뽑을 예정입니다. 후계자는 젠틀한 이미지의 이오젠과 무대뽀의 쿠마데츠가 경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장이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수장의 후보자는 자신의 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오젠은 성격도 좋고 매너도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고 따르고 게다가 두 아이의 아빠라서 후계자는 넘치고 넘칩니다. 하지만 쿠마데츠는 곰 같은 성격에 무계획성이 몸에 박힌 한량 기질로 제자들이 하루나 길어야 1주일 정도 있다가 다 도망칩니다.

제자는 키워야하고 그렇다고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난감해 하고 있을 때 렌을 발견하게 되고 쿠마데츠는 렌에게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제자라고 합니다. 이에 렌은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티격태격하고 싸웁니다. 그러나 렌도 갈 곳이 없고 강해지고 싶은 생각 때문에 쿠마데츠를 떠나지 못하죠.

렌이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쿠마데츠는 9살인 렌을 큐타라고 명명해버립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영화 스토리는 별거 없습니다. 쿠마데츠가 큐타를 제자로 키우는 과정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예사 영화가 아닙니다. 두 주인공의 아웅다웅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네요

 

아빠는 명령하는 위치가 아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이름

 정말 많은 부모들이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왜 자기 이름만 덕선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울자 아버지는 덕선에게 미안하다면서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잘 몰라서 그랬다고 사과를 합니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맞아요. 우리네 아빠, 엄마들 정말 실수투성이들입니다. 그런데 아이 앞에서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실수도 실수가 아닌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해야 합니다.

여기서 부터 부모와 자식간의 깊은 골이 생깁니다. 모르면 모른다라고 솔직하고 고백하고 아이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아이가 모르는 것은 귀찮더라도 잘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돼! 뭔 말이 많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 라는 말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하죠. 영화에서는 나중에~~ 나중에~~로 넌 몰라도 돼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어른들의 무책임함이 아이의 어둠을 키우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쿠마데츠가 그랬습니다. 제자로 삼으려고 큐타에게 자신의 무술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한 번도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도 없고 스스로 배운 무술이라서 설명을 할 줄을 잘 모릅니다. 이에 큐타는 짜증을 냅니다. 설명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면서 쿠마데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쿠마데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이 없다면서 큐타를 밀쳐내죠.

아이가 없는 쿠마데츠에게는 9살 꼬마인 큐타를 어떻게 달래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모릅니다. 쿠마데츠는 아빠라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죠. 우리네 아빠들 특히 지금의 할아버지 세대들이 그렇습니다. 무뚝뚝한 아빠 밑에서 자라서 아빠라는 존재는 돈이나 벌어오는 존재로 여겼고 그 존재는 결국 나이들어서 큰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가 전지전능할 줄 알았는데 아빠가 자기 보다 모르거나 능력이 없으면 괄시하게 되고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가 자기가 시키는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버르장머리를 외칩니다. 영화 '괴물의 아이'는 쿠마데츠와 큐타를 스승과 제자가 아닌 아빠와 아들의 위치에 올려 놓고 두 주인공의 갈등 속에서 우리의 부자간의 관계 또는 부녀간의 반목을 투명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 또는 자신의 아들이나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들 참 많을 것 같네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아버지란 존재는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억만금의 돈이 아닌 아이가 자라는 시간에 아빠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시간의 소중함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영화 '괴물의 아이'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시간은 다르다" 사춘기 청소년의 1년과 어른의 1년은 다릅니다. 하루 하루 몸이 폭폭 자라는 아이는 그 육체적 성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이 성숙하려면 좀 시간이 걸리는데 몸은 훌쩍 어른 몸처럼 커져 버립니다. 이때 많은 고민과 갈등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빠른 성장 속도 만큼 세상을 빠르게 흡수합니다.

만약 주변에 악한 기운을 가진 친구나 어른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흡수하죠.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의 시간을 어른들은 자신의 1년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예민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쿠마데츠도 그랬습니다. 자기 내키는대로 살고 지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남의 말은 듣지도 않았죠. 이런 쿠마데츠가 큐타를 통해 점점 변해 갑니다.

