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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옛날 영화를 보다

응답하라 1988의 핵심 키워드는 골목과 공유

by 썬도그 2015.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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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응용하자면 "저를 키운 것은 8할이 골목이었습니다. 허름한 동네의 산 밑 기슭 끝집에 살았던 저는 동네의 골목을 다 지나야 집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골목은 여러 갈래의 물길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이어졌고 그 골목을 다 돌면 동네 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고 짝사랑하던 누나를 만나고 골목에서 친구를 불러서 딱지치기, 구슬치기와 술래잡기와 총싸움을 하던 그 골목. 그 골목이 가지는 정서를 요즘 10,20대들은 잘 모를 겁니다. 아니 30대 초반 분들도 골목 문화 보다는 아파트라는 편의성이 극대화 된 문화에서 자라서 골목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잘 모를 겁니다.

 

응답하라 1988의 핵심 키워드는 골목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쟁쟁한 연기 실력을 갖춘 좀 덜 알려진 배우들이 곳곳에 배치되었습니다. 저예산 영화의 주인공들과 씬 스틸러와 걸그룹 멤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배우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도 있었죠.

아마도 가장 큰 불만은 80년대의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한 대학생 시위 문화를 건너뛸 것이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비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알아서였는지 어느 정도 구색 맞추기 식이라도 시위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씩 소개하네요.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민주 항쟁을 주인공으로 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재미를 위해서도 보편성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 시위 문화가 80년대의 주류 문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편적인 시선이 아닙니다. 80년대 4년제 대학 진학률은 30%대 였습니다. 10명 중에 7명은 4년제 문턱에도 못가고 바로 취직을 했습니다. 즉 현재의 40대 분들의 반 이상이 대졸자들이 아닙니다. 대학교 근처에도 못가 본 40대 분들에게는 시위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대학을 못가서 바로 취직 전선에 뛰어든 친구가 대학간 친구 보다 더 많았습니다. 따라서 대학생의 시위 문화는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보편성을 놓고 보더라도 시위만 집중 적으로 부각 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의 50대 분들이 보수적인 시선을 가지는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호황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현재의 50대분 태반이 공장 근로자였고 그분들에게 있어 70,80년대는 몸은 힘들어도 돈은 원하는대로 벌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386이라고 하는 분들은 하나의 부분이었고  대부분은 대학 근처에도 못간 공장 근로자였습니다. 대학생이 보는 세상의 시선과 공장 근로자가 보는 세상의 시선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응답하라 1988은 보편적인 시선, 시위를 하던 대학생도 공장에서 땀흘리던 분들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1980년대 키워드를 '골목'으로 정했습니다.

 

<사잔작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중에서>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정겨우면서도 많이 나오는 장면은 단연코 골목이었습니다. 골목에서 밥 먹으라고 외치면 장기를 두다가도 집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 골목길에 붙어 있는 집들은 서로와 서로의 삶을 훤히 들여다 보는 유리동물원 같았습니다. 그래서 옆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골목은 개방적이었고 그 개방적인 골목을 통해서 서로의 경조사와 많은 사건 사고를 공유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조금 과장되게 나오지만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집들은 음식을 포함 많은 것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하면 항상 옆집에 꼭 갖다 주었고 저도 참 심부름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갖다주면 항상 보답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눈 인사나 하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이웃은 층간 소음 유발자 같은 시선으로 변했습니다. 이웃에 대한 연대와 정은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골목이 존재했던 아니 가장 융성했던 80년대는 달랐습니다. 골목이라는 사람이 흐르는 강을 따라서 음식이 공유되고 이야기가 공유되며 아픔과 슬픔도 함께 나눴습니다.

딱한 사정에 처한 이웃이 있으면 국가가 아닌 이웃들이 챙겼습니다. 그런 골목이 이어진 한 블럭을 우리는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라는 단어가 아주 생소하고 1단지, 2단지 또는 1동, 2동이 더 친근합니다. 같은 동은 아파트처럼 필요한 것만 취하고 편의만 가득한 관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웃도 나에게 당장 도움이 되어야 쓸모 있는 존재들로 변질되었죠

 

<사잔작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중에서>

골목은 평상 같은 존재였습니다. 더운 여름 골목길에 평상을 펴면 그 평상에 이웃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밤 하늘에 지나가는 별똥별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수박을 나눠 먹었습니다. 골목은 부족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며 이웃에 사는 형이 학력고사를 보면 엿을 보내주던 곳이였습니다.

 

<사잔작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중에서>

많은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 드라마인 '아빠는 멋쟁이'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리키 슈로더를 보면서 엄청나게 부러워했었습니다. 오전 TV방송이 시작되자 오전 방송을 채울 콘텐츠가 없었는지 아니면 외국 문화를 소개하려는지 따라서 요리할 재료도 돈도 없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오늘의 요리'를 보여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없는 용돈으로 갈 곳이 없어서 몇 안되는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인 오락실과 만화방을 맘대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가난한 친구의 얼굴에는 못 먹어서 버짐이 피기도 했죠. 그렇게 모든 것이 부족했던 80년대가 감히 2015년 현재보다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잔작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중에서>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현재가 낫지만 80년대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니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맘에 들지 못하더라도 원하기만 하면 어디든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었고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고 고된 노동이라고 하지만 이 직장에서 짤려도 다른 곳에 가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이 땅은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대학교를 나와도 취직하는 대학생은 다수가 아닌 소수이고 정부는 후진 기어를 넣고 역사책을 바꾸는데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산을 올라갈 때는 고통스럽지만 산에 오를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산 정상을 향해 오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가 눈 앞에 보이는데 내리막길이라서 편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내리막길의 편함 속에서 저 앞에 보이는 낭떠러지를 눈으로 본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내리막길의 편함(물질적 풍요)은 오히려 공포의 가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잔작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중에서>

한 원숭이 실험에서 원숭이가 학습하지도 않았는데 불공평한 것을 못 참았다고 하더군요.  다른 원숭이 들에게는 맛있는 포도를 주고 자신에게만 맛 없는 당근을 주자 당근을 버려 버렸습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굶어 죽지 않는 빈부의 격차가 심한 사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 모두 공평한 세상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공평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은수저 금수저가 이미 결승선 가까이서 뛰고 있고 흙 수저에게는 출발 총성도 울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오력과 열정을 가지라고 어른들은 부축입니다. 참 나쁜 어른들 입니다. 그리고 못난 어른들입니다.

 

그 나쁜 어른들은 잘 알 겁니다. 골목이 주던 평온과 기쁨과 공유와 이웃이라는 존재를요. 그런데 그 골목 문화를 잘 아는 분들인 40대 이상 분들이 내 새끼만 챙기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과 제 나이가 같습니다. 1988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그때의 추억이 많이 떠오르네요.

골목길에서 친구를 불러서 마을 입구에서 놀던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없는 것이 많았지만 공평하게 모두 없어서 그 없는 것을 웃음과 희망으로 가득 채웠던 그때가 자꾸 생각납니다.

골목은 90년대부터 아파트라는 편의성이 가득한 주거 공간이 등장하면서 사라지고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골목 찾기 너무 힘들죠. 그래서 골목이 많은 삼청동과 가회동 등을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골목은 이야기를 피워냅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30년이 지나도 어떠한 이야기도 담지 못합니다. 그냥 아파트는 살았던 곳이지 추억이 머무는 곳은 아니니까요.

골목이 사라지면 그 골목에 있던 이야기와 이웃도 사라집니다. 골목과 이웃은 동의어였습니다. 그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매주 '응답하라 1988'를 봐야겠습니다. 참! 골목의 정서를 느껴 보시려면 사진작가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 사진집을 추천합니다. 약 30년 간 서울 행촌동 일대에서 골목 사진만 찍으신 김기찬 사진작가의 위대한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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