큐타에게 무술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약점인 스텝을 큐타에게서 배웁니다. 큐타가 성장할수록 아빠 같은 쿠마데츠도 성장해갑니다. 영화 '괴물의 아이'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라기 보다는 성장하는 아빠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큐타의 변해가는 모습도 눈에 많이 들어오지만 초보 아빠인 쿠마데츠가 큐타를 통해서 세상을 배웁니다. 자신만 알고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던 쿠마데츠가 점점 어른이란 또는 아빠란 자리를 배우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가르치고 이끄는 존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쉬운 어조로 그러나 가슴에 팍 꽂히게 하는 힘 있는 이야기로 전해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라는 존재가 결코 완성체가 아님을 깊게 깨닫게 해주네요. 그러고보면 제가 아버지에게 했던 그 많은 원망들이,  아버지도 아버자기 처음이고 아버지도 아버지가 있는 존재이고 아버지란 완성체가 아닌 내가 하는 만큼의 실수를 하는 존재라고 인정해주면 쉽게 풀어지는 것임을 느끼게 하네요

 

카메라 영상물에 영향을 받은 듯한 작화법

 일본 애니의 표현력의 신은 '신카이 마코토'입니다. 2013년 개봉한 '언어의 정원'은 애니가 아닌 실사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빼어난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괴물의 아이도 아주 빼어난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먼저 아웃포커스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왜 애니가 카메라라는 광각 도구를 흉내를 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애니는 카메라가 필요 없는 매체잖아요. 그런데 이런 장면은 또 있었습니다. 석양을 배경으로 쿠마데츠와 큐타가 검술 대련을 하는데 강한 광원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으면 생기는 강한 빛줄기를 그대로 표현했더군요. 좀 웃겼습니다. 애니가 실사 영화나 광학 도구를 따라하는 모습이 웃겼지만 동시에 저렇게 애니가 진화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점점 애니가 자신들의 작화법을 떠나서 실사 영상매체에 영향을 받는 느낌입니다. 액션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뛰어낸 작화는 후반에 빛을 발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넘어설 호소다 마모루

 설레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이 감독이라면 '미아쟈기 하야오'를 넘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네요. 하야오 감독이 은퇴 전에 내놓은 영화들은 그의 장점이었던 환상의 세계로의 인도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애니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부분은 아무리 CG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애니의 환상성에 감탄을 합니다. 그런 환상성을 하야오 감독은 잘 전해 줬습니다.

호소다 마모루는 그 하야오의 환상성을 이어 받은 감독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괴물의 세계를 이용해서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확장 증폭 시켜 놓았습니다. 영화는 힘이 있었습니다. 괴물의 아이 후반에는 어둠의 힘이 폭발하는데 그 힘을 이겨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네요

 

한 아이는 부모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아이는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들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부모님이 한 아이를 완성해 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부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아이를 만드는데는 그 아이의 주변 사람과 사회가 만듭니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가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고 하죠.

지금 자라는 한국의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부모 잘못 만나서가 아닙니다. 사회가 주변 사람들이 부모가 함께 마음에 큰 구멍을 냈기 때문입니다. 괴물의 아이에서는 큐타 주변에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선한 사람들이 큐타의 마움에 생긴 어둠의 구멍을 채워나갑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괴물의 아이'에 푹 젖어 버렸네요

감히 올해의 영화 10편 중에 바로 올려 놓았습니다. 늑대아이에 비해 못하다는 평이 있지만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이 영화가 전 더 좋네요
영화 늑대아이가 엄마의 모성애를 진하게 담았다면 이 영화 괴물의 아이는 부성애를 진하게 담았습니다. 마치 늑대아이와 쌍을 이루는 영화 같네요. 강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특히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초보 아빠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아빠는 아빠가 처음이고 아이도 아이가 처음입니다.
두 초보고 손을 잡고 함께 세상을 나아가면 부자간의 깊은 계곡은 사라질 것입니다.

40자평 : 아빠도 초보, 아이도 초보. 삶의 초보끼리 함께 나아가는 삶
별점 : ★★★★☆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작은 팔찌를 주네요. 처음에는 에게~~~라고 했는데 괴물의 아이를 보고 난 후 우왕~~하고 감탄사로 바뀌었습니다.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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